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컨즈 어파트
안토니오 니그렛 감독, 사만다 드로크 외 출연 / 미디어허브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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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Seconds Apart

  감독 - 안토니오 니그렛

  출연 - 올란도 존스, 에드문드 엔틴, 게리 엔틴

 

  2011년도 부천 국제 판타스틱 영화제 상영작

  2011년도 애프터 다크 호러 페스트 출품작

 

  ‘부천영화제를 충격에 빠뜨린 놀라운 반전을 만난다! 쌍둥이 형제를 통해 인간의 악마성을 탐구하다!’라는 광고 카피에 ‘혹시나’하는 마음과 ‘어차피 저게 다겠지…….’라는 생각이 마구 충돌했던 영화. 하지만 솔직히 포스터에 나오는 쌍둥이 형제가 잘 생겨서 보기로 결정했다. 아, 이건 애인님에게는 비밀! 애인님에게는 그냥 호러 스릴러 영화니까 보자고 했다.

 

  카메라를 들고 다니면서 사람들의 행동을 찍는 쌍둥이 형제가 있다. 오직 그들만의 세계에서, 다른 사람의 접근은 허용하지 않는 조나와 세스. 비정상적으로 보일 정도로 친밀한 유대감을 가진 둘에게는 비밀이 있다. 그러다가 세스가 한 여학생과 사귀게 되면서, 둘의 관계는 금이 가기 시작한다. 설상가상으로 학교에서 일어난 네 학생들의 자살 사건에 의심을 가진 형사가 둘을 조사하기 시작하고, 그들을 의심했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죽어나가는데…….

 

  영화는 초중반까지 그들의 기이한 능력과 그것을 어떻게 활용하는지 소름끼칠 정도로 담담하게 보여준다. 무표정하게 죽어가는 사람을 보다가, 미소 짓는 두 형제의 얼굴이 그렇게 무서울 수 없었다. 그리고 그런 분위기가 후반까지 그럭저럭 연결되면서, 긴장감을 놓지 않는다.

 

  환각과 현실 그리고 범죄 현장과 평온한 일상을 번갈아보여주면서 적절하게 긴장감과 느슨함을 유지시킨다.

 

  하지만 한편으로 영화는 불친절했다. 뭐 하나 명확하게 말해주는 것이 없다. 그냥 관객들에게 짐  작을 해보라고 넌지시 떡밥만 잔뜩 뿌려줄 뿐이다.

 

  쌍둥이는 카메라를 들고 다니면서, 사람이 죽는 장면을 찍는다. 그리고 그것을 재생하면서 ‘느낌이 없다.’고 말하며 아쉬워한다. 도대체 그들이 원하는 게 뭐였을까? 흥분? 만족감? 오르가즘? 행복감? 두려움? 공포?

 

  영화 마지막 부분에서야 그들은 ‘느낀다.’고 말했다. 그리고 ‘아름답고 겁이 난다.’고도 말한다. 대충 감은 오지만, 정확히 뭐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덕분에 애인님과 아주 잠깐 토론의 시간을 가지긴 했다.

 

  그들이 왜 그런 짓을 하는지 동기 부분이 불명확했기에, 영화는 그냥 미친놈들의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그냥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원래 미친놈의 정신 상태는 보통 사람이 이해할 수 없는 법이니 말이다.

 

  실험의 결과로 그들이 그렇게 된 것인지 아니면 원래 태어날 때부터 그랬는지, 제대로 드러났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물론 형사가 클리닉을 수사할 때 ‘혹시나’하는 생각이 들긴 했다. 그리고 그들의 엄마 대사에서도 얼핏 짐작은 간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하지만 내가 생각한 게 맞는다는 느낌은 강하게 온다. 클리닉에서 처방해준 약물의 부작용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또 한 가지. 형사가 가끔 보는 환상은 도대체 왜 그런 걸까? 과거에 그가 당한 사건과 연관이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그는 형사에 있으면 안 되는 사람이 아닌가? 음주 취조에 음주 운전을 하는 사람이니 말이다. 형사가 날카롭고 예리하긴 하지만, 몇몇 부분에서는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나 같이 붙어있던 둘의 사이가 악화된 것은 동생에게 여자 친구가 생긴 이후부터였다. 형에게서 벗어나 독자적으로 자기만의 색을 찾으려는 동생 세스. 그런 그를 용납하지 못하는, 오직 동생과 자기만의 세상을 꿈꾸던 형 조나.

 

  이 영화는 어쩌면 소년이 청년으로 자라는 변화의 시기를 쌍둥이 형제의 상황에 빗대어 표현했을지도 모른다. 사람이 커가면서 놓아야 할 것과 버려야 할 것 그리고 간직해야할 것의 구별에 대해 말하는 것 같았다.

 

  그것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 어떤 결과가 오는지, 영화는 보여주고 있었다. 지나친 집착은 좋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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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인 화성인 우주인 - 움베르토 에코가 들려주는 이야기
움베르토 에코 지음, 김운찬 옮김 / 웅진주니어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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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부제 - 움베르토 에코가 들려주는 이야기

  작가 - 움베르토 에코

  그림 - 에우제니오 카르미



  움베르트 에코의 이름 때문에 고른 책이다. 겉표지에 적힌 문장을 보는 순간, ‘이 사람이 아동용 책을 썼다니! 대박!’이라는 놀라움과 동시에 ‘어린이들을 위한 글은 어떻게 다를까?’라는 의문도 들었다. 


  설마 아동용 책에도 주석과 별첨이 잔뜩 달려있을까? 이런 오만가지 생각을 하면서, 책장을 넘겼다.

눈에 먼저 들어온 것은 글보다 그림이었다. 종이를 찢어 붙이기도 하고 다양한 상징과 기호로 가득한 그림을 보는 순간, 에코의 글을 그림으로 표현하면 이렇게 되는 구나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왜 그랬는지 정확히 모르지만 말이다.






 글은 평범하고 담담한 어조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첫 번째는 폭탄 만드는 것을 좋아한 한 장군의 이야기. 두 번째는 우주로 나간 서로 다른 국적의 우주 비행사 이야기.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는 외계인을 만나나 우주 탐험가의 이야기다. 이 세 가지 짧은 동화를 통해, 작가는 전쟁의 위험성, 사람 사이의 이해 그리고 환경 보호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얼핏 보기에는 그림이 많아서 어린 아이들이 보는 건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한쪽은 글자, 다른 쪽은 그림으로 이루어져 있고, 글자가 한 페이지를 가득 채우기도 하고 한두 줄만 적혀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 책은 확실히 말하지만 저학년용은 아니다.


  이야기의 내용이 거의 다 비유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첫 번째 얘기에서는 부자들과 장군이 결탁하는 내용이 나온다. 하지만 대놓고 둘이 손을 잡았다거나 음모를 꾸민다고 말하지 않는다. 다만 부자들이 “우리는 이 많은 폭탄을 만들려고 엄청나게 많은 돈을 썼어요. 그런데 이렇게 곰팡이가 슬게 내버려 둘 겁니까?”라고 말한다. 그러자 장군은 전쟁을 일으키기로 한다. 그제야 위험을 알게 된 사람들은 폭탄을 만들라고 장군에게 권유한 자신들의 행동을 반성한다.


  두 번째 이야기에서 미국, 러시아 그리고 중국이 각자 우주선을 발사한다. 강대국 세 나라를 의미하는 것이다. 세 명의 우주인들은 화성에 도착했지만, 서로를 믿지 못한다. 그런데 그 이유가 단지 말이 달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가까워지는 계기는 ‘엄마’라는 단어의 발음이 서로 비슷해서였다. 화성인과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이유도 남을 불쌍하게 여기는 감정의 상징인 눈물 때문이었고 말이다.


 세 번째 이야기에서 외계인들이 우주 모험가과 나누는 대화 역시, 많은 상징과 비유와 은유가 숨어 있었다. 우주 모험가가 자랑하는 지구의 과학 문명과 외계인이 바라본 그 폐해를 대비시키면서, 무분별한 개발의 위험성과 자연 보호가 얼마나 중요한지 말하고 있다.


  이런 식이니, 열 살 난 조카가 재미없다고 툴툴거리는 것도 당연했다. 어쩌면 이 책은 고학년, 아니 어른들을 위한 우화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림 때문에 어른들이나 고학년 내지는 중고등학생은 거들떠도 안 보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읽어볼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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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의자 X의 헌신 - 제134회 나오키상 수상작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 3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억관 옮김 / 현대문학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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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 히가시노 게이고



  아, 이토록 자아도취적인 사랑이 있을 수가 있다니! 책장을 덮은 다음에 느낀 감상이었다.


  추리가 아니므니다. 로맨스, 그것도 짝사랑 이야기이므니다.

  추리를 가장한, 한 남자의 지독한 사랑과 집착을 그린 이야기.

  보답 받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사랑하기에 모든 것을 희생하는 이야기.

 


  이 소설을 내 나름대로 정의한 문장들이다. 살인이 나오고, 증거 조작과 은닉도 일어나지만, 소설을 이루는 가장 기본은 바로 사랑이었다. 그것도 짝사랑!


  물론 현대의 거의 모든 범죄는 ‘돈’과 ‘감정’에 의해 일어난다고 한다. 하지만 그건 질투나 배신, 증오 같은 부정적인 감정들이 원인이었다. 이 영화처럼 집착이 쩔지만 숭고하고 가장 인간적인 감정으로 일어나는 것은 좀 드물었다. 내가 아는 한도에서 말이다.


  이 책은 물리학자 ‘마나부’ 교수가 등장하는 소설이다. 아, 단편을 먼저 읽었는데 어쩌다보니까 장편의 감상을 먼저 쓰게 되었다. 하지만 여기서는 그가 주인공은 아니다. 그가 사건을 풀어나가긴 하지만, 이 글의 주인공은 ‘용의자 X’이다.


  도서 추리물이라는 것이 있다. 초반에 범인이 사건을 저지르고 은폐한다. 그리고 증거를 조작해놓고 헛다리를 짚는 경찰을 비웃다가 결국은 잡히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간단히 말하면, 범인이 주인공인 소설이다.


  이 책도 그런 구성을 따르고 있다. 그녀가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지른다. 용의자 X씨는 마음에 두고 있는 그녀가 경찰에 잡혀가게 둘 수 없기에, 모든 것을 계산하고 조작한다. 그의 함정에 빠진 경찰들이 우왕좌왕하는 동안, 마나부 교수는 진상을 파악하고 진범과 용의자 X의 정체까지 찾아내는데…….


  후우, 진짜 용의자 X씨의 사랑은 깊고 치밀하고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안쓰럽기까지 했다. 얘기를 제대로 나눠본 것도 아니고, 손을 잡아본 사이도 아니고, 심지어 그녀는 그의 이름도 모르는데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려고 했다.


  하지만 어떤 의미로 그의 사랑은 보답 받지 못했다. 그녀는 양심이라는 이름 아래, 그를 버렸다. 어쩌면 마음에도 없는 사람이 자기를 도와주겠노라 들이대는 것이 싫었을 수도 있다. 별 상관도 없는 사람이 오지랖 넓게 행동하면, 반감이 생기기 마련이다. 또는 마음의 빚을 지고 살 수는 없었을 지도 모른다.


  그러면 차라리 처음부터 싫다거나 그런 호의를 받을 이유가 없다고 거절을 할 것이지……. 그녀가 너무도 싫었다. 어쩐지 착한 척 하는 것 같았다. 물론 그녀에게도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었지만 말이다. 그래도 역시 남에게 민폐는 끼치지 말아야하는 건데.


  하지만 용의자 X씨의 사건 조작은 아무리 읽어도 참으로 훌륭했다. 우아, 어떻게 그런 계획을! 그 짧은 시간에! 바꾸어 말하면, 그는 천재!


  하지만 조금은 씁쓸하기도 했다. 그가 자신의 꿈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상황이었다면, 그래서 그녀를 만나지 않았다면, 어쩌면 그는 아주 엄청나게 뛰어난 수학자가 되어 이름을 날리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안타까웠다.


  하지만 이건 내 생각이고, 그는 나름 행복했을 것 같다. 적어도 그녀가 그를 바라봐줬고, 이름을 알아줬으니까. 그리고 아마 그녀는 죽을 때까지 그를 잊지 못할 것이다. 그에겐 그것만으로도 충분했을지도 모른다.


  그게 짝사랑인지 집착인지 나는 구별을 잘 못하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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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틀 그라운드
아담 지에라쉬 감독, 레이샤 헤일리 외 출연 / 미디어허브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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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Fertile Ground

  감독 - 아담 기에라스크

  출연 - 게일 해롤드, 레이샤 하일리, 첼시 로스, 제이미 바스만


  애프터 다크 호러 페스트 출품작


  이 감독의 전작을 찾아보니, ‘오텁시 Autopsy’라는 작품이 눈에 들어왔다. 아, 정확한 내용은 잘 기억안나지만 딱 한 장면. 병원에 있던 미친놈이 우연히 들른 대학생의 장기를 주렁주렁 마치 나뭇가지가 울창하게 퍼진 것처럼 병실 가득 걸어놓은 장면만 생각난다. 그것도 산 채로.


  이 영화는 그렇게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상황을 생각하면 좀 섬뜩하긴 하다. 어쩌면 내가 여자라서, 여자가 주인공인 영화 그것도 특히 임산부나 어린 소녀가 나오는 영화에 더 무서움을 느끼는 걸지도 모른다. 임신을 해본 적은 없지만, 어쩌면 내가 겪어보지 못한 것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갖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친구들을 불러서 임신 축하 파티를 하던 중, 에밀리는 유산을 하고 만다. 다시는 아기를 가질 수   없다는 말과 유산의 우울증이 겹친 그녀. 남편 네이트는 그런 그녀를 위해 시골의 어느 집으로 이사를 한다. 화가인 남편의 작업실은 별채에 만들고, 적응을 하던 그녀. 하지만 지하실에서 그 집의 원래 주인에 관한 물건을 발견하면서, 점차 이상한 일이 일어난다.


  전 주인 부부의 결혼기념일이나 임신 시기가 자신들과 비슷하고, 남편과 죽은 주인의 얼굴이 너무도 비슷한 것이다. 문제는 전 주인은 남편의 손에 아내가 살해당했다는 것. 그와 동시에 그녀는 환청과 환각에 시달린다. 급기야 집에서 해골까지 발견되면서, 그녀의 불안감은 극도에 달한다.


  음, 처음 보는 영화에서 익숙한 예전 영화의 향기가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 새로 이사한 집에 뭔가가 있어서 영향을 받는 소재는 흔하다. 제일 유명한 게 아마 영화‘아미티빌 호러’일 것이다. 이후 비슷한 설정의 영화가 많이 나왔고 말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거기에 한 가지 더 첨부시켰다. 바로 가족력이다. 대대로 자살이나 살인 실종같은 비극적인 과거를 가진 집안. 그리고 그 가문의 후예가 살인을 저지른 조상과 똑같이 생겼다는 것은 그냥 우연일까? 아니면 조상이 살인자면 후손도 당연히 그 길을 걷는 걸까? 이건 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부모가 살인자라고 해서 자식까지 그러라는 법은 없으니까.


  가문과 집의 저주가 뒤엉키면서 영화는 나름 으스스한 분위기를 내려고 했다. 하지만 부족했다. 그것도 음료수 이름처럼 2%가 아니라 한 200% 정도? 흔하지만 나름 매력적인 저 두 가지 소재를 가지고 이렇게 느슨하고 맥 빠지는 영화를 만들다니, 아쉽기만 했다.


  중간 중간에 영화의 챕터처럼 소제목이 나오는데, 사실 그 부분이 왜 들어갔는지 모르겠다. 발단 전개 절정 결말이라고 아예 대놓고 광고를 하는 영화라니. 이건 마치 이제 놀랄 준비하라고 말하는 것과 흡사했다. 이건 공포 영화인데 말이다! 공포 영화는 마치 남자가 여자를 유혹할 때 천천히 에로틱한 분위기를 만들면서 식당에서 침대로 리드하는 것과 비슷하다. 초반에는 평온하다가 서서히 조여 오는 오싹함으로 분위기를 잡으면서, 중간에 두어 번 리드미컬하게 놀라움을 주고 결정적 한 방의 충격을 줘야 하는 법이다. 그런데 그걸 대놓고 알려주다니……. 실망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아미티빌 호러’를 다시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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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풍선이 남작의 모험 환상문학전집 13
루돌프 에리히 라스페 지음, 귀스타브 도레 그림, 이매진 옮김 / 황금가지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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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Baron Munchausen

  작가 - 루돌프 에리히 라스페

  삽화 - 귀스타브 도레

 

  어릴 때, 세계 명작 동화 전집이 있었다. 30권짜리였는데, 웬만한 세계 명작은 다 들어 있었다. 물론 완역본이 아니라, 어린이용이었다. 거기서 지금도 생각나는 아주 웃긴 귀족 아저씨의 이야기가 있다. 얼마나 뻥을 잘 치는지, 읽으면서 이정도 거짓말이라면, 국보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 때는 그냥 웃긴 얘기라고 넘겼다. 다른 재미있는 글들이 많았으니까.

 

  그러다가 황금가지에서 완역본이라고 나온 것을 보고는 냉큼 사긴 샀는데, 어찌된 일인지 읽을 기회가 좀처럼 생기지 않았다. 그 때는 아마 추리 소설에 푹 빠져있을 때였다고 기억한다. 그리고 드디어 이번 기회에 읽게 되었다.

 

  다 읽은 소감은 ‘이 정도 거짓말과 말빨과 뻔뻔스러움이라면 세계 문화유산으로 남겨야지’였다. 어쩌면 이렇게 유창하고 재미있게 이야기를 진행시킬 수 있는지, 어떻게 이런 엄청난 상상력을 가졌는지 부러울 뿐이었다. 아니, 그렇다고 거짓말을 배우고 싶지는 않다. 그건 절대 안 될 일이다. 다만 능숙한 이야기 전개와 무한한 창의력이 부러울 뿐.

 

  생각해보니 이 남작은 아는 것도 많고, 돌아다닌 곳도 꽤 있는 것 같았다. 역시 사람은 아는 만큼 보이고, 아는 만큼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모양이다. 하긴 아는 범위가 다르면, 상상력의 크기도 다르다고 어디선가 들은 기억이 난다.

 

  콩줄기를 타고 올라가서 달에 있는 은도끼도 찾아오고, 화산 속으로 내려가 불카누스와 그의 부인인 비너스를 만나거나, 곰 수천마리를 죽이기도 하고, 돈키호테를 만나며 달에 가서 이상하게 생긴 원주민을 만나고 돌아왔다는 얘기는, 평범한 상식을 가진 사람의 머리에서는 나올 수가 없는 얘기이다.

 

  역시 아는 게 많아야 사기도 그럴 듯하게 칠 수 있다는 결론이다. 그렇다고 그가 사기꾼이라는 말은 아니다!

 

  그런데 요즘은 병적으로 거짓말하는 사람을 이 남작의 이름을 따서 ‘뮌히하우젠 증후군’이라고 하는데, 그건 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아저씨는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라, 세계 각국을 돌아보지 못한 이들과 융통성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갖가지 풍물과 다른 시각에서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고 본다. 어차피 소설은 판타지니까. 나만 그렇게 생각하나?

 

  삽화도 꽤나 인상적이었다. 귀스타브 도레는 19세기 미술사에 주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환상적이며 풍자적인 세계를 그린 화가라고 한다. 어딘지 모르게 ‘풍속의 역사’에서 본 듯한 그림체이다. 글과 적절하게 어울리는 느낌이 들었다. 은근히 이 글의 내용은 다 거짓말이고 풍자적이라고 그림이 말해주는 것 같았다. 글의 화자는 계속해서 자기 이야기는 진실이라고 하는데 말이다.

 

 

 

 

  그런 숨겨진 묘미가 있는, 재미있는 글이었다. 아, 나도 상상력이 무궁무진 독창적으로 튀어나왔으면 좋겠다. 나쁜 짓을 하려는 건 아니니까, 제발 퐁퐁 솟아났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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