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작성하는 문서, 보고서에도
교열이 필요합니다.

한번에 잘 읽힐 수 있도록 쉽게,
그리고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 들어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해독 불가능한 문장을 구사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읽기가 부족한 시대에 보고서 작성은 어떻게 될까요?
여전히 문서로 글을 통한 커뮤니케이션이 유효할텐데
이에 아주 익숙한 층과 그렇지 않은 층으로 이분화되는 것은 아닐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교열은 비문과 가독성이 떨어지는 문장을 가다듬는 작업이다. 이것은 편집자마다 다른 문장이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이때 내가 갖는 원칙은 ‘정답‘은 없되 ‘근거‘는 명확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누가 잠자던 편집자를 두드려 깨워서 ‘아 문장은 왜 이렇게 고쳤어요?‘ ‘왜 고쳐야만 했어요?‘라고 묻는다 해도, 즉각 분명히 이유를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게 그냥 느낌상 더 잘 읽히지 않나요?‘라고 대답할 수 밖에 없다면 그것은 잘못된 교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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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를 내지 않아도 일에서 자존심을 지킬 수 있는 건,
그 과정에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책에 나오는 에피소드에서도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건
어떻게든 더 나은 방안을 추구한다는 것 같아요.

어쩜 별다른 생각이 없는 상대(의사결정자)를 이끌고 나갈 수 있는 건
우리가 제시할 수 있는 맞춤한 안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고민하고 다듬은 안을 뒤집거나 대체할 수 있는
다른 대안은 쉽지 않으니까요.
그만큼 확신을 줄 수 있다는 것은
‘말빨‘처럼 느껴질 때도 있지만
그와는 다른 묵직함이라고 생각합니다.

오직 일에 자존심을 건 사람만이 화를 낸다.
일에 자존심이 없는 사람은 뒤에서 짜증내고 투덜거리고 빈정거릴지언정 화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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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도와 밀도가 높은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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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로스의 <울분>은
아마도 이수은 작가와
정영목 번역가로 인해
읽기 시작했을 것 같아요.

읽기 시작했을 때
<호밀밭의 파수꾼>과
구성이 유사하다고
생각했어요.

이수은 작가가 쓴
필립 로스에 대한 구절에
공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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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권 작가의 <공부의 미래>를 읽고
재미있어서 주변에 선물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 해 말,
교보문고 MD들이 아쉬운 책들 언급하는
재미있는 기획에서 발견했던 것 같아요.)

이 책의 편집자가 고우리 편집가였다니
의외의 만남입니다.

책과 가까이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출판사까지는 기억을 해도
편집자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을 갖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따로 만날 수 있는 접점이 없어서
그랬을까요?
만나본 편집자는 있었지만
작가로 더 좋아하는 분입니다.
편집일은 아주 잠깐 하셨던 것 같아요.

몇 년 전부터는
편집일을 주제로 하거나
읽는 게 직업인 편집자가 쓴 책들이
많이 나오는 것 같아요.
어쩜 편집자들이 많아지는 시점이어서
그럴까요?
혹은 읽다보면 저절로 쓰게되는
임계점에 도달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그럴까요?

새로운 지도가 그려지는 것 같은...
지점에 있습니다.

˝마름모˝ 출판사를 기억할게요.

작가들 뿐 아니라
좋은 책을 만들어 소개해주는
세상의 모든 출판인, 편집인들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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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4-03-21 1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응원에 한표 보탭니다.

ossos 2024-03-22 07:31   좋아요 0 | URL
같이 응원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