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는 결국 우리가 보는대로 믿는 것이 아니라, 믿는대로 보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최근 이 영화와 관련한 여러 리뷰들, 이야기들을 보면 이 '믿는대로 보는 것'이라는 믿음의 한 형태가 그 담론들에서도 계속 이어지는 것 같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파이가 들려준 이야기를 확장하여 파이가 식인을 했다고 생각하는 관점들 같은 것 말이다. 이 관점들에서는 파이가 말한 이야기가 실제 일어난 사건이며, 파이는 결국 살아남기 위해 식인을 하게 되며, 호랑이는 단지 그의 종교적인 자아일 뿐이다. 그리고 그것의 몇몇 증거들이 제시된다. 예를 들어 영화 속에 제시된 증거로는, 식인섬이 등장하고(그러니까 실제로 이것은 식인섬의 등장 시점부터 파이가 배에서 식인을 했음을 의미하고), 그것의 형상은 사람의 형태(혹은 힌두교의 비슈누 신의 형태)이며, 사람의 이빨이 꽃 속에 들어 있으며, 난파되면서 갑자기 주방장이 얼룩말로 대치되며, (심지어는) 마지막 해변에서 호랑이의 발자국이 모래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나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등을 말할 수 있다. 보다 더 흥미로운 것은 영화 바깥에서 찾은 증거이다. 영화 속에서는 건너 뛰는 부분이지만, 소설 <파이 이야기>에는 실제로 파이의 식인행위를 묘사하는 구절이 있으며, 1884년 영국의 미뇨넷 호가 난파하여 18일만에 음식이 떨어지자 결국 한 소년 선원을 죽여 그 고기를 나눠먹고 살아남아 구조되었는데, 그 소년의 이름이 '리처드 파커'였다는 사실 같은 것.

 

결국 이 관점들의 출발은 파이의 마지막 이야기를 기초로 하고 있다. 그가 자신의 이야기를 믿지 않는 일본인들에게 들려준 다른 버전의 이야기말이다. 소설을 보지는 않았지만, 이 <파이 이야기> 소설에도 등장하고, <라이프 오브 파이>에도 등장하는 이 결말은 조금 이상해 보이기는 한다. 순전히 영화의 어떤 완결적인 구조만을 놓고 말하자면, 이 마지막은 그 완결적인 구조를 스스로 무너뜨리는 이상한 사족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즉 이 마지막이 없어도 이야기의 완결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으며, 그 구조 자체에도 흔들리는 부분이 없다. 아니 도리어 이 마지막은 이 구조를 스스로 흔들려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므로 이런 이상한 마지막이 영화에 슬며시 붙었을 때 흔히 그것에 대해 '무엇인가가 있다'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나는 사실 이러한 관점이 조금 기이해 보인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가 영화 속에서 '보지 않은 무엇인가'이기 때문이다. 즉 우리가 두 시간 가까이 본 파이와 리처드 파커와의 동거를 환상이라 생각하고, 영화 속에서 전혀 보여지지 않는 인간 사이의 살육에 이 관점은 기초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에도 이렇게 말할 수는 있다. 그것은 당신이 보지 못한 것이 아닌가. 영화 속에서 분명히 암시하고 있는데, 당신이 그 증거들을 찾아내지 못한 것이 아닌가. 그러나 이를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그 암시된 증거들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결국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 가는 것이다. 즉 그것은 보는대로 믿는 것이 아니라, 믿는대로 보는 것이다. 암시된 증거들은 우리가 그것을 믿을 때만이 그 구조를 우리앞에 드러내 보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영화 외부의 증거들을 영화로 가져올 때의 어떤 위험한 부분에 대해 재론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영화에서의 상징을 다룰 때, 그리고 그것을 해석할 때 외부의 구조를 가져오는 것, 그에 더 나아가 상징과 해석을 다룰 때의 위험성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밤을 새야할지도 모른다.) 

 

2.

'믿는대로 본다는 것'은 다른 이야기로 하면, 내가 '본다'라는 사실을 의식한다는 것이다. 즉 그것이 맹신이 아니라 믿음의 한 종류가 될 수 있으려면 그 자신이 보는 것에 대해 스스로가 무엇인가의 제동을 걸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전에 인용하기는 했지만, 그것은 예를 들어 정성일 평론가의 다음의 말과도 통한다. "지금도 저에게 영화비평이란 결국 영화를 본다, 는 문제입니다. 해석이 아니라 말 그대로 본다는 문제. 내가 본 것을 쓸 것. 내가 만들어낸 착란상태에 빠지지 말 것." 즉 여기서의 '보는 것'은 그냥 보는 것이 아니라 '착란 상태에 빠지지 않은 상태에서 보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자신이 보고 있는 것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면서, 회의하면서 보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위에서 얘기한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에서 파이가 식인을 했다고 보는 관점에서 해석을 하는 것이 기이한 방식으로 돌아가기는 했어도, 심지어 식인섬의 미어캣이 시체에 꼬이는 구더기라는 이야기까지 나아가기는 했어도, 결국 이 영화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 '종교적 맹신에 대한 위험성'이라고 결론을 맺을 때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믿음이라는 것은 그 맹신에서 벗어났을 때만이 그 의미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어떤 방식으로 돌아가든 간에, 어떤 방식으로 해석을 하든 간에 그 돌아오는 지점이 그렇게 크게 떨어져 보이지는 않는다는 점. 다시 말해서 '종교적 맹신을 경계하자'는 것은, 사실 '(제대로된) 믿음을 가지자'는 말의 다른 버전인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즉 '제대로된 믿음'이라는 것은 맹신이 제거된 믿음, 회의라는 것이 포함된 믿음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위험해 보이는 것은 (내가 보기에는) 본 것이 아니라 보지 않은 것에 기초하여 쓴 것처럼 보이는 그런 해석의 글들보다는 그 해석 밑에 붙은 여러 기이한 댓글들이었다. 예를 들어 영화에 찜찜한 부분이 있었는데, 이 해석을 읽고 의문이 풀렸다는 식의 그런 댓글들. 그것이 위험한 것은 그것은 마치 어떤 정답지를 대하는 듯한 태도, 혹은 맹신을 하지 말자는 취지의 글을 맹신하는 듯한 태도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이것을 이렇게 이야기하고 싶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쩌면 바로 그 '찜찜한 부분'이 아닐까. 영화의 어떤 찜찜한 부분이 눅진하게 남아 건드리는 것, 즉 당신에게 던지는 계속적인 질문, 당신이 본 것이 과연 무엇인가라는 질문들, 그런 것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아닐까. 그러므로 우리가 어떤 찜찜한 의문을 풀기 위해 어떤 해석을, 혹은 어떤 글들을 정답지처럼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는 영화를, 그리고 그 영화에 혹시 들어있을지도 모를 어떤 질문들에 대한 사고를 정지하는 것이며, 그 영화를 자신의 안에서 내치는 것이며, 동시에 어떤 기이한 믿음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예를 들어 감독의 인터뷰를 금과옥조처럼 받아들이는 태도와도 연관된다.)

 

그러므로 개인적으로는 영화에 대해 다루는 좋은 글이라고 생각하는 글들은, 아니 (이렇게 얘기하면 니 글은 어떻고,라는 얘기가 쏟아질 것 같으므로 이렇게 바꿔서) 내가 '좋아하는' 영화에 대한 글들은 질문을 풍성하게 만드는 글이다. 즉 우리가 영화가 끝났을 때 한 두 가지의 질문 밖에 하지 못하고 있을 때, 그 질문을 두 배, 세 배로 늘려주는 글들. 다시 말해서 찜찜한 영화를 더 찜찜하게 만드는 글들. 그리고 그 찜찜함을 이기지 못해 다시금 영화를 보게 만드는 글들.

 

3.

얘기가 나온 김에 한 마디 영화를 다루는 어떤 태도에 대한 것을 하나 덧붙이고 싶다. 최근에 모 영화를 다룬 글들을 보러 한 사이트에 들렀다가 가득 쏟아지는 비평가들의 별점에 대한 조롱들을 보고 기분이 아득해져 (트위터에 글을 안올리게 된지 오래지만) <씨네21> 트위터에 다음과 같은 트윗을 남겼다.  '<씨네21>의 애독자로서 하나 묻습니다. 포탈의 영화 별점을 들여다보면 때로 기분이 참 안좋아집니다. 별점제도에 대한 오해, 전문가평들에 대한 오해가 난무한달까요. 이것에 대한 부분에는 여러 영화를 다루는 매체들의 책임이 있으며, 영화를 다루는 주간지로서 <씨네21>의 책임도 피할 수 없다고 봅니다. 영화를 감상하는 문화를 만들어가는 입장에서 지금이라도 <씨네21>이 영화별점을 다루는 부분을 없앨 생각은 없는지, 왜 아직도 이러한 오해를 (본의 아니게) 조장하고 있는지 생각을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얼마 지나지 않아 다음과 같은 답멘션을 보내왔다. '개인적인 생각으론 영화에 대해 간단하게 식별할 수 있는 한 방법 중에 하나가 별점이 아닌가 싶어요.. 주신 의견 관련부서에 전달해 드릴께요~  ^^' 뭐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만 우리일은 우리가 알아서 할테니 신경끄세요'라는 이야기인 것 같다. 

 

내가 트윗에서 이야기한 '전문가평들에 대한 오해'라는 것은 전문가들, 그러니까 영화비평가들이 매기는 별점이라는 것을 재미에 대한 척도로 여기는 태도와 관련이 있다. 즉 간단하게 이야기해서 비평가들이 재미없는 영화만 좋아한다, 재미없는 영화에만 높은 평점을 준다는 식의 이야기들 말이다. 그러나 이런 비평가들의 영화에 대한 별점은 '재미의 척도'가 아니라 '예술성의 척도'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즉 비평가들이 어떤 영화에 대해 좋은 점수를 준다면 그것은 그 영화가 재미있기 때문이 아니라, 예술적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 짧은 문장은 많은 논란의 여지를 담는다. 그것은 비평가들이라는 집단이 균일하지도 않거니와 그렇다면 과연 '예술'이라는 것은 어떻게 구분되는가, 그것은 '재미'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재미'와 '예술'을 구분해야 하는가)라는 기나긴 질문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단지 그저 별점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고 싶다. 즉 제대로된 비평가라면 '이 영화가 재미있는가'라는 질문에 답하기 보다는 '이 영화가 영화라는 예술의 기준을 충족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답해야 하며, 그 기준에 따라 점수를 주어야만 한다. 그러므로 나는 도리어 이렇게 묻고 싶다. 영화비평가가 일반인과 동일한 기준을 적용한다면 그들이 존재할 이유가 있는가. 그들의 눈과 일반인의 눈이 같아지는 순간, 그들은 소멸될 것, 혹은 소멸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이와 관련한 정성일 평론가의 트윗 "인과관계_ 평론가들이 감독을 예술가 대접하며 그들의 영화를 비판하자 죽일듯이 미워하며 왜 그렇게 심각하냐고 욕을 했다. 소원대로 비평이 몰락하자 감독들은 장삿꾼들에게 무자비하게 잘려나가고 있다. 우리들이 당신들의 방어선이라는 사실을 몰랐단 말인가.")

 

아마도 그것은 별점이라는 것, 그리고 20자평(혹은 100자평)이라는 것의 어떤 폭력적인 부분과 연관되는 것이 아닐는지 모르겠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영화에서의 줄세우기 자체를 부인하는 것이 아니다. 비평(批評)이라는 한자에 견줄 비(比)자가 들어있는 것처럼 비평이란 결국 견주어서 평하는 것이며, 어떤 것이 왜 예술이고 어떤 것이 왜 예술이 아닌지 보여주는 것은 비평가들의 임무이다. 그러나 다만 그것이 긴 담론과 여러 의미를 고려한 견줌이 아닌, 별의 숫자와 트윗보다도 짧은 글로 나타날 때 그것은 그 의도를 넘어서 때로 폭력이 되는 경우가 있다. 짧은 20자평이 때로는 촌철살인의 문구라고 사람들은 좋아하지만, 나는 도리어 이렇게 말하고 싶다. 영화는 '촌철살인'을 하지 않기 위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4.

그것은 예를 들어 영화에서 시간을 다루는 태도 같은 것이다. 며칠 전 일요일에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론 셰르픽 감독의 <원데이>를 보았다. 이 영화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여러가지이지만, 가장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시간에 대한 태도이다. 이 영화는 1988년 7월 15일 엠마(앤 해서웨이)와 덱스터(짐 스터게스)의 하루에서 시작하여 그 이후의 20년 동안의 7월 15일을 이어붙이는 영화다. 즉 이 영화는 순간의 집적이 영화가 될 수 있다는 태도를 취하는 영화다. 물론 순간의 집적이 영화가 될 수는 있다. 아니 어떤 의미에서는 영화란 순간의 집적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순간의 집적이 영화라는 예술이 되기 위해서는 '매년의 동일한 날이라는 시간이 한 인간에게 어떤 의미인가'라는 질문이 선행되어야만 한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이들의 매년 동일한 날에는 어떤 극적인 순간들만이 집적된다. 김혜리도 이러한 것을 지적했는데, 김혜리는 "그러나 론 셰르픽은 야심이 없고 <원데이>의 매년 7월 15일에는 우리가 기존 연애서사에서 익히 보아온 사건에 해당하는 일들이 꼬박꼬박 일어나 구태여 택한 형식의 의미를 미궁에 빠뜨린다." -<씨네21> 888호-라며 이 점을 꼬집고 있다.

 

즉 이 영화는 매년의 동일한 날이라는 시간의 구조를 만들어 놓고도, 그것을 극적인 사건의 집적들로만 채움으로써 그저 뻔한, 다시 말해서 감수성이 민감한 17세 소녀가 상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연애 스토리를 집약함으로써, 이 영화에 대한 악평에 어떤 내용이 쓰여질 것인지조차 예상할 수 있는 그런 뻔한 이야기가 된다. 예를 들어 이것은 웨인 왕의 <스모크>에서 13년 동안 매일같이 아침마다 같은 장면을 사진에 담는 사내의 모습과 비견된다고 할 수 있는데, 왜냐하면 13년 동안의 그 사진에서 극적인 순간이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즉 매년이 아니라, 심지어 매일의 같은 날에서도 극적인 순간은 거의 없으며, 삶이란 그런 비(非)극적인 순간의 집적이다. 그리고 극적인 순간이 빛나는 것은 그런 비(非)극적인 순간의 집적 사이에 극적인 순간이 존재하기 때문이며, 시간을 다루는 예술인 영화는 그런 비(非)극적인 순간 속에서 극적인 순간을 우리에게 보여주기 위해(혹은 극적인 순간이 없음을 보여주기 위해) 묵묵히 필름을 돌린다.

 

5.

그런 영화의 시간에 대한 익스트림한 한 형태는 2003년 만들어진 왕빙 감독의 디지털 영화 <철서구>이다. 철이 생산되지 않기 때문에 폐쇄가 결정된 중국의 도시 센양에 카메라를 한 대 가지고 들어간 왕빙 감독이 3년 반 동안 그곳에 기거하며 만들어낸 9시간 11분짜리의 이 영화는 사라져가는 도시, 사라져 가는 사람들과 그들의 시간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영화라는 예술의 대답이다. 보지도 않은 영화에 길게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은 못할 짓이고, 며칠 전 정성일 평론가의 트위터에 이 왕빙 감독의 인터뷰 몇 구절이 올라왔고, 그것이 상당히 인상깊었기에 하는 말이다. (정성일 평론가는 이 <철서구>를 21세기 영화 30편 중의 하나로 꼽기도 했다.)

 

"외로움_ 영화를 하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어요, 하나는 속물들이죠. 그들은 돈과 대중의 소란 속에서 외롭죠. 다른 하나는 예술가들이죠. 이들은 자기 혼자서 견디면서 적막하게 외롭죠. 어떤 외로움을 택하느냐는 각자의 선택입니다. 왕빙과의 인터뷰"

 

"안마_ 우리는 서비스업에 종사하는게 아니라 예술가라는 사실을 잊으면 안됩니다. 그러므로 대중에게 서비스를 제공할 의무가 없어요. 서비스를 받고 싶으면 안마를 받으러 가면 되요. 그런데 어떤 감독들은 자기가 안마시술사인줄 알고 있어요.. 왕빙과의 인터뷰"

 

"조건_ 모든 것이 불리할 때보다 더 좋은 조건은 없다. 왜냐하면 그때 우리들은 갖고 있는 모든 것을 쏟아부은 다음 최선을 다할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왕빙과의 인터뷰"

 

이런 인터뷰를 하는 감독의 영화가 궁금하지 않는가?

 

6.

그래도 알라딘이니 마지막으로 책 얘기.

 

이사를 하면서 좋은 점 중의 하나는 어디 박혀 있는지도 몰랐던 오래전의 책 몇 권, 그러니까 중고등학교 때 둔촌동의 작은 서점들에서 산, 여러 권의 책들을 발견했다는 점이다. 대다수는 세계문학전집들인데, 그 중의 몇 권을 어쩌다보니 조금씩 읽게 되었다. 며칠 전에 조금만 읽자고 시작해서 끝까지 다시 읽은 것은 1992년 출간된 중앙출판사의 'GOLDEN 世界文學選 31권'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인데, 다시 읽어보니 어떤 구절은 새롭게 인상적이고, 어떤 구절은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고, 어떤 구절은 기억이 나긴 하는데, 조금 별로다. 아무튼 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는 좋은 소설이다.

 

새롭게 인상적인 구절의 인용. 톰이라는 가족의 차남이 어떤 폐차장에 차를 고치러 가서 그곳의 외눈을 가진 점원과 나누는 대화인데 그의 성격의 일면이 잘 드러난다.

 

톰은 그에게로 돌아섰다. "이것 봐, 친구. 당신은 과연 한 눈이 뻥 뚫렸어. 그리고 때투성이고 몸에선 구린내가 나고. 그런데 당신은 그걸 자청하고 있는 거야. 그게 좋다 이 말이지? 자기 신세를 일부러 한탄하는 셈이지. 하긴 그렇게 눈구멍이 뻥 뚫려 가지고야 여자가 생길 리 없지. 그러니까 말요, 뭘로 그걸 가려 봐요. 세수도 좀 하고. 그러면 스패너로 사람을 칠 생각은 없어질 거야."

"모르는 소리지. 외눈 신세는 따분한 거요." 그 사나이가 말했다. "성한 사람처럼 보질 못하거든. 얼마나 먼 데 있는지를 알 수가 없어요. 모조리 다 평면으로 보이니까."

톰이 말했다. "그러면 안된다니까. 내가 한때 외다리 갈보를 하나 알게 됐는데, 그게 골목에서 한 판에 25센트쯤 받고 일을 치르는 줄 알아? 천만에. 남보다 20센트 씩 더 받아내던데. 그 말이 이렇거든. ......'외다리 여자를 데리고 몇 번 자봤수? 처음이야?' 그러면서 하는 말이 있거든. '당신 오늘은 특제를 만났으니 50센트는 더 내야겠어요.' 이러거든. 아닌게아니라 손님들이 그렇게들 더 주거든. 그리고 모두들 나오면서 그날 재수가 좋다고들 생각하는 거야. 그 계집 말이 자기하고 놀면 누구나 재수가 붙는다는 거지. 그리고 내가......내가 살던 고장에......꼽추가 한 명 있는데, 그 친구 글쎄 자기 잔등을 만지면 재수가 붙는다고 사람들에게 모두 한 번씩 그 잔등을 만져 보게 하는 거야. 그런데 당신은 기껏해야 눈알 하나만 없다뿐이잖아?"

그 사나이는 더듬거리며 말했다. "하지만 남이 슬슬 나한테서 물러서는걸 보면 속이 뒤집힌단 말이야."

"제길, 그럼 뭘로 덮어놓으면 되지. 암소 엉덩이처럼 그걸 드러내 놓고 있으니까 그렇지. 자기 신세를 일부러 한탄하고 싶은 거지 뭐야. 당신은 사실 아무렇지도 않은데 뭘 그래? 말쑥한 흰 바지를 한 벌 사 입어 보란 말야. 그러면 얼근히 취해서 이불 속에서 헉헉거리며 기분을 내게 될걸. 거들어 줄까, 앨?"


댓글(12)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Mephistopheles 2013-01-22 16: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춘수시인 이야기가 떠올라요. 그의 대표작인 "꽃"은 교과서에도 실리기도 했잖아요. 그런데 각종 참고서에서 나와있는 "꽃"에 대한 해석을 보고 정작 시인은 혀를 내둘렀다고 하더군요.

맥거핀 2013-01-22 17:22   좋아요 0 | URL
솔직히 말해서 저는 "꽃"이 그렇게 좋은 시인지 잘 모르겠어요.ㅠㅠ 근데 우리는 별표 띵야띵야 해가면서, 그런 해석 참 열심히도 외웠죠. 근데 해석은 기억에 남아있는데, 정작 시는 잘 기억이 안나는...

마녀고양이 2013-01-22 17: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라이프오브파이 영화를 보고,
책을 읽은 이후에 다시 생각해봐야겠다고 모든 감상을 미룬 상태입니다.
작가가 왜 마지막 이야기를 덧붙였는가에 대해서, 여러 생각이 혼란스럽답니다.
저희 딸두요.....

나중에 저도 한번 페이퍼에 다루고 싶은 영화더군요. ^^

맥거핀 2013-01-22 17:26   좋아요 0 | URL
한마디로 떡밥이 좀 많은 영화죠. 그리고 그 떡밥을 기꺼이 물만큼 떡밥들이 매력적인 영화이기도 하구요.(이안 감독님, 그리고 마텔 작가님 만선하셨어요~) 따님과 이야기해보시면서 각자 나름으로 생각해보면 되죠.

달여우님 요즘에도 바쁘게 잘 지내시는지 모르겠어요. 글 읽으러 갈께요.

프레이야 2013-01-22 1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을 다시 봤어요. 잠이 와서 쓰는 글이네요. 안 와서가 아니고.ㅎㅎ
저랑 비슷한 시각에 '라이프 오브 파이'를 생각했네요.^^
다소 꿈 같기도 한 이야기였는데.. 우리가 믿는 대로 본다,라는 말에 동감해요.
마음에서 원하는 걸 믿고 싶어하겠지요.
'원데이'는 저도 시간을 작위적으로 나열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날 꼭 그날짜에 그렇게 결정적인 일들이 일어날 확률은 몇일까요?
앤의 수수한 모습이 좋아보이긴 했어요.^^

맥거핀 2013-01-23 16:10   좋아요 0 | URL
결국 믿음이라는 것은 '믿을 수 없는 것을 믿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합니다. 증거가 명확하고, 모든 것을 입증할 수 있는 것을 믿는 것은 믿음이라고 부르기보다는 순리 혹은 당연한 것이라고 불러야 하지 않을까요? 근거가 불확실하고, 입증할 방법이 없지만 믿는 것이 믿음이죠. 물론 그것은 프레이야님도 글에서 쓰셨지만 계속적인 의심과 회의가 뒤따라야 할 것이겠구요.

아..<원데이>도 보셨군요. 저도 앤 헤서웨이가 참 여러 캐릭터에도 비교적 잘 어울리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감독이 조금만 신경써서 몇 가지 이야기를 쳐냈으면 조금 더 좋은 영화가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감은빛 2013-01-23 1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잠이 오는 와중에도 이런 훌륭한 글을 쓰시다니!

영화에 대한 좋은 글은 '질문을 풍성하게 만드는 글'이라는 점에 대해 저도 동의합니다.
그리고 이 글은 딱 그런 글인 듯 합니다.
항상 좋은 글 읽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

맥거핀 2013-01-23 16:13   좋아요 0 | URL
아..제 글이 그런 글이라고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비평가란 해답을 주는 사람이 아니라, 읽는이에게 질문을 전가하는 사람이라고 하는 의견도 있는데, 저는 그런 의견에 동의합니다. 질문에 대한 답은 자신이 해야죠.

비도 오고 어딘가 모르게 을씨년스럽지만 그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Shining 2013-01-26 2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모호하게 편을 들어주는 것, 이 오히려 관건이라고 생각했어요. 물론 전반적으로 리처드 파커 님(ㅋ)의 이야기가 사실인걸로 추측되지만 이야기와 사실 사이에 경계를 흐트리는 것, 그게 오히려 이 영화 혹은 원작이 던지는 강점이라고 여겼거든요. 아무튼 리처드 파커님의 발자국이 남지 않으셨다니 저는 거기까지는.......

이 글을 쓰고 계신 즈음 저는 기억의 불분명함, 에 대해서 끄적거리고 있었어요; 뭔가 신기해요. 충고하지 않은 삶,도 비슷한 시기에 생각했던 것 같은데 말이죠. 오만년만에 일을 해치우고 글을 써보려는 의욕에 탔는데 도서정가제 때문에 영 분위기가 숭숭하네요. 결국 책을 읽는 사람들만이 토의한다는 것, 그러니까 결국 대다수의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은 논쟁에 관심이 없다는 것. 그런 점들이 씁쓸할 따름입니다. 바람이 차군요, 주말 잘 보내세요 :)

맥거핀 2013-01-28 14:05   좋아요 0 | URL
주말 잘 보내셨나요?

아무튼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시간 동안 꼼짝하지 않고 앉아 같은 것을 보았으나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다르니..그런 의미에서 이안 감독의 낚시질은 아무튼 성공입니다. 같은 것을 보았어도, 결국 당신들이 본 것은 당신 스스로가 만들어낸 무엇인가라는 이야기인 것처럼 보이니까요. 제가 불교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불교에서도 그런 비슷한 말을 들어본 것 같고..

도서정가제에 대해서는 그간 잊고 있었던 책이라는 상품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고, 더 좋은 논의들이 많이 나올 수 있었다고 생각하는데, 양상이 좋지 않은 국면으로 흘러서 별로 끼고 싶지 않은 단계에 이르는 것 같군요. 아무튼 말씀하신대로 대다수는 이것에 또한 관심이 없다는 사실도 저도 마찬가지로 씁쓸하구요. 도리어 이런 배타적인 논쟁이 관심을 좀 가지려는 사람들도 밀어내지 않나 생각합니다.

아..그리고 언젠가는 기억의 불분명함에 대한 이야기를 보게 되겠군요.

2013-01-31 2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저는 파이이야기를 또 다르게 보았어요. 역시 떡밥이 풍부한 영화가 맞군요.ㅎㅎ (원작을 읽으면 더 확실해지겠지만, 못 읽고 넘어갈 것 같고~)
원데이, 재밌게 봤는데, 이런 비판의 요소가 있군요. 비(非)극적인 순간의 집적 속에서 극적인 순간을 이뤄내는 것이 영화다, 그를 위해 묵묵히 필름을 돌린다는 말이 인상적이네요.
근데, 이런 거랑 별개로 원데이는 앤 헤서웨이가 참 좋았어요. 이런 역할도 잘 할 수 있구나~하면서,,.
그리고 왕빙의 인터뷰 좋아요. 특히 마지막 말. 어차피 철서구는 또 못 보고 넘어가겠지만~ㅠ

맥거핀 2013-02-01 01:12   좋아요 0 | URL
섬님 여행은 잘 다녀오셨나요? 여행 다녀오시면서도 챙겨볼 만한 영화는 또 잘 챙겨 보셨네요.

암튼 이 파이와 리처드 파커의 모험 이야기는 참 재밌어요. 이 영화의 리뷰를 여러 개 찾아보았는데 참 놀라운 것은 그 리뷰들 모두 각각 나름의 해석, 또는 나름의 믿음을 주장하더라구요. 모두들 각자가 발견한 새로운 증거를 예시하면서 말이죠. 참 재밌어요.

<철서구>는 저도 아직 보지 못했어요.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을까 잘 모르겠네요. 전주에 가면 볼 수 있다고 하는데, 9시간 11분짜리 영화이니 하루에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하기는 요새 3시간 가까이 되는 영화(예를 들어 <클라우드 아틀라스> 같은 것)들도 볼까말까 고민이 되는 걸요.
 

 

올해의 마지막 날이다. 마지막 날이 되다보니 지금 여기에서 무엇을 해왔나를 생각하게 된다. 책을 펴들면 올 한 해 동안 나는 무엇을 읽어왔나를 생각하게 되고, 책상 앞에 앉으면 나는 이 책상에서 올해 무엇을 해왔나를 생각하게 되고, 사람의 얼굴을 보면 올해 나는 이 사람과 무엇을 하고 있었나를 생각하게 되고, 마지막 날에 무엇인가를 남기려 블로그에서 하얀 빈 창을 열게 되니 나는 이 블로그라는 공간에서 무엇을 도대체 써왔던 것인가를 생각해 보게 된다. (...) 그러므로 다른 정리는 다른 곳에서 하고 이곳 블로그에서는 그간 이야기했던 영화들을 다시 한 번 이야기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올해의 영화를 이야기하려면 싫어도 정치적인 이야기를 해야만 한다. 늘 어느정도는 그렇긴 하지만, 2012년은 대선이 있었고, 거의 1년 내내 정치를 이야기하던 지극히 정치적인 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영화는 그런 정치적인 대중들과 분리되어 이야기할 수 없는 지극히 대중적인 예술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 1년 내내 이어진 이야기들 속에 과연 '정치'라는 것이 있었나를 되새겨보게 된다. 그것은 예를 들어 대선 이후에 벌어진 몇몇 이상한 이야기들, 누군가를 패배의 원흉으로 지목한다거나, 혹은 어떤 집단을 몰아세운다거나, 누군가를 비웃고, 조롱하는 이야기들에서도 찾을 수 있다. 그것은 다른 것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월드컵 경기에서 누군가의 실수가 있었을 때 그를 패배의 원흉으로 몰아붙이는 것 같은 것. 그러니까, 이것에는 정치는 없고 스포츠만 있다. 중대한 스포츠 경기가 있을 때 승리하게 되면 누군가를 추켜세우는 것과 마찬가지로, 패배했을 때에는 누군가를 희생양을 삼는 것. 왜? 그렇게 해야, 자신은 승리자로 남아있을 수 있으니까. 패배자는 다른 누군가이니까.

 

그러나 정치는 스포츠가 아니다. 정치가 스포츠와 가장 다른 점은 정치는 그 정치의 과정, 그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물론 이는 스포츠라고 해서 그 결과만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나 이번 대선은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정치를 스포츠를 응원하듯이 소비했다. 그것도 가장 나쁜 방식으로 소비했다. 그것은 투표 이전부터 이미 강하게 드러났다. 예를 들어 TV토론 같은 것에서부터 말이다. 스포츠관람자들이 관심을 둔 것은 오로지 어떻게 이길 것인가의 문제였고, 어떻게 토론에서 상대방을 '바를 것인가'의 문제였다. 그러나 그런 스포츠관람자들 자신도 사실은 잘 알고 있듯이 TV토론에서 중요한 것은 '여기에서 무엇이 이야기되고 있는가'이지, '누가 더 잘 이야기하는가'가 아니다. 그러나 어느 쪽에서도 이야기의 화제에 주로 오른 것은 누가 더 나았는가의 문제였다. 그러므로 이후 그런 스포츠관람자들이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모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러나 사실 누군가 때문에 졌다고 말하는 것은 '패배를 내 안에서 다른 곳으로 내보내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심지어는 스포츠에서도 누군가 때문에 졌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다.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에서 혜경(김정은)은 연습경기에서 진게 너 때문이라고 한 선수를 몰아세우는 코치에게 되묻는다. "그런 말이 어딨어? 그럼 이겼을 때는 누구 때문에 이겼다고 할 거예요?" 승패를 중시하는 스포츠에서도 승리하면 모두 때문에 승리한 것이듯이, 패배하면 모두 때문에 패배한 것이다. 하물며 정치에서 더 말할 것이 있을까. 아니 굳이 패배의 원흉을 찾자면, 아마도 그 패배의 원흉을 찾는 생각 그 자체가 바로 패배의 원흉일 것이다.

 

쓸데없이 이야기가 길어졌다. 이번 만큼은 지극히 정치적인 선택을 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였다. 영화로서의 선택이 아니라 정치적인 선택을 했다고 비난받는 어떤 영화제의 심사위원장과 비슷한 심정이라고 허세를 떨어보자. 아마도 나는 이 인물들이 2012년이 아니라 다른 때 나타났으면 이 인물들을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고, 이 영화가 2012년이 아니라 다른 때 개봉했으면 이 영화를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올해의 마지막에서 떠오르는 것은 이 인물들과 이 영화들이다. 영화는, 그리고 그 영화를 본 몇몇 사람들만이라도 이들을, 이 영화들을 기억해 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몇몇 표현과 형식은 S님을 참고했음을 미리 밝혀둡니다. 데헷.) 

 

 

올해의 남자 : <토리노의 말>의 마부(야노스 데르즈시)

 

마지막 여섯번째 날, 마부와 딸은 '소멸'된다. 그렇다. 나는 그것을 소멸이라는 말로밖에 표현할 수가 없다. 그것은 급작스러운 것이라기 보다는 예정된 것이며, 파괴라기 보다는 소멸이다. 그리고 영화는 완벽한 무(無)가 남는다. 그것의 영화적인 형태는 그러니까 검은 스크린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자신의 마지막 영화를 찍는 감독의 완전한 종결의 선언인걸까, 혹은 그것을 넘어선 한 세계의 종결이 지금 여기에서 시작되고 있음을 암시하는 것일까. 그러나 하느님이 육일동안 세상을 만든 후 일곱번째 날 쉬시고는 그 일곱날은 계속 반복되고 있음을 또한 우리는 알고 있다. 아니 나는 종교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우리는 영화관에서 검정색 스크린을 딱 두 번 본다. 한번은 영화가 완전히 종료될 때에, 다른 한 번은 영화가 시작하려 할 때에. 한 영화가 완전히 종료되어야만 다음 영화가 시작될 수 있다(고 믿어보자).

 

 

올해의 여자 : <화차>의 차경선(김민희)

 

<화차>의 세계는 부루마블 게임과 같다. 우리는 싫든 좋든 주사위를 굴려야만 하고, 우리는 싫든 좋든 그 판을 빙글빙글 돌아야만 한다. 부루마블 게임에서 아이러니한 점은 때로는 무인도나 감옥이 더 좋을 수 있다는 것. 아, 그 영화에서 깡패도 "나도 차라리 빵이 더 편해!"라고 소리를 질렀던가. 우리가 그 게임에서 떠나려면 파산을 해야만 한다. 그러니까 우리에게는 딱 두 가지의 선택지, 하나는 어떻게든 빙글빙글 돌던가, 아니면 파산해서 영원히 게임에서 떠나든가 하는 딱 두가지의 선택지만 남아있다. 그나마 우리는 파산하게 되면 길 위에서 말을 치울 수 있지만, 불쌍한 차경선은 여전히 기차길 위에 누워 있다. 누군가는 이제 그 말을 치워주어야만 하고, 다른 많은 차경선들을 어떻게 뛰어내리지 않게 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아야만 한다. 아, 그리고 한 가지 더. 모두가 파산하게 되고 승자 하나만 남으면 결국 게임은 '완전히 끝난다'. 즉 다른 방식으로 모두가 '소멸'된다.

 

 

올해의 영화 : 김일란, 홍지유 감독의 <두 개의 문>

 

나는 사실 이전의 글에서 이 영화의 몇몇 부분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 적이 있고, 그 의문에 대해 마땅한 답을 여전히 찾지 못하였으므로, 이 영화가 그다지 좋은 영화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아무튼 올해의 대선에서 박근혜는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결과적으로는 국민들은 집권여당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러므로 어쩔 수 없이 이 영화를 올해의 영화로 기록하여, 그들, 그러니까 최소한의 자신의 권리를 지키려 그 곳에 올라간 다섯 명의 죽은 철거민들과 어떤 사건인지도 정확히 모른채, 심지어는 그 곳에 두 개의 문이 있다는 사실도 모른채 그곳에 올라간 한 명의 죽은 경찰 특공대원, 그리고 졸지에 범법자가 된 수많은 다른 철거민들과 이상한 기억에 시달릴 수많은 다른 경찰대원들을 기억할 수밖에 없다. (아마도 다른 많은 매체에서 이 영화를 올해의 영화로 꼽은 것은 이 대선과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렇게 2012년의 영화에서는 나는 적어도 9명의 사라진 사람들은 기억하고 싶다. 그리고 이겼다고 생각한 사람들이나, 졌다고 생각한 사람들이나, 이기고 짐이 아무런 상관도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나 이 9명은 기억해줬으면 좋겠다.

 

 

더불어 작년과 마찬가지로 올해의 놓친 영화들을 언젠가 보기 위해 기록해둔다. (순서는 없음)

 

1. 멜랑콜리아, 라스 폰 트리에

 

 

 

 

 

 

 

 

 

 

 

2. 밍크코트, 신아가, 이상철

 

 

 

 

 

 

 

 

 

 

 

3. 휴고, 마틴 스콜세지

 

 

 

 

 

 

 

 

 

 

 

4. 크레이지 호스, 프레데릭 와이즈먼

 

 

 

 

 

 

 

 

 

 

 

5. 당신은 아직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알랭 레네

 

 

 

 

 

 

 

 

 

 

 

6. 어머니, 태준식

 

 

 

 

 

 

 

 

 

 

 

7, 도주왕, 알랭 기로디

 

 

 

 

 

 

 

 

 

 

 

8. 레드 마리아, 경순

 

 

 

 

 

 

 

 

 

 

 

9. 파우스트, 알렉산더 소쿠로프

 

 

 

 

 

 

 

 

 

 

 

10. 신의 소녀들, 크리스티안 문쥬

 

 

 

 

 

 

 

 

 

 

 

 

 


댓글(15)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Arch 2012-12-31 17: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맥거핀님이 이 페이퍼를 쓰실줄 알았어요.

영화관 옆 미니 상영관에서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영화를 보고 있는데 자꾸 바람 소리가 들리는거에요. 영화에서 나는 소리인줄 알았는데 영화관에서 상영하는 영화 소리였더라구요. 그 영화가 '토리노의 말'이었어요.

맥거핀 2012-12-31 17:40   좋아요 0 | URL
진짜 마치 쓸 걸 안 것처럼 바로 읽어주셨네요. 감사합니다.

바람 소리..보고 나면 집에 와서도 바람 소리가 납니다. 그리고 그 마지막 장면이 자꾸만 눈 앞에서 자동 리플레이가 되더군요.

Arch님과 올해 여러모로 영화 이야기, 책 이야기 나눌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올해의 마지막 남은 몇 시간 잘 챙기시고, 즐거운 일 빵빵 터지는 새해 되세요.^^ (저는 오늘도 추운 어딘가에 앉아서 술을..;)

프레이야 2012-12-31 2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맥거핀님, 영화결산 은근 기다렸어요. 저도 올해 쓰고 싶은 영화이야기가 많은데
너무 밀려버려서 감당이 안 되네요. 뭐든 미뤄두는 건 좋지않은 것 같아요.^^
저, 신의 소녀들, 봤어요. 문쥬 감독의 전작도 봤었지요.
여전히 쉽지는 않은 영화였어요.
종교와 신, 그리고 믿음과 의지에 대해 여러 생각이 들었답니다.
정리해야할 생각들이에요.
화차의 경선을 올해의 여자로 꼽으셨네요. ^^
두개의문도 정말이지 대단했어요. 분노하고 경악하며 봤습니다.

새해에도 맥님의 알찬 영화이야기 즐감할게요. 고맙습니다.

맥거핀 2013-01-01 16:39   좋아요 0 | URL
크리스티안 문쥬의 영화는 그것을 보는 자들의 윤리라는 것을 늘 되묻게 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럴까, 가끔 그것을 보는 사람들을 영화밖으로 내보내는 듯한 인상마저도 있어요. 여기 앉아서 영화나 보고 있어도 좋아?하고 물으면서요.

올해에는 사람짐으로써 기억되(어야하)는 사람들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화차의 경선은 가공의 인물이지만, 아마도 그 비슷한 인물들이 분명히 실제로 어딘가에 숨어있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영화가 던지는 질문이 결코 가볍지가 않네요.

저도 내년에도 프레이야님의 영화이야기, 그리고 인생이야기 자주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늘 들러주셔서 감사드리구요. 좋은 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새해소망 모두 이루시는 한해가 되시기를 바랄께요.^^

아이리시스 2012-12-31 1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랭 레네(전때 말씀하신 그 노장감독이잖아요, 그쵸?) 저 영화 부산에서 개봉을 기다렸는데 상영안한 것 같아요. 신의 소녀들, 제가 부산영화제 예매할 때만 해도 영어제목 [비욘드 더 힐즈]였는데ㅎㅎ 제가 그때 못 가서 표를 환불하러 갔거든요. 제가 표를 샀는데 같이 갈 사람이 아무도 없;; 혼자가기에는 너무 멀고 너무 늦은 시간이었어요ㅠ.ㅠ

영화이야기는 이상하게 쓰는 것보다 남의 것 읽을 때 신나요. 왜 그러지???

네, 성의있게 100줄 이상의 새해인사 해주시면 화풀게요.(아, 저 화 안났었죠?)

맥거핀 2013-01-01 16:48   좋아요 0 | URL
알랭 레네가 1922년생이니까요. 양차세계대전을 10대, 20대때 겪은 이 영화감독이 무슨 얘기를 들려주는지 참으로 놀랍지 않습니까? 그리고 90이 넘은 영화감독이 찍은 이 영화는 실험정신이 가득한 영화라고 하니까요. 단순히 노장의 영화라서가 아니라 새로운 실험으로 가득한 영화라서 볼만한 가치가 있는 영화인 듯 싶습니다.

하하. 거 말만 들어도 참 아쉽군요. 저도 어렸을 때는 부산영화제 같은 데 가면 밤새 찜질방에 대강 있기도 하고, 새벽 늦게까지 바닷가에 있기도 하고 그랬는데, 이제 나이가 들어서 쿨럭쿨럭 힘들어요. 그래도 아무튼 아쉽네요. 저라도 같이 봐드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

저도 다른 분이 쓴 영화이야기를 읽을 때 더 신납니다. 쓸 때는 사실 힘들어요.ㅠㅠ 그러니 자주 좀 쓰시라는...응?하고 새해땡강을 부려봅니다.

기억의집 2012-12-31 2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흑흑 본 게 하나도 없어요. 쿵=;;

맥거핀 2013-01-01 16:50   좋아요 0 | URL
올해에는 좋은 영화 많이 보세요. 행복한 새해 되시고, 원하는 일이 모두 성취되는 새해 되시기를 바랍니다.^^

Shining 2013-01-01 2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토리노의 말, 과 알랭 레네 영화는 저도 정말 보고 싶었는데ㅠ 저는 '올해의 놓친 영화'에 넣어야겠어요ㅠ 신의 소녀들,은 볼 수 있을 것 같아 그나마 다행이에요 :)

2013년도 라인업이 아주 화려하더군요. 아이언맨, 토르, 슈퍼맨, 킥애스, 스타트렉, 헝거게임, 씬시티, 몬스터 주식회사, 다이하드 등등 속편도 완전 많구요. 엄청 많아서 다 꼽기 힘들 정도인데 우선은(가장 짧은 기다림만 고르자면) 2월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과 3월 <장고>와 <스토커>를 가장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 질문. 작년에 쓰신 '올해의 놓친 영화'는 많이 보셨나요?(너무 잔인한(...)질문인가요^^; 정말 궁금해서요ㅠ)

Shining 2013-01-01 23:12   좋아요 0 | URL
어머, 그런데 혹시 S님은 저인가요.....?(아니면 어쩌지;) 대체 어떤 부분을 빌려오신 겁니까ㅎㅎ 저보다 훨씬 잘 쓰시니 말씀하시지 않았으면 몰랐을 거에요....

아니, 말씀하셔도 모르겠는데.....

맥거핀 2013-01-02 18:40   좋아요 0 | URL
잘 모르시나본데 S님이라고 글 되게 잘 쓰시는 분 계세요. 아이리시스님과 친한 걸로 알고 있으니 물어보세요.^^

저는 사실 무슨 맨들 나오는 건 별로 안 좋아해서 맨 씨리즈 나와도 속편들은 패스할 것 같지만, 다이하드는 아마 확실히 볼 것 같군요. 저는 다이하드 씨리즈가 이상하게 너무 좋아요. 다이하드 3편 같은 것은 한 30번 봤을 정도..

저는 말씀하신 영화들도 그렇고(특히 홍상수 감독 영화), 이번에 김지운, 박찬욱, 봉준호가 할리우드에서 찍은 영화들은 다 기대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올해는 전주나 부산 영화제 중에 하나는 가야지,하고 생각을 하고 있구요.^^

아..그 질문만은 안 하시길 바랬건만..은 아니고, 사실 누군가가 물어볼 것 같아서 미리 세봤음.-_- 3편 봤군요.-_-; 그 중에 한편은 그걸 세본날 하나라도 늘리려고 봤어요. -_-;;

2013-01-02 1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앞부분의 정치이야기 공감이 가네요. 이기고 지고로 소비해 버리는 것, 누군가를 욕함으로써 나를 '패배'에서 분리시키는 것.. - 여튼 외면하고 싶은 결과이긴 해요. 시민사회가 이 정부의 감시 역할을 해야 한다고 하지만 일단 말이 서로 안 통할 듯한 진한 예감이...
올해의 영화에 대해서 엄청 정치적인 선택을 하셨군요. 토리노의 말은 안 봐서 모르겠고, 화차의 차경선(김민희)가 올해의 여자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습니다.

맥거핀 2013-01-02 18:44   좋아요 0 | URL
아무튼 저는 박근혜 정부가 성공한 정부가 되기를 바랍니다. 설혹 그것으로 인해 다음 정권에서 새누리당이 또 집권한다고 해도 말입니다. 실상으로는 MB정부가 저질러놓은 일들을 치우기에도 벅찰 것이라고 생각은 합니다만...

네..위에도 그런 개드립을 쓰기는 했지만, 왜 가끔 특정 영화제들이 정치적인 선택을 하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네오 2013-01-02 2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시 알라딘 서재에 글을 쓰면서 인사를 안드릴수 없겠던군요(사실 정말 댓글 글씨체가 맘에 안들어서 쓰기가 싫던구요;;),,새해 복 많미 받으시구요,,베스트 영화10을 저도 선정했으므로 언급을 하고 싶던군요,,저의 작년의 최고의 영화는 <파우스트>였습니다,,이유는 그냥 그냥 확 들어오던군요,,물론 그 지루함을 버텨내는 시간은 당연히 저에게도 있었습니다만,,괴테의 팬이기도 하거니와 소크로프의 미학, 윤리, 정치 의식들을 모두는 아니더라도 동의는 하는걸요!! 소크로프는 내가 원하는 워너비의 이상향을 잘 나타내는 것 같아서 좋아요,,그 놈의 제국,제국 주의,,그 권력에 대한 숨길수 없는 그 야욕이 전 좋아요,,아주 많이요^^

맥거핀 2013-01-04 13:48   좋아요 0 | URL
네오님 오랜만이예요. 네오님은 댓글 글씨체에서도 일종의 미학을 찾으시는군요. 댓글 글씨체가 마음에 안들어서 쓰기가 싫으시다니. 저는 위에도 이야기했듯이 <파우스트>를 보지 않았습니다. 사실 <파우스트>는 제가 고전을 읽은 몇 안되는 책 중에 하나라 이 영화가 매우 궁금하기는 하고, 여러 다른 평에서도 상당히 걸작으로 꼽던데 보고 싶군요.

뭐 역시 영화가 좋은 데에는 이유가 없죠. 저도 리뷰를 쓰면서 항상 느끼는 것은 그 '확 좋은 것'을 어떻게 설명할 방도가 없어요. 이 영화가 좋다고 이런 저런 이유를 대는 것은 사실 사후적으로 만들어낸 것이고 볼 때는 이거 좋은데, 하는 생각밖에는 못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암튼 네오님도 새해 즐겁고 행복한 한해 되시고, 좋은 영화도 많이 보시는 한해 되세요. (알라딘에서 이제 서평단을 하시니 종종 글은 보겠군요.^^)
 

 

 

1.

느지막이 투표를 하고, 알라딘 중고서점을 갔다. 중고서점은 동선상 늘 종로점을 갔었는데, 아무래도 인터넷으로 확인해보니 신촌점에 더 구미에 맞는 책들이 많이 있는 듯하여 일부러 신촌점까지 찾아갔다. 아무래도 알라딘 중고서점은 지점별로 책의 회전 속도가 다른 모양이다. 며칠 전에 인터넷에서 확인한 몇몇 책은 이미 팔렸는지 찾을 수 없었지만, 예상 외의 신간들을 꽤 발견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며칠 전에 S님의 서재에서 본 미치오 슈스케의 <광매화> 같은 책이 떡 하니 있다거나 하는 정겨운 풍경을 본다거나 하는 등의. 정겨운 풍경에 이것저것 화답하다보니 어느덧 그리 정겹지 않은 시간을 마주해야만 했다. 이른바 '내려놓음의 시간'.

 

중고서점에서 책을 고르는 것은 과거의 아주 오랜 기억들을 상기시킨다. 1990년대의 어느날 몇몇 레코드점에서 마주해야했던 반갑지 않은 시간들. 나는 그 때 문제집을 산다는 명목으로 흥겹게 삥땅친 만원 짜리 한 장이 생길 때마다 우리동네 사거리에 있던 레코드점, 혹은 큰 마음 먹고 종로나 명동, 때로는 압구정이나 노량진까지 원정을 가곤 했다. 레코드점을 A에서 Z까지 뒤지며 새로나온 신보들의 따끈따끈한 냄새에 황홀하게 취하는 것도 잠시, 주머니에 넣어둔 꼬깃한 만원 짜리 한 장은 늘 내가 이제 '내려놓음의 시간'을 만나야 한다는 것을 상기시켰고, 나는 많은 뮤지션들과 원치 않은 작별인사를 해야만 했다. 제기랄, 왜 그렇게 전설들은 많고, 그 전설들의 숨겨진 명반들은 불쑥불쑥 나타나는지. 나는 그 '내려놓음의 시간'을 만날 때마다 애꿎은 '핫뮤직' 기자에게 욕을 퍼부었고, 용기가 없어 만원짜리 두 장을 삥땅치지 못한 내 소심함을 자책하곤 했다. 그리고 정말 진지하게,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하게 고민했다. 어떤 게 명반인지를? 아니. 이 중에 어떤 걸 들고가야 내일 뒷자리 H 녀석의 부러움에 목마른 얼굴을 확실히 볼 수 있을지를. 

 

2.

그리고 서울아트시네마로 가서 가와세 나오미의 초기의 두 단편 <내 아버지>와 <내 할머니>를 보았다. (네이버 필모에는 각각 <따뜻한 포옹>과 <달팽이: 나의 할머니>로 되어 있는데, 아마도 이것이 맞는 제목 같지만, 시네마테크 데이터베이스에는 <내 아버지>와 <내 할머니>로 되어 있으므로 이렇게 써도 크게 무리는 없으리라.)

 

시간이 꽤 남은 상태에서 도착한 터라, 출구조사 결과도 보고, 사온 책들도 들여다보고, 인증샷도 찍어 알라딘 스마트폰 편집기의 능력도 확인해보면서 시간을 때우고 있었는데, 맞은 편에 앉은 어떤 중년여성이 아들과 통화하는 게 귀에 들어온다. 아마도 영화를 혼자보러 나온 엄마가 집에 혼자 남아 있는 어린 아들이 밥 챙겨먹을 것이 걱정되는 모양이다. 아들에게 국은 어떻게 데워먹고, 반찬은 뭘 꺼내먹고, 라면 끓여먹지 말고 등등을 이야기하는데, 아들의 심드렁한 대답은 들리지 않지만 익히 연상을 할 수 있었다. (내가 많이 그래봤으니...) 그런데 조금 재미있는 것이 그러면서도 아들에게 부탁을 하고 있지 않은가. 아빠 오시면 엄마 6시 넘어서 극장 갔다고 해줘, 2시에 극장갔다고 하지 말고, 알았지, 아들? 그러니까 이 엄마는 이곳 아트시네마에서 오늘자 3시 타임 영화인 레나토 카스텔라니 감독의 1961년작 <산적>을 본 다음, 이제 7시 타임의 가와세 나오미 감독의 영화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아..이게 무슨 영화광 엄마와 그런 영화광 엄마 때문에 혼자 국을 데워야 하는 아들의 훈훈한 대화, 영화 <레인보우>의 현실 버전이란 말인가.

 

그래도 영화 보느라 애들 밥 안 챙겨주는 건 괜찮은 거 아닌가요,는 나만의 생각인가.

 

3.

오늘 이 영화를 보게 된 것은 우연일까, 아니면 이곳 시네마테크 측의 계획된 아이러니일까.

 

가와세 나오미의 초기의 두 단편 <내 아버지>와 <내 할머니>는 지극히 사적인 영화이고, 일본 사(私)소설의 계보를 잇고 있다고 말해도 과장은 아닐듯한 작품이다. 가와세 나오미 감독은 태어남과 거의 동시에 아버지에게 버려졌고, 어머니마저 다른 남자와의 결혼을 위해 그녀를 자기의 친정어머니, 그러니까 감독의 외할머니에게 맡기고 떠나가버렸다. 그런 가와세 나오미 감독을 불쌍히 여긴 그녀의 외할머니가 그녀를 자신의 호적에 딸로 입적시켰고, 그렇게 할머니를 엄마라 부르며 홀로 외롭게 카메라를 벗삼아 자라난 아이가, 성인이 되어 아버지를 찾는 이야기가 <내 아버지>이고, 그런 자신을 힘들게 키워준 할머니를 그린 영화가 <내 할머니>이다.

 

그러니까 이 영화에서 주목해서 보아야 할 것은 아마도 두 가지인 것 같다. 하나는 이 영화가 기록하는 시간에 대한 태도와 다른 하나는 카메라 뒤에 숨어 이 영화를 찍고 있는 가와세 나오미라는 개인, 이 두 가지. 이 영화들에서 시간은 어떤 이벤트로서 기록되거나 분절되어 기록되지 않는다. 시간은 어떤 사건들로서 기억되는 것이 아니라, 흐름 그 자체로서 남아있고, 과거의 작은 소녀는 어느틈에 점점 자라 스물세살의 어른이 된다. 그리고 이제 그 스물세살의 어른은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그 기록으로만 남아있는 과거를 현재 속에서 복원시킨다. 예를 들어 사진 속에만 남아있는 어떤 풍경은 현재의 촬영된 화면과 겹쳐지며 현재 속에서 되살아나고, 단지 호적기록으로만 존재하던 아버지는 전화상으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살아있는 인물이 되어 시간을 거슬로 올라가 우리 앞에 선다. 그러나 그럼에도 한편으로 이것은 온전히 극복될 수도 없다. 어떤 영화적 처치에도 그들은 과거의 시간으로 돌아가 온전히 과거에 머무를 수는 없다. 그들은 이 영화의 마지막에서 전화속 현재의 아버지, 어머니, 감독 그리고 그와 분리된 과거의 사진으로만 남아있다. 결국 영화가 어떤 처치를 해도 영화의 시간은 완성될 수 없고, 사실 영화라는 매체는 그 시간을 결국 온전하게 담아낼 수는 없는 불완전한 매체다. 예를 들어 그녀의 스물 세 해의 시간을 영화라는 이 제한된 기록도구가 어떻게 담아낼 수 있을 것인가의 문제. 그러나 가와세 나오미에게는 16mm 카메라라는 불완전한 매체 밖에는 그것을 기록할 도구가 없었고, 그것은 사실 우리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한편 우리는 이 영화들을 보며, 감독의 아버지 찾기와 그녀의 할머니를 보지만, 동시에 카메라를 들고 있는 '그녀'의 존재를 매순간 매장면에서 환기한다. 예를 들어 <내 할머니>에서 주인공인 할머니가 그렇게 자주 웃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그것을 찍고 있는 카메라를 그녀의 손녀이자 딸인 감독이 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동시에 할머니와 감독의 관계가 얼마나 긴밀한 것인지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매순간 관객들에게 깨닫게 만든다. 카메라 안의 존재가 카메라 밖의 존재를 환기시킴으로써 말이다. 그리고 그것을 보는 카메라 밖의 존재인 관객은 동시에 각자 나름의 카메라 안의 존재를 예기치않게 불러온다. 자신의 할머니, 혹은 자신의 아버지, 혹은 자신의 다른 누군가. 어떤 영화는 그렇게 끊임없이 스크린 밖의 환영들을 불러온다. 

 

4.

내가 아이러니하다고 말한 것은 오늘이 대통령 선거일이기 때문이다. 개인이 아닌 국가의 구성원으로서 조마조마하게 무엇인가를 보게 되는 오늘 같은 날에, '모두를 위한', '새시대', '새로운 국가', '새로운 미래' 같은 단어가 전혀 어색하지 않은 오늘 같은 날에, 아주 지극히 내밀한 한 개인의 사적기록을 보게 된다는 것에는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새로운 미래, 위대한 시작, 힘찬 첫 발걸음 같은 것을 나는 잘 믿지 않는다. 그건 누군가가 당선되었거나, 누군가가 당선되지 못했거나 하는 등의 문제와 하등 상관이 없다. 어차피 그래도 누군가는 아버지에 의해 버려지고, 할머니와 힘들지만, 또 즐겁게 버티며 살아가고, 그런 할머니를 삼각대가 없어 흔들리는 화면으로 기록하거나, 자신을 버린 아버지와 언젠가 통화를 하고 싶어할 것이다. 아니 나는 정치에 대한 냉소 따위를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미래가 오든 개인들은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 살아가야 하니까. 외부에서 강제적으로 주어지는 무엇이 있더라도, 그 내부에서 개인들은 또 각자 자신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니까. (그러므로 그분이 이야기하는 '하나되는 국민'은 즐. 하나되는 국민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된다.) 그러니까 가와세 나오미 감독의 이 영화들에는 어떤 긍정적이면서도 단호한 기운이 숨어들어가 있다. 삶이 자신을 속일지라도, 그 삶 앞에서 무너지지 않겠다는 다짐이랄까. 할머니도 있고, 아버지도 있고, 카메라도 있으니까. 

 

그러므로 새로운 미래, 위대한 시작, 힘찬 첫 발걸음 같은 것을 잘 믿지 않는다는 것은 동시에 쓰라린 패배, 절망스러운 미래 같은 것을 믿지 않는다는 의미도 된다. 누군가가 이겼다고 해서, 희망찬 내일이 갑자기 시작될 수도 없고, 다른 누군가가 이겼다고 해서 절망의 나날들이 갑자기 시작될 수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 절망이나 희망같은 것은 결국 그것을 받아들이는 본인이 만들어내는 것이니까. 모든 개인은 각자 나름의 의지를 가지고 각자의 삶을 살아간다는 것, 그리고 살아가야만 한다는 것. 그것을 이 지극히 개인적인 영화들이 보여준다고 생각한다면 내가 우둔한 걸까. 그리고 결국 시간이란 과거로 흐르는 듯 보여도, 결코 과거로 흐를 수는 없다는 것을 이 영화들은 또한 보여주니까. 결국 시간이라는 역사는 후퇴하지 않는다. 에둘러 돌아갈 수는 있지만...(이라고 말한 것은 역사가 서중석 선생이던가.)

 

5.

그런 의미에서 마지막으로 나도 지극히 개인적인 사진 하나 올리고 잔다. 사실은 이게 원래 목적. 이런 얘기 쓰려던 게 아니라 그저 투표 인증+오늘 산 책 인증하려던 거였는데......

 

접힌 부분 펼치기 ▼

펼친 부분 접기 ▲

 

 

 

 

 


댓글(26)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Mephistopheles 2012-12-20 0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자셨군요.(어..어..아닌가?)

맥거핀 2012-12-20 12:54   좋아요 0 | URL
어머 언니 왜 그래요...으걀걀

기억의집 2012-12-20 1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할머니 소리만 들어도...격하게 혐오감이 올라와요.

맥거핀 2012-12-20 12:55   좋아요 0 | URL
그래도 세상에는 좋은 할머니가 더 많죠.^^

Arch 2012-12-20 2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난 대선은 심드렁했는데 이번엔 후보 토론이며 인터넷에 올라오는 글들을 보다보니 어떤 열망 같은게 막 생기더라구요. 그런데 맥거핀님 글을 보니 너무 쉽게 절망하거나 기뻐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어떤 미래가 오든.

참, 손이 많은걸 얘기하는데요 ^^

2012-12-20 13: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12-20 21: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12-21 02: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12-20 12: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12-20 13: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2-12-20 14: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저도 손등에다가 저렇게 찍어서 알라딘에 인증샷 보냈었는데. 찌찌뽕이요. ㅎㅎ

맥거핀 2012-12-21 02:08   좋아요 0 | URL
요즘에는 손등 인증샷이 대세죠^^ 제가 손가락이 이쁘다는 얘기를 많이 들어서 손가락을 다펴고 찍으려 했는데 특정 후보 지지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서...

다락방 2012-12-21 12:21   좋아요 0 | URL
이제 선거 끝났으니 손가락 사진 좀 올려주면 안돼요? 네?

맥거핀 2012-12-23 21:30   좋아요 0 | URL
Share photos on twitter with Twitpic

댓글을 보고 급촬영..
하하 별로 특별할 건 없는 손이에요(급 자신감하락).

일이 있어 댓글이 좀 늦었네요.^^


다락방 2012-12-23 23:32   좋아요 0 | URL
우앗 하하. 잠이 안와서 와봤는데 맥거핀님 손가락이. 희희. 이뻐요. 손가락도 댓글보고 급촬영하는 맥거핀님도. 자신감 그대로 붙들어 매두어도 될만큼 이뻐요. 흣

맥거핀 2012-12-26 21:05   좋아요 0 | URL
손가락 보여드리는게 어려운 일도 아니고, 급촬영해야죠.^^ 덕분에 저도 간만에 제 손을 새삼스럽게 들여다봤습니다.

2012-12-20 15: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긍정적이고도 단호한 기운'. 오늘부터 필요한 것입니다요. 그나저나 영화광 엄마의 통화, 재밌네요. 그 엄마, 10년 전엔 아마 풋풋한 젊은 여자로 같은 시네마테크 로비에 표 들고 계셨었겠지요.
'내려놓음의 시간'이 그런 것이었군요. 이제는 자금 압박보다 공간 압박 땜에 내려놓는 이유가 더 크지 않나요?ㅎㅎ

맥거핀 2012-12-21 02:14   좋아요 0 | URL
저는 여전히 자금압박도 있고 공간압박도 있구요. 주위에서 왜 읽지도 않는 책을 사냐는 압박도 있구요.^^

저는 다른 건 몰라도 좋은 영화를 보기 위해 잠시 가족의 밥걱정일랑은 잊는 어머니를 지지합니다!

정말 영화만 보고 책만 아무걱정 없이 읽을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내가 왜 우리나라 앞날까지 걱정을 해야하냐고...

아이리시스 2012-12-21 2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투표인증이라기에 얼굴 보여주는 줄 알았는데요.................에잇 바보.

맥거핀 2012-12-23 21:27   좋아요 0 | URL
신성한 투표 인증은 얼굴이 중요한게 아님니...ㅋㅋ
아이리시스님이 인증하시면 생각해보겠음.ㅋ

아이리시스 2012-12-29 01:28   좋아요 0 | URL
맥거핀님..네가 해야 나도 한다..라는 자세는 나빠요ㅠ.ㅠ
그리고 인증도 아니고 뭣도 아니지만 제 서재에는 여전히 제 사진이 있다는ㅎㅎ
그럼 이제 생각해보는 거 맞죠? 히힛

맥거핀 2012-12-31 17:41   좋아요 0 | URL
새해 인사 전하는 걸로 대신하면 안될까요?
새해 인사를 전하러 가겠음~!

카스피 2012-12-21 2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저도 저렇게 인증 샷 올릴걸 그랬네요.

맥거핀 2012-12-23 21:28   좋아요 0 | URL
...에효..사실 이제 인증이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아무튼 카스피님도 투표하시느라 수고하셨어요.

마녀고양이 2012-12-24 1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 가끔 신촌 중고점에 들리는데,
우리가 모르는 상태에서 한 공간에 있을 수도 있겠다 라고 생각하니
참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게 삶이 아닐까 싶어지구요.

손 이쁘네요, 인증 도장두요.
자그마한 희망같아서 참 좋네요. 즐거운 연말되셔요.

맥거핀 2012-12-26 21:07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알지 못하는 사이에 같은 카페에 있거나 지하철에서 지나쳤거나, 같은 극장에 앉아있거나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뭐 아무튼 달여우님과 저는, 그리고 수많은 우리들은 각자 개인이면서도, 동시에 대한민국이라는 그다지 넓지 않은 땅에 같이 살고 있으니까요. '개인인 동시에 우리'라는 말을 생각해보게 되네요.

달여우님도 가끔은 휴식도 취하시면서 좋은 연말 보내세요.^^
 

 

A Design for Life

Libraries gave us power
도서관이 우리에게 힘을 주었다
Then work came and made us free
그리고 노동이 우리를 자유롭게 만들었다
What price now for a shallow piece of dignity
존엄함의 얄팍한 가치는 이제 얼마나 될까

I wish I had a bottle
나에게 술병이 있었으면
Right here in my dirty face to wear the scars
내 더러운 얼굴앞에 들이밀어 상처를 내고
To show from where I came
내가 어디 출신인지를 보일텐데

We don't talk about love we only want to get drunk
우리는 사랑 이야기를 하지 않아 우린 오직 취하고 싶을 뿐
And we are not allowed to spend
그리고 우리에겐 낭비가 허락되어있지 않아
As we are told that this is the end
이런건 끝이라고 우리가 말한 순간부터

A design for life
인생의 설계
A design for life
인생의 설계
A design for life
인생의 설계
A design for life
인생의 설계

I wish I had a bottle
나에게 술병이 있었으면
Right here in my dirty face to wear the scars
내 더러운 얼굴앞에 들이밀어 상처를 내고
To show from where I came
내가 어디 출신인지를 보일텐데

We don't talk about love we only want to get drunk
우리는 사랑 이야기를 하지 않아 우린 오직 취하고 싶을 뿐
And we are not allowed to spend
그리고 우리에겐 낭비가 허락되어있지 않아
As we are told that this is the end
이런건 끝이라고 우리가 말한 순간부터

A design for life
A design for life
A design for life
A design for life

We don't talk about love we only want to get drunk
우리는 사랑 이야기를 하지 않아 우린 오직 취하고 싶을 뿐
And we are not allowed to spend
그리고 우리에겐 낭비가 허락되어있지 않아
As we are told that this is the end
이런건 끝이라고 우리가 말한 순간부터

A design for life
A design for life
A design for life
A design for...

 

 

* 가사 번역은 askewroad.egloos.com 여기에서..

 

..............................................

 

<서칭 포 슈가 맨> 영화를 본 이후에 그 영화에 나온 노래들도 생각이 나지만, 계속 이 노래가 떠올려졌다. 가장 좋아하는 밴드 Manics의 가장 마음에 드는 가사 중 하나. Libraries gave us power.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아이리시스 2012-11-15 2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래가 'Libraries gave us power'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니 동영상을 안 볼 수가 없고, 아래 리뷰를 안 읽을 수도 없고^^

그러니까 이 곡은 영화 속에 안 나온다는 거죠?

맥거핀 2012-11-18 17:22   좋아요 0 | URL
그니까 이거는 밑에 리뷰를 덮을려고 올린건데..읽을 수 없는 리뷰를 올려놔서요.^^

영화에 절대 안나오니 마음껏 들으셔도 되겠습니다.
 

 

 

1. 충고

 

(아마도 사람마다 느끼는 것이 다르겠지만) 대체로 선배들의 충고란 별 가치가 없을 경우가 많다. 물론 충고도 충고 나름이어서, 실제적인 방법들 - 예를 들어 부장이 시킨 무가치한 일과 과장이 시킨 가치있어 보이는 일 중 어떠한 것을 먼저 해야하는가 - 같은 것은 꽤나 도움이 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술자리에서는 시간이 지나면 실제적인 충고들은 점점 몸 안의 수분 농도처럼 옅어지고, 뜬구름잡는 이야기들, 두루뭉술한 인생의 비결들은 가득 쌓인 담배 연기만큼 짙어지고 만다. 물론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100만명의 인생에는 100만개의 개똥철학이 있고, 다른 사람의 개똥(철학)을 내 인생에 발라 약으로 만들기란 상당히 어려운 법이다.

 

반면 후배들의 충고는 대체로 가치가 있다. 물론 후배들의 충고란 평소에는 거의 듣기 힘들다. 그들에게 충고를 듣기 위해서는 밥을 사준다고 꼬셔서 싼 술집으로 데려간 다음, 그들에게 각종 폭탄주 레시피를 1번에서 마지막 번호까지 차례로 실험해보아야만 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 틈엔가 그들에게 이런 충고가 튀어 나온다. "형은 왜 그렇게 살아?!" (물론 이 말은 절대 이렇게 들리지는 않는다. 이 말은 대체로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본인의 혀에 대한 타박처럼도 들린다. "혀는 왜에 구러케 솨라?!") 그리고 그런 충고를 듣고 나면 정중히, 그러나 꽤나 난폭하게 후배를 화장실 변기와 타일을 구별할 수 있을만한 위치에 던져둔 다음, 곰곰히 생각해 보게 된다. 아, 뭔가 문제가 있긴 있구나. 확실히 뭔가 문제가 있기는 있어. 그리고 그 '문제'라는 녀석을 곰곰이 생각해보게 된다. (그러므로 그 충고가 어찌 가치가 없다고 말할 수 있으랴.)

 

2. 다크나이트 라이즈

 

그 문제 중에 하나는 물론 게으름에 관계된 것이다. 예를 들어 영화를 본 후 바로 기록을 남기지 않고 미적거리다가, 결국 쓸 수 없는 글들에 대한 것도 그렇다. 그러므로 매일 일기를 쓰는 사람들을 보면 사실 약간 경외감이 든다. 자신에 대한 것도 아니고, 눈 뒤에 숨어 자신이 본 것에 대한 기록을 남기는 것도 이렇게 미적거리게 되는데, 매일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을 글 속에 새겨 남겨놓다니. 아무튼 늘 메모들은 키워드들로만 남아 있고, 그 키워드들은 상당한 시간이 지난 후에는 도대체 그 처음의 형태들을 복구해낼 수가 없다.

 

복구해낼 수가 없는 메모 중의 하나는 <다크나이트 라이즈>에 대한 것이다. (뭐 사실 모든 게 다 그렇지만) <다크나이트 라이즈>에 대한 메모에는 재미있는 이야기거리와 그다지 재미없는 이야기거리가 혼재되어 있다. 예를 들어 좀 재미있어 보이는 이야기거리에는 베인과 조커의 공통점 같은 것들이 있다. <다크나이트 라이즈>의 악의 중심인 베인과 <다크나이트>의 악의 중심인 조커는 악당들이란 점 이외에도 한 가지 눈에 띄는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그 두 사람이 모두 망가진 입의 소유자라는 것인데, 조커는 잘 알려져있듯이 웃는 얼굴이 극도로 강조된, 양 옆으로 길게 찢어진 입의 소유자이고, 베인의 입은 영화 내내 마스크에 의해 가려져 있다. 하여튼 간에 두 사람 모두 불구의 입, 뭔가 비정상적인 입의 소유자이다. 물론 이는 별 것 아닌 공통점일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의 숙적인 '다크나이트' 배트맨과 연결지으면 조금은 흥미로운 부분이 있다. 왜냐하면 배트맨의 신체에서 우리가 유일하게 직접 마주하게 되는 부위는 그의 입이기 때문이다. 즉 배트맨의 모든 신체는 최신의 슈트로 가려져 있는 반면에 거의 유일하게 그 입만 공기 중에 노출되어 있다. 그러므로 이 다크나이트 시리즈를 어쩌면 이렇게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입을 가진 자와 입을 가지지 못한 자의 대결.

 

이야기가 막 나가는 김에 조금 더 생각을 연장해 본다면 아마 이 입과 연관지어 두 가지 정도를 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하나는 입이라는 것은 우리의 얼굴에서 무엇을 담당하는가,라는 부분이다. 신체상으로 볼 때는 입은 물론 먹는 일을 담당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은 밀접하게 표정이라는 것과 연관되어 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아주 간단하게 사람의 웃는 얼굴을 표현하고 싶다면 어떻게 하면 되는가? 이렇게 하면 된다. :-) 반면, 그 사람의 화난 모습을 표현하고 싶다면 이렇게 한다. :-( 즉 입은 그의 겉으로 드러난 표정을 읽게 하는 지표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조커나 베인을 보며 공포를 느끼게 되는 것은 한편으로 그들이 표정이 없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베인은 실제의 마스크를, 그리고 조커는 웃는 얼굴이라는(그러나 사실은 웃지 않는- 이 부분과 관련지어서 조커가 자신이 웃는 표정을 가지게 된 이유를 술회하는 믿을 수 없는 진술을 떠올려보라) 마스크를 쓰고 있다. (물론 도둑이나 강도들도 대체로 입을 가린 마스크를 쓴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에게 공포를 느낀다.) 그러나 입 그리고 표정의 문제는 여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이는 이 영화 <다크나이트 라이즈>의 어떤 묘한 부분들과 연관이 되는데, 그것은 이 영화에 떠돌고 있는 무산혁명의 이미지이다. 가지지 못한 자들이 벌이는 공포스러운 혁명의 모습들, 즉석에서 이루어지는 재판과 사형과 추방, 미친 혁명가의 선동, 그리고 그 선동에 호응을 보내는 사람들. 무산자들이 혁명을 일으키는 것은 먹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즉 입이 있었으나 그들에게는 그 입이 아무런 쓸모가 없었다. 그들은 아무 것도 먹을 수가 없었고, 아무 것도 말할 수도 없었고, 동시에 그들에게는 어떠한 표정도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입을 가지지 못했던 그들은 결국 입을 드러낸 어둠의 기사, 배트맨과 복구된 경찰력에 의해 퇴치되고, 고담 시에는 평화가, 그러나 어쩌면 그들만의 평화가 찾아온다. 물론 당연하게도 이겨야하는 것은 다크나이트고, 미치광이에 의한 혁명은 일어나지 않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나는 베인의 망가진 입을 보면서, 그리고 마지막 장면 꽤나 비싸보이는 찻집에서 커피를 입에 가져가는 고담 시의 수호자이자, (한때) 억만장자 기업인 브루스 웨인을 보며 약간 입맛이 썼다. (그 이유 중의 하나는 이 어둠의 기사의 마스크는 입은 드러내 보이되, 반대로 그 눈을 가리기 때문이다. 입은 웃고 있되, 눈은 웃고 있지 않은 자들, 이 현실을 수호(한다고 말)하는 자들도 그런 자들이다.)

 

3. 상상

 

아무래도 여기서 조금 더 길어지면 <다크나이트 라이즈>에 대한 리뷰가 될 것 같고, 이 글은 그저 잠이 안와서 쓰는 글일 뿐이니 이쯤에서 끊어야 할 것 같다. 아무튼 <다크나이트 라이즈>가 <다크나이트>와 다른 부분에서 흥미롭게 느껴졌던 것은 이 이야기는 전작과 다르게 어딘지모르게 헐거운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즉 모든 곳이 꽉 짜여져 있어 거의 물샐틈 없는 공간처럼 느껴졌던 그 전작과 달리 이 이야기 속에는 어떤 빈 공간이 있고, 그 빈 공간을 우리의 어떤 상상으로 채워넣어야만 완전한 이야기가 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채워넣어야 한다는 것은 예를 들어 이런 것들이다. 지난 연휴에 하릴없이 채널을 돌리다가 '넝굴당' 재방송을 보게 되었는데 그 장면 중에 시어머니인 윤여정이 예전 아들을 잃어버렸을 때 주위의 반응을 회상하며 울부짖으면서 억울해 하는 장면이 있다. 이 장면이 흥미롭고 윤여정의 연기가 돋보이는 이유는 이 장면에서 어떠한 실제의 회상씬도 등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즉 그녀의 가슴을 쥐어 뜯는 연기를 보는 우리들은 그녀가 받았을 예전의 상처의 정도를 상상하고, 그 크기를 짐작해보게 된다. 그러니까 그 크기는 그 답답한 흑백의 회상씬에 갇혀 있지 않다. 그 크기는 우리가 상상도 못할 정도로 보는 이들의 머리 속에서 부풀어 올라, 각자의 머리 속에서 커다란 흑백의 회상씬들을 만들어낸다. 그러므로 그 상상만으로 우리는 그녀의 과거에 있었던 일들을 보게 되며, 그 억울함에 공감하고, 그 상처의 크기를 되레 짐작하게 된다. 아니면 이런 것은 어떨까. 예전에 왕가위의 <타락천사> DVD에 실려있는 정성일의 코멘터리 중에 그가 지나가며 언급하는 대목이 있다. 자신을 찍지 말라고 화내는 아버지 자신을 찍은 화면을 보고 있는 아버지를 금성무가 보고 있는 장면에 흐르는 금성무의 독백. 이 독백이 마음을 건드리는 이유는 우리는 그 장면에서 이 독백이 아버지가 이미 세상에 없는 후일의 어떤 시점에서야 가능하다는 것을 상상하게 되기 때문이다. 즉 그 아버지를 보는 자신의 모습을 후일의 어떤 시점에서 회상하는 것, 그것은 아버지에 대한 그의 사랑과 그에 동반되는 그리움의 크기를 역설적으로 상상하게 만든다.  

 

그러므로 다른 여러가지 알 수 없는 것 속에서도 하나 유일하게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당신에게 아무 것도 상상하지 못하게 만드는 영화(혹은 다른 어떤 것이라도)는 (적어도 당신에게 있어서는) 고급의 쓰레기일 뿐이라는 것. 그것에 자신을 내맡기는 것은 쓰레기더미 속에 자신을 방치해두는 것과 동일한 행위라는 것.

 

4. 위험

 

가끔 뭔가를 끄적거리다 보면 저절로 무엇인가를 쓰고 있다고 여겨지는 때가 있다. 줄줄이 손 끝에서 튀어나오는 문장들, 어느 틈에 정신을 차려보면 이미 쓰여져 있는 긴 문단, 이미 내려져 있는 스크롤바. 솔직히 그런 때가 항상 오기를 바라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아마도 그런 때가 가장 위험한 때가 아닌가 싶다. 하고 싶은 이야기는 손 끝에 있지 않으니까. 손 끝에서 끄집어내는 이야기들은 다른 이야기를(그러니까 예전의 그 '문제'라는 녀석같은 것) 튀어나오지 못하게 하니까.

 

그런데, 그런데 인간의 신체라는 것은 참으로 웃긴 것이어서 그 문제를 생각해보려고 할 때마다 달콤한 무엇인가를 내보내 잠을 자라고 한다. 졸립다. 잠이 온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12-10-03 07: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10-05 02: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10-03 18: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10-05 02: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Shining 2012-10-04 15: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우. 제가 좋아하는(또는 기다리는?) 맥거핀님의 잠이 안와 쓰는 글, 새 페이퍼군요(그렇다면 저는 맥거핀님의 불면을 좋아하는.. 기다리는?_-). 충고, 에 대한 이야기 저도 비슷한 글을 쓰고 있는 중이었어요. 대체 왜 사람들은 남의 인생에 훈수를 두는가 하는 이야기_-(명절의 여파인가봐요)

날씨가 좋군요, 자전거 타고 달려야할 날씨에요. 명절은 어떻게 보내셨나요? :)

맥거핀 2012-10-05 02:22   좋아요 0 | URL
명절은 사실 전혀 특별한 게 없었어요. 누군가에게 그렇게 (충고를 가장한) 앞담화를 듣지도 않았구요. 평온하고, 조용하게 지냈습니다. 그런데 확실히 그렇게 몸이 편해지니까 정신이 확 이완이 되어서 책들도 눈에 잘 안들어오더라구요. 예전에는 연휴 때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그래야지..하고 계획을 세우기도 했는데, 아주 무계획적으로 보냈습니다.

예전에 다운 받아 놓고 못 본 영화들도 몇 개를 봤어요. 옛날 일본영화들 몇 개를 봤는데 좋았어요.

그래서 자전거는 좀 타셨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