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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지 않는 노래 ㅣ 푸른도서관 30
배봉기 지음 / 푸른책들 / 2009년 5월
평점 :
불가사의 중 하나라는, 일종의 거석문화에 속하는 모아이 석상의 표지 그림이 먼저 눈에 띈다. 아주 오래 전에 이처럼 거대한 돌을 저런 곳에 어떻게 세웠는지, 그리고 왜 세워 놓았는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는 모아이 석상. 남태평양의 자그만한 섬인 이스터 섬이 그래서 더 신비롭게 다가온다. 그런데 여기서 그 모아이 석상에 대한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것도 약간의 진실에 허구를 섞어서. 물론 진실에 약간의 허구를 섞었는지, 아니면 그 반대인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다만 작가가 사실을 바탕으로 소설적 허구를 넣었다고 하니까 그런가보다 할 뿐이다. 만약 이것이 상당히 사실에 의한 기록이라면 아직 밝혀지지 않았던 '왜'라는 부분이 밝혀진 셈이다.
이야기는 낯선 배가 섬에 정박해서 섬 주민들에게 대화를 요청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러나 섬의 사제 중 한 명이자 족장인 서술자가 그것을 반대하며 주민들을 결집시키기 위해 '대 구송회'를 제의한다. 예전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그 이방인들은 결코 믿을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문득 우리나라에도 이양선이 수없이 많이 왔었다는 기록을 읽은 기억이 난다. 그들이 적극적으로 어떤 행동을 취한 것이 19세기일 뿐이지 그 전에도 그러한 배는 많이 왔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태평양 한가운데에 있는 섬인 이스터 섬(이 이름도 네덜란드인에 의해 지어진 이름이다.)에 낯선 배가 도착한 것은 우리의 그것보다는 훨씬 적을 것이다. 아무래도 지리적으로 접근하기가 어려울 테니까.
여기서 낯선 배가 나타난 때는 서양이 막 식민지를 찾아다니고 피부색이 검은 사람을 잡아다 노예로 팔아넘기는 노예 무역이 한창이던 시기다. 노예 무역이 횡행하던 때라는 배경만 가지고도 앞으로 어떻게 될지 충분히 짐작이 간다. 대 구송회는 실패하고 어쩌다가 이방인들의 호의를 받아들이는 꼴이 되면서 결국 섬의 남자는 대부분 잡혀가고 만다. 그리고 그 중 한 사람, 즉 서술자는 간신히 살아서 이 기록을 남기게 되었다는 것이다. '남겼다'가 아니라 '남기게 되었다'라고 표현한 이유는 그 원주민이 남긴 것이 아니라 그가 농장에서 노예로 있을 때 주인집 아이에게 해준 이야기를 그 아이가 자라서 남긴 것이기 때문이다. 즉 온전히 쓴 것이 아니라 기억에 의지해서 적은 것이기에 완전하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결국 그래서 작가가 거기에 살을 붙인 것이라는 얘기다.
그 '대 구송회'라는 것은 일종의 서사시라고 할 수 있겠다. 섬의 역사를 노래처럼 불러서 세대에서 세대로 전달하는 것이다. 문자가 없을 경우에 취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셈이다. 그래서 중간 부분은 바로 그 역사가 나온다. 아, 그래서 이스터 섬에 거대한 석상이 세워졌구나. 우리가 지금 보기에는 마냥 신기하기만 한 것이 사실은 수많은 사람들의 피와 땀이 바탕이 된 것이다. 그것도 그냥 좋은 의도에서의 땀이 아니라 전쟁의 일환으로. 그러니 얼마나 비참하고 안타까운 문화인가. 그런데 지금 우리는 그것을 보고 감탄한다. 문득 당시는 백성들에게 강제 노력을 시켜서 어떤 것을 만들면 아주 못된 것이지만 시간이 아주 많이 흐르면 그것이 가치 있는 문화로 평가받는다는 것이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어쨌든 작가가 허구적 요소를 얼마나 집어 넣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모아이 석상에 대해 다른 방향으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