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명의 한국사 X파일
김진명 지음, 박상철 그림 / 새움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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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에는 아직 풀지 못한 미스터리한 사건들이 있다. 그 굵직한 사건들을 한 작가는 줄곧 취재해가며 연이어 책으로 출간했다. 20년전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는 박정희 시대에 핵폭탄을 개발하려는 시도가 있었음을 세상에 알렸고 곧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물론 소설은 베스트셀러에 올라 <1026>이라는 제목으로 재출간되기도 했던 작품이다. <김진명의 한국사 X파일>은 작가 인생 내내 끈질기게 파헤친 노력의 흔적들이다. 만화 형식으로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풀어냈지만 파일명을 붙인 사건 하나마다 가진 질량의 무게는 매우 크다. 지금도 누군가 알면 안되는 사실인 것처럼 진실을 감추고 그 역사적 사건을 왜곡한다. 김진명 작가는 역사적 진실에 가까워지기 위해 수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그 결과 소설을 통해 우리가 잊고 있거나 제대로 알지 못했던 큰 사건들을 만날 수 있었다.



한국의 한(韓)은 어디서 왔을까에 대한 추적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한나라 한이라는 뜻풀이에서 알 수 있듯 대부분은 중국 춘추전국시대에서 온 것을 상식으로 여기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작가는 오랜 노력 끝에 뜻밖의 서적에서 韓이라는 글자를 찾아냈고, <시경> <한혁편>에서 한후(韓侯)라는 인물이 주나라 선왕때 주나라를 방문했던 고조선의 준왕이라는 걸 밝혀낸다. 주나라 선왕은 기원전 827~782까지 재위한 임금이다. 세계 100대 명저로 꼽히는 <잠부론> <씨성편>에서 '<시경>에 나오는 한후는 한후의 자손은 위만에게 망해서 바다를 건너갔다'고 언급한 걸로 보면 고조선의 과거 국호가 한(韓)이었다는 걸 알 수 있다. 대한민국의 그 한이라는 글자가 어디서 왔는지조차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 부끄러웠고 우리가 대명사상에 빠져 역사를 축소해서 낮게 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임나일본부 조작의 증거인 광개토태왕비의 사라진 세 글자는 더 흥미롭다. 광개토태왕비는 신묘년 기사 부분에 '이왜이신묘년래도해파백잔OOO라이위신민'이라는 글자가 나오는데 문제는 백잔OO신라에서 마지막 근자로 미뤄 신으로 해석하는 것이 맞는데 중요한 글자가 없다. <일본서기> 7세기경에 나온 책으로 그 책에는 과거 일본이 '임나'라는 나라를 지배했었다는 기록이 나온다는 것이다. 그 억지주장에 반박하지 못하고 석회도말론에 휘둘렸는데 석회가 물에 잘 녹는 성질로 보면 그것도 엉터리였던 셈이다. 그러다 왕건군의 마이크로필름에서 광개토태왕비 저본에 사라진 글자에서 동(東)이라는 글자를 발견한다. 초균덕이라는 사람이 비에 말똥을 발라 태워서 탁본을 뜨기 전 글자를 모두 옮겨 적어둔 덕분에 우리는 진실을 만날 수 있었다. '백잔동O신라'는 즉, 백제가 동으로 신라를 쳐서 신민으로 삼았다라는 말이 된다. <몽유도원>이라는 책에 사라진 동(東)의 존재를 알렸고, 결국 일본 교과서에서 폐기되기에 이른다. 



명성황후 사건은 <황태자비 납치사건>에서 그 비밀을 밝혀냈는데 우리가 몰랐던 명성황후 시해는 묘사하기 괴로울만큼 끔찍했다. 일본 사학자인 야마로 겐타로가 쓴 <일한병합소사>에는 이런 문구가 나온다. "1895년 10월 7일 밤부터 다음 날 이른 아침에 걸쳐서, 대원군이 훈련대에게 호위되어 있는 동안 일본 수비대와 대륙 낭인의 무리가 칼을 빼들고 경복궁으로 밀고 들어가서 민비를 참살하고, 그 시체를 능욕한 뒤에 석유를 뿌려 불을 질러버린 것이다." 일본 지인을 통해 얻은 <에조보고서>에는 더욱 구체적인 사실이 적혀있었다. "낭인들은 깊이 안으로 들어가 왕비를 끌어내 칼로 두세 군데 상처를 입히고 발가벗겨 국부검사를 했습니다. 우스우면서 분노가 치밉니다. 마지막으로 기름을 부어 소실했는데 이 광경이 너무 참혹하여 차마 쓸 수가 없습니다. 궁내대신 또한 몹시 참혹한 방법으로 살해했다고 합니다." 아직까지도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하고 위안부 관련해서 망언을 퍼붓는 일본을 보면 우리가 역사를 제대로 알고 대응해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정희 죽음에 얽힌 김재규와 CIA의 관계는 한국의 핵개발 문제와 관련있고 김재규의 배후에 그런 존재가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고, 김정은을 통해 북한 권력구조를 분석하고 이성계와 함흥차사에 숨겨진 사연들을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최근 <글자전쟁>에서 한자의 기원을 파헤쳤는데 우리가 춘추사관에 발목이 잡혀 고대사, 고구려사를 기록한 책이 없는 건 통탄할만한 일이다. 이문진이 편집한 역사서 <신집>과 <유기> 100권도 어디에 있는 지 알 수 없다. 고려왕조실록이나 조선왕조실록은 오랜 역사를 있는 그대로 기록한 책으로 인정할만한 하지만 정작 중요한 우리의 뿌리를 알 수 있는 고대사에 대한 기록도 남아있지 않고 일본지배와 식민사관, 조선사편수회, 군사독재를 거쳐오면서 우리 역사는 상당 부분 축소되거나 왜곡되었다. 이 사회의 역사의식의 부재를 진정한 문제점이라고 생각한다는 작가의 말에 동의하며 이성의 눈으로 역사를 바라볼 때 우리가 후손들에게 전해줄 수 있지 않을까? 김진명 작가 덕분에 역사의 많은 부분을 알게 되었다. 읽기는 쉽고 한 시간이면 족히 다 볼 수 있는 양이지만 그 전하는 내용의 깊이는 매우 큰 책이었다. 이 미스터리한 사건과 관련된 김진명 작가의 책도 함께 읽어본다면 더욱 재미있는 독서가 될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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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해 일한다는 것 - 일의 무게를 덜어 주는 아들러의 조언
기시미 이치로 지음, 전경아 옮김 / 을유문화사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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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기시미 이치로라고 생각했다. 이제 아들러 심리학에서 대중들에게 잘 알려진 저자이기도 한 그가 <나를 위해 일한다는 것>이라는 제목의 책을 출간했다. <미움받을 용기>가 출간 된 이후로 많은 책들이 나왔지만 또 술술 읽힌다는 장점도 있다. 사회초년생일 때 저자와 똑같이 고민했던 마음도 있었다. 대학교를 다닐 때조차 아르바이트 한 번 해본 적도 없이 졸업 후 인턴으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을 때는 일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공헌감을 느끼고 가치있는 일을 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서 열등감에 빠지기도 하고 앞으로 무얼 해야 하는지 방황했었다. 일을 한다는 건 교우의 과제와 사랑의 과제를 통해 인간관계에 들어가는 것이 본질적인 목적이라고 한다. 사회인으로서 인정받기 위해서는 일할 수밖에 없다. 일을 함으로써 타인에게 공헌하고 가치있는 존재로서 일할 때는 자신을 위해 일하는 것이 된다. 


일을 많이 한다는 건 자신을 혹사시키는 일이기 때문에 스스로 원해 그런 삶을 사는 것과는 구별된다. 일과 생활에 균형을 맞추고 뭔가 가치있는 일을 하며 그 일이 즐겁다면 자신을 위해 일하는 것이다. 대개 회사생활이란 분업화가 되어 있기 때문에 좋든 싫든 회사 내 목표달성을 위해 함께 일할 수 있어야 한다. 조직생활을 하며 주위 인간관계에 대한 해법도 알아보고 있지만 정작 내 마음에 와닿은 부분은 제4장 행복하게 살려면 어떻게 일해야 할까?였다. 우리는 누구나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길 바란다. 일을 하면 즐겁고 또 일상생활에서도 자유롭고 싶다. 일중독에 빠져 가족에게 소홀하지 않고 적당히 하면서도 행복하게 살고 싶다. 


제4장을 읽고 있으면 우리가 하는 교육과 사회의 모습이 그대로 담겨 있다. 상벌교육은 부작용은 직장생활로 이어져 야단맞기는 싫고 칭찬받고 싶어하는 부하 직원들끼리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 상벌교육을 받은 사람은 어떤 식으로든 인정받기 위해서 다른 사람과의 경쟁에 치우친다. 무엇이든 지나치면 문제가 되는 것이다. 경쟁은 목적달성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기기만 된다는 마음이 자리잡기 때문에 본인 건강을 해치고 조직에 안 좋은 영향을 끼친다. 경쟁보다는 중요한 일에 집중하고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보이는 지에 대해 신경쓰지 말라고 조언한다. 맺음말에는 결국 우리가 일하는 목적은 자신이 우선 행복해져야 하고 그리고 그 가치를 다른 사람에게 나눔으로써 선순환이 이뤄진다. 자신이 불행하면서까지 부를 얻었다면 다시 생각해봐야 하는 것이다.


일하지 않으면 즉, 소득활동을 하지 않으면 생활하는데 불편함을 겪는다. 무언가를 하면서 살아갈 때 스스로 사회에 쓸모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가치있는 존재라 여기기 때문에 일 자체가 곧 행복이라고 느끼게 된다. 하지만 대부분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을 보면 그리 행복해보이지 않았다. 로또 대박을 맞거나 뭔가 엄청난 일이 터져야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스스로 선택해서 하는 일이라면 설령 실패로 돌아간다 해도 그 순간만큼은 행복하지 않을까? 아들러 심리학은 대부분 내 문제가 개선된 후에야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가 서서히 풀린다고 본다. 결국 일의 목적도 내가 그 일을 어떻게 생각하는 지에 대한 자세에 달려있다. 나는 이 일을 하면서 행복했던 적이 있던가? 밥벌이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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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트
로버트 레피노 지음, 권도희 옮김 / 제우미디어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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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을 사람으로 의의화시킨 작품은 더 이상 낯설거나 새롭지는 않다. 우리의 고전 문학작품인 <별주부전>이 그렇고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은 대개 인간 사회를 풍자하기 위해 동물마다 각각의 성격을 부여했다. 영화로는<혹성탈출>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들은 사람처럼 말과 생각을 같이 한다. 겉모습만 짐승이지만 실제 행동하는 것이나 집단 사회를 조직하는 것은 사람과 다를 바 없이 묘사된다. 모트(MOTE(E)라는 작품도 이와 비슷한데 이 책의 주인공인 고양이 모트는 갑자기 사람처럼 변신하는 능력을 가지게 된다.  모트 뿐만 아니라 지구상에는 갑자기 능력을 가지게 된 동물들이 등장하고 여기저기 사건이 벌어진다. 지구상의 사람들보다 훨씬 많은 동물들이 생각을 가진 존재로 변화하게 되고 이는 인류 멸망으로 몰고간다.


이런 공상과학소설이 묘사하는 것은 대개 상상력의 산물로 앞으로 일어날 수 있을지도 모를 일들을 가정해서 작품을 만들게 된다. 만약 지구상의 동물이 어느 날 갑자기 변신하게 되어 사람처럼 움직인다면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그들은 여전히 고유 능력을 갖고 있으면서 훨씬 사람보다 우월한 존재로 어제까지 주인으로 섬겼던 사람을 위협하게 될 지도 모른다. 사람에게 위협받고 있는 동물들은 예를 들지 않더라도 그들의 실상이 얼마나 처참한 지 알고 있다. 비좁은 철창에 갇혀 제대로 음식도 먹지 못하고 탈출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개들이 사람을 향한 증오심과 분노는 또 얼마나 강할까? 하지만 소설대로 전제는 역전이 되어 오히려 사람은 그들에게 지배를 받게 된다. 그 중심에는 여왕이 존재하며 여왕은 모든 동물들을 통제하고 지배한다.


여왕의 명령에 따라 동물들은 움직이게 되는데 그들은 점점 사람처럼 되어간다. 모트의 시각으로 이와 같은 세계를 정교하게 묘사하고 있다. 모트는 군대에 들어가 많은 공을 세우고 점점 전설적인 존재가 되어가지만 여전히 사람들이 존재했던 세상처럼 똑같은 상황이 그려지고 있다. 여왕에게 죽도록 충성하는 동물이나 여왕에게서 벗어나 독립하려는 동물들, 동물들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처절한 몸부림을 치는 인류가 함께 뒤엉켜서 더욱 혼란스러운 세상이 되버린다. 결국 사람이나 사람이 된 동물이나 지배세력이 되면 다를 바 없이 행동하는 것을 보면 씁쓸함이 남는다. 모트가 바라던 세상은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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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고 싶은 작은 집 - 공간 낭비 없이 내 삶에 가장 어울리는 집을 짓는 방법
임형남.노은주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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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좁은 자투리 공간을 활용해 용적률을 높인 협소주택이 인기를 끌고 있다. 처음 언론에 소개될 때는 협소주택이라고 지칭하곤 했는데 저자의 말을 듣고보니 굳이 작은 집이라고 부르면 될 것을 일본에서 유래한 협소라는 말을 붙이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작은 집이지만 공간 낭비없이 잘만 활용한다면 그것으로 사는 데 불편하지 않다. 많은 공간을 필요로하지 않고 나를 닮은 집이어야 한다. 규격화된 생활공간에서 벗어나 직접 집을 만들거나 개성있게 자신만의 집을 짓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다큐멘터리 <작은 집에서 산다는 것>은 크리스토퍼 스미스가 직접 도면을 설계하고 트레일러 위에 손수 집을 짓는 과정을 보여주는 영화다. 처음 집을 짓는거라 과정을 힘들었지만 자신이 살 집을 만들어간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내게도 내 삶에 어울리는 집을 짓고 살고 싶은 마음이 있다. 집에 대한 소유욕 때문이 아니라 스미스처럼 내가 살 집을 직접 만들고 싶다. 귀촌이나 귀농하며 사는 사람들 중에도 몇 년을 애써서 집을 직접 지은 사람들을 보면 나라도 못할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비록 시간은 많이 걸리지는 몰라도 개성 넘치고 동선이 편한 집이면 좋을 것 같다. <내가 살고 싶은 작은 집>은 로망, 시작, 시간, 놀이, 자아, 가족, 공부와 휴식, 자연, 전통이라는 테마에 따라 건축 사례를 재분류한 책이다. 각각 가족규모와 사연에 따라 집을 설계하고 그 집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행복할 수 있도록 설계한다는 마음으로 집을 건축한다. 이 책의 저자인 임형남, 노은주 부부는 여러 차례 방송에 출연한 경험도 있고 집과 건축 관련 책들을 숱하게 써왔다. 글에도 저자의 마음이 담겨 있듯 따뜻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좋았다.


<내가 살고 싶은 작은 집>을 읽으면서 좋았던 것은 각 건축사례를 들면서 어떻게 집을 만들었는지에 대한 건축자의 경험이 고스란히 잘 드러나 있고 남다른 애정도 느껴졌다. 각 테마별로 PS 꼭지가 붙어 있는데 여러 형태의 주거 공간에 대한 깊이있는 이해를 돕고 있으며 도면도 실려 있어 자신의 집을 설계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유용한 자료가 될 듯 싶다. 작은 집 좋은 집 50문+50답 코너는 평소 궁금해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 속시원한 답을 들을 수 있었다. 어떤 땅이 건물을 지을 수 있는지 토지이용계획을 꼼꼼하게 확인한 뒤 맹지를 구별하는 법과 집을 짓는 절차, 비용, 법규, 조건, 집의 재료 등등 앞으로 집을 지을 계획인 사람에겐 꽤나 도움이 되는 조언들이다.


언젠가 귀촌/귀농을 하게 된다면 나만의 집에서 살고 싶다. 그곳에서 추억을 만들고 삶을 아름답게 마무리하고 싶다. 잠시 잠깐 머무는 집이 아닌 내 삶이 고스란히 들어간 집에서 가족들과 행복하게 보낸다면 그보다 더 아름다울 수는 없을 것 같다. 저마다의 생활 패턴과 라이프스타일이 있기 때문에 규격화된 공간이 아닌 작은 집이지만 결코 작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 그런 공간에서 산다는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여러모로 집에 대한 꿈이 있는 사람에겐 좋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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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형, 체 게바라
후안 마르틴 게바라 & 아르멜 뱅상 지음, 민혜련 옮김 / 홍익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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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혁명가로 기억되는 체 게바라의 막냇동생인 후안 마르틴 게바라는 그가 직접 체 게바라의 행적이 있는 도시를 돌며 쓴 <나의 형, 체 게바라>는 우리가 알고 있는 체 게바라와 그의 동생이 바라보는 시각에서 느끼는 바가 다르다는 걸 보여준다. 1967년 10월 9일 체 게바라가 최후를 맞이한 볼리비아의 작은 마을 라 이게라에 찾아갔을 때 상업적으로 변질된 모습에 실망하며 그의 얼굴이 그려진 티셔츠와 깃발을 파는 모습이 혐오스럽고 비열함이 지나치다고 느끼는 것은 아마 체 게바라가 끝까지 지키고자 했던 것과는 동떨어진 모습이기 떄문이다. 그가 일으킨 혁명은 가진 것 없이 고통받고 있는 일반 대중들을 향한 것이었다. 여전히 불의한 일들이 일어나고 그 일로 인해 고통받고 삶의 자리에서 내쫓긴 사람들 편에 서서 투쟁하고 연대하며 혁명을 통해 세상을 바꾸고자 했다. 


내 기억으로 90년대 그의 일대기를 그린 <체 게바라 평전>이 출간되면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것으로 안다. 오랫동안 스테디셀러로 많은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고 읽혔던 책이다. 그보다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라는 영화에서 그가 남아메리카를 전역을 자전거로 여행하면서 사회의 문제점과 모순에 대해 눈을 뜨기 시작하고 의사를 꿈꾸던 청년에 혁명가로 나아가게 된다. 아르헨티나에서 운명적으로 피델 카스트로를 만나게 되고 혁명에 동참한 후 쿠바 혁명에는 성공했지만 결국 볼리비아 정규군에 의해 총살당했던 것이다. 아직까지도 쿠바에서는 피델 카스트로 보다 사랑받고 여전히 그리워하는 인물이 바로 체 게바라다. 급진적으로 세상을 바꾸고 이상적인 국가를 만들고자 했던 꿈을 비록 실패했지만 지금까지도 그가 추구하는 혁명에 공감하며 약자를 위해 싸웠던 체 게바라가 던지는 메시지는 유효하다.


그의 형 체 게바라를 닮은 후안 마르틴 게바라도 이제 나이가 73살이다. 그가 이 책에서 알리고 싶었던 것은 사람들이 체 게바라에 가지고 있는 편견과 오해를 풀고 싶었고 현재 우리가 사는 세상은 그 이후로 나아졌는지 짚어본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부록으로 실린 체 게바라의 <알제의 연설문>과 그의 사진들을 보면 제국주의의 폭압에 대항하여 해방시키고자 했던 위대한 사상가의 모습이 눈 앞에 있는 것 같다. 아마 우리가 현실에서 느끼는 것도 상대적인 박탈감과 정의가 실현되지 않는 사회에 대한 분노와 절망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조금은 더 인간적인 면에서 체 게바라에 대해 알 수 있었던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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