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배와 잃어버린 장미 - 다 빈치 코드의 비밀
마가렛 스타버드 지음, 임경아 옮김 / 루비박스 / 2004년 7월
평점 :
절판


  작가 - 마가렛 스타버드

  부제 - 다 빈치 코드의 비밀

 

  언제나 그렇지만 우리가 알지 못하는 먼 과거의 일은 추측과 가설로 뒤덮여 있다.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라든지, ‘이렇지 못하다는 증거가 없으니까 이게 맞는 거다.’ 또는 ‘이 모든 것은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진실은 지배 세력에 의해 묻히고 왜곡되고 있다’라는 주장도 심심치 않게 나돈다. 특히 마지막에 말한 음모론 같은 것들은 세파에 찌든 일반인들에게 짜릿함을 주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추측은 추측일 뿐이다.

 

  이 ‘소설’도 그런 맥락에서 읽어보았다. 남이 고생해서 연구하고 모은 자료들을 소설이라 치부하는 것은 예의가 아닐지 모르지만,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은 다음에 떠오른 생각은 단 하나였다.

 

  ‘그건 댁의 생각이지.’

 

  이 ‘소설’의 중심 가설은 예수 그리스도의 결혼 여부였다.

 

  동정으로 죽었다는 남자를 왜 그리도 유부남으로 만들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이해 못하겠지만, 어쨌든 그것이었다.

 

  솔직히 예수의 결혼설은 꽤나 매력적인 가십거리였다. ‘그리스 로마 신화’와 ‘삼국지’처럼 예전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꽤나 많은 사람들의 밥줄이 될 것이다.

 

  영화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에서도 다루었었고, 몇몇 책에서도 다루었었다. 신격을 낮추는 대신 인격을 부가시켜 예수를 유대인 레지스탕스 지도자로 묘사하거나, 실패한 정치인으로 그리기도 했다.

 

  마가렛 스타버드 역시 그런 것들의 영향을 받아, 나름대로의 여러 가지 증거들을 제시한다. 커플 룩을 언급한다던지, 자리에 앉아 있는 위치나 그림 구석에 있는 작은 기호들을 문제 삼아 예수와 그의 연인 커플을 공식적으로 인정시키고자 노력했다.

 

  그냥 읽으면 ‘아, 그렇구나.’라고 넘어갈 정도로 말이다. 솔직히 나는 그 성당엘 가보지 않았고, 그 그림을 직접 보지도 못했으며 그 구절이 적힌 원본은 그런 것이 존재하는지 조차 몰랐다.

 

  물론 스타버드 여사는 말한다. "현 교계에서는 이런 사실을 알고서도, 진실을 은폐시키고자 공표하지 않았답니다."

 

  하지만 누가 맞는지 내가 알겠는가? 난 그냥 평범함이 뚝뚝 떨어지는 대한민국의 소시민일 뿐인데. 어느 날 갑자기 외국 사람이 나타나서, 그냥 ‘내가 쓴 게 맞아요, 믿으세요.’라면 믿을 수 있을까?

 

  이건 마치, 외국에서 들여온 수입품을 놓고 ‘외국에서는 다 이 제품을 써요. 영국 왕실에서 입증한…….’라고 목청껏 떠드는 홈 쇼핑 안내문 같은 것이다. 내가 외국을 안 가봤으니 쓰는지 안 쓰는지 어찌 알겠는가.

 

  비판적이고 회의적이라고도 하겠지만, 무조건 ‘맞아, 기존의 것은 다 거짓이야’라고 추종할 필요는 없는 듯하다.

 

  스타버드 여사는 현재 세계가 이렇게 혼란스러운 것은 다 예수의 부인을 매장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인간은 남녀가 만나 서로를 아끼고 사랑할 때에야 비로소 완전해지는데, 지금 교계에는 불완전한 상태의 신인 예수만이 존재하다. 따라서 그의 반쪽을 찾아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모든 고대 신화에 나오는 신들은 부인이 있는데, 왜 유독 예수만 솔로인가라며 의문을 제기한다.

 

  아니, 그냥 예수가 솔로 부대의 수호신이라고 하면 안 되는 건가? 커플의 수호신이 있으면, 솔로의 수호신도 있어야 공평하지 않을까? 책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난, 기존의 교육에 뼛속까지 찌들어 있는 모양이다. 그나저나 이제, '그리스 로마 신화', '삼국지', 그리고 '예수의 결혼설'이 3대 사골이 될 것인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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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녀 이야기 환상문학전집 4
마가렛 애트우드 지음, 김선형 옮김 / 황금가지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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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원제 - The Handmaid's Tale


  작가 - 마가렛 애트우드


  너무도 암울한 미래였다.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 이것이 현실이 아니라는 것에 안도했다. 그 누구도 행복할 수 없는 미래는 너무도 끔찍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 폭탄 같은 불안한 정세는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렇지만, 작가가 말해주는 미래는 꿈도 희망도 보이지 않는 미래였다.


  디스토피아, 즉 암울한 미래를 다룬 작가들은 많다. 그들의 작품은 영화화되어 우리들에게 무시무시한 악몽을 선사했다. 과학의 지나친 발전으로 인한 자연 파괴, 인간성 상실, 빈부의 격차 등이 공통적으로 다뤄지고 있다.


  그리고 그것들을 통해 우리에게 직간접으로 경고하고 있다. 저런 암울한 미래를 맞이하고 싶지 않으면 알아서 잘하라고.


  이 책도 디스토피아를 다루고 있다. 주인공은 시녀. 이름도 없다. 당연히 성도 없다. 물론 불리는 이름이 있지만, 그녀의 본명은 아니었다. 말이 시녀지, 씨받이라고 하면 이해가 더 잘 될까.


  심각한 성범죄, 타락한 도덕, 자연 파괴 그리고 정부의 부패를 보다 못한 일련의 무리가 국가를 전복시킨다. 그리고 그들은 길리어드국을 세우고 성경을 기본으로 한 엄격한 정치를 편다. 성경에 쓰인 대로 그들은 남자들을 위한 국가를 만들었다. 모든 여자들은 사회 활동이 금지되고, 그들은 국가의 관리를 받는다. 계급에 따라 입는 옷의 색까지 결정된다. 그리고 계속된 전쟁으로 남자들은 죽어가고, 방사능으로 인한 오염으로 여성들의 불임률은 높아만 간다.


  여자는 천하다, 그렇지만 어머니는 숭고하다는 교리에 따라, 그들은 모든 여자들을 두 부류로 나눈다.


  임신이 가능한 여자와 그렇지 않은 여자.


  임신이 가능한 여자들은 교육을 받은 다음 상류층 계급의 가정에 배정을 받아, 천사라고 불리는 그 집 남자들의 아기를 낳아야한다. 그리고 출산을 하면 또 다른 집으로. 그들이 받는 교육은 국가와 규율과 남자에 대한 무조건적인 복종과 출산에 관한 것이다. 물론, 이런 시녀들을 배정받는 남자들은 어느 정도 사회적 지위가 있는 남자들이다. 그렇지 못한 남자들은 국가에서 부인을 배정해줄 때까지 금욕을 해야 한다. 있는 놈만 장땡인 것이다.


  주인공인 시녀는 끊임없이 과거를 회상하며 자아를 잃지 않으려고 애쓴다. 그녀의 유일한 희망은 지금은 어디 있는지 모르는 딸이 잘 자라고 있는 것이고, 남편이 어디선가 자기를 구하러 오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행복했던 과거는 현실과 대비되며, 그녀가 처한 지금이 얼마나 비인간적이고 끔찍한지 나타내고 있다.


  그 현실에서는 남자와 여자 다 행복할 수는 없다.


  자신의 남편이 다른 여자를 안는 것을 입회해야 하는 아내나, 이름뿐인 아내 대신 다른 여자에게   사랑을 갈구하는 남자나, 아내도 시녀도 되지 못하고 집안일을 돌보며 살아야하는 여자들이나, 언젠가는 여자를 배정받을 거란 희망을 안고 살아가는 남자들이나.


  누구를 위한 국가이고, 누구를 위한 미래인지 단정을 지을 수가 없었다. 결국 그 누구도 행복한 사람은 나오지 않았다. 행복함을 가장한 가면 놀이를 하는 인간들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여기서 남녀평등은 문제가 아니었다. 문제는 종교와 정치가 너무 한 쪽으로 깊이 치우쳤을 때, 인간이 얼마나 처참하게 몰락하는 가였다. 살아남기 위해 서로 의심하고, 마음을 여는 상대도 하나 없는 단절된 사회가 얼마나 무서운지 주인공의 심리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상대의 눈을 쳐다보지도 못하는 단절된 사회. 그 속에서 그녀는 지나가는 군인들만 봐도 불안에 떨어야했고, 말 한마디 시선 하나에도 가슴 졸여야 했다. 그런 그녀가 마지막으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자살을 하거나, 도망을 치거나, 현실에 순응하는 것이다.


  마지막 결말은 읽는 사람들에게 상상의 여지를 남겨주고 있다.


  과연 그녀가 탈출에 성공했을까?

  아니면 비밀경찰에 잡혀 사형을 당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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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한 서커스
소노 시온 감독, 미야자키 마스미 외 출연 / 와이드미디어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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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奇妙なサ-カス: Strange Circus


  감독 - 소노 시온


  포스터에 영화의 모든 것이 다 들어있다. 같은 립스틱, 같은 옷을 입은 엄마와 딸. 엄마는 중년의   요염하고 섹시한 미를 뿜어내고 있고, 딸은 십대 소녀의 풋풋함을 드러낸다. 두 사람이 다 가시를 가신 장미처럼 향기를 뿜어내는 것이다. 그리고 쓰여 있는 문구들 - 유혹, 공포, 악몽 같은 현실, 훔쳐보기, 자살 시도 그리고 사고사…….


  영화는 꿈과 현실 그리고 과거가 마구 뒤섞여 있다. 어느 순간 무엇이 허구이고 무엇이 과거인지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서부터 환상인지 딴 짓하면서 보면 놓치기 쉬웠다.


  영화를 보면서 백설 공주를 떠올렸다. 동화책에 나오는 얘기가 아니라, 흔히 잔혹 동화라고 말하는 백설 공주 얘기. 그 동화에서 백설 공주는 아버지와 관계를 갖는다. 처음에는 강제였지만, 나중에는 그녀도 좋아한다고 나온다. 그리고 그것을 질투한 어머니에 의해 숲으로 버려지고 만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을까? 공주는 난쟁이들을 만나서 잘 살다가 왕자의 눈에 띄어 왕비가 된다. 그리고 자신을 죽이려한 어머니에게 무시무시한 복수를 감행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영화는 처음에는 백설 공주의 시선으로 진행된다. 그러나 나중에 가면 백설이가 아닌 어머니 왕비의 시선으로 끝맺어진다. 어쩌면 처음부터 어머니 왕비의 시선이었는지도 모른다. 모든 것은 어머니 왕비의 꿈이고 환상이었을지도 모르는 것.


  미치코는 크고 부유한 집에 사는 공주이다. 어머니 왕비인 사유리는 아름다웠고, 아버지 왕은 나이가 들었지만 정력적인 사람이었다. 아버지는 동화 내용과 흡사하게 12살이 되는 어린 딸을 침실로 끌어들인다. 어머니 왕비는 그 사실을 알고 분개해한다. 그 대상이 근친을 저지른 아버지가 아닌, 피해자인 딸이라는 데 문제가 있지만 말이다.


  어머니 왕비의 눈에는 12살이 된, 자신을 빼닮은 아름답게 크는 어린 백설 공주 미치코가 딸이 아닌 한 명의 여자로 보인 것이다. 아버지이자 남편인 왕, 아니 남자인 왕을 사이에 두고 자신과 경쟁을 벌이려는 그런 존재로 여겨졌다. 그래서 질투하고 못살게 군다. 미치코의 표현을 빌면 ‘아버지가 없는 때면, 어머니는 날 죽이려고 하셨다.’라는 것이다.


  그래서 동화는 어떻게 되었을까? 어머니 왕비는 공주를 내쫓을까 아니면 공주는 어머니의 괴롭힘을 견디다 못해 왕비를 죽여 버렸을까? 아버지 왕은? 그에게 그 둘의 목숨을 건 싸움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돈이 있었고, 끊이지 않는 정력이 있었으며, 따라서 그에게 기꺼이 몸을 바칠 여자들이 넘쳐났다. 그에게 어머니 왕비와 백설 공주는 그냥 속된 말로 정액받이에 불과했다. 그의 곁에 남은 사람만 고통스러운 것이다.


  그러면 동화는 그렇게 끝이 날까? 우리가 아는 잔혹 동화나 건전 동화 둘 다, 아버지 왕은 중반으로 넘어가면 나오지 않는다. 딸의 죽음에도, 딸의 생존에도, 그는 아무런 코멘트도 없이 그냥 그렇게 사라져간다. 공주와 왕비는 그는 열외로 치고 서로를 죽이기에만 급급해한다. 살아남은 자가 왕을 차지하는 것일까? 그렇지만 백설이는 아버지 왕이 아닌 왕자와 결혼하는데? 제일 나쁜 사람은 딸을 건드린 아버지 왕인데, 그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 의문에 대한 해답이 영화의 후반부를 놀래게 만드는 반전이자 신선한 충격이었다. 결국 백설 공주는 아버지 왕과 어머니 왕비에게 ‘복수를 하였습니다.’, 내지는 어머니 왕비는 아버지 왕을 죽이고 백설 공주에게 ‘참회를 하였습니다.’, 또는 백설 공주와 어머니 왕비는 힘을 합쳐 아버지 왕을 ‘제거했습니다.’, 혹은 백설 공주와 어머니 왕비는, 특히 어머니 왕비는 아버지 왕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가 되는 것이다.


  어떤 것을 선택하든, 환상은 이어진다. 결국 현실과 마주치기 싫은, 도피하고 싶은 사람들의 마지막 종착점은 자신들이 만들어낸 아름답고 우울한 환상 속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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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보다 무서운 비밀
소니픽쳐스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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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Apt Pupil

  원작 - 스티븐 킹

  감독 - 브라이언 싱어

  출연 - 이안 맥컬런, 브래드 렌프로



  고등학교 3학년인 토드는 학교에서 독일 나치에 대한 수업을 듣고, 학교 도서관에서 더 많은 자료를 찾아보기로 한다. 그런데 그 중 한 장교의 모습이 마을에 사는 노인 아더 덴커와 비슷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토드는 그를 찾아가 다 알고 있다고 협박을 한다. 진짜로 그는 독일 친위대였던 신분을 숨기고 살고 있는 중이었다. 토드는 그에게서 독일군이 자행한 모든 만행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면 신고하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그의 생생한 경험을 들으며, 토드는 악몽을 꿀 정도로 시달린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이상한 감정에 사로잡힌다. 가해자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듣다보니, 마치 자신이 그런 위치에 놓인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이다. 그와 동시에 수십 년 동안 억누르고 있던 아더 덴커의 잔인함도 되살아난다.


  다르면서 비슷한 모습을 서로에게서 본 두 남자는 상대방을 증오하고 두려워하며 경계하기에 이른다. 결국 토드는 그에게서 멀어지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운명은 그들을 그렇게 놔두지 않는다.


  산전수전 다 겪은, 속에 능구렁이 백만 마리는 똬리를 틀고 있는 늙은 노인과 경험은 부족하지만 너무도 영악하고 똑똑한 소년의 만남. 만나서는 안 될 두 남자. 하지만 하늘의 장난인지 아니면 인연인지, 많이 다르면서 닮은 두 사람이 만나고 말았다. 그리고 그건 서로에게 재앙이었다.


  소년을 만나지 않았다면, 노인은 노년에 그런 고초를 겪을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또한 노인을 만나지 않았다면, 소년은 누군가를 증오하거나 계략을 꾸미는 일 따위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둘은 만나버렸고, 서로에 대해 동족 혐오를 느끼면서 살인 공범이 되었다.


  잘 웃고 순진하던 첫인상에서 서서히 무표정하고 속내를 알 수 없는 얼굴로 변해가는 토드. 노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잠깐씩 떠오르는 잔인함과 파괴에 대한 욕망으로 가득한 그의 눈빛은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또한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면서, 그 때의 추억에 젖어드는 아더.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고양이를 오븐에 밀어 넣는 장면에서는 소름이 쫙 끼쳤다. 그게 그의 본성이라는 걸까?


  후반부에 그가 토드에게 묻는다. 그 때 기분이 어땠냐고.

  

  아, 그 순간 몸이 부르르 떨렸다. 원제가 왜 ‘Apt Pupil’인지 알 것 같았다. ‘모범생’ 또는 ‘우등생’이라 번역되는 제목이 너무도 적절하게 느껴졌다. 결국 아더는 토드라는 우수한 제자를 만들어낸 것이다. 학교 선생에게 눈 하나 깜짝 안하고 협박을 하고, 경찰의 눈을 속일 정도로 똑똑한 제자.


  ‘의지’는 전해지기 마련이다. 마음만 먹는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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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스페리아 2 : 딥 레드
다리오 아르젠토 감독, 가브리엘 라비아 외 출연 / 무비스톤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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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Profondo Rosso, Deep Red

  감독 - 다리오 아르젠토

  출연 - 데이빗 헤밍스, 다리아 니콜로디


  DVD 표지는 ‘서스페리아 2 : 딥 레드’라고 쓰여 있는데, 알고 보니 아무 상관이 없는 영화였다. 감독이 똑같을 뿐. 아무래도 서스페리아가 히트 치니까, 수입하는 곳에서 팔아먹으려고 이름을 그렇게 붙인 것 같다.


  사실 서스페리아 시리즈는 따로 있다. 2편이 서스페리아(Suspiria), 2편이 인페르노(Inferno), 그리고 3편이 눈물의 마녀(La Terza madre). 언젠가 기회가 닿으면 다 보고 싶다.


  이 영화는 앞에서 이미 작성한 영화 ‘수정 깃털의 새’를 연상시켰다. 우연히 살인을 목격하는 사람이 주인공이라는 것도 비슷하고, 그가 외국인으로 로마에서 지내는 음악가라는 것도 흡사했다. 거기다 그가 살인 현장에서 인식하지 못했던 뭔가가 중요한 힌트가 되고, 범인을 찾아나서는 것까지. 마지막으로 그를 도와주는 여자가 꼭 있다는 것도.


  아마도 ‘수정 깃털의 새’를 좀 더 변형 발전시킨 게 아닐까 생각한다. 사람은 자기가 처음 만든 뭔가에 강한 애착을 느끼기 마련이니까. 그것을 보완하고 잘 다듬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한 영매가 강연회에서 살인자의 생각을 읽어낸다. 그녀는 두려움에 떨고, 살인자는 그녀를 죽이려한다. 공교롭게도 그녀가 공격당하는 장면을 영국인 재즈 피아니스트 마크가 보게 된다. 그는 기자인 지나와 함께 사건을 파헤치기로 한다.


  스토리는 간단하다. 두 남녀는 범인을 쫓고, 범인은 증거 인멸을 꾀하고.


  중요한 것은 스타일이다. 검은 장갑을 낀 손, 검붉은 배경과 대조되는 건물 대리석의 하얀색. 붉은 피. 기괴하게 비틀린 인형들. 날카로운 유리 조각과 번득이는 칼날.


  그리고 예민하고 자극적으로 울려 퍼지는 노랫소리와 누군가 아주 작게 귓가를 간질이는 은밀한 속삭임. 동요가 이렇게 무시무시하게 들릴 수 있다는 건 이번에 처음 알았다.


  영상과 음향이 보는 이를 영화에 빠져들게 한다. 강렬한 색감이 반복적이면서 자극적인 멜로디와 함께 말이다. 그래서 더 기억에 오래 남는지도 모른다. 유리 조각이 박힌 목과 엘리베이터에 끼인 목걸이 때문에 죽어나가던 여자들을 말이다.


  그리고 어릴 때 기억이 중요하다는 것도 알았다. 평생 가는 트라우마를 아이들에게 남기지 말아야한다. 그게 그 아이를 위한 길이기도 하고, 타인을 위하는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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