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들 (양장) - 빈부격차는 어떻게 미래 세대를 파괴하는가
로버트 D. 퍼트넘 지음, 정태식 옮김 / 페이퍼로드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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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한마디로 놀라운 통찰력을 지닌 책이다. <이코노미스트> 2015년 최고의 책으로 선정된 의미를 알 것 같다. 50여년 전 아메라카 드림을 구현할 수 있었던 포트클린턴의 동창생 중 80%는 자신의 부모보다 교육이나 경제면에서 더 나은 위치에 올라설 수 있었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기회가 주어졌고 교육이나 사회 진출에서 차별은 거의 없었다. 내가 자라던 80년대만 해도 빈부나 소득격차는 있었지만 정상적인 학교생활을 할 수 있었고 방과 후에는 동네 친구들과 마음껏 놀면서도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는 받지 않았다. 내가 열심히 노력만 한다면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이 존재했다. 즉, 개천에서 용난다라는 속담이나 입신양명, 자수성가라는 단어는 신분상승을 이룬 상징과도 같은 사자성어이기도 했다. IMF(국제통화기금) 이전만 해도 중산층 반열에 오를 수 있는 기회는 많았고 '기회격차'의 간극은 그리 넓지 않았다. <첫사랑>, <젊은이의 양지>가 대표적으로 젊은이의 사랑과 야망 그리고 신분상승을 그린 드라마다. 드라마가 시대상을 어느 정도 반영한다고 보는데 우리 다음 세대인 아이들에게도 공평하게 기회가 주어지고 있을까?


퍼트넘이 본 오늘날의 기회격차는 부모의 학력에 영향이 있다고 진단했다. 대학 학력을 가진 부모를 둔 아이와 고등학교 이상의 학력을 갖지 못한 아이는 자랄때부터 이미 삶의 불균형을 경험해야만 한다. 잘 생각해보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기존 패러다임인 좋은 대학 나와서 좋은 회사에 들어가는 개념과 현실적인 괴리감이 서로 충돌하기 때문이다. 그마저도 경쟁률이 심하고 달성했다 하더라도 신분상승이나 소득 증대로 이어지기까지 거쳐야 할 난관이 적지 않다. 기회는 한정되어 버렸고 누구에게나 공평하지 않다. 외벌이로는 가정을 꾸리기 힘들기 때문에 맞벌이 가정이 당연시 되었는데 만일 아이를 둘 경우 도시에서는 저녁식사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은 주말 밖에 없다. 평일에 아이들은 이미 학원 스케쥴로 채워져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나라도 같은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계급적 차이는 경제적 수준이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여 부의 편중에 따라 아이가 학교에서 받는 교육의 질이나 처우가 달라지고 미래를 대비하기 위한 학습과정 또한 개별적인 양극화가 심해져가는 것이다. 소득이 많을수록 양질의 교육이나 스포츠, 운동을 접할 기회가 높다는 점이다. 


아메리카 드림은 신분이나 계급적 차이와 별개로 누구나 능력이 있고 노력만 한다면 성공할 수 있고 신분상승을 이룰 수 있었다. 실리콘밸리는 IT 기술과 아이디어만 있다면 구글이나 페이스북 같은 기업이 탄생하는 곳이다. 대개 시기가 잘 맞아 떨어졌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지만 성공의 가능성이 그만큼 넓었다. 한국에서 미국으로 이민한 사람들은 세탁소를 열심히 운영해도 먹고 사는 문제는 지장이 없었다. 이 책에 예를 든 포트클린턴은 1959년 졸업생과 현재 아이들의 비교한 모습을 봤을 때 충격적인 것은 이제 이전 부모 세대의 소득을 뛰어넘기 힘든 지경에 이르렀다. 18세 이하 빈곤층의 비율은 급격하게 늘어났다. 일부 잘 사는 지역을 제외하곤 현재 거의 전 지역이 빈곤에 시달리고 있다. 한 때 잘 나가던 기업은 도산했고 주변 일자리는 줄어들었다. 경제가 악화될수록 소득을 올릴 수 있는 기회나 일자리가 점점 사라져간다. 이미 예상했을 수도 있다. 각종 푸어가 양산되는 이유는 경제적인 여파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고 일자리를 상실하게 될 경우 안정적으로 소득이 발생하는 경로가 차단된다는 걸 의미한다. 


미국은 이제 아메라카 드림을 이룰 수 없게 되었다. 기회격차가 줄어든다는 것은 아이들의 미래도 암울하다는 걸 전제로 한다. 저자는 가족, 양육, 학교 교육, 공동체이라는 주제를 포트클린턴, 필라델피아, 베일, 애틀란타, 오렌지카운티까지 가정들의 경제적 불균형이 아이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다각도로 분석하고 있다. 실제 가정의 사례를 들어 비교하여 보여주고 있다. 미국만의 문제가 아닌 전 세계적으로 발생하는 문제인 듯 싶다. 제6장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서는 지금까지 사회 전반에 걸친 불평등과 불균형의 문제를 사회가 어떻게 풀어가야 하는지 설명해주고 있다. 공동체 의식이 살아있는 한 결국 '우리의 아이들'을 돌볼 책임은 우리 모두에게 있다는 것이다. 주 정부의 지원으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사례를 보면서 결국엔 국가와 지역사회가 이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의 문제로 떠넘기기엔 사회 구조적인 문제가 심각하다. 빈부격차가 우리 아이들을 어떻게 파괴하는지 볼 수 있었고 어렵지 않은 문장 속에 사회적인 각성을 할 수 있는 좋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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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뮈로부터 온 편지
이정서 지음 / 새움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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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출간 후 많은 논쟁거리 된 작품 <이방인>의 번역 과정을 소설 형태로 담은 책 <까뮈로부터 온 편지>. 이미 전 세계 101개 국가에서 번역되어 수천만 부가 팔렸고 우리나라에도 여러 출판사를 통해 <이방인>은 서로 다른 번역가의 손을 거쳐 나온 상황이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알베르 카뮈의 소설 <이방인>을 지켜보면서 깨달은 것은 번역을 얼마나 정확하게 하느냐에 따라 작품의 분위기, 인물설정, 독자들의 이해도가 각각 다를 수가 있다는 점이다. 사실 번역서가 거의 직역에 가까워 잘 읽히지 않은 책이 많았다. 분명 한글로 번역된 책임에도 이질감이 느껴지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작품의 몰입도는 제2의 창작이라는 번역에서 결정되는 게 아닐까? 일반 독자들이 관련 언어 전공자나 유학자가 아닌 다음에야 원본과 대조하며 읽을 사람이 있을까? 그저 번역된 것으로만 이해하고 넘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세계문학소설을 고를 때도 출판사와 번역자에 따라 각각 느낌이 다르다는 걸 안다. 단테 알리기에리의 <신곡>만 해도 출판사마다 문체가 전혀 다르다. 친절한 부연설명이 추가될 수 있겠지만 독자들이 작품을 읽고 받아들이는 느낌 자체에 차이가 생긴다는 점이다. 



저자로서도 만만치 않은 도전이었을 것이다. 이미 불문학계의 대가인 김*영 교수가 번역한 <이방인>을 건드리는 일은 출판계의 특성상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예측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어 원본과 영문 번역본, 김*영 교수 번역본을 서로 비교해가면서 번역의 오류를 지적해내고 있다. 단어 하나에도 쓰임새가 다르며 그 차이들이 번역에 많은 영향을 주고 있음도 알게 되었다. 이미 새움출판사에서 2014년에 펴낸 <이방인>의 역자노트에서 제기된 부분이다. 솔직하게 말하면 새움출판사에서 최근에 번역한 <어린왕자>처럼 <이방인>도 가독성이 좋았다. 가독성이 좋다는 것은 독자의 입장에서보면 읽은 직후 머릿 속으로 상황이 그려지면서 이해하기 수월하다는 점이다. 개정, 재개정, 개정3판 등을 하면서 같은 번역가가 한 책을 새롭게 완역하는 이유를 되짚어 보면 결국엔 그간의 문법적 오류와 시대적 반영을 포함시키기 위함이 아닌가? 저자도 비교했지만 같은 책이라도 번역가에 따라 문장이 각각 다르게 표현된다. 세계문학이라는 것이 손실은 적고 기본적인 작품에 대한 안정성 때문인지 시중에는 서로 완역본이라며 출간된 책들이 많다.



독자들은 제대로 번역된 책을 읽고 싶을 뿐이다. 이왕이면 원 저자의 문체를 잘 살렸으면 좋고 의미가 명확하면 좋겠다. 몽 페르, 므시외, 몽 피스, 기요틴처럼 원문을 한글 발음 그대로 옮긴 것 말고 뜻을 적확하게 해주었으면 한다. 혹자들은 좀 불편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일일이 역자의 오역과 오류를 지적하고 있으니 말이다. 어떻게보면 우리에겐 익숙하지 않은 모습인 이유도 있을 듯 싶다. 어느 날 죽은 줄로만 알았던 카뮈로부터 온 편지 한 통으로 인해 블로그에 <이방인> 번역을 연재하기까지 출판사에서의 일들도 살펴볼 수 있었다. 우리는 때때로 진실과 노력보다는 권위에 기대는 성향이 많다. 권위만 있으면 그것만으로 충분히 설명된다는 생각이다. 분명 오역이 눈에 보이는데도 번역가의 명성에 기대어 대수롭지 않은 일로 넘겨버린 것은 아닐까?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하면서 더 나은 번역을 위해 애써도 모자른데 말이다. 어차피 판단과 선택은 독자들의 몫이다. 번역가의 수고로움은 무엇으로 말할 수 없지만 김정용 시인이 말한 것처럼 이를 계기로 문학계가 질적으로 한 단계 도약했으면 좋겠다. 고전 번역부터 바로잡는 노력이 선행된다면 우리는 제대로 된 문학을 접할 기회가 더 많아지는 이유에서다.



뫼르소는 태양 때문에 사람을 죽였을까? 레몽은 정말 악한인걸까? 어쩌면 사회의 통념과 편견으로 인해 한 사람의 살해동기를 등식화시키고 뫼르소는 필연적으로 나쁜 사람이 되어야 했다. 모든 일들이 우연이 겹쳐 일어난 일이더라도 결과론적으로 쉽게 판단하기 때문에 시대의 희생양으로 단두대에 올라가야 했다. 살인을 정당화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고정관념과 사람에 대한 모순을 설명할 수 없는 상황에서 단지 겉으로 드러난 일로 생사여탈권이 결정되는 일이 안타까울 뿐이다. 참 논쟁이 많았지만 <이방인>이 명저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사람들이 고전에 더 관심을 갖고 많이 읽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우리가 읽은 <이방인>은 카뮈의 <이방인>이었을까? 이 책은 기존 번역문단의 권위주의와 기득권에 도전하는 그 과정들이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다. 출판사의 대표로 번역가로 바쁘게 보낸 일련의 일들을 보면서 번역의 고충도 이해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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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대한민국 이야기 - 그러나 반드시 알아야 할
김재진 지음 / 렛츠북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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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아무래도 좋았다. 당장 먹고 살 일만 걱정없으면 되었고, 저자가 처음에 그랬듯 나와는 무관한 일쯤으로 여겼다. 취업, 다이어트, 직장생활, 문화생활, 여행, 취미활동이 주된 관심사였지 정치와 역사, 사회문제에 대해선 철저히 방관자인 채 살아왔다. 단지 텔레비전 뉴스에 나오는 사건·사고들을 흥미롭게 지켜보는 정도였다. 다른 세상의 이야기 쯤으로 생각했던 것도 같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의 터전에서 누군가에게 벌어진 일이고 언제 어떻게 같은 일이 되풀이 될 지 아무도 모른다. 그럼에도 여전히 무관심했고 내 삶이 바빠 애써 외면한 채 살아왔다. 사회적인 이슈는 남의 일이 아니라 우리 삶의 근본을 뒤흔드는 문제라는 걸 광화문 촛불집회로 자각하게 되었고, 국가가 국민을 지켜주지 못한다는 걸 세월호 사건과 메르스 정국으로 재확인할 수 있었다. 정치혐오증과 무관심, 과거에 대한 망각은 권력을 쥔 자들이 의도하는 일이 아니던가?


불과 해방 후 71년만이다. 세계사적으로도 드물게 짧은 기간 동안 엄청난 경제적 성장을 이룬 대한민국. 하지만 일제강점기와 미군정, 6.25 전쟁을 지나오면서 이미 정신적으로 망가질대로 망가져버린 것은 아닐까? 근현대사에 대해 알면 알수록 동족상잔의 비극이 아닌 잔인무도한 대학살이 민간인을 대상으로 아무렇지 않게 벌어졌다는 사실에 참혹할 뿐이다. 전쟁이라는 비극보다도 사실 반공, 빨갱이라는 미명 하에 죄없는 무고한 민간인들이 죽임을 당해야 했다. 그 당시 죽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 지 헤아릴 수 없을 지경이다. 다른 나라 이야기도 아니고 이 땅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이다. 역사와 국가편을 읽다보면 국가가 주도한 국가폭력 문제는 상당히 심각했다. 밀양 송전탑,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 사대강 사업, 용산 참사,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 소록도 주민 학살, 원폭 피해자 문제, 거창산청함양 주민 집단학살, 국민보도연맹원 학살, 국민방위군 사건, 제주 4.3 사건, 여순사건, 인혁당 재건위 사건, 금강산댐 사건, 유서 대필 조작 사건, 세월호 참사 등 쉽게 넘길만한 사건들이 아니다. 반민특위는 강제 해산되어 제대로 과거를 청산하지 못했고, 과거사위원회는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면서 모두 해산되어야 했다. 아직 제대로 규명되지 못한 사건들이 많을텐데도 또 묻혀버리는 것은 아닌가 싶다.


<그러나 반드시 알아야 할 슬픈 대한민국 이야기>는 역사, 국가, 자본주의·복지, 노동, 교육·언론, 경제·정치, 시민 등 매우 광범위하게 다루면서 중요 이슈들은 빅브라더와 시민K의 눈으로 꼬집어내고 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시민들이라면 반드시 알아두어야 할 문제들을 저자는 잘 설명해주고 있다. 일제강점기 때 일제가 신민화 정책을 펴면서 그들 권력에 종속되길 바라는 것처럼 지금도 여전히 정치, 경제권력은 시민이 아닌 신민으로서의 삶을 살아가길 바란다. 그들이 펼치는 정책과 시스템을 부정하지 못하도록 정교하게 장치를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빅브라더의 입장에서는 권력을 계속 유지하면서 그들이 원하는 방향대로 사회시스템이 움직이도록 하면 된다. 우리의 권리를 되찾으려면 늘 깨어있고 사회문제가 우리 삶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아마 우리의 무관심으로 인해 잊혀졌을 많은 사건들을 떠올려보라. 큰 사건이 터진 이후에도 반복되는 사건들을 보면 절로 한숨이 흘러나온다. 


성수대교 붕괴, 삼풍백화점 붕괴, 대구 지하철 가스폭발 사건, 대구 지하철 화재참사는 내겐 가장 큰 사건이었다. 급성장의 여파로 인해 인간의 탐욕이 지배했고 이는 부실공사와 안전불감증으로 발생한 합작품인 셈이다. 경제양극화로 인해 일자리 부족과 생활고는 많은 사람들을 벼량 끝으로 내몰았고 여전히 우리나라는 잠재적인 위험요소들이 많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다. 경제는 계속 발전해가는데 우리들의 마음은 점점 여유가 사라지고, 오직 돈만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겨우 버텨내고 있다. 다른 가치보다 돈이 우선순위에 놓이게 된 것이다. 우리는 이 땅에 벌어졌던 역사를 잊지 말고 후대에 계속 알릴 의무가 있다. 이 아픈 역사의 상처를 치유하지 못하고 다음 세대로 넘어간다면 어떤 비극이 펼쳐질 지 누구도 장담하지 못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이 답답했고 평소 고민해오던 문제를 명쾌하게 설명해주어서 한 편으로는 통쾌했다. 연대의식, 문제제기, 의문, 시위 등 사회의 통념에 물음표를 제시할 수 있는 사회풍토가 생겨났으면 좋겠다. 거북이와 토끼로 본 동물들의 경주 이야기를 읽다보면 같은 통조림 제품만 양산하는 학교 시스템이 생각났다. 사회는 창의적인 인재가 필요하다고 하지만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고 오직 대학입시와 성적 등수에만 목매는 상황과 대치되서 아이러니하다고 생각했다. 언제쯤이면 모두가 희망과 꿈을 품을 수 있는 건전하고 밝은 사회가 올 수 있을까? 불과 30년 전만 해도 같은 이웃이었고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던 존재였는데 언제부터인가 서로가 경쟁상대이며,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없는 이웃이 되었을까? 정말 슬픈 대한민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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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의 글쓰기
정숙영 지음 / 예담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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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일이 다 그렇듯 겉으로 봐선 모른다. 만일 전업작가로 일할 때 겪는 많은 일들은 작가라는 타이틀에 가려 다 좋게 보이는 것과 같은 이치다. 취미는 즐기기만 하면 되는데 그 취미가 직업이 되버릴 때는 다른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내게도 하나의 낭만과도 같은 직업을 꼽으라면 여행작가가 있다. 미지의 세계로 여행을 자유롭게 다니면서 글도 쓰고 사진도 찍으면서 책까지 낼 수 있다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있을까? 여행이라는 마법과도 같은 단어로 젊음, 청춘, 자유, 즐거움이 모두 함축되어 있다. 일상 속에서 단지 여행 계획을 세우는 것만으로도 가슴 설레이기까지 한다. 여행작가가 되기 위한 재능 중 체력만 제외하면 내게 딱 맞는 직업이다. 출사나 팸투어를 다니고 리뷰를 남기며 사진촬영도 꽤 좋아한다.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여행자의 글쓰기>라는 책은 내 눈길을 사로잡았고 작가의 솔직담백한 여행작가의 세계를 볼 수 있어서 더 좋았다. 


<여행자의 글쓰기>는 확실히 한 권의 책을 쓰고자 하는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알찬 꿀팁들이 많다. 글쓰기 훈련을 위한 몇 가지 팁도 반복해서 연습하다보면 좋은 문장을 어떻게 구성해야 할 지 감을 잡을 수 있을 듯 싶다. 목차를 만들고 문법에 맞는 잘 된 문장을 만드는 등 작가로 도전하려는 사람이나 글을 잘 쓰고 싶은 사람에게도 들어두면 좋을 듯 싶다. 시중에는 정말 많은 여행에세이들이 나와있고 나 역시 셀 수 없이 많은 책들을 읽어왔다. 일단 여행이라는 테마가 들어가면 에세이나 가이드북은 사람들에게 인기를 끈다. 그런 연유로 여행작가는 어떻게 되는지, 여행작가만으로 수입은 괜찮은 지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결론적으로 여행작가만 하기에는 확실히 돈이 아쉽다. 여행경비를 자비로 갔다 오는 케이스가 많고 여행사나 항공사에서 협찬을 받은 경우는 정말 운 좋은 케이스인 것이다. 작가는 2년 이상 생계에 아무런 지장을 받지 않는다면 도전해도 좋다고 하는데 읽고나니 여행 시작부터 끝나고 난 뒤 골방에 앉아 하루종일 원고를 작성하는 일이라는 게 한 사이클인데 단지 여행을 마쳤다고 끝이 아닌 것이다. 여행 중에는 틈틈히 노트북에 정보나 메모, 글을 남기고 여행지에 대한 사진도 빼놓지 말아야 한다. 이왕이면 영어나 제2외국어 쯤은 간단하게 회화를 나눌 수 있으면 좋다. 


분명 장점이 많지만 여행작가가 되기 위해선 글부터 잘 쓰고 볼 일이다. 어쩌면 가장 비효율적인 자영업이라는 작가의 진단이 맞을지도 모르겠지만. 책을 낸다고 당장 엄청난 수익이 발생하는 것도 아닌데다 인지도를 높여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일이 어디 쉬운가? 일반인이 쓴 여행에세이도 많이 읽어봤는데 전문작가 못지 않게 잘 쓴 것도 있지만 평이한 수준에 머무른 감상기를 담은 책도 왕왕 있었다. 아마 여행작가가 궁금한 사람들에게 이 책의 부제가 제대로 설명해주리라 본다. 여행작가에 대한 궁금증이 비밀노트를 통해 풀렸다. 여행작가로 산다는 건 참 멋진 일이다. 다방면에서 팔방미인이 되어야 할 것 같은 여행작가. 언제가 도전해볼만한 직업인 것 같다. 자유를 열망하는 사람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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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사랑한 시대의 예술, 조선 후기 초상화 - 옛 초상화에서 찾은 한국인의 모습과 아름다움
이태호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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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과 같은 형태의 카메라가 개발된 시점은 1936년대라고 한다. 그 이전 시기의 서양에서는 카메라 옵스쿠라같은 광학기구를 이용해 입체감과 원근감을 구현하기가 훨씬 수월해졌다. 실제 눈을 통해 보는 것 달리 이 기계는 "그림을 그릴 줄 모르는 사람도 이 장치를 사용하면 연필로 사물의 윤곽을 쉽게 그릴 수 있다고"고 물리학자 포르타의 말에서 보듯 풍경을 묘사하는데 있어서 화가들에게 꽤 유용하게 썼음을 알 수 있다. 기존보다 생동감 넘치는 풍경화들이 나오게 된 배경에도 궤를 같이하고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카메라 옵스쿠라가 발전하면서 더욱 사실성이 강조되었고 구체적인 묘사가 가능했다. <사람을 사랑한 시대의 예술, 조선 후기 초상화>에서 이런 부분을 언급한 건 흥미로운 일이다. 조선시대엔 대표적으로 정약전의 집에 카메라 옵스쿠라를 설치하고 이기양의 초상화를 그린 사례가 대표적이지만 어떤 화가가 그렸는지는 밝혀진 바가 없다고 한다. 


동양화는 주로 풍경이나 해학물, 가례의식, 역사 상상화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편인데 정교하게 그린 초상화를 박물관에서 직접 보면 놀라움을 자아낼 정도로 섬세하게 그렸다. 그 시대의 인물들의 모습을 유추해볼 수 있는 중요한 단서이면서 전체적으로 흘러나오는 풍모와 지위를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카메라로 찍어도 큰 차이는 없을 것 같다. 대부분의 초상화는 당대 최고로 칭하는 화가들이 주로 그렸는데 흥미로운 점은 조선 후기 1780년대 카메라 옵스쿠라를 활용했을 가능성이다. 그 근거로 이명기가 그린 초상화의 입체적인 표현과 손을 드러낸 포즈, 투시도법에 근거한 바닥의 사선처리를 들고 있다. 의습을 보면 명암이 발견되는 점으로 미루어보면 명확한 인물의 축소비율과 형식미는 눈대중으로만 그릴 수 없다는 판단이다. 정약용을 통해 들여온 카메라 옵스쿠라가 이렇게 초상화에서 다양하게 활용되었다는 점을 알았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소득이다.





조선후기 초상화를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가치있는 책이라고 생각했는데 서양의 카메라 옵스쿠라가 조선시대에까지 영향을 끼쳐 초상화에도 활용되었다는 점은 분명 흥미로운 일이다. 위 작품은 <채제공 65세 초상> 금관조복본으로 1784년 이명기가 그렸으며 보물 제1477호 개인소장 중인 작품이다. 비단에 수묵채색을 하였고 수염 한 가닥, 바닥의 문양까지 매우 사실적으로 그렸다. 유지초본과 흑단령포본이 남아있으니 어떤 방식으로 그렸는지 대강 알아볼 수 있다. 서양 미술에만 익숙해져서 조선시대의 그림은 고리타분에 여겨왔던 것 같다. 이 책을 통해 조선시대 후기에 성행한 초상화의 역사와 많은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현재 남아있는 것만이라도 후대에 잘 보존해주길 바란다. 전쟁과 환란에 불태워져 소실된 작품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소중한 문화자산을 알기 위한 노력과 더불어 지킬려고 하는 노력이 함께 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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