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를 막고 종을 훔치다.

   掩耳盜鈴(엄이도령)

 

춘추 시대 말기 산서성 일대의 큰 제후국 진()은 공실의 권위가 무너져 여섯 집안이 권력을 나누어 가지면서 대립하는 국면이 전개되고 있었다. 기원전 491년 범씨(范氏)와 중항씨(中行氏) 집안이 나머지 네 집안의 공격을 받아 멸망했다. 범씨 집안사람들은 이 와중에 죽거나 뿔뿔이 흩어져 집안에는 아무도 남지 않았다. 어느 날 누군가 텅 빈 범씨 집에 들어와 큰 종을 하나 발견했다. 가져가서 녹여 다른 공구를 만들면 딱 좋을 것 같았다. 종이 너무 무거워 들고 갈 수 없자 이자는 종을 부수어 가져가기로 작정하고 망치로 종을 때렸다. 순간 큰 종소리에 깜짝 놀라 자신의 귀를 막았다. 귀를 막으니 소리가 자연히 작게 들릴 수밖에. 이자는 귀를 막고 종을 깨면 되겠다 싶어 귀를 막은 채 큰 망치로 마구 종을 때렸다. 온 동네로 종소리가 울려 퍼졌음은 말할 것 없다. 이 성어는 원래 도종엄이’(盜鐘掩耳)로 썼으나 후대에 엄이도령으로도 바뀌었다. 어리석은 자가 자신의 짓거리를 감추려는 자기기만을 비꼬는 성어이다. 뻔한 거짓말을 천연덕스럽게 해 대는 자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절묘한 비유가 아닐 수 없다.

 

여씨춘추』 「불구론자지(不苟論自知)

 

 

 

 

 

중국사의 오늘 :

71496(당 현종 개원 27월 무신)

당 현종이 조서를 내려 관리가 승려, 비구니, 도사와 왕래하는 것을 엄격하게 금하라고 했다. 종교인이 권력가와 결탁하여 정치에 간여하고 심지어 정변 음모에 참여하는 등 폐단이 만만치 않았다.

 

* 당 현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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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파도 이해하다.

    老嫗能解(노구능해)

 

송나라 때 사람 증조(曾慥)가 편찬한 유설(類說)에 인용된 묵객압서(墨客押犀)에 보면 당나라 때 시인 백거이(白居易)와 관련한 일화가 전한다. 백거이는 시()란 세상 사람들이 이해하고 기억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깊게 들어가서 쉽게 나오도록 평이하고 통속적으로 쓰는 데 주의를 기울였다. 이를 위해 백거이는 시를 쓰면 이웃집 노파에게 보여 주고 노파가 이해하면 그대로 쓰고, 이해하지 못하면 이해할 때까지 고쳐 썼다. 그런가 하면 평범한 사람들로부터 항간의 다양한 이야기를 듣고 작품에 반영하기도 했다. 시를 완성하면 자신이 직접 시를 읊어 주면서 작품에 대한 반응을 보고 들어 적절하게 고치거나 보완하였다고 한다. 공부를 제대로 많이 한 사람은 글을 쉽게 쓴다. 반면 어설프게 공부한 자들이 어려운 글과 말로 세상 사람들을 농락한다. 자신의 무지와 남에 대한 무시가 몸에 배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지적 오만은 자신은 물론 남까지 해친다.

 

유설(類說) 48

 

* 백거이

 

 

 

 

 

 

중국사의 오늘 :

189895

청나라 광서제(光緖帝)가 유신파(維新派) 인사인 담사동(譚嗣同) 등에게 4품에 해당하는 벼슬을 내리며 새로운 정치 개혁에 참여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로써 담사동 등은 황제를 직접 만나 정치 개혁을 상의할 수 있게 되었다.

 

 

* 담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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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선생이 늘 하던 말

   老生常談(노생상담)

 

관로(管輅)는 삼국시대 위나라의 술사(術士)였는데, 훗날 점복과 관상의 대가로 추앙받았다. 관로의 명성은 당시 권세가인 하안(何晏)과 등양(鄧颺)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이들은 사람을 보내 관로를 불렀다. 관로는 권세만 믿고 설치는 이자들을 훈계하기로 마음먹었다. 관로를 만난 하안은 다짜고짜 언제 승진하고 얼마나 치부할지 자신의 앞날을 점쳐 달라고 요구했다. 관로는 점잖게 과거 현자들을 본받아 덕을 쌓으라고 충고하면서, “당신에게 감사하는 사람보다 두려워하는 사람이 더 많으니 조짐이 좋지 않다고 했다. 그러자 등양이 나서 하는 말이 죄다 늙은 서생이 늘 하는 말로 하나도 재미없다며 불쾌해했다. 관로는 늙은 서생이 늘 하던 말이지만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라고 충고했다. 얼마 뒤 해가 바뀔 무렵 이 두 사람은 조상과 함께 모반을 꾀하다가 주살되었다. 이 소식을 들은 관로는 늙은 서생이 늘 하던 말을 무시했기 때문에 그런 꼴을 당한 것 아닌가라며 혀를 찼다. ‘노생상담은 늙은 서생이 평소 하던 말을 가리키지만, 후에는 과거에 여러 차례 했던 말을 두루 가리키는 성어가 되었다.

 

삼국지(三國志) 위서(魏書) 관로전(管輅傳)

 

 

 

 

 

중국사의 오늘 :

64394(당 태종 정관 177월 계사)

당 태종이 방현령(房玄齡) 등에게 지시하여 현무문에서 동생 이건성(李建成)을 죽인 것은 주공(周公)이 관숙(管叔)과 채숙(蔡叔)을 죽인 것과 같은 사건으로 고쳐 쓰게 했다. 권력으로 역사를 고쳐 쓰게 한 이 일은 당 태종의 일생에서 가장 큰 오점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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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 같은 종류들이 패를 지어 나쁜 짓을 일삼다.

   狼狽爲奸(낭패위간)

 

’()’()는 모두 이리 종류의 동물로, 생김도 성질도 비슷하다고 한다. 다만 은 앞다리가 긴 데 비해 는 뒷다리가 길다. 이 두 야수가 가축을 잡아먹는 통에 사람들은 여간 골치가 아픈 것이 아니었다. 가축을 키우는 축사의 울타리를 높여서 아예 넘어오지 못하게 방비했지만 놀랍게도 이 두 야수는 신체의 장점들을 살려 는 긴 뒷발을 이용해 바로 서서 자신의 어깨 위로 을 태워 울타리를 넘어 의 긴 앞발로 양을 잡도록 했다. 이후 는 늘 함께 다니며 서로의 장점을 이용하여 먹이를 사냥했다. 이 두 야수로부터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낭패라는 단어가 파생되었고, 두 야수가 짝을 지어 가축을 해치는 것을 낭패위간이라 했다. 이후 이 성어는 패거리를 지어 함께 나쁜 짓을 저지르는 것을 비유하기에 이르렀다. ‘낭패위간하는 패거리 문화가 우리 사회의 발전을 해치는 심각한 병폐라는 사실은 오래 전부터 지적되었지만 별반 나아진 것은 없는 것 같다.

 

박물전휘(博物典彙)

 

 

 

 

중국사의 오늘 :

94393(오대 후진 출제 천복 88월 정미삭)

조정에서 사람을 모아 메뚜기 잡기에 나섰다. 이해 봄, 여름 가뭄이 들고, 가을과 겨울에는 수재가 닥쳐 메뚜기 떼가 거의 전국적으로 기승을 부렸다. 굶어 죽은 사람이 수십만에, 이재민은 수를 헤아리기 힘들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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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대에 불필요한 피리 연주자가 수를 채우다.

   남우충수(濫竽充數)

 

전국 시대 제나라 선왕(宣王)은 악대의 합주를 즐겨 들었다. 이 때문에 피리를 잘 부는 악사들을 구해 300명에 이르는 피리 연주대를 구성할 정도였다. 이 악대에 남곽(南郭)이라는 자가 있었는데, 연주 실력도 별 볼 일 없으면서 온갖 방법을 다 짜내 선왕의 환심을 사 악대에 들어갔다. 악대가 피리를 연주할 때 다른 악사들은 실력을 한껏 발휘했지만 남곽은 그저 연주하는 흉내만 낼 뿐이었다. 악대의 숫자가 워낙 많았기 때문에 남곽 한 사람이 연주하지 않아도 전혀 티가 나지 않았다. 이렇게 남곽은 몇 년 동안 다른 악사들과 같은 좋은 대접을 받으며 지냈다. 그런데 선왕을 이어 즉위한 민왕(湣王)은 합주보다 독주를 선호했다. 남곽은 매일 마음을 졸이며 지낼 수밖에 없었고, 결국은 서둘러 보따리를 챙겨 몰래 궁에서 도망쳤다. 자질과 실력은 물론 인간성도 형편없는 자들이 사회 곳곳에서 자리를 꿰찬 채 세금과 사회적 재부를 축내고 있는 우리 현실을 비꼬는 고사성어라 할 것이다.

 

한비자(韓非子) 내저설 상(內儲說上)

 

 

 

 

중국사의 오늘 :

72992(당 현종 개원 178월 계해)

현종이 자신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백관에게 술자리를 베풀자 백관이 음력 85일을 천추절로 정하여 사흘을 쉬면서 전국적으로 축하하도록 하자고 건의했다. 과거 몇 차례 신하들이 이런 제안을 했지만 시행되지 않았는데 현종 때 처음 시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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