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 그림책 보물창고 55
로버트 브라우닝 지음, 케이트 그리너웨이 그림, 신형건 옮김 / 보물창고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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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에게 책을 열심히 읽어 주던 시절, 그러니까 그림책의 맛에 막 빠져들 때 만난 책 중 하나가 이 책과 동일한 제목의 책이다. 그리고 어린이 책에 살짝 발을 들여놓았을 때 랜돌프 칼데콧과 케이트 그리너웨이라는 인물을 알게 되면서 이 책(물론 동일한 제목)이 특별하게 다가왔다. 어린이 책 분야에 지대한 공을 세웠기에 그걸 기리는 의미에서 두 사람의 이름을 딴 상을 제정했고 그 상의 권위는 모두가 인정하니 왜 안 그렇겠나. 지금이야 각 출판사에서 두 개의 상을 탄 책만을 따로 묶어서 판매할 정도로 인지도가 높아졌지만 당시만 해도 그 이름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그러던 시절에 케이트 그리너웨이가 그린 책이라니 무척 소중하게 여겨졌던 게 사실이다. 게다가 오래전에 나온 책답게 종이가 누렇고 현란하지 않으면서도 부드러운 색조의 그림이 괜히 푸근하게 느껴졌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동일한 책이 여러 출판사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때로는 약간 변형시킨 이야기도 있지만 때로는 번역만 다르게 한 책을 만나기도 했다. 이 책은 후자의 경우다.

  그러나 언제 만나도 좋은 책이다. 출판사가 다른 같은 제목의 책을 꺼내놓고 함께 보는 것도 흥미롭다. 언젠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가는 모임에서 그런 시도를 해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려서 이제는 모든 어린이가 아는 이야기가 되었다지만 그렇지 않아도 워낙 유명한 독일의 옛이야기라서 많이 알고 있을 것이다.

  쥐가 너무 많아서 도무지 제대로 된 생활을 할 수 없었던 하멜른 사람들은 결국 시장에게 어떤 방법을 모색할 것을 강력하게 요구한다. 그런데 시장은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없어 보인다. 사람들이 시장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만 보아도 일 보다는 자신의 안위와 권력 유지에만 관심있는 사람이라는 걸 짐작할 수 있다. 그런 사람이니 피리 부는 사나이와의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도 당연하다.

  이야기가 오백 년 전에 있었던 일이라고 시작하기 때문에 마지막에 트란실바니아 사람들의 조상이 바로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를 쫓아간 아이들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절뚝거리는 발 때문에 미처 따라잡지 못한 소년을 통해 피리 부는 사나이가 아이들에게 지상낙원으로 데려다 주겠다고 꾀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아마 그 모습이 바로 책 앞부분에 나오는 그림이 아닐런지(시공주니어에서 나온 책은 이 그림을 표지로 사용했다). 그러나 지하 감옥에서 탈출했다는 트란실바니아 사람들의 이야기로 추측해 보건대 피리 부는 사나이가 데려간 곳은 그런 지상낙원은 아니었던 듯하다. 즉 피리 부는 사나이 거짓말을 했던 것. 그런데도 나는 자꾸 피리 부는 사나이가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화자도 피리 부는 사나이의 거짓말보다는 시장과 시의회의원들이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에 더 초점을 맞추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 보다는 시장의 무능력과 권력욕, 이기심이 더 밉기 때문은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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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끝에 오는 잠 - 아기를 품고 어르며 재우는 노래
류형선 글.곡, 노성빈 그림 / 보림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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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들이 어렸을 때 자장가를 불러줬던가. 둘 다 잠투정이 심하지 않아서 재우는 데 어려움이 없어서인지 자장가를 불러준 기억이 별로 없다. 게다가 아는 자장가도 없었으니 그럴 수밖에. 각 나라마다, 민족마다 그리고 시대마다 자장가가 있다. 그리고 한 나라 안에서도 지역마다 각기 다른 자장가가 있다. 이처럼 당연한 듯이 얘기하지만 지역별로 어떤 자장가가 있으며 어떻게 다른지는, 모른다.

  자장가를 모아 우리 가락으로 들려주는 책. 비록 그 옛날 불러주던 음과는 다를지 모르지만 우리 악기를 주로 이용했으니 정서는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문득 <노란우산>을 만났을 때가 기억난다. 책에 음악을 곁들여서, 그것도 글이 없는 책에 아주 경쾌하고 아름다운 음악과 함께 듣도록 했었지. 이번에는 자장가다. 그동안 책과 음악을 곁들인 책이 많이 나와서 이제 새로울 것은 없지만 그래도 우리의 전래 자장가만을 모아서 예쁜 그림과 함께 볼 수 있도록 했다는데 의의가 있다.

  대개의 자장가는 단조롭다. 별다른 뜻이 없는 소리를 반복하거나 주변의 사물과 동물을 끌어모아 가사에 이용한다. 그래서 그때그때 변주가 가능하다. 오늘 부르는 노래와 내일 부르는 노래의 가사가 동일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원래 옛이야기도 상황에 따라, 화자의 기분에 따라 줄이거나 늘이기도 하는 것처럼 전래 자장가도 그러지 않았을까 싶다. 강아지가 지나가면 '강아지도 잘도 잔다'하고 갑자기 쥐구멍에서 쥐가 나오면 '쥐가 잘도 잔다'고 할 테니 말이다. 이처럼 그 지역의 특색이 가사에 반영되기도 하고 사투리가 고스란히 들어가기도 한다. 그래서 제주도의 자장가를 들어보면 처음엔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웡이 자랑'에서도 도대체 웡이가 무엇이길래 자랑을 한다는 것일까 궁금했는데 알고 보니 웡이는 워리처럼 개를 부르는 소리고 '자랑'은  '자장'이라는 뜻이란다. 그제서야 노래가 이해된다. 다양한 자장가를 예쁜 그림과 우리 가락으로 만나는 시간이었다. 노래를 들으니 졸립기는 했지만(자장가이므로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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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랑 세계의 걸작 그림책 지크
넬리 스테판 글, 앙드레 프랑소와 그림, 정지현 옮김 / 보림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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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작가도 생소하고 그림 작가도 생소한데 책을 펼치면 다시 생소한 인물이 쓴 서문이 나온다. 게다가 제목도 사람 이름이다. 이쯤되면 헷갈리기 시작한다. 처음에 서문을 읽으며 별 생각없이 서문을 쓴 사람이 글이나 그림 작가 중 한 명이려니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다. 그제서야 넷의 관계를 자세히 살펴본다. 그러니까 롤랑은 이 책의 주인공 어린이고 서문을 쓴 로베르 마생은 아트디렉터이자 작가란다. 로베르 마생의 서문에 '다시 출간했다'고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프랑스에서는 많이 알려진 책인가 보다.

  롤랑이 그림을 그리고 '쨍'이라고 외치기만 하면 그것이 살아 움직인다. 얼마나 멋진 일인가. 누구나 그런 생각 한번쯤은 해보았을 것이다. 실제로 어린이 책에서는-제목이 기억나지 않지만-그런 식의 이야기가 간혹 있다. 다만 좋은 의도를 가졌다기 보다 못된 친구들을 혼내주거나 자신의 누명을 벗는 일이 대부분이긴 하지만. 그런데 롤랑은 아무리 봐도 그냥 그림을 그렸지 싶다. 물론 처음에야 지각해서 벌을 세운 선생님을 원망하며 혼내주길 바라는 마음이 있지 않았을까 살짝 의심해 보지만 롤랑의 행동을 보아 그런 의도는 전혀 없어 보인다. 단지 심심해서 호랑이를 그렸고 '쨍'이라고 외쳤을 뿐이다. 또, 호랑이는 그냥 밖으로 나갔으니 아무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았다.
 
  여기서 선생님의 반응이 참 멋지다. 보통의 어른이라면 이게 무슨 짓이냐며 롤랑을 혼내고 호랑이를 내쫓았겠지만 선생님은 '여기 네 자리가 없다'는 말 한 마디로 모든 상황을 정리한다. 여기서 잠깐 우리네 문화와의 차이를 느낀다. 예전의 우리 정서였다면 아이와 호랑이를 혼냈을 테고 요즘, 그러니까 아이의 말을 경청해야 하고 나 전달법을 써야 한다는 사실을 아는 요즘이라면 아마도 이것이 선생님을 얼마나 당황하게 하는지, 교실은 어떤 곳인지를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았을까 싶다. 이처럼 단 한 마디로 아이의 마음과 상황을 인정해주면서도 한 단계를 뛰어넘어 해결하는 대화법, 정말 재미있다.(이것은 약간 딴 얘기지만 유은실 작가의 이야기가 그런 식이라서 처음에 엄청 열광했다. 물론 지금도 여전하다. 요즘에는 우리 작가들도 재치있고 유머가 넘치며 위트 있는 글을 많이 써서 그런 재미를 느끼곤 한다.)

  선생님이 다시는 '쨍'이라는 말을 하지 말라는 것으로 보아 그 말의 의미를 알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도 다른 말은 하지 않는다. 그런 반응은 롤랑의 엄마도 마찬가지다. 다만 잘못한 부분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선을 그으며 이자벨에게 사과하라는 말을 덧붙일 뿐이다. 게다가 롤랑이 생명을 준 동물들이 나중에 모두 롤랑에게 돌아와서 함께 사이좋게 노는 것으로 끝난다. 다시 종이로 돌아가면 어쩌나 괜한 걱정을 했는데 다행이다. 롤랑의 행동이 아주 특별하고 괴짜임에도 불구하고 여기에 나오는 어른들은 그것에 대해 논리적으로 설명하려고 애쓰거나 오류를 지적하지 않고 그냥 받아들인다. 그것이 진정 어린이들이 바라는 것일 게다. 아마 어린이들은 매순간 이런 식의 생각을 하지 않을까 싶다. 현실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아 좌절하면서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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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쟁이 해리 : 바다 괴물이 되었어요 - 개정판 개구쟁이 해리 시리즈
진 자이언 글, 마거릿 블로이 그레이엄 그림, 임정재 옮김 / 사파리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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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더운 여름이다. 너도나도 바다로 놀러가는 시점이 되었다는 얘기다. 사실 나는 물을 그닥 좋아하지 않고 특히 소금기가 묻어나는 바닷물은 더욱 안 좋아해서 바다로 놀러가기는 아주 가끔이지만 여름의 바닷가 풍경은 너무 익숙하다. 해변에 똑같은 파라솔이 줄지어 있는 모습과 물속에 바글대는 인파. 이 책을 보는 순간 그러한 해변의 풍경이 저절로 떠오른다.

  해리는 천방지축 못 말리는 강아지다. 검은 점이 있는 하얀 강아지인데 이 집은 해변으로 놀러가도 강아지를 데리고 가나 보다. 우리는 도저히 감당이 안 되어 맡기고 가는데 말이다. 식구들이 해변으로 줄지어 가고 마지막에 해리가 따라가는 모습은 보기만 해도 재미있다. 게다가 해리가 있는 곳이라면 언제 어디서나 뭔 일이 터지기 때문에 이번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자못 궁금하기도 할 정도다.

  아니나 다를까. 파라솔이 작아서 옹기종기 붙어 앉아야 하는 상황에서 해리 자리는 없다. 결국 쫓겨나서 그늘을 찾아다니던 해리는 우연히 바다에서 밀려온 바닷말을 뒤집어 쓴다. 뜨거운 햇살 아래서 시원한 바닷말을 뒤집어 썼으니 얼마나 시원할까. 다른 사람들은 그것이 강아지라는 것을 모르고 해리 자신이 어떤 모습인지 전혀 짐작하지 못한다는 점이 문제일 뿐이다. 시원해서 가족을 찾아가려고 신나게 뛰어다니는 해리를 보고 사람들이 괴물이라고 소동을 벌이지만 해리는 자신의 모습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 이것이 해리의 매력이다. 남들은 자기를 어떻게 보든 자기 마음대로 돌아다닌다는 것 말이다.

  '헤이'를 해리로 잘못 알아듣고 그곳으로 뛰어가는 모습은 또 어떻고. 사실 바닷말을 뒤집어 써서 사람들이 괴물로 오해하지만 전혀 개의치 않고 천방지축 뛰어다니는 모습이 전형적인 강아지 모습이다. 게다가 해리는 운도 좋다. 사람들에게 막 잡히려는 순간 의도하지 않았지만 도망쳤으니 말이다. 우여곡절 끝에 아이들을 만나 집으로 돌아오고 다음 해에는 훨씬 커다란 파라솔을, 그것도 해리와 비슷한 모양인 하얀 바탕에 검은 점이 있는 파라솔을 준비했으니 이제 해리가 가족을 못 찾는 일은 없겠다. 이 시리즈가 나온 지 꽤 되었는데도 읽으면 여전히 재미있고 아이들도 여전히 좋아한다. 물론 나도 무지 재미있고 좋아하는 책이다. 특히 아무것도 모른다는 해리의 표정은 어찌나 귀여운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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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자루 타고 씽씽씽 그림책 보물창고 54
줄리아 도널드슨 지음, 신형건 옮김, 악셀 셰플러 그림 / 보물창고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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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릇 마녀란 뾰족 모자를 쓰고 빗자루를 타고 다니며 마법 지팡이를 들고 다닌다. 그러니까 여기 나오는 마녀가 전형적인 마녀의 모습인 셈이다. 거기다가 이 마녀는 수프를  끓이는 커다란 가마솥을 들고 다닌다. 이것만 있으면 어디서나 끼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보다는 더욱 중요한 용도로 사용한다. 바로 마법의 묘약을 만드는 솥단지였던 것. 아니, 약이 아니라 의자가 있고 샤워기까지 달려 있는 마법 빗자루를 만드는 재주가 있는 솥이다. 가만, 그러면 하늘을 마음대로 날 수 있는 빗자루나 바꾸고 만들 수 있는 마법 지팡이보다 이게 더 중요한 것 아닐까. 여하튼 가마솥의 용도는 그렇단다.

  고양이 한 마리를 데리고 다니는 이 마녀는 마음씨가 착하다. 잃어버린 모자를 찾아준 개가 빗자루에 태워달라고 요청하자 선뜻 그러마고 허락하니 말이다. 어디 그 뿐인가. 그 후로도 물건 하나씩 잃어버릴 때마다 그것을 찾아주는 동물을 빗자루에 태우다 보니 어느새 빗자루는 만원이다. 마녀에 고양이와 개, 새, 개구리까지 탔으니 어째 불안하다. 아니나 다를까. 개구리가 팔짝팔짝 뛰자 급기야 빗자루가 부러지고 만다. 그런데 하필이면 마녀가 떨어진 곳이 심술궂은 용이 있는 곳이다. 이제 마녀는 꼼짝없이 용에게 잡아먹히게 생겼다. 원래 용보다 마녀가 더 세지 않나. 여하튼 마녀가 용에게 먹히려는 찰나 무시무시한 괴물이 나타나서 마녀를 구해준다. 아주 커다랗고 흙탕물을 뚝뚝 흘리는 괴물은 실체를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로 이상한 모습을 했다. 이름을 아는 무서운 괴물보다 이름을 모르는 무언가가 더 두려운 법이다. 글에서 설명할 때는 당췌 무슨 괴물인지 예측을 못하겠지만 그림을 보면 대충 알 수 있다. 머리가 넷 달린 괴물이 무얼까 생각했다가 그림을 보면 왜 머리가 넷인지 이해가 간다. 

   착한 마녀가 친구들의 부탁을 들어줘서 빗자루에 모두 태우고 날아갔듯이 친구들은 마녀가 위기에 처했을 때 위험을 무릅쓰고 구해줬다. 얘네들이라고 용이 안 무서웠을 리가 없다. 그런데도 친구를 위해 용기를 냈던 것이다. 마녀는 그 보답으로 빗자루에 멋진 의자까지 만들어줬다. 마녀가 갖고 다니는 그 어떤 빗자루도 이런 것은 보질 못했다. 고양이는 편안히 앉아서 음료수를 마시고 있고 개는 책을 보고 있으며 새는 둥지에 앉아 있고 개구리는 신나게 물놀이 하고 있는 빗자루. 어찌나 편안해 보이는지 이거 보기만 해도 부럽다. 이런 빗자루 하나만 있었으면 좋겠다. 지금까지 길쭉한 나무만 있는 빗자루는 가라, 이제부터는 소파가 있는 빗자루니라, 뭐 이런 건가. 물건을 하나씩 잃어버릴 때마다 새로운 동물이 합류하는 반복되는 구조와 마지막에 친구를 위해 용기를 내고 상대방을 배려하는 모습과 선명하고 재미있는 그림은 비록 신선한 맛은 없지만 아이들이 좋아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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