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일
오츠이치 지음, 김수현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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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쿠리상 놀이'는 분신사바와 닮아 있다.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떤 보이지 않는 존재에게 질문을 던지고 yes와 no로 답을 요하면 동전이 움직여져 답을 전한다는 놀이. 코쿠리상 놀이를 야기가 시작한 나이는 열 한살. 아무것도 모를 나이에 은밀한 유혹에 빠져 야기는 그 존재를 받아들여버렸다. 맞아들어가는 예언에 재미를 붙이다가 결국 그 보이지 않는 존재에게 몸을 빼앗겨 버리게 된 비운의 인간이 바로 야기였다.

 

 

 

p14  누구 있어요?

 

 

누가 있었다. 혼자 있는 방안에서조차 누가 있었다. "나는 언제쯤 죽어?"라는 질문따위는 애초부터 하지 말았어야 했다. 결과를 알아도 너무 무섭고 몰라도 되는 이야기를 물어봤고 결국 그 답을 들었다. "4년 뒤 괴로워하다 죽을거야"라고. 이후부터는 상처를 입을때마다 몸이 변해갔다. 심한 상처를 입어도 죽는 것이 아니라 다시 다른 몸으로 재생되며 점점 괴물로 변해만갔다. 그 공포로 인해 타인과 함께 더불어 살지 못하게 되었고 결국 예언의 삶을 살아가게 되었던 것이다. 슬프게도.

 

[베일]에는 두 가지 이야기가 담겨 있다. [천제요호]가 위에서 언급한 인간이 귀신에게 먹혀가는 이야기이고,[그리고 화장실의 '담배'씨, 나타났다 사라지다]는 그 뒤에 있는 이야기인데 천제요호가 너무나 강렬하다보니 그 뒷 이야기는 그냥 무덤덤했다. 귀신에게 몸을 빼앗기는 이야기. 오츠이치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오싹할 때가 한두번이 아닌데, [베일]의 두 이야기는 전작들에 비해서는 덜 끔찍했다. 하지만 되새김질해보면 이 역시 무서운 이야기임에 틀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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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고개의 목매달아 죽은 이의 집 2
요코미조 세이시 지음, 정명원 옮김 / 시공사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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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집안 내에서 이만큼 얽히고 섥히며 작의적이고 파괴적인 이야기가 세상에 또 존재할 수 있을까. 갖은 양념을 다 갖다 부어놓은 듯한 [병원 고개의 목매달아 죽은 이의 집(2)]은 세상에는 부와 명예를 안고 사는 것처럼 보이는 한 집안 내의 콩가루 가계도를 극명히 보여주며 장장 19년을 끌어온 살인사건을 종결시켜버렸다. 그리고 한 뛰어난 탐정까지 세상에서 사라지게 만들었다.

 

19년이라는 세월. 잊혀지고 모듬어지면 좋으련만 피의 솟구침을 주체할 수 없었던 객기어린 청년기의 남녀로 인해 건실하게 살아갈 수 있는 이들의 미래가 망가져버렸다. 그 비밀의 판도라 상자를 사진관을 운영하던 혼조가에서 보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비밀을 빌미삼아 야금야금 재벌가에 기생하며 살아왔던 그들의 목숨이 경각에 달아자 기묘하게도 19년 전 의뢰를 맡겼던 긴다이치에게 다시 찾아왔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오키치는 살해당했고 살인사건은 지속적으로 일어나게 되었던 것이다.

 

세월이 많이 지나 역시 탐정사무소를 열어 성업중이던 도도로키 경부와 함께 호겐가의 비밀을 밝히던 긴다이치 앞에 던져진 것은 한 가문의 수치스런 비밀이 아니라 인간의 추악한 한 단면이었고 이에 치를 떤 그는 홀연히 세상에서 사라져 버렸다.

 

이렇게 끝이 날 수도 있구나 싶어졌지만 그래도 홈즈의 부활이 있었던 것처럼 긴다이치의 부활을 가슴 속에 품어보게 되는 건 그가 등장하는 이야기들인 하나같이 너무나 재미났기 때문이었다.

 

요코미조 세이시 라는 이름은 이미 사망명부에 올라 있는 이름이다. 1975년에 마지막 작품인 이 소설을 발표했을 정도니 그의 나이를 짐작할 수 있겠지만 이미 81년에 세상을 하직한 추리소설가의 작품 속 주인공을 되살리고 싶을 정도로 탐나는 스토리텔러였던 그 이기에 죽음조차 안타까울 수 밖에 없었다. 작가 생떽쥐페리가 비행중 실종되어 어딘가에 살아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마음같이 긴다이치도 어딘가에서 그 더벅머리를 긁으며 새로운 사건을 파헤치고 있을 것만 같아 다음 이야기를 기대하게 만드는 것이다.

 

잘린 머리의 저주.

그것은 인간의 가장 추악한 면을 세상에 드러내면서도 한 가계도 안의 인간들이 서로를 어떻게 잠식시키고 오해하면서 살아왔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잔혹한 스토리였음에 틀림이 없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질서를 잡아아고 바르게 살아보려고 노력한 이들도 있었으니 세상은 이런 이들로 인해 돌아가고 있음을 깨닫게 만드는 희망적인 이야기임을 알려주는 노력또한 빠지지 않아 소설이 그저 온통 검은 색 투성이가 아님을 알려주고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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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고개의 목매달아 죽은 이의 집 1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
요코미조 세이시 지음, 정명원 옮김 / 시공사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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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다이치 코스케는 그다지 매력적인 캐릭터가 아니다. 루팡이나 홈즈,코난에 비해 그의 겉모습은 초라하기그지없다. 그는 더벅머리에 나이는 아저씨 나이때이며, 흥분하면 말을 더듬고 머리나 긁적대는 남자였다. 그렇다보니 그에게 의뢰를 맡기러 온 사람들이 그 겉모습을 보고 고개를 갸우뚱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 것이다.

 

나오키치 역시 그랬다. 그는 혼조 사진관을 운영하는 아버지의 쓸모없는 아들로 기생하고 있지만 어느날 미모의 여인에게 부탁받은 기묘한 사진을 찍기 위해 "병원 고개 집"으로 향했다. 그 집은 병원장이자 기업체를 거느린 호겐가의 저택으로써 공습이후 피폐해진 그 집에서 결혼식 사진을 부탁받았던 것이다. 재즈악단 "앵그리 파이러츠"의 리더인 도시오와 남매로 길러져 자라온 고유키의 결혼식 사진을 찍은 나오키치는 그 결혼식이 어딘가 이상했고 신부의 표정이 이상하여 긴다이치에게 의뢰를 하게 된 것이었다.

 

한편 혼조가의 상속녀 유카리의 납치 사건을 비밀리에 조사하고 있던 긴다이치는 두 의뢰를 한 묶음으로 묶어  사건을 파헤쳐나갔고 그 과정에서 복잡한 그 집안의 가정사를 알게 되었다. 게다가 호적의 순서상 이모관계인 유카리와 고유키가 똑같은 얼굴로 태어난 사실을 밝혀내게 되는데......

 

1권은 사건을 파헤쳐 나가는 과정에서 궁금증만 증폭시켜 놓고 끝나버렸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시작에서 쇼화 28년과 쇼와 48년 사이의 지도를 보고 비교하는 과정에서 19년 8개월이라는 긴 세월동안 해결해야했던 한 사건을 기술한다고 했으니, 이 사건은 오랜 시간을 묵혀두고 밝혀질 이야기임을 시작부터 공표한 셈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사건의 그 배경이 되는 가문의 복잡한 가계도까지만 밝혀준 1권은 궁금증만 증폭시켜놓고 끝나버려 2권을 빨리손에 쥐게 만들고 있다.

 

19년의 세월을 파헤쳐내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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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D현경 시리즈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최고은 옮김 / 검은숲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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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신 검시관],[사라진 이틀]을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요코야마 히데오라는 작가의 이름을 머릿 속에 새겨두질 못했다. 12년 베테랑 기자출신의 작가가 던져주는 진중한 물음은 그래서 느즈막히 기억 속으로 자리 잡는다. [64]라는 소설 한 권으로.

 

"아버지를 닮아 못생겼다"라는 이유만으로 마음의 병이 깊어져 가출을 해버린 아유미. 집나간 자식으로 인해 가정은 파탄 직전에 이르렀고 직장에서의 위치도 위태위태한 중년의 남자 미카미. 그는 형사출신 언론홍보담당으로 재직중인 경찰관이다. 물과 기름처럼 겉돌기만 하는 언론과 경찰 사이에서 잘 중재해오던 그의 일이 그만 틀어져 버린 것도 부모로서의 마음이 개입되면서부터였다. 그맘때쯤 목소리만 듣고 "탁"끊는 괴전화가 집으로 걸려오기 시작하고 그의 아내는 그것이 딸 아유미의 소행이며 아직 살아있다는 증거라 믿고 그 전화에 집착하기 시작한다.

 

D현경 관내 첫 강력 범죄사건이었던 [64]. 모두의 기억 속에 미해결 사건으로 자리잡은 14년 전 아마미야 쇼코의 유괴 살인사건은 그렇게 다시 D현경으로 되돌아오고. 모방범으로 보이는 범죄는 몸값2천만엔만 강탈해 가고 7살 소녀를 주검으로 발견하게 만든 사건이었다. 물론 범인은 잡히지 않은 채 미결로 끝나버렸다. 그런 사건이 다시 되풀이 되면서 미카미는 기자들과 경찰 사이에서 고심하게 되고, 아내 미나코는 그 와중에도 딸 아유미의 전화를 조사해야한다고 그를 다그친다.

 

과연 딸 아유미의 전화가 맞을까?  과연 14년 전 사건과 현 사건은 동일범의 소행일까?

 

퍼즐처럼 얽혀있던 사건들이 중반을 넘어서면서 급물살을 타고 해결의 조짐이 보여진다. 64사건으로 경찰관을 그만두고 별 일거리 없이 전전하다가 얼마전 경비로 취직한 고다. 그런 그가 당시 수사상 실수를 기록해 보고 올린 것으로 옷을 벗어야 했고 찌질하게 살 수 밖에 없었음을...철저하게 비밀에 부쳐진 그의 기록인 "고다메모"가 존재함을 미카미가 알게 되면서부터 사건은 본격적으로 파헤쳐진다. 전직 형사였던 미카미의 예리한 감각은  한 어린 생명을 둘러싸고 벌어진 어른들의 추악한 이기심과 자리지키기에만 급급해 자신의 양심을 져버린 관계자들의 지난날을 후벼파면서 사회를 질탄하고 있다.

 

줄거리 상으로 보면 [64]는 얼마전 재미나게 본 우리 영화 [몽타주]와 유사점이 많다. 경찰이 파헤치는 과거 수사상의 헛점과 비리. 그리고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반전. 유아 유괴라는 포인트는 같은 맥락으로 잡혀져 있다. 하지만 풀어나가는 형식이나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적 차이 때문에 유사한 이야기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되어 우리 앞에 동시에 펼쳐진다.

 

쇼코를 죽인 14년전 범인의 목소리를 찾아 전화 번호상의 모든 집에 전화를 건 부모의 마음이나 범인을 찾는데 집착해서 자신의 안전은 뒷전인 부모의 마음. 5월 가정의 달에 접하기엔 다소 무겁긴 하지만 그래서 반대로 가장 어울리는 이야기가 아닐까 싶어졌다. 부패한 사회 속에서도 정의로운 인간은 반드시 존재하기 마련이다. 반대로 자신이 선택한 정의로 인해 삶이 무너지는 과정 속에서 인간이 지녀온 사회적, 도적성 역시 함께 무너질 수 있음도 잘 보여주는 작품이 요코야마 히데오의 소설인 것이다. [인간의 증명]에서처럼 자신의 죄를 덮기 위해 추악하게 변해가는 모습을 보여주기 보다는 이미 추악한 상태인 인간들의 뻔뻔한 변명을 들을 수 있는 이야기가 바로 [64]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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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토리 시즈카
혼다 테쓰야 지음, 한성례 옮김 / 씨엘북스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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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나이와 상관없이 어른이 된다

 

 

는 시즈카를 이르는 말일게다. 태어나서는 폭력적인 아빠에게서 도망쳐 엄마와 살게 되었으나 엄마의 새 남자에게 채 10살도 안된나이에 아동 포르노나 찍히고, 그걸 아는 엄마의 묵인이 아이에게는 상처로 남았다. 그래서 그녀는 삐뚤어졌다. 아니, 그녀 나름의 정의가 세워졌다. 사회의 도덕적 잣대와 상관없이.

 

10대가 되어도 성숙미가 물씬 풍기던 그녀는 집을 나갔다. 다정한 경찰관이 새 아버지가 되어 평범하게 살 수 있는 환경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평범한 삶은 그녀를 수용하기에는 벅찬 것이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라는 것을 어른들이 알지 못한 사이-. 편의점에서 같이 일하던 선배가 성폭행 당하는 현장을 목격하고도 순간 그녀를 돕기 보다는 남자친구로 하여금 살인을 저지르게 만들도록 부추겼던 일도 그녀 나름의 정의로움이라고 해석해도 좋을까.

 

약간은 삐뚤어져 있지만 그녀는 까만색인 채 살아가는 인간은 아니었다. 생부를 찾아가서 그가 이룬 새로운 가정내 폭력을 묵과하지 않은 채 그 속에서 자신과 닮아 있는 배다른 여동생을 데리고 탈출했기에. 그 희망의 끈을 세상에 내어놓으면서 그림자 인간이 되어 여동생의 인생 언저리를 맴돌다 죽어버렸다. 너무나 많은 사건 사고에 얽혀 있는 채로-. 너무 이른 나이에-.

 

사건은 순차적으로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역순으로 되짚어가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의 모든 사건이 얽혀 돌아가듯 시즈카 주변의 사건들도 사로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실종된 그녀를 찾는 단서들이 된다. 세상의 이치를 나는 이 한 권의 소설 속에서 이해했고, 범죄 하나가 피해자를 가해자로 만들어가는 슬픔을 이 한 권의 소설 속에서 경험했다. 그리고 한동안 가슴앓이를 하며 잠들지 못했다.

 

시즈카는 혼자였다. 철저하게-. 열 살이 되기 전에도 스스로를 보호해야했으며 열 살이 훨씬 지난 이후에도 스스로를 보호해야만 했다. 보호자들에게 보호받지 못하고 자란 그녀가 누군가를 보호해야겠다고 마음 먹은 일은 그래서 놀라운 일이 된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는 도덕적 관념으로 재자면 그녀는 정의롭지 못했다. 누군가의 범죄를 묵과했으며 살인을 부추겼고 직접 가담하기까지 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가해자이기보다는 피해자로 기억되는 까닭은 우리 중 누구도 그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환경이 그녀를 양상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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