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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브리오 기담 ㅣ 이즈미 로안 시리즈
야마시로 아사코 지음, 김선영 옮김 / 엘릭시르 / 2014년 3월
평점 :
[zoo],[어둠 속의 기다림], [평면견] 등을 읽으면서 이 작가 '묘하다'라고 느꼈다. 주로 그의 공포소설을 읽을 때 등 뒤로 싸늘함이
짜릿하게 느껴질만큼 그는 공포라는 장르가 어떤 것인지 완벽하게 보여주는 작가다. 그런 그가 여러 가명으로 소설을 내고 있다고 해서 그 중 한
권을 골라 읽게 되었는데 바로 '야마시로 아사코'라는 필명으로 낸 <엠브리오 기담>이다.
매번 길을 잃는 이상한 여행작가 이즈미 로안. 길을 잃으면서도 죽은 이들이 사는 곳만 골라 가는 로안이 주인공이지만 시선은 그를 향해 있지
않았다. 옴니버스식 단편들 속에서 등장하여 사건을 겪는 이들이 작은 이야기의 주인공들이다. 이점이 특이하면서도 재미있게 읽혀졌다.
'엠브리오 기담' 은 로안의 짝꿍 '나'에 관한 이야기다. 홈즈에게 와트슨이, 세이메이에게 히로마사가 있는 것처럼 로안 역시 여행동무가
있다. 부모 없이 홀로 사는 독거남인 '나'는 도박을 좋아하고 유혹에 약하다. 그런 '나'는 로안과 함께 여행길에 올랐다가 '갈 때는 지나지
않았던 동네'에서 태아를 주웠다. 낙태전문인 나카조에서 버려진 태아는 놀랍게도 살아 있었고 그를 엠브리오라고 부른다고 로안이 일러주었다.
손가락만한 태아를 소중히 여기던 그는 유혹의 덫에 그만 걸려버렸다. 도박으로 흥청망청하면서 노름돈이 부족하여 태아를 구경거리로 만들었던 것.
결국 로안의 도움으로 태아를 어느 부유한 부부에게 인도했고 몇 년 뒤 소녀로 태어난 태아와 스치듯 지나치는 것으로 이야기는 종결된다.
'린'은 여행안내서를 써서 생계를 꾸려나가는 이즈미 로안과 함께 한 여행에서 신기한 돌을 선물받게 되었다. 어느 노파의 손자를 살려준
댓가였는데 그녀는 절대 자살해서는 안된다고 당부를 했다. 지옥에 떨어지게 될 것이라고. 세월이 흘러 결혼하고 자식을 두었으나 어느날 일어난
화재로 그만 린은 죽고 말았다. 정신을 차렸을 때 그곳은 자궁 속. 다시 태어나려하고 있었다. 환생이 아니라 생이 반복되는 것.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린에게 주어졌던 것이다. 이전의 생과 달리 부유한 남자의 아내로 태어나보기도 했고 마음씨가 착한 남자와도 살아보았다. 삶이
반복되어 여러 선택의 결과를 알게 되었지만 단 하나, 태어나는 순간, 죽어버리는 엄마의 얼굴은 절대 볼 수 없었다. 그리고 업보처럼 탄생이
반복되면서 엄마가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그녀를 살릴 수는 없을까 를 고민하게 되었다. 그리고 결국 노파의 당부를 외면하며 린은 자궁 속에서
탯줄을 목에 감아 자살했고 지옥으로 떨어져버렸다.
"수증기 사변'은 또 로안의 짝꿍 미미히코가 유혹에 빠지는 에피소드다. 온천마을에 온 그는 밤에 절대 온천에 가면 안된다는 말에 찝찝하긴
했지만 결국 온천에 다녀오기로 했다. 그리고 이미 죽은 지인들을 만나 그들과 함께 황천길로 가버릴 뻔 했지만 어린 시절 소꿉친구 유노카가 그를
구하는 이야기.
'끝맺음'은 미미히코의 유혹중 최악의 유혹으로 나는 이 단편만큼은 절대 재미나게 읽을 수 없었다. 인간의 사악한 본성이자 본능이 숨어 있는
이야기이며 생명을 죽이는 스토리이기 때문이다. 어느날부터 두 남자를 따라온 아름다운 닭 아즈키를 미미히코는 배고픔에 미쳐 죽여버린다. 그리고 그
털이 여기저기서 나오자 오열하며 울음을 터뜨린다. 악어의 눈물같지만 인간은 미치면 친구라고 여기던 생명조차 가볍게 여기게 되나 싶어져 마음이
무거워졌다.
이 외에도 '있을 수 없는 다리','얼굴 없는 산마루','지옥','빗을 주워서는 아니된다','자 가요 소년이 말했다' 등 짧으면서도
기묘하게 읽혀지는 단편들이 이어진다. 오츠이치의 소설들은 귓목털이 쭈삣할만큼 공포스러운 것들이 대부분이라고 생각했는데, 기대했던 것보다 무섭거나
작의적이지 않아 나는 도리어 이 작품들이 즐겁게 읽혀졌다. 마치 아주 어린시절 보던 '환상특급'이라는 외국드라마의 느낌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