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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도미크 아세닌 거라드, 호르헤 몬테시


  오멘 시리즈의 최종편 4. 리메이크는 제외한다.


  동양에서는 죽을 4라고 싫어하는 불길한 숫자. 그 때문일까? 이 영화, 죽을 쒔다. 후속편이 전작을, 그것도 엄청난 흥행을 한 경우라면, 엄청난 부담감과 기대를 안고 출발한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이 4편. 보면서 입에서 욕과 더불어 ‘너무 재미없다’는 말이 절로 튀어 나왔다.


  3편에서 데미안이 죽었다. 지가 예수님이 아닌 다음에야, 죽은 지 3일 만에 부활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은 신성 모독이라 밥줄이 끊길 우려가 있기에 제작사에서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대신 다른 방법을 이용했다.


  어느 젊고 촉망받는 신진 정치인 부부가 딸을 입양한다. 그 아기는 무럭무럭 커서, 말상의 귀여운 소녀가 된다. 단지 애가 아빠만 좋아하고, 애들과 어울리지 않으며, 욕 잘하고, 어른 알기를 뭐같이 알아서 그렇지.


  그리고 이번에는 엄마가 아이의 정체성을 의심한다. 자기가 낳은 아이가 아니라, 의심하기 쉬운 걸까? 아니, 데미안도 사실 그 엄마가 배아파 낳은 아이는 아니었는데 말이다.


  하여간 아이의 뒷조사를 하던 중에 알게 된 무시무시한 사실들……이라지만 약간 억지스러운 설정이었다. 내가 과학 쪽에는 무지해서일지도 모르지만. 차라리 소설 ‘브라질에서 온 소년들’이 더 설정 상으로 낫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건 종교적인 것과는 안드로메다를 왕복할 만큼 거리가 멀지만.


  이 영화에서는 거꾸로 된 십자가 형상이 자주 등장한다. 그리고 그 때마다 일이 벌어지고. 그래서 그 모양이 나오면, 아, 누가 또 죽겠구나하고 예측을 할 수 있었다. 긴장감이 떨어졌다는 말이다.


  가장 한숨이 절로 나왔던 장면은 바로 갓 태어난 아기의 손바닥을 클로즈업할 때였다. 아이의 손바닥에 666이 불룩 튀어나와있다. 저렇게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곳에 마크가 있으면 어쩌라고, 이 XX같은 개념 없는 제작자들아! 원래 오멘 시리즈의 장점이 남들은 모르게 은근슬쩍 사람들을 죽이는 재미 묘미가 있는 것인데, 이건 손바닥에 떡하니 666이라고 새겨져있으면, 보자마자 다 알 거 아닌가! 이 꼬마는 악마의 아이구나하고 말이다.


  이제 저 꼬맹이는 왕따를 당하고 급기야는 바티칸의 암살자들에 의해 유명을 달리할 지도 모르는 것이다. 그것도 아니면 히키코모리가 되던가. 그러면 인터넷을 통해 가상 세계를 지배하는 적그리스도가 되는 건가?


  이런 멋진 설정이라니!! 이걸 할리우드 제작자들에게 팔아먹어서 오멘 5를 찍게 하는 것이야!!


  브이에서 여전사로 나왔던 아줌마. 여기서는 악마의 딸을 입양하고 그 비밀을 밝히려다 어이없이 죽은 엄마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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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독 - Jaume Balaguero(하우메 발라게로), Paco Plaza(파코 플라자)


  2편의 배경은 1편과 그리 시간차가 나지 않는다. 1편의 건물은 여전히 봉쇄중이고, 안에 있던 사람들은 거의 다 좀비처럼 변해버렸다. 새로 투입되는 부대. 특이하게도 인솔자 중의 한 명은 군인이 아니라 신부였다. (신랑신부 할 때의 신부가 아님!)


  1편에서 사람들이 그냥 무작정 좀비가 되는 게 아니라는 힌트를 주긴 했다. 그리고 2편에서는 그걸 더 발전시켰다. 어떤 의미로는 성수에다가 총을 곁들인 엑소시스트? 기존의 퇴마사들이 성수와 기도와 십자가로 싸웠다면, 이 영화에서는 총과 카메라가 더 추가되었다. 사실 이번 편에서는 좀비라기보다는 빙의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서, 좀비라고 콕 짚어 말하기는 좀 곤란하다.


  어찌되었건, 좀비의 탄생 배경에 이론이 하나 더 추가되는 영화였다. 대기업이 만든 화학물질이나 신약의 부작용이외에, 악마의 영향! 그냥 도망 다니고 죽이는 기존의 좀비 영화에 종교적인 성찰을 할 계기까지 주고 있다.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카메라로만 볼 수 있는 어떤 존재와 물질.


  눈은 인간의 것이라 속일 수 있지만, 카메라는 기계라 속임수가 통하지 않는다는 걸까? 그러고 보니 영화 '셔터'에서도 귀신이 카메라를 통해서만 보이긴 했다. 음, 카메라를 멀리 해야 귀신 따위 보이지 않고 속편하게 산다는 얘기인지. 역시 사진 따위 찍지 않는 편이 낫다.


  영화를 보면서 신부의 직업의식에 감탄을 했지만, 어떻게 성직자가! 하는 부분도 있었다. 여러 사람을 위해서 한 명의 희생쯤은 감수해야 한다는 건지, 그런 장면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또한 상황을 제대로 파악 못하고 소리만 빽빽 지르는 어린애들 때문에 화도 났고. 도대체가! 어른들이 가지 말라고 하면 좀 가지 말라고! 다 니들 위해서 그러는 거니까! 꼬맹이들이 말이지, 머리 컸다고 지들 멋대로 하는 걸 보면서 울화통이 터질 뻔 했다.


  하긴, 그런 캐릭터가 있어야 사건이 더 꼬이고 긴장감은 극대화 될 테고, 사건의 실마리 비스무레한 것이나마 나올 수 있는 거겠지. 하지만! 그렇게 이해를 해도, 역시나 그런 캐릭터는 보는 것만으로도 짜증났다.


  하지만 그것만 빼고는 괜찮았다. 불도 들어오지 않는 폐쇄된 공간에서 카메라를 단 사람의 불안한 숨소리, 공포에 질린 비명, 절망하는 눈물까지 고스란히 느껴져 같이 조마조마한 기분으로 영화를 보았다. 혹시나 뒤에서 좀비가 나타나지나 않을까, 불이 꺼진 방에서는 뭔가가 팍하고 튀어나오지 않을까 조마조마하기도 하고, 도망가라고 기원하기도 하고.


  영상에 찍힌 변신한 사람들의 모습은 무척이나 끔찍했다. 보통 좀비 영화에 나오는 좀비보다 더 힘세고 빠르고 난폭하고. 어린아이가 괴력을 발휘하는 장면은 으…….


  좀비의 존재를 종교적인 관점에서 풀이하고, 인과 관계를 역설하다니. 참신한 발상임엔 분명하다. 영화 ‘엑소시스트’를 보는 기분도 들고, 좀비 소탕 영화를 보는 것 같기도 하고. 짬짜면을 좋아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안성맞춤인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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