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 전부터 읽다가 중간에 멈추는 이유를 알았습니다.
예전부터 무인양품을 좋아했어요. 한국에 정식 수입이 되기 전에 일본에 가면 다양한 물건들을 사왔습니다. 크래프트 편지지와 봉투, 수첩, 명함 보관함, 스니커즈, 방수 천가방 등등 심플하고 뭔가 한 단계를 더 고민한 제품들이 좋았습니다. 그 후로는 유럽에 가도 우리나라에서도 종종 가곤 했습니다. 만년필도 사고 옷도 꽤 많이 사서 입었습니다. 정갈하지만 품질이 나쁘지 않아서 꽤 오랜동안 형태가 유지돼 한 번 사면 몇 년씩 입었습니다. 약간 아쉬운 지점도 있지만 그럭저럭 만날 수 있는 포인트가 있습니다.
몇년 전 일본 제품을 사지 말고 일본 여행을 가지 말자는 시점 이후 무인양품을 거의 이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가끔가서 구경하고 사기도 하지만, 그 전에 비하면 떠난 소비자로 분류가 될 겁니다.
서론이 길었습니다.
디자이너들이 책을 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무래도 기획을 하고 눈에 보이는 시각적인, 물리적인 결과물까지 만들기 때문일 것 같아요. 특히 산업디자인은 비즈니스와 매우 밀접하니까요.
앞으로는 디자이너는 제품과 서비스로 만나려고 합니다. 어떤 책들을 보겠지만, 대부분은 기획의 의도나 기획역량을 잘 전달하는 데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최근에 우리나라에서 디자인의 기획에 관한 책들은 역량으로, 일에 대한 태도로 설명하는 책들이 많습니다만, 그 책들을 읽는다고 해서 그런 디자인을 할 수 있는 역량도 쌓고 기회를 가질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이 책도 비슷합니다. 하라 켄야의 기획 의도와 디자인을 좋아하지만, 일본 정부 프로젝트를 기획한 의도에 대한 이 책은 잘 읽히질 않습니다. 애초에 기획 의도로 결과물을 설명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겠지요.
왠지 맘이 편해졌습니다. 시각 디자인이든 제품 디자인이든 앞으로는 보고 쓰는 것 중심으로 하고, 관심이 가는 디자인에 대해서만 기획 의도를 궁금해 하는 게 좋겠습니다.
마케팅, 광고, 디자인 모두 지금 사람들이 욕망하는 걸 눈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돈을 버는 분야이니까, 이 결과물들이 향하는 욕망의 방향 정도만 보는 게 적당한 것 같습니다. 결과물에 동의할 지 안 할지는 논외로 하더라도요.
예전에 철학 수업을 들을 때, 광고를 정해서 분석을 하는 과제가 있었습니다. 과제를 하면서 관심가는 광고를 정하고 이리저리 생각해본 적이 있습니다. 과제 평가는 기억나지 않지만, 재미있었습니다.
일본 정부의 프로젝트를 홍보하는 의도가 있는 책이라는 걸 알고서 읽으면 좋겠습니다. 하라 켄야라는 산업 디자이너가 여러 사람들의 삶을 디자인하는 데 관한 책은 아닙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