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 교과서 작품 읽기 중1 소설 (최신판) 국어 교과서 작품 읽기 시리즈
류대성 외 엮음 / 창비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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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중학생이 된 후에 아무래도 지금까지 읽었던 종류의 책과는 다른 책을 읽혀야 한다는 생각에 한국 단편집을 찾았다. 그러나 내 마음에 쏙 드는 책은 만나기 어려웠다. 괜찮다 싶으면 단어가 너무 어려워서 아이가 읽기 힘들다고 하고 어떤 것은 너무 세세한 것까지 설명해 주고 있어서 스스로 생각할 기회마저 빼앗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마침 이 책을 만났다. 일단 출판사 인지도가 있으니 믿음이 갔다. 

내가 학교 다니면서 단편을 읽을 때는 그 참맛을 잘 몰랐던 듯하다. 그러다 어른이 되어 어느 순간순간에 그 때 읽었던 것들이 생각나곤 했다. 그제서야 알았다. 우리 단편이 얼마나 좋은 작품이었던가를. 그래서 딸에게도 그런 책을 읽으라고 권하면 말이 너무 어렵단다. 또 한 가지는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물론 이론적으로는 알고 있지만 그렇게 알고 있는 것과 마음으로 느끼는 것은 다르다.)에서 읽으려니 당췌 재미가 없단다. 그러나 내 경험으로 보건대 아무리 그래도 읽어두면 두고두고 마음의 양식이 된다는 걸 알기에 읽으라고 강력히 권한다. 

올해부터는 중학교 국어 교과서가 23종으로 늘었다고 한다. 그 얘기는 실린 작품의 편수가 많아졌을 뿐만 아니라 어느 교과서를 선택했느냐에 따라 접하지 못한 소설이 있을 수 있다는 얘기다. 꼭 모든 소설을 읽어야 한다는 당위성은 없지만 그래도 많이 읽어서 손해볼 일은 없으니 이 책이 반가울 수밖에. 익히 알고 있던 이야기부터 그다지 오래 되지 않은 이야기까지 다양한 소설을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 각 소설을 읽고 활동할 수 있는 활동지를 첨부하고 있는데, 책 읽기조차 공부로 접근하는 것 같아 씁쓸하긴 하지만 그게 현실이다. 또 그걸 보고 도움받는 이가 있을 수도 있으니 한 쪽만 보고 판단할 건 못된다. 

나도 전쟁이나 일제 수탈기를 겪지 않았다는 점은 요즘 아이들과 별반 차이가 없다. 그래서 당시 상황을 쓴 이야기는 쉽게 빠져들지 못하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민족에게 흐르는 공통된 정서란 게 있는 것 같다. 처음엔 아들의 다리 한 쪽이 없는 걸 보고 몹시 실망하지만 아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애쓰는 장면(<수난 이대>)은 여타의 경험과는 무관해 보인다. 그러면서도 우리의 애달픈 역사가 어렴풋이 느껴진다. 이래서 우리 단편을 읽으라는가 보다. 이런 걸 청소년들도 알았으면 좋으련만. 아니, 당장은 못 느끼더라도 그들도 언젠가는 느낄 것이다. 내가 그랬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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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개입니까 사계절 1318 문고 62
창신강 지음, 전수정 옮김 / 사계절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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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관념이나 선입견이 안 좋다는 것은 알지만 어쩔 수 없이, 이성이 끼어들 틈도 없이 먼저 느껴지는 게 바로 이것들이다. 지금까지 중국 청소년 소설을 몇 권 읽었지만 딱히 감동적이라거나 부지불식간에 생각나는 그런 작품은 없었다. 객관적으로 보더라도 전반적인 청소년 소설이 우리보다 조금 못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겨우 몇 권 읽고 이런 판단을 한다는 것 자체가 말도 안되는, 그야말로 고정관념과 선입견이라는 건 알지만 그게 솔직한 내 심정이다. 이러한 상황에 비추어 봤을 때 이 책은 약간의 고정관념이 깨지는 단초를 제공했다. 물론 이 작가의 다른 작품도 읽었지만 아주 뛰어난 작품(재미와는 상관없이)이었다는 생각이 들진 않았다.  

아동 청소년 문학에서 개를 소재로 한 책이 많다. 또한 개가 사람과 생활하며 개의 주체성을 찾아가는 그런 책도 있다. 사람의 보살핌에 연연하지 않고 스스로의 삶을 개척하겠다는 그런 식의 이야기 말이다. 그래서 이 책도 그런 책의 일종일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짐작했다시피-이렇게 장황하게 이야기할 때는 어느 정도 짐작했을 것이다-그런 종류의 이야기가 아니다. 설정은 판타지 같은데 판타지 같은 느낌이 나지 않는 묘한 이야기다. 그러면서도 속물적인 인간의 본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하수구에서 사는 어느 개의 가족을 보면 개로 이야기될 뿐 하는 행동과 생활모습은 인간과 똑같다. 무조건 복종을 강요하는 권위적인 아빠 개와 남편 눈치보느라 할 말도 제대로 못하고 사는 엄마 개는 인간의 모습과 정확히 일치한다. 아마 중국과 우리가 같은 문화권이라 그러한 불합리한 모습에 눈길이 갔고 또 그 상황이 고스란히 전달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그러한 가족의 모습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그냥 받아들이며 산다. 하지만 주인공과 그의 형은 가족의 품을 떠난다. 아버지를 떠난 것이 아니라 인간 세계에 나가고 싶어서 개로서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인간 세상으로 올라온 것이다. 

그렇게 본성은 개에 가깝지만 외모가 사람인 주인공이 인간 세상에서 인간으로 살아가는 이야기가 이어진다. 그 와중에 인간의 치사한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강자에겐 약하고 약자에겐 강한 모습이라던가 사람을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거나, 자신의 기대에 못 미치면 믿음까지도 바로 거둬들이는 모습 등이 나타난다. 그래도 자신을 그냥 믿어줬던 누나를 만나지만 인간이 되기 위해 누나는 말을 포기했다. 헌데 이건 좀 그렇다. 작가가 인어공주에서 영감을 얻었나? 다른 개들은 아무렇지도 않은데, 심지어 지렁이도 별다른 댓가가 없었는데 하필이면 누나만 그런 이유가 뭘까. 읽은 지가 좀 오래되어서 그런지 작가의 의도를 잘 모르겠다. 

그토록 찾아 헤매던 작은 형을 마지막에 만나는 장면은 가슴 뭉클하다. 사실 후셩이 작은 형이 아닐까 계속 의심했던 참이다. 인간의 시간과 다른 시간을 사는 개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아니, 사실적이다. 인간들 속에 인간으로 변한 누군가가 함께 살아가지만 진짜 인간들은 그 사실을 전혀 모르고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 이 시점에서는 내가 어렸을 때 푹 빠져보았던 '브이'라는 외화가 생각나기도 한다. 어쨌든 인간의 비열함을 풍자할 때는 괜히 내가 통쾌했다. 나도 인간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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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환학생 청소년문학 보물창고 7
샤론 크리치 지음, 최지현 옮김 / 보물창고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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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며 우리 작가의 책과 뭔가 다르다는 게 느껴졌다. 한 마디로 딱 잘라 말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는 듯한데 도대체 그게 뭘까. 책을 읽기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조금씩 피어오르던 의문은 얼마 남겨 놓지 않은 곳까지 그대로 이어졌다. 그러다 갑자기 깨달았다. 아, 바로 그거였다. 대개 우리 청소년 책에서는 선과 악이 확연히 구별되어 대립하는데 반해 이 책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 그래서 때로는 지루한 느낌마저 들지만 다 읽고 나면 진정 주인공이 성장한 게 느껴지고 덩달아 읽는 나도 뭉클한 뭔가가 느껴지는 것이다. 

처음 디니 가족을 소개하는 부분에서 참 별난 가족도 다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니, 솔직히 이렇게 무책임한 부모가 있을까 싶어 화가 났다.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기분 내키는대로 훌쩍 떠나버리는 디니의 아빠. 혼자만 가는 것이 아니라 먼저 가서 살 곳을 물색한 다음 가족을 부른다. 그러면 디니 엄마는 남편을 따라 가족을 이끌고 이사를 간다. 아이들이 새로운 곳에 정착하느라 얼마나 힘든가는 고려되지 않는다. 그래서 디니 언니가 열여섯에 임신을 하고 오빠는 툭하면 말썽을 부리는 상황을 보며 당연하다는 생각까지 했다. 그렇다면 디니 아빠도 뭔가 깨닫고 달라지겠지라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여기서는 그런 이야기들은 중요하지 않다. 가족을 키워드로 잡았다면 잘못 짚었다. 물론 디니는 자신만 가족을 떠나 이모와 이모부와 살게 되자 가족에게 버림받은 것이라고 여기기도 한다. 그러나 디니는 처음부터 끝까지 가족을 원망하지 않는다. 그리움을 간직한 채 자신의 삶을 하루하루 살아가다 그래도 가족이 있어 행복하다는 걸 깨닫는다. 즉 디니 내면에 일어나는 변화가 주된 이야기다. 

별다른 섧명도 없이 디니가 이모와 이모부를 따라 스위스로 떠난다. 독자는 당황할 수밖에 없다. 디니 가족이 힘든 상황이라는 건 알지만 어느 누구도 디니에게 설명해 주지도 않을 뿐더러 독자에게도 아무 말이 없다. 이모부가 교장으로 일하고 이모가 교사로 있을 학교에 디니도 함께 간다는 사실 밖에 알지 못한다. 그제서야 제목과 연결시켜 그곳 학교에서 벌어지는 일, 디니가 겪는 일이 주된 이야기겠거니 짐작했다. 그렇다면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벌어지는 일, 즉 이방인으로서의 어려움이 나오겠거니 했다. 그 중 나쁜 친구가 있어서 대립하겠지라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모든 친구가 착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흔히 말하듯 못된 아이가 나오지는 않는다. 그나마 가장 악역에 가까운 인물이 릴라 정도다. 

스위스에 있는 미국인 학교지만 아이들 인종은 다양하다. 그만큼 성격들도 다양하다. 그러나 각자는 다른 사람을 있는 그대로 인정한다. 선생님들도 마찬가지다. 릴라가 불평불만을 하며 다른 사람을 괴롭혀도 그게 문제로 나타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릴라의 성격이 그런 데에는 분명 가정에 어떤 문제가 있기 때문임을 암시하는데 그렇다고 직접적으로 이야기해 주지는 않는다. 다만 릴라 엄마 아빠의 행동을 보고 짐작하도록 할 뿐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디니의 마음이지 릴라의 가정환경이 아니기 때문에 군더더기로 비칠 수 있는 요소는 모두 생략했다. 덕분에 별별 추측을 다 해본다. 

자신이 납치되는 것이라 생각하며 창문에 구조를 요청하는 글을 써 놓아도 심각하게 문제 삼지 않는 이모와 이모부의 재치와 여유, 수업 도중에 예고 없이 나온 어떤 주제에 대해 스스로 생각하고 몇 시간씩 토론하도록 이끄는 수업 방식이 왜 그리 부럽던지. 또한 아이들끼리 이웃 나라로 너무 자연스럽게 여행가는 모습을 보며 지리적 여건에 따라 사고의 틀도 규정되는 것 같아 씁쓸함을 느꼈다.  

낯선 곳에서 적응하기 위해 애쓰지만 그것이 하나의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며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틀을 벗어나야만 다른 세계를 만날 수 있음을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성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단순히 그것만 있는 것이 아니다. 위에서 이야기했듯이 다양한 문화를 만날 수 있고 우리와 다른 방식의 삶을 만날 수도 있다. 또 작가의 재치를 만날 수도 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제목이 영 마음에 안든다. 내용에서 교환학생에 대한 것이 안 나오기도 하지만 디니가 다른 곳으로 간 이유는 그런 의미가 아니기 때문이다. 읽기 전에 기대한 것도 내용과 안 맞지만 읽고 나서도 작가의 메시지를 담기에는 여전히 뭔가 부족한 제목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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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커 (반양장) - 제3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창비청소년문학 29
배미주 지음 / 창비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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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각은 거리와 상관없이 어느 정도 비슷할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옛이야기를 보더라도 나라를 막론하고 기저에 흐르는 생각은 비슷한 것도 그렇고 언어도 알게 모르게 공통분모가 존재하는 것도 그렇다. 또한 현재를 바라보고 문제의식을 갖는 방식도 비슷하다. 이 책을 읽으며 많은 사람들이 영화 <아바타>를 생각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 영화가 상영되기전까지 엄격하게 비밀을 유지했다하니 거기서 영감을 얻었을 리는 만무하다. 게다가 청소년문학상 원고 공모 시점이 그 영화가 나오기 전이니 힌트를 얻었을 리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어쩜 그리 많은 부분에서 서로 비슷한 방식을 취하는 것일까. 그러면서 드는 아쉬운 생각 한 가지. 바로 이 책이 영화 <아바타>가 나오기 전에 나왔다면 훨씬 좋았을 텐데. 

판타지나 공상과학 소설에서 그리는 미래는 비슷한 점이 꽤 많다. 우선 과학과 컴퓨팅 기술이 발달해서 모든 것을 자동으로 조절한다는 점이다. 또 환경이 파괴되어 지구는 더 이상 살기 좋은 곳이 아니다. 여기서도 주인공들이 살고 있는 곳은 완벽하게 구현된 시안이라는 공간이다. 시안은 지하에 있는 곳이지만 지상과 동일한 구조를 갖도록 설계했다. 비록 태양이나 비는 없지만 그런 것은 기계가 알아서 보여준다. 그러나 아무나 그곳에서 살 수 있는 건 아니다. 재산이 있거나 권력이 있어야 한다. 게다가 인간 수명이 길어져 늦둥이가 많이 태어나는데 부모들은 나이가 많아 가족을 보살피거나 부양하지 못한다. 대신 돈을 내고 맡긴다. 그러니까 더 이상 인간의 '정'은 찾기 힘들다는 얘기다. 그 와중에 미마와 부과 다흡은 지금까지 느끼지 못했던 인간적인 유대감을 느낀다. 그러면서 아무리 과의 도움으로 혼자 살 능력이 되더라도 인간은 함께 이야기하고 생각을 나누며 사는 게 진정 행복하다는 사실을 이야기하는 듯하다. 

미마가 난민들이 사는 곳에 들렀다가 진짜 살아있는 물고기를 받아 오고 반려수에 싱크하는 프로그램을 알게 된 것이 사건의 발단이었다. 어떤 동물에 싱크한다는 설정은 정말 <아바타>를 연상시킨다. 바이러스를 없애기 위해 자연을 포기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 시안. 마치 벼록 잡겠다고 초가삼간 다 태운 꼴이다. 그러나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은 그런 문제의식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 왜? 다른 것을 본 적이 없으니까. 그러나 미마와 부건은 다른 것을 이미 보았기 때문에 현재의 도시가 결코 자연스럽지도 이상적이지도 않다는 걸 깨닫는다. 그리고 결국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쓴다. 

마지막에는 무슨 전쟁영화 같아져서 약간 맥빠졌다. 그냥 아이들답게 결론을 이끌었어도 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전개가 빠르고 그 안에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도 많아서 읽는 동안 정신이 없었다. 스스로 문제를 되짚어 볼 시간적 여유를 주지 않았다. 판타지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는 미하엘 엔데의 <끝없는 이야기>는 전개가 느리지 않은데도 그 안에서 주인공의 성장이 고스란히 느껴졌는데 여기서는 그런 여운과 깊이를 느끼기는 좀 힘들었다. 하긴 판타지는 독자가 상상할 수 있도록 많은 설명이 필요하므로 이 한 권에 그 많은 내용을 다 담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도 우리 청소년 문학에서 판타지가 아주 드문데 지난 번 약간의 판타지가 가미된 <위저드 베이커리>에 이어 이번에 진짜 판타지 작품을 만날 수 있어 좋았다. 첫 술에 배부를 수는 없으니 앞으로 더 근사한 판타지 작품을 만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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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아프리카로 간 게 아니었다 시공 청소년 문학 1
마르야레나 렘브케 지음, 이은주 옮김 / 시공주니어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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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보았는지 모르겠지만 제목을 너무 많이 봐서 읽었다고 착각한 책이다. 혹 책꽂이 어딘가에 꽂혀 있는 것 같기도 해서 한참을 찾기도 했다. 그 정도로 눈에 익지만 정작 읽지는 않았던 책이기도 하다. 그런 책을 이번 기회에 '드디어' 읽었다. 그러고 보니 <비밀의 시간>을 쓴 작가다. 그 책을 읽고 토론도 했는데 뜻하지 않은 곳에서 다시 만나다니.  

이 작가의 책을 비록 두 권 밖에 읽지 않았지만 그 두 권에서 공통된 느낌이 난다. 이야기가 잔잔하게 전개되기 때문에 따로 절정이 있었나 싶지만 곰곰 생각해 보면 전개가 빠른 이야기 못지 않은 절정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인물에 대한 설명을 많이 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각 인물의 특성이 그려진다. 자칫하면 지루하다고 느낄 수도 있겠지만 워낙 얇아서 그럴 시간이 없다. 

처음부터 유하니가 아빠를 기다리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유하니가 여섯 살 때 오토바이를 타고 훌쩍 떠나버렸는데 현재 유하니 나이는 열세 살이다. 그렇다면 칠 년을 기다린 것이다. 아마 그 전에는 막연하게 아빠를 기다렸겠지만 유하니가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아빠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아빠와의 추억을 곱씹으면서도 이제 아빠가 잘 생각나지 않는다고 이야기한다. 아빠가 왜 떠났는지에 대한 직접적인 설명은 없지만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짐작할 수 있다. 우리 작가의 작품에서라면 아이가 아빠를 원망하는 모습이 두드러지게 나타나지 않았을까 싶다. 이런 게 바로 문화 차이겠지. 유하니 엄마도 아빠를 그다지 원망하는것 같지 않다. 다만 할머니와 할아버지만이 아들에 대한 감정을 드러내곤 한다. 

아빠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던 유하니가 직접 아빠를 찾아다니다 듣게 된 이야기는 분명 실망할 만도 했다. 그러나 유하니는 그다지 실망하는 것 같지도 않고 그렇다고 기억 속의 아빠를 완전히 바꾸지도 않는다. 그냥 현실의 모습 그대로를 인정한다. 그런 모습은 마지막에도 그대로 유지된다. 그토록 오랫동안 떠나 있다 돌아왔는데 아무렇지도 않게, 잠깐 외출했다 돌아온 사람대하듯 그렇게 맞이할 수 있을까. 전혀 의외의 상황에 잠시 당황했다. 여기서 또 다시 문화 차이를 절감했다. 그러면서 이야기는 끝나도 내 마음속에서는 계속 이야기를 짓는다. 과연 엄마의 반응은 어떨까. 아빠는 그동안의 이야기를 어떻게 설명할까 등등. 방학을 세 달씩 보내는 그러한 문화가 왜 이리 부럽던지. 핀란드라는 나라를 잘 몰라서 조금 모호한 것도 없지 않았다. 할리 데이비슨을 타고 있는 사람을 찾아 시내로 가서 물어보고(우리 상식으로는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곳에서 진짜 아빠를 알고 있는 사람과 만나 이야기를 듣는 게 가능한지 모르겠으나 렘브케의 글맛은 그대로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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