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탄불로부터의 선물 - 세계도시여행
이나미 글 사진 / 안그라픽스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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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아는 사람으로부터 외국 여행을 가게 되면 터키를 꼭 가 보라는 권유를 받은 적이 있다. 내게 있어 터키라는 나라는 아시아와 유럽 모두에 속해 있어 박쥐처럼 아시아에 속한다고 하기도 했다가 유럽으로 취급받길 원하기도 하는 나라, 007영화의 무대로 나왔던 나라라는 것 정도가 알고 있는 것의 대부분이다. 사실 지형적으로는 아시아에 훨씬 많은 땅이 있어도 마음 깊은 곳에서는 유럽으로 취급하고 있기도 했다. 아마도 이스탄불이 터키를 대표하는 도시인데 그 도시가 유럽쪽에 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싶다.

그런 이스탄불을 여행하고 온 어느 디자이너의 글이라니 일단 그다지 어렵지 않으리라는 기대가 있었다. 또한 책을 읽는 목적 중 하나가 바로 간접체험이 아니던가.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을 읽으면 이스탄불에 갔다 온 간접여행이 되는 것이라는 계산도 있었다. 그렇게 읽기 시작했다. 책표지를 보고 굉장히 고급스럽기도 하고 특이하기도 하다고 느꼈다. 특히 접는 부분을 그냥 길게 사각형으로 만드는데 이것은 마치 예쁜 편지봉투처럼 해놓아서 특이하다고 생각하던 차였다. 그런데 본문을 읽다 보니 표지 사진은 저자가 머물렀던 호텔 천장에 매달려 있는 등을 찍은 것이며 테두리는 '세밀화'라고 하는 책 표지를 본따서 디자인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내가 이해하기로는 그런 세밀화라는 그림이 마치 우리의 도화서에 있는 화원들이 국가의 행사를 그대로 그려서 보관했듯이 왕조의 삶을 그림으로 기록해 놓은 것으로 이해했다. 물론 술탄의 삶을 기록하고 그것을 화려한 장정의 책으로 만들어 놓은 것까지가 포함되긴 하지만 말이다.

저자는 단순히 어디를 갔고 무엇을 보았고 어떻게 느꼈는지를 열거하는 방식을 취하지 않는다. 어느 것 하나를 서술하더라도 자신을 되돌아보고 사유를 하듯 잔잔하게 써내려간다. 어쩌면 그래서 더 들뜨지 않고 편안한 마음으로 읽을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도 항상 이슬람 문화권 여자들의 히잡이나 차도르에 대해 부당하다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저자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자신의 편협하고 우월감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을 자책하며 터키 여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나 또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그들을 진정으로, 똑같은 사람으로 이해하려는 저자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나는 아직 그 단계까지는 아닌 것 같다. 아마 직접 그들을 만나보지 못해서 그런 건 아닐까.

숱하게 들어 있는 사진을 보며 솔직히 글보다 사진에 머물러 있는 시간이 많았다. 글은 빨리 읽은 반면 사진은 자세히 들여다 보곤 했으니까. 그러나 사진이 보통의 사진보다 어두워보여서인지 아니면 내가 전혀 보지 못한 곳이라서인지 알아보고 공감하는데 약간의 괴리감이 있다(후자일 가능성이 농후하긴 하지만). 아마 저자라면 그리고 그곳을 여행했던 사람이라면 '아, 이 곳!'하며 공감할 수 있을 텐데. 애초에 터키 이스탄불을 간접경험하려고 이 책을 봤던 것인데 오히려 더 갈증만 커졌다. 언젠가는 꼭 이스탄불을 가 보리라. 그래서 꼭 저자가 머물렀던 호텔에서 머물리라. 그게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아, 그리고 나도 저자와 같은 엄마라서 그런 걸까. 저자가 딸과 함께 계획에 없던 여행을 하게 되었다면서 아주 잠깐 이야기하지만 그 한 부분을 읽는 순간, 지금까지 딸이 아니라 여행의 동행인으로 생각하며 지나쳤던 모든 부분들에서도 딸에 대한 사랑이 느껴졌다. 그러면서 가슴이 뭉클했다. 아마 이건 같은 엄마만이 공감할 수 있는 감정이 아닐까싶다. 문득 3주 캠프 떠난 딸이 보고싶어진다. 남편으로부터 계모 아니냐는 모진 소리까지 들을 정도로 냉정한 내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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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 새판짜기 - 박정희 우상과 신자유주의 미신을 넘어서
곽정수 엮음 / 미들하우스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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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으면서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이 이거야라며 공감하고 예전의 문제점이 지금까지도 해결되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는 것에 한탄하며 정말 열심히 몰입해서 읽고 났는데 다 읽고 나니 마음이 착잡하고 무겁다. 현실은... 대담에 나온 세 경제학자가 일관되게 그리고 혼연일치로 금산분리법과 출총제 제한을 풀면 안된다고 그렇게 반대하는데 현재 어떻게 되고 있는가. 읽으면서 일었던 많은 생각들이 부질없게 느껴지고 전부 하얗게 되는 느낌이다.

워낙 경제에 대해서는 문외한이고(개인 경제의 기본인 가계경제도 전혀 몰라서 남편에게 한소리 듣는다.) 관심도 없는 지라 그런 분야의 이야기만 나오면 머리가 지끈지끈 했다. 아니, 사실 관심은 있어서 분명 이건 아닌데라고 생각하지만 다른 사람이 그에 대해 반박을 하면 내가 상대를 설득시킬 지식이 부족해서 항상 답답해 하던 차였다. 이론적인 배경이 뒷받침 되는 것도 아니고 다른 경제학자의 이론을 차용할 만큼 알고 있지도 않으니 그저 주먹구구식으로 '우기다'가 말곤 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어 가면서 그래도 내가 생각한 것이 완전 잘못된 것은 아니었구나라는 생각에 내심 흐뭇했다. 또한 전혀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던 것도 아니었구나를 확인할 수 있었다. 다만 아직도 지식이 부족한 관계로 여기에 있는 이론들과 내 생각을 결합해서 다른 사람을 설득할 단계는 아직도 아니라는 점이 못내 아쉬울 따름이다.

한때는 텔레비전 뉴스가 공정하다는 순진한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그 당시는 막 민주화가 되고 난 후였으니까 비단 나만 그런 생각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비록 사실을 보도하되 언론사가 선호하는 방향에 시간을 많이 할애한다거나 그쪽의 인터뷰를 많이 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성향을 드러낸다는 것을 알고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그런데 15년도 훨씬 지난 지금 어떤가. 아직도 그런 행태는 변하지 않았다. 아마 앞으로도 그런 것은 변할 가능성이 낮아 보인다. 그렇다면 결국 시청자인 우리들이 '알아서' 걸러내야 하는데 과연 그럴 만한 장치들이 있는가다. 많은 언론이 한목소리를 내고 있는 상황에서 직접 찾아다니며 내가 동의하는 자료를 찾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일례로 요즘 인수위 측에서 연일 새로운 정책들을 쏟아내고 있는데 그에 대한 검증이라던가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에 대해서는 어느 언론도 제대로 하고 있지 않은 것 같다. 분명 금산분리와 출총제 완화를 기정사실화 하고 있는데 그에 대한 반대급부의 이야기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 그러니 나 같은 우매한 사람은 분명 그게 아닌 것은 알겠는데도 많은 전문가들이 반대를 하지 않으니까 그래도 괜찮은가보다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니 세 학자가 모두 언론의 역할을 그렇게 강조하는 것이겠지. 하긴 그게 어제 오늘 일도 아닌데, 뭐.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아니 얻고 있는 정보의 상당부분은 기득권의 스펙트럼 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왜냐하면... 언론도 기득권의 일부니까. 물론 법을 만들고 집행하는 세력도 기득권이다. 그러니 사회적 약자인 소시민들의 이야기를 대변해 줄 장치가 하나도 없는 셈이다. 또 관심도 없는 것이고. 이런 것을 막연히 '그럴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세 학자가 자신들이 경제 관료나 정치인을 만나서 직접 느꼈다고 하니 내가 괜한 피해의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만은 아니었다. 

언론이든 관료든 재계든 자신들에게 유리한 자료만 가지고 이야기하고 또 그것만 보여주고 있어서 그렇지 실은 그들이(특히 재계) 간과하는 부분이 너무나 많아서 한심할 지경이었다. 그런데 왜 그런 것들은 일반 시민에게 알려지지 않는 걸까. 그걸 따지다 보면 귀결점은 또 언론이 되고 만다. 아, 이 악순환의 고리가 언제 끊어지려나. 자본의 속성상 재계가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끌고 가려는 것은 당연할지 모르겠으나 그것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장치가 없다는 것이(있어도 관료들도 한통속이라는 것이) 문제의 시발점이 아닌가 싶다.

가만 생각해 보면 우리는 외국의 좋은 정책들 중 결과가 보여지는 것을 가져오기는 해도 그 저변에 깔려 있는 장치들은 전혀 신경을 안 쓰는 것 같다. 여기서 얘기하듯 법인세나 특소세 인하는 끝까지 관철시키면서 기업 투명성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것처럼 말이다. 한 가지 법이 있다면 그 법이 생기기까지의 과정이나 파생 장치들은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정작 일반인들에게는 그 과정에서 생긴 법이 아주 중요한데도 말이다. 그러니 결국 기득권들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쉽게 끌고 갈 수가 있는 것이고. 이러한 사실들은 보통 사람들은 어떻게 알겠는가. 일부러 논문을 찾아 읽는 것도 아니고 외국 신문을 일일이 살펴보는 것도 아니니. 그렇게 우리는 정부와 관료들 그리고 재벌들에게 속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이야기하듯 우리나라가 가진 최대의 단점이 정책의 일관성과 투명성, 그리고 정책집행의 공정성 등이 부족하다는 것(296쪽)에 대해서는 모두 동의하지 않을까. 설마 이제 곧 들어올 새 정부도 이것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그것을 실천할 의지가 있느냐의 문제겠지. 내가 여기서 주장하는 학자들의 견해에 원래부터 동조하는 입장이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하나같이 모두 맞는 이야기인데 왜 이들의 주장은 전혀 고려의 대상이 되지 않는 것일까. 답답하다. 그나저나 김상조 교수가 금산분리 원칙을 폐지하자는 주장은 정말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했는데 지금 새 정부에서는 그렇게 하려고 하니 이를 어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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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나의 집
공지영 지음 / 푸른숲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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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책을 읽기 전에 작가의 인지도가 먼저 다가왔다. 원래 유명한 소설가가 쓴 글은 모두 관심을 갖고 나오자마자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하니까. 게다가 이런저런 이야기로 사람들에게 오르내리는 자신의 가정사를 기본으로 하는 이야기라니. 그래서 대개는 마지막에 읽는 작가의 말을 처음에 읽었다. 왜냐하면 자전적 소설이라 해도 어디까지가 허구이며 어디까지가 사실인지 선을 그을 필요가 있기 때문이었다. 작가는 말한다. 이건 어디까지나 소설이라고. 그런데 왜 읽는 내내 작가의 성격이 이랬구나, 그래서 힘들게 살았구나라며 소설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했는지 모르겠다.

고등학생 딸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가족 이야기. 그러나 위녕은 처음부터 가족이 아니었다. 과연 여기서 말하는 가족이란 무엇일까. 적어도 아이들끼리는 성이 같아야 하고 처음부터 함께 살아야 하는 것? 그런 기준으로 보자면 위녕은 가족의 범주에 낄 수가 없다. 부모가 이혼한 후로 줄곧 아빠와 함께 살았으니까. 게다가 동생들과 성도 모두 다르지 않던가. 그러나 엄마의 자리가 그 모든 것을 메워 준다. 만약 위녕의 엄마가 다른 보통의 엄마들처럼 자식을 위해 희생하고 모든 판단의 기준을 자식으로 하는 사람이라면 어땠을까 생각해 본다. 하긴 그랬다면 이혼을 세 번이나 하지도 않았겠지. 스스로가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치열하게 자신과 싸우는 모습이 애처롭기까지 하다. 그러나 남들이 어떻게 보든 본인은 행복해 했다니 그것이 어디인가.

많은 엄마들은 딸과의 관계설정을 위녕과 위녕의 엄마처럼 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그게 말처럼 쉽지는 않다. 친구처럼 지내기도 하고 자매처럼 지내고 싶어지다가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결국 '모녀'가 되고 만다. 내가 조금 더 이끌어줘야 하고 더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나도 모르게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위녕의 엄마는 참 솔직하고 영혼이 맑은 사람인가 보다. 여기서 자꾸 작가의 성격이 이렇구나라고 생각되는데 정말 그렇게 동일시해도 되는지 헷갈린다.

처음에 작가의 개인사를 알았을 때 그래도 유명한 작가니까 보통 사람들보다 어려움이 덜 하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그런데 꼭 그렇지만도 않은가 보다.(또 현실과 소설을 구분 못한다.) 오히려 유명하기 때문에 감추고 싶은 게 있어도 감출 수가 없어서 더 힘들 수도 있고 행동에 제약이 있을 수도 있겠다. 어쩌면 그래서 아이들이 감당해야 할 몫이 더 커졌을 수도 있겠지.

가족.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그런 가족이 아니라 성이 모두 다른 네 명이 한 가족을 이루고 살지만 그들은 결코 다른 가족과 다른 것이 하나도 없다. 모두 서로를 사랑하고 있고 이해하고 있으니까. 다만 주위의 곱지 않은 시선만이 한 가족으로 보지 않으려 할 뿐이다. 새로운 시대에 필요한 새로운 가족의 의미를 묻는다고 하지만 아직 우리 사회에서는 받아들이기에 요원한 문제인 것 같다. 그래도 이렇게 꿋꿋하게 현재를 살아가는 작가가 있지 않은가. 딱히 커다란 사건이 있는 것도 아니고 큰 문제거리를 던져주는 것도 아니지만 평범하게 보아주지 않는 그들의 평범한 일상이 잔잔하게 펼쳐지는 내내 마음이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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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상식 바로잡기 - 한국사 상식 44가지의 오류, 그 원인을 파헤친다!
박은봉 지음 / 책과함께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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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다니면서 역사를 배울 때 동기를 갖지 않고 오로지 시험과목으로만 배웠었나 보다. 이렇게 재미있는 역사를 왜 힘들어 했는지 모르겠으니 말이다. 사실 어른이 되고 나서도 특별히 역사에 흥미를 갖지 않았는데 아이가 초등 고학년이 되면서 함께 역사 나들이를 다니게 되면서 해설사에게 여러가지 설명도 듣고 책도 찾아보고 하다가 급기야 모임에서 역사를 주제로 공부하다 보니 이젠 이보다 재미있는 분야도 없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가 되었다. 아직 역사적 지식은 초보 수준이지만...

내가 읽은 책은 한계가 있어서 때로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새로운 사실을 알기도 했다. 그러다가 유적지에서 해설을 들으면서 그동안 알고 있었던 사실과 다른 내용을 듣고는 적잖이 놀란 기억이 난다. 그리고나서 다른 책도 보고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러한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역사라는 것은 시대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 있고 더 많은 연구자료가 보충되어 바뀌게 되는 부분 또한 있으니 어쩌면 그게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렇게 찾아보는 사람에게만 진실이 드러난다고 생각하니 참 많이 아쉽다. 만약 나도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모르고 지나갈 것들이 얼마나 많았겠느냐 말이다.

역사란 공부하면 할수록 재미도 있지만 어려운 분야라는 생각이 든다. 뭐, 지금 내가 책 조금 읽은 것을 가지고 역사 공부했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포석정에 대한 이야기는 요즘은 그래도 여러 책에서 제대로 다루고 있는 듯하다. 작년 여름에 그곳 해설사에게 들었던 내용도 이 책에 있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김정호가 지도를 만들 때 실제로 백두산을 여러 번 올라갔고 옥사했다는 말은 사실과 다르다는 것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그런데 사실 함흥차사에 대한 이야기나 원효대사에 대한 이야기는 생경했다. 물론 처음부터 다루는 고조선의 '고'자에 대한 어원에 대해서도 모르고 있었긴 하다. 아니, 몰랐다기 보다 관심도 두지 않았다고나 할까.

한 가지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기회가 되면 아이들이나 남편에게 이야기해 줬다. 그런데 아이가 하는 말이 이런 책은 선생님이 먼저 읽어봐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한다. 이럴 땐 참 난감하다. 그렇게 교육의 틀이 그렇게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게다가 책 한 권으로 인해 지금까지 기정사실화 되었던 이야기가 변화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기에 하는 말이다. 가끔 저자도 이야기한다. 설혹 한 인물에 얽힌 이야기가 과장되거나 미화되었다 해도 그 사람의 업적이 퇴색되는 것은 아니라고. 아마 문익점이나 우장춘에 대한 설명을 하면서 그랬던 것으로 기억한다. 비록 문익점이 위험을 무릅쓰고 붓두껍에 목화씨를 감춰 온 것이 아니라 그냥 쉽게 주머니에 넣어왔다고 해서 그의 업적이 빛바래는 것은 아니다. 본국으로 돌아오면 귀양을 갈 것이 뻔한 상황에서도 목화씨를 가지고 와서 우리의 면화산업을 개척한 것은 문익점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잖은가. 

함흥차사를 이성계가 모두 죽인 것이 아니라고 해서, 고조선이 기원전 2333년에 건국된 것이 아니라고 해서 최영 장군이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고 한 것이 아니라 그의 아버지가 한 말이라고 해서 크게 달라질 것은 없다. 하지만 간혹 절대 잘못된 상식 그대로 있어서는 안 되지 않을까라는 것들도 있었다. 식민사관으로 얼룩진 것도 있었고 후에 승리자의 입장에서 심하게 왜곡된 것도 있었다. 이런 것은 분명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역사란 고정된 사실을 가지고 바라보는 방식이 변하는 것이라고는 하나 이 책을 읽으며 정말 '역사는 흐른다'라는 말을 실감했다. 그나저나 기존에 나왔던 역사 관련 책들(특히 어린이책)을 보면 이건 잘못된 것인데라거나 지금은 이렇게 해석하지 않는데라는 생각이 먼저 떠오르니 큰일이다. 자꾸 오류만 보일까 봐. 그래도 이런 책을 읽은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간혹 작가의 주관적인 견해로 마무리 되는 것도 있는 듯 보이지만 거기에조차 설득당하는 느낌이다. 아직도 이렇게 밝혀야 할 것이 많다니, 과거는 과거로써 끝이 아니라 현재를 거쳐 미래에까지 영향을 준다는 기본적인 논리가 새삼 실감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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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들지 않는다는 것 - 하종강의 중년일기
하종강 지음 / 철수와영희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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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남편과 심한 의견대립으로 늦게까지 입씨름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러면서 남편이 내게 항상 그렇게 불평 불만만 이야기하면 뭐하냐며(주로 정치적 사회적 문제를 의미한다.) 남의 아픈 곳을 찌른다. 그렇잖아도 이렇게 맨날 말로만 할 것이 아니라 어떤 행동을 해야하지 않을까 고민하고 자괴감에 빠져 있던 차에 그런 소릴 들은 것이다. 그래서 안 그래도 NGO 활동을 적극적으로 해 볼까 생각중이라고 했더니 남편이 그건 절대 반대란다. 그러면서 바로 입씨름이 끝나버렸다. 아마 논쟁이 계속된다면 내가 구체적인 결단을 내릴까 겁내한 것이리라. 누군가가 나서 주었으면 하지만 나와 관계 있는 사람들이 그런 궂은 일을 하는 것은 반대한다는 심보다. 그런 걸로 따지자면 '난 안 그렇다'라고 자신있게 말하지 못하겠다.

오로지 한 길로만 걸어가면서 주변을 살짝 엿보았기에 저자가 하는 일련의 운동이 내겐 참 낯설다. 아니 현재의 열악한 환경에서 근무하는 노동자-그것도 대부분의 비정규직-들의 처지를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정작 가슴으로는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말로는 그들의 문제가 심각하다고 이야기하고 해결책을 세워야 한다고, 그런 공약을 내건 후보가 지지 받기를 원하지만 힘겹게 투쟁하는 사람들을 보면 '뭐하러'라는 말부터 나온다. 노동운동을 하다가 그만 둔 사람으로부터 '아직도 그 일 하냐.'라는 핀잔을 듣고 화가 났었다는 글을 읽으면서 뜨끔했다. 실은 나도 속으로 그 힘든 일을 왜 자초해서 할까라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차였기에... 

거기에는 대학 총학생회장에 대한 인식이 바뀐 것도 한 몫 했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이 새내기일 때는 학회장도 대단해 보이고 단과대학생회장도 대단해 보였다. 물론 총학생회장은 더 했을 것이고. 하지만 과 선배가 총학생회장이었기에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노트를 빌려줬기에 다른 친구들보다는 이야기할 기회가 좀 더 많았다), 순수하게 학교를 위해서 자신의 신념을 위해서라기 보다 그 후에 있을 무언가를 위해서 내지는 경력의 일환으로 총학생회장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고 무척 실망했었다. 그 후 정치권을 보더라도 총학생회장들이 줄줄이 정치권으로 방향을 잡는 것을 보고 다시 한번 절실히 느꼈다. 아, 세상은 그런 것이구나.

그러니 노동운동에 헌신하는 사람들도 그런 것이 아닐까하는 일종의 색안경을 끼고 본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세상은 그렇게 이분법적으로 나눌 수 없듯이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며, 하종강의 삶을 읽으며 깨달았다. 이렇게 사는 사람도 있구나. 틈만 나면 가족과 여행 다니는 나에 비해 변변한 여름 휴가 한번 못 가는 사람도 있구나. 그것도 남을 위한 일 때문에. 물론 그것이 그 사람에게는 직업이라지만 내 남편이 그런 일을 한다면... 글쎄, 잘 견딜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래서 난 아직도 멀었나 보다. 위 글을 보면 마치 책에서 노동운동에 대해 거창하게 썼거나 꼭 노동운동을 하라고 설득하는 줄 알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그저 담담히 자신의 소소한 일상을 이야기할 뿐이다. 신변잡기적인 일상을. 그러나 내겐 그 소소한 일상조차 대단하게 느껴졌다. 차원이 다른 의식체계를 가진 사람의 삶 같다고나 할까. 나(와 남편) 같은 속물은 도저히 흉내낼 수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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