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 저택의 피에로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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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전일 시리즈"의 원작소설인 요코미조 세이시의 추리소설들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쓰여진 점을 감안하지 않고 보아도 여전히 놀랍고 세련되고 재미나다. 그래서 그의 소설들을 좋아하는데 히가시노 게이고의 이번 추리소설은 읽으면서 흡사 그의 소설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어 설레고 흥분되었더랬다. 정말 어느 페이지에선가 그 더벅머리를 긁적이며 긴다이치 코스케가 등장할 것만 같아서 두근두근.......!

 

 

소장자들을 불행하게 만든다는 피에로 인형을 되찾기 위해 유명한 인형사 고조는 다케미야 산업의 일가를 방문한다. 동서남북으로 뻗은 십자가 모양의 저택은 사람들에게 "십자 저택"으로 불리고 있었는데 모두가 모인 밤, 창업자의 맏딸이자 가문을 이끌고 있는 요리코가 2층 발코니에서 떨어져 죽어버렸다. 사인은 자살로 판명되지만 어딘지 석연치 못한 구석들이 발견되기 시작하고. 드디어 49재의 날에 나타난 고조는 '비극의 피에로'에 대해 알려주면서 이 불행이 인형으로 인한 것일 수도 있음을 사람들에게 각인시킨다.

 

하지만 특이하게도 소설은 중간중간에 인형의 시각에서 사건을 바라보게 하는데 범인을 알려주기 위한 장치라기 보다는 마치 텔레비젼 속에 비치는 것처럼 사건을 더 은밀하고 밀착적이지만 좁게 보게 만들어 아슬아슬한 느낌을 더해주고 있다. 피에로 인형은 다 보았다. 저택에서 살인사건이 날때마다 현장에 있었으며 심지어 범인 곁에 있었다. 하지만 인형은 다 보았으되 가려진 것은 가려진 채로, 각도가 안 맞는 것은 안맞는 채로 보았기에 긴장감만 더할 뿐 범인의 정체를 독자에게 속시원하게 알려주진 않는다. 요리코의 죽음도 무네히코와 미타 리에코의 죽음도 사인이 밝혀지지 않은 채 살인은 계속 일어나고......

 

다케미야가의 둘째딸의 딸인 미즈호와 고조가 설전을 벌이며 얽힌 사건을 풀어내었지만 살인을 막지는 못했다. 다만 모든 사건이 마무리되고 고조의 손에 이끌려 다케미야가를 떠난 피에로는 더이상 '비극을 부르는 피에로'가 아니라 비극의 현장에 나타나는 피에로가 되었다. 그 피에로가 마지막으로 본 휠체어 소녀 가오리의 그 한마디. 찜찜하지만 그 한마디를 뒤로 하고 마지막 책장을 덮었더니 늦은 오후의 햇살은 어느새 슈퍼문이 뜬다는 밤시간으로 달려가 있었다. 탐정물에 너무 심취했던 영향일까. 사건이 사람에 의해 풀어지는 것이 아니라 저절로 풀어지는 형태의 소설은 왠지 물에 휴지 풀리듯한 느낌이 들어 아쉽다. 잘 짜여진 조각들이 아직 덜 맞추어진 느낌이랄까. 깨끗하게 안 맞추어진 느낌이랄까. [십자저택의 피에로]는 재미나게 읽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딘지 모르게 아쉬움을 많이 남겨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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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사적인 시간 북스토리 재팬 클래식 플러스 3
다나베 세이코 지음, 김경인 옮김 / 북스토리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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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회'를 볼 때처럼 내 마음은 일렁이기 시작했다. 좋아하는 영화인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의 저자인 다나베 세이코는 <아주 사적인 시간>으로 내 마음을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이가 서른을 넘긴 여자.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서른이라는 나이도 참 어리고 서툴다. 하지만 20대의 철없음을 갓 지나왔고 30대의 여유로운 마인드 속으로 빠져들기 직전의 나이가 30대 초반이다. 그래서인지 <아주 사적인 시간>에 등장하는 노리코는 어른이기 보다는 아직은 여자 아이 같은 느낌이다.

 

부유한 여자아이. 사랑하는 남자가 있고 모두 그녀에게 호감을 갖고 있는 상태에서 약간은 루즈하게 돌아가는 시간 속 인형같은 그녀. 딱 인형의 집 노라처럼. 몇몇 남자와 연애를 했지만 불같은 사랑을 한 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에 대한 상처는 그리 깊어 보이지 않는 여자, 노리코. 그런 그녀 앞에 어느날 나타난 재력,외모,매너 3박자를 고루 갖춘 남자 '고'. 비록 어머니가 다른 형제들이 지만 아버지의 신뢰와 어머니의 사랑을 담뿍 받고 자란 남자인 고는 그녀 외에도 많은 여자들이 있었지만 그녀와 결혼했다. 물론 결혼 한 이후에도 바람을 피우지 않았다고는 볼 수 없는 남자지만 노리코는 게의치 않았다. 왠지 자유로운 영혼처럼 보이는 그녀는 고와의 결혼 후 상위 1%의 부유함을 누리고 살았지만 마음이 변했다.

 

 

 

p101 비밀을 갖는 건 어른의 자격이죠

p167 한 때 같이 잔 적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여자를 함부로 대하는 남자는 쓰레기다

 

 

 

지독히 사랑하는 남자가 생겨서도 아니다. 더 부유한 환경이 필요해서도 아니다. 남편의 외도로 상처 받은 것도 아니었다. 그저 마음이 변.했.다. '부부관계'라는 연극(?) 속에서 빠져나와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이처럼 쿨할 수 있을까. 그래서 나는 노리코가 이 세상에는 없는 부류의 사람 같았다. 로보트도 아니면서 마음이 이토록 가벼울 수가 있는 것일까.

 

영원한 로맨스는 없었다. 둘이 함께 시작했지만 어느 순간 변할 수도 있는 것이 '사랑'이고 '관계'이니까. 어쩌면 노리코는 그 사랑의 속성을 너무 잘 알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3년. '우리라는 관계가 지속되는 시간이라고 하기엔 너무 짧아 아쉬움이 남지만 노리코를 욕할 순 없었다. 동조할 수 없지만 이해는 되기 때문에. 이상하지만 그랬다. 마음이 움직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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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얌전히 있을 리 없다 단비청소년 문학 7
하나가타 미쓰루 지음, 고향옥 옮김 / 단비청소년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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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원이 넷뿐이라는 것을 이유삼아 동아리 방을 빼라는 말을 들으면 대한민국 청소년들은 어떤 행동들을 할까. 아마 그냥 수긍하는 애들도 있겠지만 반항하거나 sns, 블로그 등을 통해 부당함을 고발하는 아이들도 있을 것만 같다. 하지만 세쓰코와 그 친구들은 좀 다른 방법을 선택했으니......!

 

p59  각 운동부를 대표하는 꽃미남들의 초상화는 대히트 칠 게 확실해. 이 기획, 반드시 돈이 될거야.

 

교장선생님이 빼앗아도 미술부는 끊임없이 그림을 그려댔다. 동아리 방을 빼앗기면서도 '장소 같은 거 없어도 예술을 할 수 있다고 호기롭게 소리쳤으나 게릴라 활동처럼 되어버린 미술부 활동. 4월에 새로 부임한 교장이 학력고사 평균을 올리기 위해 미술부 교실을 뺏어 보충수업 전용 교실을 만드는 것에 반대하며 불꽃을 쏘는 등 저항도 해보았지만 결국 학생들의 힘은 미미했다.

 

화가 나는 부분은 학생들을 향해 퍼붓는 교장이라는 작자의 말투였다.

 

"올해는 아무 실적도 없어. 그런 무능한 녀석들이 무슨 작품을 만들 수 있다고 그래."

 

제대로 해 보지도 못한 어린 싹들을 향해 교육자라는 양반은 '너희들은 루저야'는 식의 발언을 하고 있는 거였다. 조금 전에 끝난 1박2일의 선생님들과는 사뭇 교육관을 지닌 교장. 1박2일에서 크레이지 독 선생은 말했다. "나쁜 선생으로 기억되지만 않으면 되지요."독해보이고 소리지르고 엄격해 보이는 원칙주의자 미친개 선생은 학생전원의 이름을 1번부터 끝번까지 다 외우고 있었다. 이제 갓 20대 후반인 선생은 그렇게 자신만의 방식으로 학생들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의외의 모습이라 도리어 감동이었던 것과 달리 [그들이 얌전히 있을 리 없다]  속 학교 모습은 실망스럽기 그지 없었다. 그래, 너희는 얌전히 있을 필요가 없겠다. 주인공들의 등을 마구마구 두드려주고 싶어지게 만드는 이야기전개 속에서.

 

결국 아이들은 교장을 상대로 도전장을 내던졌다. 학생 예술전에서 입상을 하는 것. 하지만 그 전에 싱글벙글 상가 셔터에 그림을 그리는 일을 시작한 쎄스코. 부원들과 함께. p152 모두 다 같이 한다는 건, 이렇게 굉장한 것이다. 나는 이 한 단어가 이 소설이 있게 한 중심문장이라는 생강이 들었다. 결국 이들은 낙선했다. 하지만 이들이 그린 셔터 그림이 유명세를 타면서 기자가 인터뷰를 오고 난감해진 교장은 '퇴출'을 입에 올리지도 못했다. 결국 이들이 승리했다.

 

이런 이야기. 이런 소설. 이런 드라마를 많이 봐와서인지 눈물이 날만큼 감동적이진 않았다. 하지만 읽는 내내 유쾌했고 통쾌했으며 종국에는 교장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준 것 같아서 기분이 상쾌해졌다. 아이들에게 "반항"이 아닌 "희망"을 가르치는 이야기라 마음 속까지 훈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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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7 - 하 미야베 월드 (현대물)
미야베 미유키 지음, 한희선 옮김 / 북스피어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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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를 저질렀을까.

이름도 기억나지 않고 낯선 맨션에서 모르는 사람과 함께 눈을 떴는데 그 앞엔 거액의 현금과 권총, 피 묻은 천이 놓여져 있다면......! 나 같아도 내가 혹시 '범죄를 저지른 것은 아닐까? 사람을 해친 것은 아닐까?' 불안감이 들었을 듯 하다.

 

팔에 새겨진 '레벨7'이라는 단어를 추적해나가며 자신이 누구인지 찾기 위해 애쓰는 남녀와 상담 중이던 여고생이 실종되어서 그녀를 찾기 위해 "레벨7"의 의미를 뒤 쫓는 카운셀러 에츠코의 이야기가 담긴 소설이 미야베 미유키의 [레벨7]이다. 서스펜스 스릴러로 장르구분 되어 있는 이 소설은 [모방범],[화차] 등의 소설에 비해서는 나와 코드가 맞지 않는 부분이 있는 듯 했다.

 

역사소설을 쓰고 있어도 여전히 사회범죄소설 작가처럼 느껴지는 미야베 미유키는 이 소설 역시 실화사건을 바탕으로 썼다고 밝히고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언급되고 있는 만큼 헷갈릴 수는 있겠지만 메모해가며 차근차근 읽다보니 얽혀 있는 실타래에 비해 풀려지는 실타래가 가벼워(?) 생각보다는 쉽게 읽히는 편이었다. 다만 두 가지의 이야기가 동시에 진행되다보니 복잡하게 보일 수는 있을 듯 하다.

 

줄기는 간단했다. 기억을 되찾아야 하는 두 사람과 사람을 찾아야하는 한 사람의 이야기.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가 교차되는 지점에서 만나게 된 과거의 사건. 누가 범인이고 누가 조력자이며 누가 거짓말을 한 것인지만 이해하면 사건은 의외로 간단하게 설명될 수 있는 것이어서 결말부분이 오히려 반전이 없는 것처럼 보여지는 편이 아쉬웠다면 아쉬웠달까.

 

나흘 간의 이야기로 미스터리를 풀어나간다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하여 그 사건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인물간의 갈등 구조를 만들어 나간다는 것 역시 쉽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은 미야베 미유키였기 때문에 쓸 수 있는 소재가 아니었나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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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처 죽지못한 파랑
오츠이치 지음, 김선영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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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옆 슈퍼마켓에서 일하는 어머니의 아들인 미치오와 친한 마사오는 겁이 많은 아이다. 벽장 틈새에서 무언가 툭 튀어나올까봐 무서웠고 열린 문 틈으로 무언가 들어올까봐 겁나기도 했다. 소심하고 겁많은 마사오가 5학년이 되던 해, 새로 부임한 담임 선생님으로 인해 마사오는 지옥같은 한학기를 겪게 된다. 햇병아리 하네다 선생님은 아이들과 부모님들에게 아주 인기가 좋은 남자였다. 학급신문 형식의 <5학년 타임즈>를 발간하면서 열정적인 모습을 보여주기까지 하던 그 선생님은 유독 마사오에게 잔인하게 굴기 시작했는데 그날은 뭔가 감도는 공기부터 불편했다고 한다.

 

평판이 좋았던 담인 선생님은 학급 내에 공공의 적을 하나 두었는데 그 아이가 바로 마사오였던 것이다. 사소한 오해로 빚어진 이야기는 하네다 선생으로 인해 눈덩이처럼 커져만 갔다. "다 너희들을 위해서야~여러분이 제대로 수업을 안들으니까" 식의 모두를 향한 비판이 그의 평판을 떨어뜨리게 되자 다른 작전을 쓰기 시작했는데

 

"마사오가 하품을 해서, 마사오가 숙제를 안 해 와서, 마사오 때문에..."

 

학급내 모든 안 좋은 일은 마사오의 탓으로 돌려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아이들의 불만은 이제 선생님이 아닌 마사오에게로 향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학급내에서는 아무도 마사오에게 말을 걸거나 함께 하는 친구가 되어주지 않았다. 그렇게 반년이 흘러 학급내 공공연한 왕따로 존재하던 마사오에게 누군가가 보이기 시작했다. 입을 열 수 없게 입술이 꿰매어진 피부가 파란 끔찍한 몰골의 아이. 피부가 파래서 '아오'라고 이름 붙인 그 아이만 마사오 곁을 맴돌기 시작했다. 이상하게도 아오는 마사오의 눈에만 보이는 모양이었다. 아오로 인해 용기를 낸 마사오가 담임의 뒤를 밟고 그에게 복수 하기 위해 그 집에 들어갔다가 들켰을 때도 아오는 함께였다.

 

햇병아리 선생님의 인간성이 범죄인의 그것과 같다는 사실은 이때 증폭되고도 남는데, 선생은 아이를 감금하고 폭행하고 급기야 생매장 하기 위해 산속으로 끌고 들어갔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학부모와 아이들에게 인기있는 선생이고자 시작한 일의 끝이 한 아이를 죽음으로 몰아가는 일이라면 그는 분명 정상인이 아니다.

 

p191  반항하지 않는 양은 조용히 잡아먹히는 먹이가 된다

 

겁쟁이에 아무것도 못하는 아이였던 마사오는 최후의 순간에 변덕을 부려버린다. 자신을 그간 괴롭혀왔던, 죽음으로 몰고가려했던 어른인 선생님을 고발하기 보다는 동정심을 발휘했다. 아이도 이렇듯 자신을 극한의 상황까지 괴롭힌 어른을 배려할 수 있는데 어른이었던 선생은 왜 그러지 못했을까. 사회적으로 너무 많은 시선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은 아닐까. 아무리 그랬다고 쳐도 그는 사람으로서는 해서는 안되는 선택과 행동을 일삼아 온 것이다.

 

새로운 선생이 왔다. 이번에는 여자다. 어딘지 엉성하고 인기도 없다. 하지만 마사오는 이 선생님의 답변을 듣고 안심했다. "노력한 결과가 이거니까 어쩔 수 없쟎니" 이 어른은 정상이다. 하고. 주로 이 작가의 공포소설만 읽어왔던 내게 이 장르의 이야기는 전혀 다르지만 의미있는 이야기로 읽혔다. 학급내 문제를 드러내면서도 인간의 저 깊은 밑바닥의 것을 건드리고 있었으니까. 이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처럼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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