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닌이 있는 풍경
이상엽 사진.글 / 산책자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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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러시아나 소련은 그다지 큰 부분을 차지하지 않는다. 그저 내가 한창 세상에 관심을 가질 때 소련이 붕괴되어 많은 나라들이 독립을 했다는 것 정도? 그리고 그런 큰 사건이 일어났을 때 나도 그 시대를 살고 있었다는, 어찌보면 러시아와는 상관없는 감정들만 있는 듯도 하다. 어쨌든 학교 다닐 때도 과 특성상 참여 정신이 투철하지 못했기에 사회주의에 관해 잘 알지 못했다. 아니, 지금도 잘 알지 못한다는 표현이 정확할 것이다. 그러기에 레닌이라는 인물에 대해서도 막연하게 밖에 알지 못한다. 어쩌면 그래서 이 책을 더 읽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러시아에서는 아직도 많은 곳에서 레닌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는 것을 책을 읽으며 느낄 수 있었다. 곳곳에 그렇게 많은 동상이 있다니 놀랍다. 동서로 길게 늘어져 있는 나라, 러시아. 물론 소련일 때보다 영토는 많이 줄어들었겠지만 시베리아 횡단열차 길이가 9,000킬로미터가 넘는다는 사실만으로도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특히 위쪽이 막혀서 400여 킬로미터 밖에 갈 수 없는 우리의 현실에 비추어 볼 때 거의 상상이 가지 않는 거리다. 이럴 때 보면 지리적 위치가 사람들의 사고방식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주는지 실감한다. 우리는 반도라서 한쪽으로 밖에 나갈 수가 없는데 그마저도 막혀 있으니 고립된 섬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니 땅을 밟으며 외국을 나간다는 것이 우리에게는 그저 신기한 일이라고 생각될 수밖에.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시작으로 모스크바를 지나 블라디보스토크에 이르기까지 상상으로도 가늠이 되지 않는 거리를 순전히 횡단열차를 타고 여행하며 느꼈던 저자의 잔잔한 느낌들을 나 또한 느낄 수 있었다. 물론 그 긴 거리를 한번에 여행한 것이 아니지만 어쨌든 여정은 그렇다. 사진 작가인 저자 덕분에 일단 눈이 호강했다. 이렇게 멋진 사진들을 만날 수 있다니. 저자는 풍경 보다는 인물에 초점을 맞춘다는 말을 내내 실감했다. 정말이지 거의 모든 사진에는 인물이 중심을 차지하고 있었다. 굴곡이 많았던 격변기를 몸으로 느꼈던 저자였기에 이런 눈을 가지고 사물을 바라볼 수 있었던 것 같다. 만약 내가 똑같은 길을 간다면 또 다른 것을 보았겠지. 때로는 충분히 공감하기도 하고 때로는 시대와 온몸으로 싸웠던 삶을 먼발치서 바라보기도 하면서 함께 한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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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마음에 세계지도를 걸어라 - 제이솔 학부모 핸드북 첫번째
오경숙 지음 / 제이솔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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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대로 확고한 육아원칙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괜한 고집은 아닐까 생각이 되기도 한다. 특히 다른 사람들의 교육방법을 접하면 불안한 경우가 적지 않다. 어제도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5학년짜리 아이를 특목고를 보내기 위해 영어와 수학에 집중해서 학원을 보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면서 내게도 특목고를 보내려면 지금부터 준비해야 하지 않겠냐고 이야기한다. 글쎄, 난 아직 특별히 어디를 보내야겠다고 마음 먹은 적은 없다. 만약 나중에 아이가 잘 해서 그쪽으로 갈 실력이 되고 원한다면 보내겠지만 지금부터 고생하고 싶지는 않다. 어쩌면 아이가 학원 다니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볼 용기가 나지 않는 이유도 있다. 그리고 아이의 공부는 장기적인 안목에서 계획을 세워야한다고 생각하기에 주위의 그런 이야기에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다. 그러나 한편으론 이러다가 나중에 후회하는 것은 아닐까 내심 걱정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내 생각과 일치하는 그런 사람을 만났다. 바로 이 책의 저자다. 물론 저자는 아이가 이미 원하는 대학에 들어갔고 원하는 일을 할 기회를 잡았으니 마음 편하게 이야기하는 측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내가 생각한 아이를 키우는 방법 등에 대한 이야기는 모두 일치한다. 일일이 아이를 원격조정해 가면서 키우면 좋은 대학에 갈 수는 있을지언정 성인이 되어 자신의 일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하고 싶다는 게 지금까지의 내 생각이다. 그래서인지 책 속의 이야기들이 어쩜 그리 공감이 되고 위안이 되는지...

유치원 때부터 편협하거나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교육이 아니라 열려 있는, 그리고 소통하는 교육을 한다면 분명 그 아이들은 자라서도 자신의 길을 알아서 찾아가리라 본다. 이런 유치원 교육을 하는 곳이 소위 말하는 교육열이 높다는 신도시에 있다는 점에 약간 좌절을 하긴 했지만 그래도 이런 마인드를 갖고 있는 교육자가 있다는 것이 다행스럽다. 나도 아이들을 학원에 보내지 않고 그 대신 많은 여행을 하고자 노력한다. 그리고 이젠 서서히 외국여행도 시도해 보려고 계획하고 있었는데 이 책에서도 그런 이야기가 나오니 힘이 된다. 그래도 외국어 부분 등 몇몇 부분에서는 지나치게 내 고집대로 하려고 했던 점이 드러났다. 저자는 편견의 가장 큰 피해자는 결국 자신이라고 강조하던데 그 글을 읽으니 번쩍하는 느낌이다. 그래, 편견을 버리자. 모두들 지나치게 영어와 수학에 올인하는 세태를 보며 씁쓸하기도 하고 한편으론 불안하기도 했었는데 이 책을 읽으니 마음이 참 편안하다. 또 자신감도 얻었다.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내 편견이나 고집을 조금씩 고쳐가면서 아이를 키우면 되겠지. 아이를 돈 잘 버는 사람으로 키울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에 만족하는 사람으로 키우기로 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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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선거이야기 - 1948 제헌선거에서 2007 대선까지
서중석 지음 / 역사비평사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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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대선 때부터 시작된 무력감과 두통이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모두가 예상했던 것이기에 어느 정도 포기를 하긴 했지만 그래도 사람 마음이라는 것이 그렇게 쉽게 변하진 않는 것 같다. 그에 이어 이번 총선에서도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하는 결과가 되어 거의 포기상태가 되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희망을 품을 수 있었던 이유는 대운하에 대해 여당 의원들조차 반대의 목소리가 많다는 보도였다. 휴, 정말 다행이다. 물론 그들이 당장의 인기나 여론에 못이겨 그런 의견을 냈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우리나라 정치인들의 인식에 조금이나마 희망을 걸어본다.

우리나라에서 정치인들은 참 묘한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외국도 그런 경우가 많지만, 특히 우리의 상황은 그 어느 나라보다 우여곡절을 많이 겪은 나라 중 하나일 것이다. 그래도 지금은 많이 나아졌는지 모르겠지만 대학생들에게 설문조사를 했을 때 가장 혐오하는 직업이 정치인이라는 답이 나왔다고 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되고 싶은 것 또한 정치인이라고 한다. 그런 설문조사 결과가 있다는 것을 몇 년 전에 본 기억이 난다. 권력은 마약이라고 한다. 그 맛에 한번 빠지면 결코 헤어나올 수 없다는 의미다. 정계 은퇴를 선언했던 정치인들이 번번이 그 약속을 깨고 다시 복귀하는 것을 수없이 봐 왔으니 그 말은 맞는 말일 게다. 그래도 그렇게 다시 나와서 결국은 국회의원이 되고 대통령이 되어 어느 정도의 성과를 올렸으니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고 봐야 하는 것인지...

내가 암울했던 80년대를 어린 나이에 있었기에 그 이전의 정치 상황에 대해서는 그다지 많이 알고 있지도 못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정치인들의 이기적이고 몰상식한 행보에 많이 분개했었다. 또한 국민의식이 형편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니까 이승만과 박정희라는 독재 시대를 그대로 감수했고 심지어 지금도 추앙하고 있으니까.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며 새삼 느꼈다. 아, 우리 국민은 결코 무지하거나 힘이 없는 민족이 아니구나라는 것을. 철통 같은 유신 독재하에서도 국민은 옳은 길을 택하려 노력했고 결국은 행동으로 보여줬다는 것을 확인하면서 새로운 힘이 솟는 것을 느꼈다.

요즘 이승만에 대해 재평가 해야 한다는 여론이 있는 것으로 안다. 물론 긍정적인 면에 대한 평가를 의미한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이승만에 대해 잘한 것 같지는 않는데 딱히 무엇을 잘못했는지 몰랐었다. 그런데 이렇게 권력욕에 불타서 자신의 권력 외에는 관심도 없었던 사람이었는데 어떻게 그를 재평가한다는 것일까. 물론 여기서는 선거를 중심으로 보았기 때문에 그가 한 일련의 정책이나 업적에 대한 것은 다루지 않았다고 해도 그가 펼친 정책이 국민을 위해서였다고 할 만한 것이 얼마나 될까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역사에서 어느 한 인물이나 시대를 평가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단순히 한 면에서만 보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각도에서 다양한 분야에 미친 영향을 따져 보아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가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지금 우리는 어느 한 시대를 평가함에 있어 그렇지 못하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특히 지금 당장 어렵다는 한 가지 사실에 치우쳐 다른 것은 보려하지 않는다. 경제성장을 모든 것에 우선시하는 요즘의 사회인식을 보면 참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먹고 사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이제 어느 정도 민주화가 이루어진 상태에서 예전처럼 오로지 먹고 사는 것만을 만족시키기 위해 다른 것을 희생해도 된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하지만 한 가지 희망이 생겼다. 지금까지 우리 국민이 취해왔던 방식을 보니 잘못 가고 있다고 판단되면 그 어느 상황에서도 역동적으로 일어나곤 했다. 그러기에 새 정부가 하는 정책에서 이건 아니다라고 판단되는 일이 있다면 국민들이 그대로 놔두진 않을 것이라는 희망이 생겼다. 물론 이번 대선과 총선으로 미루어 보건대 보수가 굉장한 활약을 했고 당분간은 그 여세를 이어갈 것이라고 하지만 그 조차도 긍정적인 방향으로 갈 것이라고 기대해본다. 그럼으로써 내 두통도 사라지지 않을까. 저자가 후기에서 이야기한 대로 선거사에서 각별히 기억할 만한 활기와 유권자 의식을 보여준 경우가 많았다니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는 셈이다. 그러기에 거기에 희망을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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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을 쫓는 아이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이미선 옮김 / 열림원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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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전혀 관심이 없다가도 다른 어떤 것과 연관되어 있다던가 어디선가 들었다는 이유만으로 갑자기 관심이 생기는 경험을 하곤 한다. 이 책도 그냥 소설인가보다라며 별 생각없이 표지를 들여다 보았었다. 그러면서 상당한 두께 때문에 일단 마음을 잡은 후에 읽으려고 꽂아두고 있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시사지의 영화 소개 코너에서 동일한 제목의 영화를 소개한 글을 보았다. 아, 이게 그거네. 그리곤 갑자기 관심이 증폭했다. 그쯤되면 두께는 더이상 문제되지 않는다. 물론 책으로 있는 것을 영화로 만들었다고 무조건 그 책에 관심을 갖진 않는다. 그러나 이번엔 관심이 갔다. 아마도 잘 모르는 나라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도 큰 원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아프가니스탄이라는 나라는 이 책 중간에도 그런 이야기가 나오지만 외부 사람들에게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나라 중 하나일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이라고는 80년대부터 지금까지 소련과 미국의 침략을 받은 것과 내전으로 아직도 정세가 안정되지 않았다는 정도? 또 그림책에서 보았듯이 당나귀에 여러 가지 과일을 싣고 다니며 판다는 정도. 하긴 그림책에서 본 그에 관한 내용도 그냥 전쟁으로 인한 궁핍함을 상대적으로 나타내기 위해 설정한 이야기라고 생각하며 별 느낌 없이 보았던 내용이었으나 아미르가 과거를 회상하는 부분에서 당나귀에 과일을 팔러 다니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퍼뜩 연결지어진 것이긴 하다. 많은 서구인들이 아직도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잘 모르고 경제적으로도 어려울 것이라고 추측하는 사람들이 많듯이 우리도 중동지역에 대해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책을 읽으며 그들이 이런 문화적인 생활을 누렸단 말이야라는 놀라움을 계속 느껴야만 했으니까.

아랍인들에 대해선 아직도 많은 부분 이해를 못하고 때론 오해를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도대체 왜 그렇게 종족에 대해 예민한 걸까. 또 종교에 대해 왜 그리 엄격한 걸까. 어쩌면 아미르가 미국에서 보내며 자유주의적 입장에서 자신의 조국을 보고 비평했듯이 나 또한 그들을 그 잣대로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느 종족은 우월한 위치에 있고 어느 종족은 애초부터 동등한 삶을 누릴 가치가 없었다는 점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그들의 인식은 대체 어디에 기인한 것일까. 왜 그들은 그것을 깰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지? 그런 생각을 하다보면 자연스레 그들은, 그들의 종교인 이슬람은 굉장히 보수적이며 불평등한 것이라는데 이르고 만다. 요즘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것을 여러 경로를 통해 접하고 있음에도 아직 완전히 아니다라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처음부터 신분의 차이로 맺어진 하산과 아미르. 아미르 태어나서 처음 말을 배운 것이 바바인 반면 하산은 아미르였다는 데서도 둘의 관계가 보이는 듯하다. 아미르는 끊임없이 아버지의 사랑을 갈구하지만 냉정한 아버지는 그 사랑을 듬뿍 안겨주지 않는다. 어쩌면 아미르가 아버지에게 인정받기 위해, 사랑받기 위해 애쓰지 않아도 되었다면 그처럼 비겁한 행동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때로는 아버지가 하산을 대하는 태도에서 묘한 질투심과 경쟁심을 느끼는 아미르.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결국은 돌이킬 수 없는 행동을 하고 또 그 돌이킬 수 없는 행동 때문에 상당한 시간을 괴로움에서 보내야만 했던 아미르. 그러나 아미르가 그토록 해바라기처럼 바바만을 바라보는데도 바바가 온전히 아미르를 사랑하지 못했다는 사실, 아니 어쩌면 사랑할 수가 없었다는 사실을 나중에야 이해하게 된다. 아미르 뿐만 아니라 독자들도.

부유한 생활을 하던 나라를 떠나 미국으로 가서 궁핍한 생활을 하면서 오히려 아미르는 진정 아버지의 정을 느낀다. 실은 나도 그처럼 냉정했던 바바가 아미르를 위해 그토록 헌신하는 모습을 보곤 적잖이 놀랐다. 그게 바로 부모의 마음이라는 것일까. 어쩌면 그런 생활을 했었기에 후에 아버지에 대한 굉장한 사실(거의 배신감이 들 정도의)을 알았을 때도 심한 마음의 동요를 느끼지 않았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대개의 사람이라면 그런 엄청난 사실 앞에서 무척 괴로웠을 텐데. 하긴 어쩌면 아미르는 어려서부터 유모가 했다는 '같은 젖을 먹고 자란 사람에게는 형제애가 흐르는 법'이라는 말을 본능적으로 진실로 받아들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랬기에 후에 진짜 그랬다는 것을 알고서도 그다지 놀라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을까.

처음엔 자신의 비겁함으로 인해 죄책감을 갖고 지내는 아미르에 온 마음을 쏟으며 읽었는데 중반에서는 자존심 강한 사람이 그렇듯 물질적 어려움보다 정신적 공허함 때문에 괴로워하는 미국에서의 생활에서는 앞서의 그 죄책감이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후반부에는 목숨을 걸고 조카를 데리고 나오는 장면이 주를 이루고 있어 한 가지의 마음으로 책을 대하기가 힘들었다. 물론 마음속에 숨겨둔 비겁한 진실이 연결 고리가 되어 모든 일을 겪게 된 것이라고 결론지을 수 있겠지만 순간마다 하나의 마음으로 읽지는 못했다. 그건 그렇고 차마 영화는 보질 못할 것 같다. 하산이 불쌍하고 소랍이 안쓰럽고 바바가 측은해서, 그리고 아세프가 너무 미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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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왕국의 게릴라들 - 삼성은 무엇으로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가
프레시안 엮음, 손문상 그림 / 프레시안북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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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회사 다닐 때 출장을 삼성전자와 현대전자(당시는 하이닉스로 바뀌기 전이었다.)에 다 가 봤다. 그런데 사내 시설이나 휴게실 등 여러 시설면에서 삼성이 확실히 깔끔하고 잘 되어 있다는 것을 느꼈다. 확실히 삼성은 관리를 잘 한다는 느낌도 받았고 끊임없이 변화하려는 노력도 엿보였다. 난 지금도 가전 제품을 사면 주로 삼성 대리점을 찾아간다. 그 이유는 A/S가 확실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한 은연중에 삼성이 만들면 다르다는 광고카피가 머릿속에 내재된 이유도 있을 것이다. 과연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전에는 어찌되었든 지금은 가전업계에서 삼성의 독주체제나 다름없다. 가전 3사(물론 일각에서는 대우의 기술력을 빗대어 2.5사라고 하지만) 중 두 곳이 현재 제 구실을 못 하는 실정이니까.

현재 우리나라에서 삼성이라는 기업의 영향력은 대단한다. 또한 세계에서도 꽤 인정받고 있는 것도 자랑스럽다. 나도 삼성이 해외에서 인정받고 다른 나라에 이름이 많이 알려지는 걸 바라는 사람이다. 삼성이 망하는 걸 절대 바라지 않는다. 다만 그들의 경영구조가 투명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대단한 법무 인력을 배치해서 교묘히 법망을 빠져나가면서 경영권 세습을 하려고 하는 현재의 그런 상태로는 세계적으로 신망받는 기업이 되리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법무부에 있는 인력보다 훨씬 우수한 인재와 인프라를 갖추고 있는 곳이 바로 삼성 법무팀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들은 오로지 이건희 일가를 위해 존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건 웬만큼 관심만 갖고 있으면 알 수 있는 그런 사실을 왜 정부나 관료들은 굳이 알려고 하지 않는 것일까. 워낙 오래전부터 삼성이 조직적으로 로비를 하고 관료들을 관리한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다만 그것이 그냥 막연히 그럴 것이다에서 이번에 김용철 변호사의 선언으로 인해 확실하게 드러난 것 뿐이다.

숲에 있으면 그 숲의 크기나 모양을 알 수 없듯이 어떤 시간이 흐르고 있는 당시에는 그저 하나의 시간으로 인식되다가 나중에 돌이켜보면 혹시 운명이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이 드는 경우가 있다. 시사저널이 삼성에 관한 기사 때문에 파업을 하고 힘들게 새로운 기틀을 막 마련할 즈음에 마침 김용철 변호사가 자신의 거취를 정확히 확정지었다. 그러면서 다른 언론이 하나도 거들떠보지 않을 때 (한겨레와) 새로 창간한 시사IN은 그 기사를 다루었다. 어찌보면 교묘히 시간이 맞아떨어졌다는 생각이 든다. 이게 운명이 아니었을까. 만약 시사저널 기자들이 그냥 사측과 타협하고 넘어갔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물론 일전에도 삼성에 관한 기사를 심층적으로 다룬 적도 있었으니 다루었을 가능성도 있지만 이미 삼성에 고개를 숙인 상태에서 김용철 변호사의 일을 자세하고 객관적인 입장에서 다룰 수 있었을까. 현 언론이 처한 상황이나 여러 정황상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작년에 삼성에 관한 사건이 막 터졌을 때만 해도 회의적인 시각이 많았다. 뭐, 지금도 김용철 변호사가 이야기했던 수많은 불법적인 일들이 다 밝혀지리라곤 생각지도 않는다. 다만 적어도 그들이 잘못을 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진일보한 성과일 것이다. 그러나 이건희 회장의 태도를 보면 마치 선심 쓰듯 내가 다 짊어지겠다라는 식이어서 어이가 없다. 문제는 그것이 아니잖은가. 분명 경영권 승계를 위해 수많은 법을 위반했으니 이제라도 원래대로 돌려야 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그럴 가능성은 전혀 없어 보인다. 예전부터 순환출자 구조에 대한 부당함과 위험성을 각계에서 그렇게 이야기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새 정부는 출총제를 완화한단다. 어디 그 뿐인가. 가장 쟁점이 되었던 금산법도 완화해서 결국은 삼성의 손을 들어주고자 '노력'한다. 대선에서도 이것을 정치적 공약으로 내걸었지만 아주 극소수의 몇몇을 제외하곤 별로 반대하는 목소리도 듣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아무리 반대의 목소리를 냈더라도 언론이 받아주지 않고 공론화 시키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대부분 어떤 문제의 원인을 찾다보면 결국은 언론이 제 기능을 못 하는 것으로 판명날 때가 어디 한두 번이었나.

금산법 철폐에 대한 이야기도 잠시 있었던 때에 내가 극구 반대 목소리를 내자 누가 그런다. 금산법을 철폐한다고 해서 삼성이 금방 금융을 소유할 수 없다고. 제도적으로 대기업은 못 갖게 하면 된다나. 그러면서 인터넷 신문에서 그런 식으로 설명이 되었다고 한다(내가 워낙에 조중동을 읽는 사람하고는 말을 하지 않는다고 강하게 이야기했기에). 워낙 오래전 일이라 기억이 가물거리지만 그런 식으로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있다. 그 논리는 어디서 많이 본 논리다. 조중동. 사실 보수 일간지를 보지 않고 인터넷으로 본다며 내심 치우치지 않는 언론매체를 보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조그만 더 들여다보면 결국 인터넷 포탈에서 제공하는 기사는 조중동과 어떻게든 연결되어 있다. 사람들은 그 점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신문이 사실을 이야기할지언정 진실을 모두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알고 있다고는 하지만 어느 한 신문을 꾸준히 읽다보면 자기도 모르게 그 논리에 설득당하게 되어있다. 글 잘 쓰는 기자들이 설득하는데 어떻게 넘어가지 않을까. 그런데도 정작 본인은 설득 당했다는 걸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참 안타깝다.

삼성에 대항해서 싸운, 그리고 지금도 싸우고 있는 일곱 명의 이야기를 싣고 인터뷰를 하고 있다. 대부분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라 신선함은 덜했지만 이 기회를 통해 제발 많은 사람들이 삼성의 실체를 알아보았으면 한다. 삼성 직원들의 피나는 노력으로 이룬 성과가 오너의 부당한 행동 때문에 이름이 더렵혀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직도 일각에서는 경제논리를 앞세워 그만 덮고 가지는 식의 이야기를 한다. 그들은 분명 뭔가를 착각하고 있다. 지금 이런 것들이 결코 삼성을 망하게 하려고 그러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투명한 삼성을 만들어 서로에게 득이 되는 일을 하자는 것이다. 삼성이 무노조인 이유, 밖에서는 모두들 그만큼 직원들에게 알아서 다 해주고 복지가 잘 되어 그렇다고 생각한다. 실은 나도 그랬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별의별 방법으로 노조 설립을 막고 그것도 안되면 어용 노조를 미리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노조 신고를 하기 20분 전에 누군가가 먼저 신고했단다. 아주 극비리에 진행을 했는데도 말이다. 과연 정보력의 삼성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말이 아니다. 만약 복수노조가 허용된다면 그런 문제도 쉽게 풀릴텐데...

금산법이나 출총제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삼성 측에서는(지금은 정부 측에서라고 해도 과히 틀리지 않을 것이다.) 으레 외국의 사례를 거론하곤 한다. 그러나 외국의 경우는 우리처럼 순환출자 구조는 상상도 못한다고 한다. 자회사는 모회사와 지분이 완전히 독립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걸 인용하는 사람들은 속은 안 보고 겉에 있는 것만 이야기한다. 삼성의 지배구조를 나타낸 그림을 보면 얼마나 복잡한지 모른다. 그 쪽에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모르겠는데 전혀 상식도 없는 상태에서 보려니 처음에는 굉장히 헷갈렸었다. 나중에야 이해했다. 그게 바로 순환출자구조라는 것이구나라고.

이제 삼성특검도 얼마 남지 않은 것으로 안다. 과연 어디까지 얼마나 파헤칠까. 그럴 의지나 있을까 걱정이다. 사실 지난번 국세청이 자료를 거부할 때 기겁하는 줄 알았다. 과연 우리나라가 법치국가 맞는지 의심까지 들었다. 그런 상황에서 특검이 얼마나 힘을 발휘할 수 있을런지... 거대한 삼성이 하루 아침에 개혁되리라곤 생각지 않는다. 다만 이번을 계기로 조금이라도 변화 가능성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삼성은 경영도 깔끔하게 하고 회계부정도 하지 않는 아주 깨끗한 기업이라는 이미지로 거듭났으면 좋겠다. 그래야 삼성에도 좋고 우리 경제에도 좋은 것이니까. 일부에서 주장하듯이 삼성의 비리를 캐면 외국 투자자들이 떠나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봤을 때 외려 외국 투자자들을 불러들이는 것일 게다. 경제를 위해 조금 흠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대통령으로 선택했다고 해서 대기업 오너에게까지 그런 마음을 가질 필요는 없다. 까딱하다간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말 듣게 생겼다. 이제 제발 제대로 된 대기업문화를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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