눈먼 올빼미
사데크 헤다야트 지음, 공경희 옮김 / 연금술사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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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같은 시대에 노출제본으로 만든 책은 처음 보는 듯 싶다. 독특한 표지디자인과 내지는 연금술사만의 매력이다. 이란을 대표하는 소설가인 사데크 헤다야트의 작품인 <눈먼 올빼미>는 표지만큼이나 매우 독특하고 난해하게 읽히는 작품이다. 솔직히 책에 나오는 모든 내용을 다 이해한 건 아니다. "삶에는 서서히 고독한 혼을 갉아먹는 궤양같은 오래된 상처가 있다."로 시작되는데 궤양같은 오래된 상처란 무엇일까? 이 소설은 전체적으로 어둠 속에서 안개가 짙게 깔린 느낌처럼 음울하고 기괴하기까지 하다. 소설 중간엔 주인공의 시각에서 주변 상황을 묘사하고 독백하는 부분이 길게 나와서 집중하는데 꽤 애를 먹었다. 진도를 빼기가 조금 버겁다는 말이다. <눈먼 올빼미>는 이슬람 국가인 이란에서는 아직 금서로 지정된 이 작품이 우리나라 최초로 연금술사에서 번역본으로 출간된 작품이다. 이란의 대표적인 작가의 소설이라는 것보다 이란 작가가 쓴 소설을 읽은 것은 처음이라서 이질감은 느껴지지 않을지 걱정되기도 했다. 아마 두 번 읽으면 조금 이해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눈먼 올빼미>를 읽을 때마다 올컬러 올빼미가 나오는 삽화가 그나마 책을 읽을 때 오아시스처럼 느껴졌다. 자칫 건조하게 읽을 수 있었는데 하나의 작품처럼 멋진 삽화가 인상적이었다. 


이 소설은 필통 뚜껑에 그림을 그리는 가난한 주인공에게 어느날 운명처럼 한 여인을 우연히 보게 된다. 작은 방의 나있는 환기구 사이로 서있는 여인은 마치 천사와도 같았고 매우 매력적인 모습이었다. 그 여인이 나타날 때는 특이하게도 사이프러스 나무 아래 웅크리고 있는 노인과 같이 나타난다는 점이다. 그녀를 차지하고 싶은 욕망이 강하게 밀려올 쯤 그녀는 스스로 주인공의 방에 있는 침대에 누워 차가운 시신이 된다. 여기서 조금 야한 장면이 나오지만 작품 전개상 문제될 것은 없었다. 하지만 다음 장면은 조금 엽기적으로 느껴진다. 그녀의 시신을 처리하기 위해 도끼로 사지를 절단해서 가방에 넣는 장면이다. 자신이 사랑하던 여인의 시신을 훼손해서 급하게 처분해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 가난한 주인공은 시신을 옮길 장비가 전혀 없었다. 그래서 밖으로 나가 도와줄 사람을 찾던 중 미리 알고 있기나 한 듯 노인은 기꺼이 시신을 처리하는 일을 도와준다. 차를 몰고 간 장소는 고대 도시의 유적지인데 그곳에 매장시킨다. 그 다음은 고대 도시에 살고 있는 한 남자가 주인공으로 결혼한 아내가 계속 잠자리를 거부한다는 것이다. 결혼한 사이지만 남자가 아무리 노력해도 키스를 거부하고 잠자리를 하지 않으려고 한다. 이 부분에서 다소 외설적으로 느껴지는 부분이 있는데 이슬람 국가에서는 이런 묘사를 허용하지 않을 듯 싶다. 아내는 변장한 노인과 사랑을 나누는데 명백히 외도를 벌인 것이다. 이 사실을 안 남자는 아내를 살해하는 것으로 끝난다. 


책 말미에는 저자의 사진과 여러 나라에서 번역되어 나온 <눈먼 올빼미>의 표지디자인이 실려있다. 표지디자인은 우리나라가 훨씬 잘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자신의 생각을 책 속에 에 등장하는 인물을 화자로 삼아서 은유로 표현하고 있다. 자유가 억압된 현실에서 저자가 자신의 상상력을 발출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자 방법이었을 것이다. 책 전반에 짙게 깔려있는 암울함도 저자에게 놓인 현실과도 깊게 연관되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역자의 말처럼 더 멀리, 더 깊이, 더 아프게 삶과 죽음이라는 현실에 대한 두려움을 대면하게 되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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겐샤이 - 가슴 뛰는 삶을 위한 단어 수업
케빈 홀 지음, 민주하 옮김 / 연금술사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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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북 조금 큰 크기의 책이지만 안에 담긴 글들은 그 깊이가 매우 큰 책이다. <겐샤이>에 수록된 단어의 뜻을 알고나면 이제는 그 단어를 쓸 때 모든 사물과 세상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 단어에 빠져들기 시작한 케빈 홀처럼 그 단어의 쓰임에 빠져들었다. 우연히 꽃 가게에 프라빈을 만나서는 겐샤이를 배우고 이를 계기로 단어 탐구에 뛰어난 능력을 가진 언어학자 아서 왓킨스를 만나면서 몇 년에 걸친 '단어 수업'을 하게 된다. 


웅장한 코끼리를 정면으로 찍은 사진 아래 나온 겐샤이의 뜻은 이렇다. 누군가를 대할 때 그가 스스로를 작고 하찮은 존재로 느끼도록 대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이 단어를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큰 감동이 느껴진다. 내 자신을 하찮고 별 볼일 없는 존재로 느끼도록 대해서는 안 된다는 말은 큰 위로가 된다. 리더는 길을 발견하는 사람이라는 뜻인데 그는 길을 보고, 그 길을 보여준다는 말이다. 맨 앞에 서서 남들이 발견하지 못하고 찾지 못한 길을 개척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우리가 흔히 인도식 인사말로 알고 있는 나마스테에 이런 뜻이 담겨있다는 점에서 놀라웠다. 나마스테는 당신 안의 신에게 절합니다. 신이 당신에게 준 재능에 경의를 표합니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상대방이 믿는 종교를 인정하면서 존중한다는 말인데 온 우주가 머무는 당신 내면의 장소에 절한다는 의미로 당신이 가장 잘하는 일에 존경을 표현한다는 뜻으로 곧 나 자신을 향한 인사이다. 서로를 존중하는 인사라니 참 멋지지 않은가? 열정이라는 말도 자주 쓰는데 열정이 있는 사람은 행동하고, 열정이 없는 사람은 시도만 한다고 한다. 열정이라는 단어의 본래 의미는 자신이 가치있게 여기는 일을 위해 기꺼이 고통받는 것이라고 한다. 열정적으로 일한다는 건 스스로 가치있다고 여기는 일에 대해여 어떤 고통을 받더라도 모두 감수하며 기꺼이 임한다는 말이다. 사페레 베데레라는 말도 등장하는데 이 말은 보는 법을 아는 것으로 어떤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는 것에 더 집중한다는 뜻이다. 한가지 더 알아보면 겸손이라는 단어가 있는데 겸손의 어원은 흙을 의미하는 라틴어 후무스라고 한다. 즉, 후무스가 삶에 있다면 우리는 무성하게 자라고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인데 겸손은 배울 수 있고 가르침 받을 수 있는 능력이라고 한다. 


이렇듯 단어의 의미와 그 단어에 얽힌 배경을 알고나면 세상을 넓게 바라볼 수 있는 것 같다. 죽은 시인의 사회라는 영화에서 나온 카르페 디엠도 정말 많이 쓰는 단어다. 카르페 디엠은 현재 살고 있는 이 순간에 충실하라는 말인데 한창 배울 시기의 학생들에게는 명언과도 같은 라틴어이다. <겐샤이>를 읽다보면 영화 속에 나온 단어가 더 깊이 있게 다가오는 것 같다. 읽으면 읽을수록 단어의 의미를 알면 알수록 많은 감동이 느껴지는 책이다. 두말할 것 없이 강력추천하는 책으로 도서관을 통해 대출받아서라도 꼭 읽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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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교회 잔혹사
옥성호 지음 / 박하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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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작에 이런 책이 나왔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는 유독 종교를 건드리면 안될 성역이자 비판은 금기시된 영역이라고 가이드를 친다. 왜 비판을 하면 도전으로 받아들이는 걸까? 종교단체도 사람이 운영하는 것이고 잘잘못이 있으면 실정법에 따라 처분을 받는 건 당연한 것이다.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라고 성도들에게 가르칠 때는 그 교회 내 시스템도 평화적이고 민주적으로 운영되어야 한다. 하지만 대형화되면 될수록 성도들이 낸 헌금이 어떻게 쓰여졌는지 세세하게 알려주지 않는다. 작년에 대형교회를 비판하는 시사프로그램들이 연달아 나왔다. 실제로 최근에 법적판결이 나오기도 했다. 어떤 이유에서든 부끄러운 일이다. 사회에 모범이 되어야 할 지도층에 있는 분이 언론상에 거론된다는 것 자체가 문제다. 신문으로 사실과 다르다고만 할 것이 아니라 더 맑고 투명하게 개선시킬 것은 개선시키고 공개할 것은 공개해야 한다. 뚜렷하게 알려주지도 않으면서 무조건 믿으라고 한다면 그건 신앙이나 믿음을 차원을 넘어서는 일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서초교회의 새로운 담임목사인 김건축 목사는 어떤가. 오랜기간 아프리카 선교활동을 하다가 정목사 후임으로 온 사람인데 교회가 망가지는 건 순간이라는 걸 느꼈다. 핵심 요원, 잉여 요원, 건전지 요원으로 목사들을 분류한 것은 사실상 정리해고와 다를 바 없고, 낙하산 인사와 인사교체도 벌어진다. 그 뿐만 아니라 글로벌 미션을 한다면서 목사들보고 일주일 안에 토익점수로 판단하겠다는 건 또 뭔가? 본말이 전도된 발상이다. 목사를 전무목사, 부장목사, 과장목사로 나뉘거나 언론홍보팀을 꾸려 언론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도 교회가 세속에 물든 전형적인 모습이다. 정작 본인은 영어를 잘하지 못하면서 갖은 핑계를 대다가 기도를 드릴 때 립싱크로 영어로 말하는 척 속이는 부분도 어이가 없었다. 


교회가 이렇게도 망가져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마음이 아프고 씁쓸했다. 대형교회 교역자 내부에서도 이럴진대 일반 성도들은 또 어떨까 싶다. 맹목적으로 설교시간 모습만으로 믿는 일반 성도들이 안타깝게 느껴졌고 책에 나온 서초교회만의 일일까 싶다. 이보다 더 심한 일을 한 교역자들의 사례를 언론상에 나온 기사로도 많이 봤었다. 비기독교인이 개독교라며 욕하는 걸 들을 떄마다 속으로는 불쾌함을 감출 수 없지만 밖에서 그렇게 비춰지는 이유가 있으리라 본다. 그건 교회가 깨어지지 못하고 세상과 닮아버린 탓이다. 교회는 스스로 참회하는 심정으로 이런 비판들을 뼈를 깎는 심정으로 받아들여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될 수 있어야 한다. 세상과 구별되지 못한 교회라면 더 이상 성경의 가르침대로 사는 것이 아닌 세상과 격리된 채 그들만의 신앙을 지켜나는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 이 책을 읽으면서 참 답답했는데 중세시대의 마르틴 루터라는 인물이 떠올랐다. 그 당시 교회는 면죄부를 사람들에게 판매하는 일을 주수입원으로 삼았다고 한다. 그만큼 교회가 부패했다는 것인데 마르틴 루터는 이에 대항하여 95개조 반박문을 게시했다가 교황으로부터 파문을 당하고 개신교를 만드는 초석을 만들었다. 개신교는 부패해져 가는 기존 카톨릭에서 벗어나 온전히 하나님 중심에 서서 신앙을 지켜가려 한 신념으로 목숨 걸고 지켜나갔었다. 신앙도 세대와 시간의 흐름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일까? 어느새 교회는 세상과 결탁해서 세를 불리는 느낌이다. 교회의 대형화가 자랑거리가 되고 권력관계에서 우위를 점하는 기준이 된다. 이제는 참 신앙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무엇이 중요한지 이제는 되짚어봐야할 시간이다. 내 신앙은 폐쇄적인지 아니면 표용적이고 관용적인지 되물어보자. 맹목적인 신앙보다는 내 신앙의 기준이 어떤 것이었는지 알아가야 할 때이다.


내가 믿는 종교, 내가 믿는 교회를 언론이 비판적으로 다루면 극렬한 저항이 따른다. 작가의 말에서 저자가 말한 것처럼 후진적인 사회일수록 성역과 금기가 넘쳐난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뭔가 문제제기를 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금기와 성역은 필연적으로 위선과 거짓을 양산하는데 그것이 신의 이름으로 포장되면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위선과 거짓이 난무한다고 하는데 한 시사프로그램을 통해서 여실히 보고 느꼈던 부분이다. 이 책을 통해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과 교회를 다닌다는 것을 통렬하게 되돌아보게 되었다. 내 교회는 비판을 자유롭게 받아들일만큼 건전하고 투명한가? 아니면 어떠한 비판도 용납되지 못할만큼 폐쇄적이고 맹목적인지. 아무래도 뜨거운 화두로 던져놓은 저자가 옥한흠 목사의 아들이라는 점이 더 신선하게 다가왔다. 우리 사회의 교회는 어디로 가고 있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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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생각 Meta-Thinking - 생각 위의 생각
임영익 지음 / 리콘미디어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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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책을 읽으면서 들었던 생각은 <메타생각>은 또 다른 발상의 전환을 위한 책이라고 생각했다. 아마 비슷하게 중복된 책들이 나온 영향때문인지 다른 책들과 차별점은 무엇인지 궁금했다. 저자는 수학에 관한 책이 아니라며 부정했지만 사실은 수학적으로 풀어야 하는 문제들이 많아서 내 머리가 굳어버린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런 지식이 굳이 지니고 있지 않더라도 저자의 재미난 글솜씨와 아기자기한 구성으로 끝까지 붙들 수 있는 책이다. 두뇌를 예열시킬려면 골똘이 생각할 문제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간단하게 계산해나가는 문제들이 뇌를 자극시키고 치매를 예방하는데도 훨씬 큰 도움을 준다고 하니 스도쿠같은 문제라도 풀면 좋을 것 같다.


우리는 평소에도 많은 생각들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 생각들이 일상적인 부분에 머물러서 사고의 전환은 각기 다른 환경에서 생각의 틀을 깰 때 독창적이고 유별난 사고를 할 수 있는 것 같다. 주입식 교육의 폐해를 온 몸으로 느끼는 순간이 참 많다. 누군가 질문을 던지면 하나의 정답만을 떠올려야 한다. 그렇게 틀에 박힌 생각을 하는 것에 익숙해지다보니 이 책에 나온 예제들은 하나같이 어렵게 느껴지는 것이다. 이 책에 나와있는 예제들은 모두 일정한 규칙으로 문제를 풀도록 되어 있는데 조금만 더 집중하다보면 생각지 못한 부분에서 집중하게 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의외의 재미란 것은 바로 문제를 풀기 위해 몰입하는 순간에 찾아온다. 역발상을 해서 문제를 풀거나 생각을 틀을 바꾸는 시도를 해보면 쉽게 해답을 찾아낼 수 있다. 이 책은 발상의 전환을 위해 효과적이고 설득력있게 쓰여진 책이다. 올컬러가 아니였으면 따분할 법한 책이었는데 알고보니 매우 흥미로운 책인 것이다. 


책에 나온 수많은 예제들과 이야기들은 저자가 이 책을 쓰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과 생각을 했는지 알 수 있다. 책 뒷부분에 보면 꽤 많은 분량의 부록이 실린 것을 알 수 있다. 훈련과 해설부터 갖가지 문제들을 모아두었는데 무척 흥미롭다. 마치 어릴 적에 동네 문방구에서 심심풀이로 산 알쏭달쏭 문제집처럼 재미있는 문제들이 다수 수록되어 있다. 이런 문제들을 풀다보면 뇌를 자극시켜서 저자가 의도한대로 메타생각을 하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고두고 읽어도 될만큼 잘 만들어진 책으로 강력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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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클럽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지음, 김성균 옮김 / 까만양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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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너무나도 잘 알려진 모험소설 <보물섬>의 작가인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작품이라 어떤 내용일지 몹시 궁금했습니다. 그 당시에도 자살클럽이 있었나봅니다. 요즘도 인터넷 카페에 나도는 자살관련 카페가 문득 연상되기도 하더군요. 이 책은 세 편의 단편소설을 연결지은 흥미로운 소설입니다. 주인공은 왕자인 플로리즐과 그의 충신인 왕실거미장관인 제럴딘 대령이 각각 다른 주제의 사건에 얽히면서 겪는 모험을 다뤘죠. 고전소설이라 조금 투박하게 보이지만 극 전개 속으로 빨려드는 건 작가의 역량이라고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사실 자살클럽은 한 청년이 자신의 재산을 모두 탕진해버리고 마지막으로 크림파이를 나눠주는 순회활동을 하는 와중에 만나게 됩니다. 그가 왜 이런 기이한 행동을 하는지 궁금하던 와중에 자살클럽의 존재를 알게 되고 밤 11시를 넘어 그 소굴로 들어갑니다. 처음엔 발뺌하며 연기하던 회장은 침착하게 대응하는 왕자와의 대면에서 두 일행을 받아들입니다.


흡연실에서 자살클럽에 모인 사람들과 스스럼없이 다가서는 왕자와는 달리 대령은 조금 그들과 떨어져서 있었는데 화장은 명예회원인 맬서스를 소개한다. 맬서스와 긴 대화를 나누며 자살클럽을 알아갑니다. 이제 회장이 딜러역할로 원탁에 모인 그들은 나눠주는 카드패에 따라 죽음도우미와 죽음을 맞이할 자로 운명을 맡깁니다. 스페이드 에이스는 죽음의 표식이고 클럽 에이스는 자살도우미인데 맬서스는 스페이드 에이스를 받았고, 크림파이 청년은 클럽 에이스를 받아쥐었다. 다음날 소식을 접한 왕자와 대령을 그런 모임을 혐오하며 괴로워합니다. 비상식적이고 인간의 죽음을 놀이처럼 즐기는 회장을 잡아들이죠. 그 후 또다른 여행이 시작될 것처럼 끝나는데 다른 이야기의 단편과 이야기는 흐릅니다.


이 소설은 인간의 생명을 되돌아보게 하는 장치들이 보입니다. 인간이 저지르는 악행에 절규하는 왕자는 많은 점들을 느꼈을 것 같습니다. '크림파이를 나눠주는 청년 이야기'와 '의사와 사라토가트렁크에 얽힌 사연' 그리고 '이륜마차를 타고 겪는 모험'까지 상상을 하며 읽게 되는데 마치 왕자와 대령을 따라 기이하게 반복되는 사건 속으로 여행을 떠나는 기분이 들 정도였습니다. 스티븐슨은 인간의 이중성을 탁월하게 그려낸 작가로 선과 악 사이의 갈등 속에서 결국 선이 이기는 스토리는 인간이 가진 의지에 달려있다는 점을 교훈으로 안겨주고 있죠. 인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하지 않으면 나올 수 없다고 봅니다. 이렇게 짧은 단편소설 끝에는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연보와 부록이 딸려있는데 아마 그가 남긴 작품을 이해하는데 좋은 참고자료가 될 겁니다. 오랜만에 옛날 느낌이 물씬 풍기는 고전소설이라 잠시 향수에 젖어들었던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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