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가의 오얏은 맛이 쓰다.

   道傍苦李(도방고리)

 

서진 시대 때 왕융(王戎)이란 인물과 관련한 일화다. 어느 날 아이들이 길에 나와 놀다가 목이 말라 길가의 오얏나무를 발견하고는 오얏을 따려고 우르르 몰려들었다. 그런데 유독 한 아이만 그 자리에서 꼼짝하지 않고 아이들에게 가지 말라고 말렸다. 물론 아이들은 그 말을 무시했다. 이윽고 아이들이 오얏을 잔뜩 따 가지고 돌아왔다. 일제히 오얏 열매를 베어 무는 순간 누구랄 것 없이 모두 우엑하며 토하고 말았다. 그러고는 동시에 그 아이 쪽으로 눈을 돌렸다. 이미 먹어 본 것 아니냐는 표정들이었다. 아이는 싱긋이 웃으며 길옆 오얏나무에 열매가 잔뜩 열렸다면 진작 다 따 먹고 없어야 하는데 이렇게 멀쩡하게 매달려 있다는 것은 맛에 문제가 있다는 뜻 아니겠니?”라고 말했다. 이 아이가 바로 죽림칠현의 한 사람인 왕융이다. 길가의 오얏은 맛이 쓰고 시다는 뜻의 도방고리란 고사성어가 이렇게 해서 탄생했다. 사람들의 주의로부터 멀어지거나 버려진 것을 비유하는데, 보기에 그럴듯한 물건 따위가 버려져 있다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뜻이고, 때로는 이 때문에 원상을 보존할 수 있다는 뜻으로도 쓰인다.

 

세설신어』 「아량(雅量)

 

 

 

 

 

중국사의 오늘 :

784823(당 덕종 흥원 원년 8월 임인)

서예가 안진경(顔眞卿)이 반란군의 장수 이희열(李希烈)에게 1년 반을 억류되어 회유책을 거부하다가 끝내 피살되었다.

 

 

* 안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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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난 재능(재주가 여덟 말을 차지하다)

   才高八斗(재고팔두)

 

송나라 때 무명씨가 지은 석상담이란 책에 나오는 성어이다. 남조 시대 송나라의 사영운(謝靈運)은 유명한 산수 시인이다. 명문가 출신으로 진()나라의 명장 사현(謝玄)의 손자이기도 했다. 송나라 문제는 사영운의 문학적 재능을 크게 평가하여 그의 시와 서예를 두 가지 보물로 부를 정도였다. 주변의 높은 평가에 기고만장한 사영운은 “(위진 이래) 천하의 뛰어난 문장가가 한 섬 있었는데, 그중 조식이 혼자 여덟 말을 차지하고, 내가 한 말을 차지한다. 나머지 한 말은 천하에 남은 사람이 나누어 차지한다며 큰소리를 쳤다. 표면적으로는 조식의 재능을 높이 평가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세상 인재를 다 합쳐도 자기 하나만 못하다는 오만이 배어 있는 말이다. 이 때문에 그는 조정의 권세가들 눈 밖에 나서 유배지를 전전하다 광주(廣州)에서 피살되었다. 그의 나이 49세였다. ‘재고팔두재점팔두’(才占八斗), ‘독점팔두’(獨占八斗)로도 쓴다. 모두 뛰어난 재능을 뜻하는 성어이지만 그 이면에는 이런 고사가 숨어 있다.

 

석상담(釋常談)

 

 

 

 

 

 

중국사의 오늘 :

572822(북조 북제 후주 무평 37월 무진)

북제(北齊)의 후주가 시기와 의심 때문에 좌승상 곡율광(斛律光)을 살해했다. 곡율광이 죽음으로써 북제는 북주(北周)에 맞설 유일한 인재를 잃었고, 결국 북주에 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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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돌을 갈아 거울을 만들다.

   磨磚作鏡(마전작경)

 

당나라 현종 때 도일(道一)이란 승려가 전법원(傳法院)에 머무르며 좌선 수행을 하고 있었다. 당대의 고승 회양(懷讓) 선사는 도일을 눈여겨보았다. 하지만 도일의 수행법이 영 아니었다. 그래서 회양은 도일에게 하루 종일 그렇게 앉아서 뭘 하려는 것이오?”라고 물었다. 도일은 당당하게 성불하려고 합니다라고 대답했다. 회양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벽돌 하나를 가지고 와서는 도일이 보는 앞에서 돌 위에 올려놓고 갈기 시작했다. 도일은 고개를 갸웃하며 선사께서는 뭣에 쓰려고 벽돌을 가십니까?”라고 물었다. 회양은 태연하게 갈아서 거울을 만들려고 하오라고 답했다. 도일이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어디 있느냐며 언성을 높였다. 그러자 회양은 그럼 좌선만 한다고 성불할 수 있소이까?”라고 반문했다. 세상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수행보다는 작으나마 실천행을 중시했던 선종의 번득이는 지혜가 엿보이는 일화다. ‘노력보다 방법이 더 중요하다는 말도 같은 맥락이다.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중국사의 오늘 :

1140821(남송 고종 소흥 107월 을유)

남송의 명장 악비(岳飛)가 언성(郾城)에서 금나라 군대를 대파했다. 이로써 남송은 일방적으로 밀리던 전세를 만회하기 시작했고, 악비는 일약 구국의 영웅으로 떠올랐다.

 

* 악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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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이 걸려 있는 진나라 거울

   秦鏡高懸(진경고현)

 

()나라 수도의 함양궁(咸陽宮)에는 앞뒤 모두 밝게 빛나는 거울이 보관되어 있었다. 똑바로 서서 자신의 모습을 거울에 비추면 모습이 거꾸로 비치는데 가슴팍을 문지르면 오장육부를 또렷하게 볼 수 있었다. 병이 있는 사람은 병을 알 수 있고, 나쁜 마음을 먹고 있으면 그것조차 환히 드러났다. 진 시황(始皇)은 궁인들을 이 거울에 비추어 심장이 급하게 뛰는 사람을 가려내어 처벌했다. 그 뒤 이 신비의 거울은 자취를 감추었다. 진나라 말기 함양궁에 진입한 유방(劉邦)도 항우(項羽)도 이 거울을 찾지 못했다. 아무튼 이런저런 전설 때문에 진경’(秦鏡)진경고현’(秦鏡高懸)은 시비를 잘 가리고 판단을 공정무사하게 내리는 행위나 그런 법관을 비유하는 단어가 되었다. 또 법원이나 관청 문에 진경고현이라 쓴 현판을 내걸어 정의로운 판결의 상징으로 삼기도 했다.

 

서경잡기(西京雜記) 3

 

 

 

 

 

중국사의 오늘 :

1971820

중국 외교부에서 미국이 유엔과 함께 두 개의 중국을 만들려는 음모와 획책을 꾸미고 있다며 단호히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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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렁이가 편지를 전달하다.

   黃耳寄書(황이기서)

 

진서(晉書) 육기전(陸機傳)에 나오는 재미난 이야기이다. 육기는 서진(西晉) 때의 저명한 문학가로 절강성 출신이었다. 그는 수도인 낙양에서 벼슬살이를 하면서 황이(黃耳)라 부르는 귀 색깔이 누런 개 한 마리를 데리고 사냥 다니길 좋아했다. 황이는 사람 말귀를 알아들을 정도로 영리한 개였다. 한번은 고향집에서 오래도록 소식이 없어 장난삼아 황이에게 네 녀석이 내 편지를 우리 집에 전해 주고 올래?”라고 말했다. 황이는 마치 알아들었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육기는 편지 한 통을 써서 대나무 통에 넣어서는 황이의 목에 걸어 주었다. 황이는 역참을 따라 강 건너 산 넘어 육기의 고향집까지 가서는 편지를 전달했다. 배가 고프면 작은 동물 따위를 잡아먹었고, 때로는 사공을 졸라 배를 얻어 타기도 했다. 황이는 답장까지 가지고 50일 만에 돌아왔다. 후로도 육기는 종종 황이를 시켜 고향집에 편지를 전하곤 했다고 한다. ‘황이기서는 개가 주인을 위해 편지를 전한다는 뜻의 신기한 고사성어이다. 편지와 뜻을 제대로 전하기는커녕 있는 기록조차 분실하고 왜곡하는 우리 SNS 시대의 모습을 황이가 꾸짖는 듯하다.

 

진서(晉書) 육기전(陸機傳)

 

 

 

 

 

중국사의 오늘 :

1962819

신화사 통신이 중국 역사상 가장 광범위한 고적 목록서 중국총서종록이 상해도서관에 의해 편찬 완료되었다고 보도했다. 이 공구서는 전국 주요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역대 총서 2,797, 고적 38,000여 종 총 750만 자를 수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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