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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앙 마그나 감독, 밀라 요보비치 외 출연 / 미디어허브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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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Faces in the Crowd

  감독 - 줄리앙 마그넷

  출연 - 밀라 요보비치, 마이클 쉥크스, 줄리언 맥마흔


  애나(밀라 요보비치)는 남들이 다 인정하는 멋진 남자 친구 브라이스가 있고, 언제나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유쾌한 두 친구를 가진, 학교에서도 인정받는 선생이다. 그런데 어느 날, 친구들과 흥겹게 놀다가 집에 오던 그녀는 인적 없는 다리에서 누군가 살해당하는 현장을 목격한다. 바로 여성들을 죽이고 다니는 연쇄살인범 ‘눈물의 잭’인 것. 범인에게 쫓기던 그녀는 습격을 받고 강으로 떨어진다.


  그리고 그 충격으로 사람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는 ‘안면 인식 장애’ 증상을 겪게 된다. 사랑하는 남자 친구와 친구들, 심지어 아버지의 얼굴조차 알아보지 못하게 된 그녀. 범인은 그녀를 향해 서서히 다가오고, 친구 중 한명까지 그녀 앞에서 살해당한다. 바로 옆에 있으면서도 알아보지 못하는 범인의 마수에서 그녀는 과연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


  영화를 보면서, 간간히 다른 작품들이 떠올랐다. 자세한 것을 밝히면 스포일러가 될 테지만, 중간에 그녀가 다른 사람과 친밀한 관계를 갖게 되는 것은 ‘로라 마스의 눈 Eyes Of Laura Mars’이 연상되었다. 여성만 골라 죽이는 범죄는 흔하고, 나를 막아달라고 범인이 울부짖는 것 역시 어디선가 본 설정이다.


  하지만 이 영화, 중반까지는 꽤나 속도감 있고 긴박하게 펼쳐진다. 범인은 범인대로 증거를 없애고자 살인을 저지르고, 동시에 애나는 알아볼 수 없는 얼굴들 때문에 거의 매일 긴장해야 한다. 범인이 바로 옆에 왔다갔는데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말이다.


  특히 눈을 깜박일 때마다 다르게 보이는 사람들의 얼굴은 섬뜩하고, 호흡 곤란이 일어날 정도로 당황해하는 그녀의 모습은 안쓰럽기까지 하다.


  자기 얼굴조차 매번 달리 보이는 세상에서 산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상상하다가 고개를 젓고 말았다. 아무리 봐도 흥미진진하고 스릴 넘치는 일이 아니었다. 사람은 나와 우리, 그리고 타인을 구분 짓고 살아간다. 내 편과 나의 적을 나눈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 경계선이 무너지면, 난 혼자서 세상에 서 있는 것이다. 거의 발가벗은 무방비 상태로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하니, 주인공에게 감정이입이 되면서 영화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영화는 중반 이후, 그 힘을 급격히 잃는다. 그녀가 최면 요법으로 가장 중요한 힌트를 내뱉는 순간, 범인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영화를 같이 본 남자친구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그 남자가 범인이면, 여자가 불쌍하다. 그렇지?”라고 속삭였다. 그래서 나도 “그러면 그 남자가 아니라, 저 남자겠지.”라고 대답을 했다. 그리고 내 추측이 맞았다.


  중간에 러브 라인은 음, 조금 뜬금없기는 했다. 하지만 불안한 세상에 노출된 그녀에게 유일하게 의지가 되는 사람이었으니, 몸과 마음이 가는 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맨 마지막 장면에 나온, 유일한 그녀의 편을 만들어주려는 제작진의 의도도 있었다고 추측을 했다. 하지만 뭐랄까, 내 기준으로는 바람이었다고 마구 화를 내긴 했지만 말이다.


  그나저나 단 한 번의 파워 섹스로 임신까지 이어지다니, 대단한 능력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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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대들을 위한 인성교과서 : 태도 십대들을 위한 인성교과서
줄리 데이비 지음, 박선영 옮김 / 아름다운사람들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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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원제 - All About Attitude

  작가 - 줄리 데이비

 

  이제 겨우 열 살인데, 이른 사춘기가 아닐까 다소 걱정스러워지는 조카를 위해 고른 책이다. 요즘 들어 부쩍 친구에 대해 고민하고, 반항도 곧잘 하고, 자기 생각은 뚜렷하게 있는 모양인데 표현을 잘 안하려고 하고. 아무리 봐도 사춘기에 접어든 십 대였다.

 

  첫 장을 펼치자 다양한 그림이 눈에 들어왔고, 그 다음으로는 다정한 어조로 차근차근 말하는 작가의 마음이 와 닿았다. 짧지만 핵심만 잘 짚어서, 색색으로 강조한 글귀들이 그림과 적절한 연계를 이루어 ‘아, 맞아. 그렇지. 그렇구나.’라고 공감을 할 수 있었다.

 

  그 중에서 내 마음을 제일 찌르르 울렸던 부분은 ‘기대’에 관한 것이었다.

 

  ‘남들이 여러분에게 품는 기대가 아니라

  여러분이 자신에게 품는 기대에

  맞추어 행동하려고 노력해보세요.’

 

  어머니에게도 권해드렸는데, 마음에 와 닿는 글이 많다면서, 한 번 읽고 끝날 책이 아니라고 아예 당신님 방에 갖다 놓으셨다. 그리고 마음에 드는 문구가 있는 페이지마다 책갈피를 꽂아놓으셨다.

 

  그런데 조카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그림체가 녀석이 좋아하는 스타일이 아니고, 만화가 아니니까. 어머님도 만화책만 좋아하는 애에게 혼자 읽으라고 주기엔 난이도가 높다고 하셨다.

 

  그건 나도 동감한다. 이 책을 쓴 작가나 읽은 우리는 그 시절을 지나왔고 다 겪어보았기에, 공감하고 맞는다고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아직 경험을 못한 일이 많기에, 이게 ‘왜?’하고 의문을 가지거나 흥미를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

 

  확실히 아이들에게 ‘야, 너도 읽어봐.’라고 던져주고 말기에는 책의 난이도라든지 생각할 거리가 많았다. 원래 책을 좋아하는 애라면 모르지만, 아니라면 옆에서 누군가 같이 있어야했다.

 

  그래서 어머니가 해결책을 내셨다. 하루에 한 쪽씩 할머니와 손자가 같이 책을 읽는 시간을 만들겠다고 하셨다. 가능하면 올케까지 같이 할 수 있는 시간으로 말이다. 그리고 한 쪽씩 읽고 서로 얘기를 하다보면, 아이가 조금은 생각을 하고 받아들이는 게 쉽지 않겠냐는 의도셨다.

 

  그런데 그 전에 할머니가 먼저 외울 정도로 읽으셔야 한다고, 며칠 째 틈만 나면 창가에 앉아서 이 책을 읽고 계신다. 이런 책은 한 번에 몰아서 보는 게 아니라, 조금씩 음미하면서 읽어야 한다면서 말이다.

 

  어쩌면 이 책은 무조건 애들에게 ‘읽자’ 내지는 ‘읽어’라고 하기보다는, 엄마가 하루에 한 장씩 외워서 아이들에게 이야기하듯이 해줘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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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 같은 여자 동서 미스터리 북스 103
토마 나르스작 외 지음, 양원달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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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 삐에르 부알로, 또마 나르스잭



  1952년 발표된 추리 소설이다. 아니 추리라기보다는 뭐랄까, 로맨스 스릴러? 그리 길지 않은 중편 정도의 길이. 그렇지만 그 안에 음모, 배신, 스릴러, 복수, 연애질, 불륜, 약간의 동성애 같은 우정 등등이 잘 드러나 있다.


  후우, 정말 골고루 다 들어 있는 일품요리인 것이다. 그냥 평범한 덮밥으로 알고 시켰는데, 오징어에 달걀, 돼지고기 야채 등등이 다 들어 있다고나 할까? 그렇지만 너무 재료가 섞여서 ‘이건 돼지고기 고추장 덮밥도 아니고 오징어 덮밥도 아니잖아! 맛을 못 느끼겠어!’라는 것은 아니다. 이건 마치 요리왕 비룡처럼 첫 맛은 오징어인데 씹으니까 돼지고기의 육질이 씹히는 듯 하더니, 알갱이가 톡 터지면서 입 안 가득히 야채의 향이 퍼지는 그런 미묘하고 오묘하고 신비스러운 맛인 것이다.


  내용은 세일즈맨 라비넬은 애인인 뤼세느와 공모를 해서 부인인 미레이유를 살해한다. 보험금, 그것도 어마어마한 액수의 보험금을 노리고 병약한 부인을 죽인 것이다. 그리고 시체 유기까지.


  여기까지는 완벽했다. 그러나 모든 것이 틀어지기 시작한다. 시체는 발견되지 않았고, 부인이 보낸 편지가, 죽인 후에 보낸 것이 분명한 편지가 배달이 된다. 게다가 부인을 만났다는 사람까지! 이것이 어떻게 된 일일까? 라비넬은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아마도 소설이 발표된 당시에는 꽤 큰 놀라움을 줬을 것이다. 반전이 무척이나 굉장했으니까. 물론 요즘 추리물에 익숙한 사람들이라면 ‘어디서 많이 본 트릭인데?’라고 생각할 것이다.


  라비넬의 시선을 따라가면서 진행되는 소설은 독자가 라비넬이 어떤 심정인지 같이 느낄 수 있게 한다. 물론 살인자의 마음 따위 알고 싶지 않아! 라고 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그의 두근거림과 비열함, 분노, 공포까지 같이 겪으면서 자기도 모르게 두근거리게 될 것이다. 하여간 고전 소설을 읽다보면 요즘 나오는 소설(물론 범죄 소설)들의 트릭이 거칠고 투박하게 나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는 분이 말씀하시길, 모든 SF적 아이디어는 1950년대에 다 나왔다고 하셨는데 그것은 추리 소설에도 적용되는 것 같다. 거의 모든 트릭은 이미 오래 전에 나왔고, 다만 과학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그것이 좀 더 세련되고 멋지게 포장된 것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시간차라던가 원격을 이용한 것은 좀 다른 범위가 될까? 흐음. 그건 좀 더 곰곰이 생각을 해봐야 하니 보류.


  그나저나 인간이 죄를 저지르는 요인은 단 두 가지라고 한다. 돈과 사랑. 물론 이의를 제기할 수도 있다. 불륜이나 그런 것이 아닌, 무차별적인 살인이나 연쇄 살인은 그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말이다. 그러나 대개의 연쇄 살인범들을 보면 어릴 적에 사랑을 제대로 못 받아서 비뚤어진 경우가 많았다. 특히 부모의 사랑. 결핍도 문제고 과잉도 문제다. 한마디로 적절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사랑이 원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소설에는 저 두 가지 이유가 적절하게 나와 있다. 사랑과 돈.


  저런 일을 겪고 싶지 않다면, 돈은 그냥 적당하게 있고 사랑은 안해야 하나? 그렇지만 또 누군가 사랑을 하지 않는다면, 그건 또 그것 나름대로 문제가 생길 테고. 돈은 적당하다는 것이 인간의 욕심과 맞물리면 또 그것도 나름 문제고.


  범죄 없는 세상은 진짜로 불가능한 것일까?


   그런데 아무리 봐도 마음에 제목이 안든다. 남자도 같이 공모했는데, 왜 여자만 악마 같다고 하는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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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형의 신화 읽는 시간 - 신화에서 찾은 '다시 나를 찾는 힘'
구본형 지음 / 와이즈베리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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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제 - 신화에서 찾은 ‘다시 나를 창조하는 힘’

  작가 - 구본형



  읽으면서 문득 어린 시절에 읽었던 진 시노다 볼린의 ‘우리 속에 있는 여신들’ 이 떠올랐다. 아, 지금은 개정판이 나오면서 ‘우리 자신 속에 있는 여신들’이라는 제목으로 바뀌었다.


  두 작품은 그리스 로마 신화의 신들의 특징을 잡아서, 현대에 어떻게 적용해야할 지 말하는 점이 비슷했다. 다른 점은 진 시노다 볼린의 책은 여신들만 나왔지만, 이 책은 신화에 나오는 남신, 여신 그리고 인간까지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에 ‘우리 속에 있는 여신들’을 읽으면서 든 생각은, ‘헐, 우리에게 다중 인격을 요구하는 건가?’라는 웃기지도 않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이불 속에서 하이킥을 하고 싶을 정도로 엉뚱하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을까? 그런데 다시 읽어볼까 찾아보니 없다. 아, 애인님에게 선물로 드렸지. 조만간 빌려달라고 부탁을 해봐야겠다.


  삼천포는 여기까지 가고, 본 책으로 돌아와야겠다.


  이 책에서는 공감하는 부분이 여럿 있었다. 물론 몇몇 경우는 ‘이건 좀 무리수다.’라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아마도 내가 그동안 나이를 먹으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여러 경험을 해봐서가 아닐까 싶다.


  이 글은 신화의 현대적 적용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 현대인들이 무수히 많이 느끼는 감정들을 신화의 인물들에 대입해서, ‘이런 경우에는 이렇게 보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이런 식으로 행동하면 더 나아지지 않을까?’ 정도의 제시를 하고 있다.


  즉, 자기 계발서 라고 볼 수 있다. ('잠재되어 있는 자신의 슬기나 재능, 사상 따위를 일깨움.' 이라는 의미라면 계발이 맞는 표현이다.) 그런데 자기 계발이라는 게, 남이 하라고 해서 다 되는 건 아니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잘 듣거나 읽고, 공감을 하고 느끼는 바가 있어야 1 밀리그램이라도 변화가 있는 법이다.


  사람이란, 남이 뭐라고 하면 반발심을 먼저 느끼는 경향이 있다. 자기 잘못은 생각하지도 않고 말이다. ‘적반하장도 유분수’라는 말이나 ‘몸에 좋은 약이 입에 쓰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이 글은 그런 거부감이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 적어도 초반까지는.


  초반까지는 조곤조곤한 어조로 신화와 현대를 논리적으로 잘 연결시켜, ‘그렇구나. 그럴 수도 있겠다. 맞아, 그런 법이야’라고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그리고 연상 작용의 기발함에 무릎을 친다. 아, 이게 이렇게 연결이 될 수 있구나! 특히 ‘크로노스와 시간’, ‘시시포스와 반복적인 일’, ‘니오베와 허영’ 등은 진짜 ‘오, 그렇구나! 이렇게 해야겠다. 좋다!’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후반이지만 ‘다이달로스와 사유 불능’도 고개를 끄덕였고 말이다.


  하지만 몇 가지, 예를 들면 ‘오디세우스 두 번째 이야기인 교활함’에 관한 것이라든지 ‘안티고네와 불복종’ 그리고 ‘미노스와 추기경과 조소’는 다소 억지스러운 연결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건 내 개인적인 생각이고, 그건 남과 다른 것이지, 틀린 것은 아니다.


  이 글은 적절한 고전 그림의 삽입과 다양한 역사적 인물들의 행동 그리고 그들이 남긴 말들이 꽤나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이런 견해로도 바라볼 수 있다는 새로운 관점을 알았다는 것만으로도 큰 수확이었다.



  그런데 133쪽 두 번째 문단 다섯 번째 줄의 ‘당시에는 비록 남자라고 하더라도 남에게 알몸을 보이는 것이 대단한 수치였기 때문에 왕비는 왕에게 복수하기로 다짐했다.’ 이 부분을 읽고 잠시 혼란스러웠다. 왕비는 여자였고, 그녀가 남자에게 알몸을 보인 것인데 왜 ‘비록 남자라고 하더라도’라고 적혔을까?


  차라리 ‘당시에는 남자끼리라도 남에게’로 썼으면 이해가 더 쉽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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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다른 골목의 추억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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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 요시모토 바나나


  처음 이 작가의 이름을 들었을 때, 과일 이름이라니 참으로 특이하다고 넘겼다. 그리고 별로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 당시 나는 다른 작가에게 푹 빠져있었기 때문이다. 친구는 ‘바나나 너무 좋아!’라고 종종 말을 해서, 과일이 좋다는 건지 작가가 좋다는 건지 나에게 고민의 시간을 던져주기도 했다.


  그러다가 이 책을 접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내가 난생처음 읽는 요시모토 바나나의 책이었다. 『유령의 집』, 『엄마!』, 『따뜻하지 않아』, 『도모 짱의 행복』 그리고 『막다른 골목의 추억』 이렇게 총 다섯 편의 이야기가 들어 있다.


  각각의 이야기는 평범한 삶을 살아가다가, 우연히 어떤 한 사건으로 자신과 주변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되는 여자들이 주인공이다. 그리고 그 깊은 사색의 시간을 통해 그녀들은 지금까지와 다른 세상을 보는 시각을 갖게 된다. 그들이 겪는 사건은 어찌 보면 극적이기도 하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누구에게나 일어날 법한 일들이다.


  『유령의 집』은 아르바이트에서 만난 두 남녀의 만남과 헤어짐 그리고 재회를 다루고 있다. 비슷한 환경에서 자라 비슷한 미래를 갈 것 같은 둘. 하지만 여자는 그 길을 원했고, 남자는 변화를 원했다. 단순한 동류의 호감이라고만 생각했던, 그것이 사랑의 시작이었다는 걸 깨닫기 전에 헤어진 두 사람. 하지만 운명의 순간이 그들에게 찾아왔고, 둘은 그것이 사랑이었다는 걸 깨닫는다.


  글은 차분한 어조로 내가 생각하는 ‘나’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내가 보는 ‘이와쿠라’와 내가 생각하는 ‘이와쿠라’ 그리고 내가 따뜻한 눈길을 보낸 ‘노부부’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리고 역시 확신에 찬 어조로 그와 내가 만들어갈 미래에 대해 말하고 있다.


  어쩌면 둘을 맺어준 것은, 그들이 공양하고 배려해줬던 노부부의 유령일 수도 있다. 아니면 비슷한 환경에서 자라 비슷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비슷한 길을 걷는 사람들만이 느낄 수 있는 뭔가가 있을지도.


  『엄마!』는 회사에서 쫓겨난 사람의 무차별 테러로 약이 섞인 카레를 먹고 쓰러진 여직원이 주인공이다. 자신은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의외로 충격이 컸던 그녀. 그 사건을 계기로 그녀는 언제나 옆에 있어주는 약혼자와 자신을 길러주신 조부모 그리고 아기였던 자신을 버리고 간 엄마에 대해 차분히 생각할 기회를 갖는다. 그리고 그럴 수밖에 없던 조부모와 엄마에 대해 다른 견해를 갖고 양쪽을 다 이해하기로 마음먹는다.


  결국 그녀는 엄마를 용서하면서, 자기 자신에 대해 확신을 갖고 앞으로 한 걸음 나아갈 용기를 갖는다. 일에 치어 사는 것도 좋지만, 나와 남을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는 것도 좋지 않을까라고 주인공은 알려주고 있다. 꼭 독극물 테러를 당해야만 그런 기회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따뜻하지 않아』는 어린 시절 가장 친했던 친구를 잃은 기억을 떠올리는 주인공이 나온다. 부잣집의 서자이지만, 누구보다 자신과 남을 사랑했던 천사 같은 친구. 그와의 짧았던 만남을 추억하며, 주인공은 가정이란 무엇인가 생각해본다.


  이 이야기에서 가장 인상 깊은 것은 마코토의 대사였다.


  “그건 집 안에 있는 사람의, 마음속 빛이 밖으로 비치니까, 그래서 밝고 따뜻하게 느끼는 거 아닐까? 난 그렇게 생각하는데. 불이 켜져 있어도 썰렁한 경우도 많은걸 뭐.”


  무슨 꼬맹이가 이런 애늙은이 같은 소리를 하는지. 하지만 그런 감수성이 예민한 소년이었기에, 그런 삶을 살았던 것은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그리고 우리 집의 불빛은 어떻게 보일지 궁금하다. 남들에게 따뜻하게 비춰지면 좋을 텐데.


  『도모 짱의 행복』은 아버지의 부정으로 감정이 메말라버린, 아니 내적으로는 풍부한 감수성을 갖고 있지만 겉으로는 표현하지 못하는 주인공이 나온다. 남녀의 애정에 대해 한없는 회의와 불신을 가진 그녀가 우연히 마음에 드는 남자를 만난다. 그리고 조금은 마음의 문을 열어나가는 과정이 담담하게 그려져 있다.


  어쩐지 너무도 매사에 무덤덤한 그녀이기에, 약간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도 있었다. 물론 내가 그런 일을 겪어보지 않았으니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막다른 골목의 추억』은 너무도 편안한 솜털 안에서 생활하던 여주인공이 나온다. 자신을 너무도 사랑해주는 가족이 있고, 멋진 약혼자가 있는 그녀. 하지만 다른 지방으로 전근을 간 약혼자의 연락이 조금씩 뜸해지던 어느 날. 그를 찾아간 그녀는 예상은 했지만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진실을 알게 된다.


  실연의 아픔을 달래기 위해, 그녀는 삼촌이 여행을 떠난 집에 머무르게 된다. 거기 아래층에 작은 가게가 있는데, 상호명이 바로 ‘막다른 골목의 추억’이었다. 그 가게의 주인인 비슷한 또래의 ‘니시야마’를 통해 그녀는 조금씩 슬픔을 잊어간다. 아픈 과거가 있지만 그에 굴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자신을 개척하는 그의 모습에서, 그녀는 조금씩 변해간다.


  그 과정이 조금은 눈물겹고 안타까우면서도 답답하기도 했지만, 결국에는 속이 뻥 뚫리는 시원함을 맛보았다. 남자에게 받은 상처를 다른 남자에게 의지하여 보상받으려는 연약한 여주인공이 아니어서 더 괜찮았다.


  ‘요시모토 바나나가 보내는 따스한 힐링 메시지’라고 책날개에 쓰여 있는데, 잘 모르겠다. 100% 완벽한 힐링은 없다고 생각한다. 특히 마음에 커다란 상처를 입은 경우에는 말이다. 완벽한 힐링이 없기에, 완벽한 방법도 없다고 본다.


  나는 어떻게 상처를 극복했을까? 생각해보니 참으로 다양한 방법을 써먹었던 같다. 온전하게 그 상처를 느끼고 모든 감정을 쏟아 부어 탈진 상태가 된 다음, 내 자신을 위한 변명도 만들어 보았고, 대응책도 연구해보고, 미화시키기도 했다. 다른 것으로 대체하기도 하고 말이다.


  어쩌면 이 책도 그런 방법 중의 하나를 제시하고 있다고 느꼈다. 각각의 주인공들은 사건을 통해 더 많은 생각을 하고, 다른 관점으로 자신과 주변과 사건을 바라보기도 했다. 그러면서 그 아픔을 이겨낼 힘을 가졌고 말이다.


  언젠가 지인과 나누었던 대화가 떠올랐다.


  “그 사람과 헤어지면 세상이 무너지고 죽을 줄 알았는데, 세상은 전혀 변하지도 망하지 않았어요.”

  “내가 없어도 세상은 하나도 달라지지 않아요. 어차피 지구는 돌고, 시간을 흘러가는 법이니까요.”


  그래, 지금 어떻게 해볼 수 없을 정도의 상처를 가지고 있다면 생각해보자. 이런 일을 겪는 사람이 이 지구상에서 나 혼자는 아닐 거라고. 내가 최초도 아니고 유일무이도 아니고 최후도 아닐 거야.


  기지개를 켜고, 맛있는 걸 먹어보자. 그리고 이런 책을 한 권 읽으면서, 마음을 다스리고 생각을 깊고 넓게 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런데 너무 자주 읽으면 약발이 떨어지니까, 아주 가끔씩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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