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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키 데스데이
크리스토퍼 랭던 감독, 빈스 폰 외 출연 / 유니버설픽쳐스 / 2021년 3월
평점 :
품절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원제 - Freaky, 2020
감독 - 크리스토퍼 랜던
출연 - 빈스 본, 캐서린 뉴튼, 앨런 럭, 케이티 피너랜
‘밀리’의 가족들은 일 년 전 아빠를 잃은 이후, 예전과 달라졌다. 엄마는 알콜 중독 증상을 보이고, 경찰인 언니는 가장으로 집을 이끌어 가려고 노력한다. 아직도 아빠를 그리워하는 밀리는 친구 ‘나일라’와 ‘조쉬’, 그리고 짝사랑 대상인 ‘부커’가 없었다면 학교생활이 더 버거웠을 것이다. 학교 풋볼 경기가 끝난 후, 엄마가 술에 취해 잠드는 바람에 밀리는 혼자 경기장에 남게 되었다. 그런데 누군가 그녀를 공격하는데, 바로 ‘블리스필드 부처’라 불리는 연쇄 살인범이었다. 도망치다가 그가 휘두른 단검에 찔린 밀리. 다행히 언니가 그녀를 데리러 왔다가 목숨을 구하는데, 다음날 이상한 일이 일어난다. 살인마와 밀리의 몸이 뒤바뀐 것이다. 살인마는 학교로 가서 아이들을 죽이고, 밀리는 그를 막고 몸을 되찾기 위해 학교로 향하는데…….
‘해피 데스데이 Happy Death Day, 2017’를 만든 감독의 신작이다. 아마 그래서 한국 제목에 ‘데스 데이’라는 단어가 붙은 모양이다. 전작에도 살인마가 등장하지만 워낙에 유쾌 발랄해서 이번 작품도 비슷할 거로 생각했다. 예상대로, 영화는 상큼하고 발랄했다. 몇몇 장면은 눈을 찌푸릴 정도로 끔찍했지만 말이다. 그것조차 웃으며 넘길 수 있게 만든 건, 아마 감독의 능력일 것이다.
이런 설정의 작품, 그러니까 몸이 뒤바뀌는 형식의 드라마나 영화는 설정 자체부터 호기심을 끈다. 몸이 바뀐 두 사람, 특히 성별이 다른 경우에 원래 몸과의 차이 때문에 겪는 황당함이나 어색함을 어떻게 보여줄지 기대되기도 하고 말이다. 게다가 성격도 완전히 다른 경우라면, 그 차이를 본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반응할지 궁금하기도 했다. 특히 바뀐 걸 들키면 안 되는 경우라면, 그 아슬아슬함과 긴장감을 느끼는 재미도 있고 말이다. 물론 이 작품에서는 살인마는 들키면 안 되고, 밀리는 사람들, 특히 친구들에게는 그 사실을 알려야 한다는 차이가 있다. 그래서 살인마가 연약한 십 대 소녀 행세를 하는 장면에서는 웃음이 나왔고, 밀리가 건장한 살인마의 신체적 능력을 이용해 자신을 잡으려는 사람들을 물리치는 장면은 유쾌하기만 했다.
아무래도 영화 전반 내내 철철 넘쳐흐르는 경쾌함과 상큼발랄함이 영화의 다른 단점을 슥 덮어주는 것 같았다. 뭔가 이상하다 느껴지는 몇몇 설정과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장면들이 있었지만, 그런 거 신경 쓰지 말고 그냥 웃으면서 보자는 분위기를 팍팍 풍겼다. ‘왜 그리 심각해, 그냥 웃고 즐겨’ 이런 뉘앙스?
그렇지만 밀리와 부커가 차 안에서 야릇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장면에서, 이건 너무 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서로 좋아하는 마음이 통했다고 하지만, 처음 보는 연쇄 살인마 중년 아저씨와 키스하고 싶을까? 아, 로맨스 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네가 어디서 어떤 모습을 하고 있어도 난 너를 찾아 다시 사랑할 거야’라는 대사를 실사화한 건가? 내가 아무리 애인님을 좋아한다고 하지만, 처음 보는 이상한 아저씨 몸에 애인님 영혼이 들어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그 날 바로 포옹에 키스를……. 으음, 반성해야겠다. 꼬꼬마 애들에게 지다니, 기분 나쁘고 화가 난다. 내 애정은 그렇게 얄팍하지 않아! 엉엉엉.
밀리의 혼이 들어간 살인마가 뛰는 장면을 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영혼이 바뀐다고 오랫동안 습관적으로 해온 행동이 바뀔 수 있을까? 살인마는 오랫동안 살인으로 단련된 탄탄한 몸을 가진 중년 아저씨고, 밀리는 십 대 소녀다. 달리기하는 자세가 당연히 다를 것이다. 그런데 중년 아저씨의 몸인 살인마는 밀리의 혼이 들어갔다는 이유로, 십 대 소녀처럼 뛰었다. 외모와 행동의 괴리가 웃음을 주긴 했지만, 뭔가 이상했다. 몸이 익숙해지면 저절로 행동이 나온다고 한다. 숙련된 요리사는 도마를 보지 않고도 평소와 다름없이 능숙하게 칼질을 할 수 있다. 그런데 영혼이 바뀌었다고 그런 사소한 자세들이 달라지는 게 당연한 걸까? 그런 것치고 밀리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화장실에서 서서 볼일을 봤는데? 그러고 보니 ‘바디 체인지’라는 설정을 가진 작품들은 거의 다 그랬던 것 같다. 다른 성별의 두 사람이 몸이 바뀌었을 때, 특히 그런 점은 주목받았다. 만약 영혼이 몸의 움직임을 통제하는 거라면, 무의식 상태에서 움직이는 건 어떻게 봐야 하는 걸까? 그리고 좀비 물에서 본능만 남은 좀비들이 살아생전 했던 행동을 반복한다는 설정과는 모순되는 거 아닌가?
웃고 즐기는 영화인데, 어쩐지 이상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던 작품이었다.
그나저나 밀리, 너 인생 성공했어! 나일라와 조쉬라는 좋은 친구가 둘이나 있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