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이브 스토리 2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해용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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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만화와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었다는 이 작품을 나는 책을 통해 만났다. 운명을 바꾸기 위한 열두살 소년의 모험담은 마치 게임 속에서 전진하듯 이어져 나갔는데, 다섯 채의 오두막을 지나 북쪽 숲으로 똑바로 오직 한 길만을 걸어 '시험의 동굴'로 향했다.

 

p 20 괴물 같은 것이 공격해오면 어떡하죠?

       도망치면 돼

 

<메이즈 러너>도 아니고. 무조건 도망치고 보라니 이런 충고 따위는 필요없는 것이 아닐까. '진실의 거울', '퇴마의 검''다섯 개의 구슬' 그 어떤 정보도 없이 준비도 없이 시험에 던져진 와타루의 상황은 확실히 억울하기 짝이 없게 보인다. 전쟁터에 던져졌는데 총이 손에 쥐어지지 않은 채 죽지 않으려면 총이 필요할껄!이라고 모두들 입만 달싹 거려주는 상황과 비슷하달까.

 

그래도 신이 와타루를 아예 버린 것은 아닌지 다행스럽게도 도마뱀 남자를 만나 가사라 마을까지 동행하게 되었다. 중간중간에 여왕님에 관한 정보라든지 그간 궁금했던 것들을 물어보고 그 대답을 들을 수 있긴 했지만 이 여행은 오로지 와타루만의 것이었기에 고난과 역경도 홀로 헤쳐 나가야만 그 보답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와타루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더 많은 정보가 필요했다.

 

처음 비전을 통해 이 곳을 방문했을 때 들었던 충고처럼 많은 사건들이 소년을 기다리고 있었다. '여행자'라 부르며 도와주는 이들도 있었지만 인간세상처럼 이곳에서 역시 타인을 오해하고 쉽게 몰아부치는 사람들도 있었고 이방인을 모두 쉽게 믿어주지는 않았던 것이다. 여행자는 여신님이 현실세계에서 불러서 온 사람임을 알면서도-.

 

1권이 비전의 문을 통과하기 전까지의 이야기라면 2권은 그 안에서 와타루가 겪는 고난과 역경의 시간들이 담겨 있다. 총 4권이니 이 고난은 3권에 다다라서는 절정의 순간을 맞이하게 될 것이고 4권의 어느 페이지부터 해결되고 화해하는 모습으로 결말지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플룻은 그러하지만 그 과정을 충분히 재미나게 즐기기 위해 나는 머릿 속에서 얼른 기-승-전-결의 뼈대를 지워버렸다. 앞으로는 그저 이야기가 던져주는 검은 징검다리 같은 글자들만을 따라갈 것이다. 헨델과 그레텔의 빵조각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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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이브 스토리 1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해용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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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이야기가 이렇지?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다. 겨우 첫 권을 읽었을 뿐인데, 머릿 속은 온통 뒤죽박죽 되어 버렸다. 4권까지 다 읽고 나면 이야기를 좀 더 잘 정리할 수 있을까. 최고라고 생각되어지던 <모방범> 이후 2년 동안 이 소설 하나에만 매달렸다는 작가 미야베 미유키의 고백이 아니었다면, 어쩌면 나는 이 소설을 그냥 지나쳐 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녀의 거의 모든 소설들을 읽어왔다고 생각했지만 그 군데군데 빠진 작품들이 있었던 모양인지 생소한 제목들이 엿보여 그들을 모아 한 달 동안 읽어볼까? 는 생각에 6월을 통째로 비워두었더랬다. 다른 책들을 읽을 시간을 보류하고 오로지 미야베 미유키를 위해 비워둔 시간 동안 나는 그간 지나쳤던 소설들을 꼼꼼히 읽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 첫 시간이 브레이브 스토리 읽기였다. 1권~4권까지 총 네권으로 쓰여진 [브레이브 스토리]는 초등학생 와타루의 시선에서 모든 이야기들이 보여진다. 고후네초의 미하시 신사 옆 새 빌딩에서 유령이 나온다는 소문. 부모님이 싫어하지만 가까이 지내고 있는 친구 가 짱이 들려준 이 흥미로운 이야기의 진실을 알아보기 위해 5월의 어느 화창한 날, 아이들은 시트 덮인 빌딩으로 들어가기로 결심했다. 침투하기로 한 시간은 한 밤중. 술집 아이인 가짱이야 부모님이 일하시는 동안 몰래 나오는 것이 쉬운 일이지만 와타루는 글쎄...1년 중 200일 정도는 어머니와 둘이서만 살고 있긴 해도 다소 엄격한 엄마의 눈을 피해 나오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날만큼은 달랐다. 누군가가 와타루를 도운 것처럼 엄마는 코까지 골며 잠들어 있었던 것이다.

 

p9   처음엔 누구도 그런 이야기는 믿지 않았다. 전혀 믿지 않았다

 

 

12년의 결혼생활을 아버지는 그만 두려 하고 있다. 결혼 전 사귀던 여자와 다시 만나 아이까지 만들고 이혼을 강요하는 아버지. 남편의 배신으로 가스 밸브를 열고 아들과 함께 동반 자살을 계획할만큼 멘탈이 무너진 어머니. 그리고 사라진 아시카와의 초대를 받은 와타루. 운명을 바꾸기 위해 '비전'으로 향한 와타루는 정말 소원을 들어준다는 여신을 '운명의 탑'에서 만날 수 있을까. 다이마쓰 빌딩 계단  끝에 도착한 소년은 문을 열었다. 힘차게. 운명을 바꾸기 위해서.

 

열두 살에게 이런 용기가 있을까. 내 나이 열 두살 때 나는 '운명의 바꾸겠다'는 마음을 먹어 본 일이 있었나. 그저 부모님의 어린 딸이었을 뿐이었던 나와 와타루는 같은 나이를 지나왔지만 참 다른 운명을 맞이했다. 환상의 세계로 통하는 문(비전)이 내 앞에 나타났다고 해도 나는 아마 망설였을 것이다. 이처럼 바로 그 문을 열어제치진 못했으리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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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무렵 누군가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혁재 옮김 / 재인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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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환화]와 비슷한 시기에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을 한 권 더 읽어볼 기회가 생겼다. 좋은 일이 연달아 일어난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용의자 x의 헌신>을 비롯하여 그의 추리소설과 동화,<비밀>이나 <편지> 같은 일반 소설들을 읽어나가며 나는 히가시노 게이고라는 작가가 전 장르를 넘나들며 감동을 독자에게 전하는 대단히 능력적인 작가라는데 공감하며 신이 지루한 삶을 영위하는 인간들을 위해 '신의 한수'를 둔 것이 이 작가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매료되었었다. 하지만 최근 몇몇 작품들이 평범하다는 느낌이 들면서 차츰 다른 작가들의 작품으로 눈을 돌리고 있었는데 작가는 그런 독자들의 마음을 알아차렸는지 예전과 같은 만족스러운 작품들을 세상에 내어놓기 시작했다. 또 다시.

 

어디서 본 것 같이 익숙하다 싶었던 <아빠, 안녕>은 전에 읽고 영화로도 보았던 [비밀]을, <명탐정의 규칙>이라는 두꺼운 책을 결국 집필하게 만들었다는 <명탐정의 퇴장>, 사라진 유언장을 찾는 과정에서 다잉메시지를 활용한 <수수께끼가 가득>, 동생을 죽인 살인범의 정액을 인공수정하여 아이를 낳은 후 죽은 동생을 버린 남자의 집으로 아이를 보내기 위해 그들 부부에게 접는 하는 어느 여인의 복수극이 담긴 <재생 마술의 여인>,생각지도 못할만큼의 재미를 부여했던 <여자도 호랑이도> 등등 새롭게 썼다기 보다는 기존에 써 둔 단편들을 정리해서 한 권으로 묶은 듯한 이야기들이 가득한 [그 무렵 누군가]는 이야기의 길이는 짧아도 그 여운은 길게 남기는 작가 특유의 분위기가 담겨 있어 만족스러웠다.

 

사연 없는 사람은 없다. 일생을 사건사고를 겪지 않고 성장하는 인생도 없다. 그런 의미에서 그 무렵 누군가라는 소설은 매일 뉴스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담장 너머 우리 이웃 중 누군가의 이야기처럼 읽혀졌고 그 재미 또한 가십을 듣는 것처럼 재미났다.

 

2014년 히가시노 게이고의 신작들이 터져나오고 있다. 벌써 4권째 읽고 있는 듯 한데, 완벽했지만 짧은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약간 아쉬운 감이 없지 않았으므로 다음에 읽게 될 그의 작품은 전작들처럼 장편소설 시리즈의 형태로 출간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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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분의 일
기노시타 한타 지음, 김혜영 옮김 / 오후세시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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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 전까지 영화의 원작 소설인지 몰랐다.  제 6회 오키나와 국제 영화제 황금시사상 수상작인 [삼분의 일]은 은행을 터는 4인조가 배신에 배신을 때리는 소재로 이야기를 이어 나간다. "배신하라! 2억엔이 기다리고 있다" 인가!  만화로도 그려질만큼 매력적인 이야기라는 이야기인데, 기노시타 한타 라는 작가의 작품이 처음인지라 사실 처음에는 약간 산만한 듯 느껴졌다. 시작부분에서 잘 읽히다가 갑자기 흐름이 뚝 끊겨버렸다. 오후 3시 33분에 시작된 이야기가 강도 일주일 전으로 돌아가질 않나 오후 4시 2분으로 진행되다가 엿새 전으로 되돌아가버리기도 했고 진행과 퇴행을 번갈아 하면서 이야기의 흐름이 뚝뚝 끊기는 감이 없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가독성은 떨어지지 않았다. 묘하게도-.

 

캬바쿠라 허니버지에 모인 세 남자를 마리아가 지켜보고 있다. 점장인 '슈'와 겨자색 랄프로렌 스췌터를 입은 돼지 같은 외모의 단골 '가나모리 겐', 마지막 한 사람은 웨이터 고지마 가즈노리다. 급전이 필요한 점장과 웨이터 그리고 단골손님이 모여서 말도 안되는 일을 저질렀는데 그들은 은행을 털었다. 마리아와 함께.

 

하지만 그들의 절반의 성공은 하마 쇼와 시부가키 다미코가 개입되면서 목숨을 걸어야 하는 위험한 상황으로 치닫아버렸고 허니버니에서 일하던 마리아는 화장실 몰카 고발 사건으로 인해 남자 셋을 준비하는 동시에 배신의 아이콘이 되어 범죄에 가담하게 되었다. 꿈을 이루기 위해 은행을 턴 여자, 마리아. 결국 그들 셋이 은행 턴 돈을 정확하게 삼분의 일로 나누는 모습을 지켜보며 이야기를 종결짓는다. 어쩐 일인지 후련한 기분이 든다고 고백하면서.

 

p 338  운이 좋았다. 어째서 그때 신이 미소를 지어 줬을까...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이 은행을 턴 일은 일종의 '로또' 같은 '한방'이다. 누구도 쉽게 행할 수 없으면서 누구나 쉽게 내뱉는 그 말. '은행을 털든가'를 실천에 옮긴 삼인조는 은행 강도 프로젝트를 준비하면서 절박한 심정으로 최선을 다했다. 배신을 눈치 챈 순간에도, 억지스레 꾸며진 순간에도 서로에 대한 믿음이 강하진 않았지만 결국 돈을 나누는 순간까지는 함께 살아남았다. 교훈은 역시 마지막까지 그 누구도 믿지 마라! 인가.

 

술을 너무 좋아해서 술집까지 운영한 적이 있다는 작가 기노시타 한타. 그 특이한 이력만큼이나 독특한 성격이 소설 속에 그대로 묻어나면서 이야기는 오쿠다 히데오의 [공중그네]보다는 진지하면서도 안보윤 작가의 [오즈의 닥터]보다는 훨씬 현실적이다. 그러면서도 재미있고 통쾌하다. 2억엔. 돈이 무엇이길래 속고 속이면서도 즐거워하는 것일까. 목숨마저 바쳐버릴만큼.

 

책보다 영화로 보면 더 재미있을까? 그들의 표정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다면 더 신날 것 같기는 하다. 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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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이 진다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25
미야모토 테루 지음, 서혜영 옮김 / 작가정신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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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너무나 문학적이다. 파랑이 진다라니.....! 낙엽도 아니고 꽃잎도 아닌데.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한 작가 미야모토 테루는 료헤이의 인생 중 4년간을 추적하며 우울한 단면을 짜임새 있게 담아냈다. 일본 내에서 스테디셀러로 세월을 타지 않고 인기를 누리고 있을만큼 작품 내 내용은 매력적이다.

 

교토 대학에 들어갈 성적이 모자랐던 재수생 료헤이는 듣도 보도 못한 대학에 지원하러 갔다가 예쁜 여학생에게 첫눈에 반했다. 뿐만 아니라 어이 없이 테니스부에 입부하고 마는데 이 두 사람으로 인해 그의 대학생활은 결정지어져 버렸다.


 

그는 평범했다. 키도 크지 않고 몸이 근육질인 것도 아니었다. 외모가 남의 눈에 띄일만큼 잘생기지도 못했으며 부유한 부모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정말 평범한 대학생인 료헤이. 재수 끝에 원하던 대학은 아니었지만 얼떨결에 대학생이 되었고 테니스를 취미삼아 하고 있지만 이로 인해 미래가 결정되는 것도 아니다. 첫눈에 반한 그녀와 결혼할 수 있는 환경도 아니다. 그 어떤 것도 결정지어지지 않았고 무엇 하나도 제대로 해낼 수 있을 것 같지 않은 나이 20대. 그래서 그의 20대는 우울하고 파랑빛이다.

 

하지만 이 모든 일이 사회의 일원으로 거듭나기 위한 성장과정이며 주변을 둘러볼 계기가 된다. 결혼을 위해 미국으로 떠난 유코, 가수의 꿈을 꾸던 걸리버, 하나 둘씩 자신의 미래를 위해 현재의 삶과 다른 선택을 하는 주변인들을 보며 그는 부러움과 불안함이 교차하는 마음이 들었을 것이다.

 

책에서 나오는 말처럼 무승부란 애초부터 없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끝까지 버틸 힘을 가지지 못한 쪽은 시간이 아니라 언제나 인간쪽이다. 하지만 그렇다하더라도 파랑이 지는 나이는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시간이다. 그래서 이 제목이 나는 시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여전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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