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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에서 여자로 산다는 것 - 1년 넘게 여자로 살아본 한 남자의 여자사람 보고서
크리스티안 자이델 지음, 배명자 옮김 / 지식너머 / 2015년 2월
평점 :
품절

흥미로운 책이다. 98년쯤인가 남자와 여자가 터놓고 서로의 성별이 지닌 역할과 느낌에 대해서 얘기를 나누는 걸 엿들은 적이 있었다. 그때는 서로가 친구로서 친하기 때문에 나눌 수 있는 얘기라 부러웠을 뿐이었는데 이 책은 그걸 넘어서 한 남자가 1년 동안 여자로서 살아보는 실험을 한 책이다. <슈퍼겔> 선정 베스트셀러라는 점이 시사하듯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가진 고정관념과 남자나 여자에 대해 생각했던 것들 중에 잘못 알고 있었던 모든 것에 대해 다루고 있다. 본인이 직접 여성으로서 살아본 체험을 다루었기 때문에 더욱 직설적이고 남자가 보는 관점에서 여성들의 생활을 가까이서 알아볼 수 있었을 것이다. 사실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가 오랫동안 스테디셀러로 사랑받아 온 것은 역설적으로 서로가 서로를 다 아는 듯 생각했지만 모르고 있던 점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다. 시대가 변해서 남자와 여자가 성이나 연애에 대해 직설적으로 다루는 프로그램인 <마녀사냥>이 인기를 끌고 있는데 내게도 이 책은 센세이션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저널리스트이자 작가인 크리스티안 자이델은 어느 날 밴드 스타킹을 입어보곤 그 감촉과 탄력, 지속적인 보온성에 실험적으로 입어봤는데 아내에게 여성으로서 삶을 살아보는 실험을 해보고 싶다는 말을 꺼낸다. 당연히 아내는 남자로서의 삶이 싫으냐고 질문했는데 평화로운 부부생활을 깨고 싶지 않았던 저자는 1년만 살아보고 다시 남자로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하며 간 큰 실험을 한다. 그가 처음으로 찾은 가게는 속옷가게인데 사실 남자가 여성 속옷가게에 혼자 간다는 건 매우 부끄럽게 생각했다. 왠지 남자가 여자의 속옷을 만지고 고르는 행위는 죄를 짓는 것처럼 느끼고 얼굴이 빨개진다. 남자로서의 삶은 매우 단조로운 부분이 많다. 가령 속옷만 해도 사이즈나 브랜드, 색상, 라운드 넥의 차이만 있을 뿐 그렇게 다양하다는 느낌은 없다. 하지만 여자들의 속옷은 종류도 많은 뿐더러 화사하고 크기도 제각각이다. 저자가 처음 들를 때 신세계라는 인상을 받는 이유는 남자 속옷매장에 비해 화려하고 더 밝은 조명과 형형색색의 속옷들이 진열되어 있기 때문이다.
여성들은 헤어스타일부터 화장품, 속옷, 악세서리, 옷차림, 신발, 핸드백에 이르기까지 선택할 수 있는 범위가 매우 다양하다. 그래서 지루할 틈이 없는가보다. 관심사가 많다보니 쉴새없이 할 얘기들이 넘쳐나고 자신들이 겪은 경험을 친한 친구나 아무 사람이나 붙잡고 활력있게 얘기를 나누는데도 스스럼이 없다. 이 책이 주는 시사점은 나라와 환경에 상관없다는 점이다. 어딜가나 남자나 여자나 생각하는 것은 비슷하다고 한다. 매우 가까운 사이면 얘기하기 힘든 성, 오르가슴에 대한 얘기들도 편하게 터놓고 말한다. 이런 경험은 본인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호기심에 관한 것도 아니고 성도착증이 있다거나 성전환 전 체험을 하기 위한 것도 아니다. 단지 남자로서 여자를 알아보고 싶었을 뿐이다. 결국엔 남자든 여자든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신체적인 차이는 있지만 전통적으로 규정지은 성 역할도 따지고 보면 교육과 관습, 문화에 따라 주어졌을 뿐이지 사람이 사는 건 어딜가나 똑같다는 점이다. 남자로서 여성의 삶을 살아본 체험을 담은 이 책을 읽으면 근시안적으로 바라봤던 성 역할과 고정관념을 해체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