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를 먹을 때는 울지 않기로 해 - 류라이 길티플레저 에세이
류라이 지음 / 자크드앙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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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라이의 『딸기를 먹을 때는 울지 않기로 해』를 읽었다.

저자 류라이, 본명은 유소희.

책을 보기 전까지는 그녀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책을 읽고 나서야 틱톡을 찾아보고, 류라이라는 사람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게 되었다.


그녀는 틱톡에서 발랄한 영상으로 50만 명의 팔로워를 지닌 인플루언서다.

하지만 이 책에서 보여주는 얼굴은 전혀 다르다.

인플루언서 류라이가 아닌, 한 사람 유소희의 내밀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딸기를 너무 좋아해서 한 달에 수백만 원어치를 사 먹는다는 고백은 단순한 취향 이야기가 아니다.

딸기는 그녀에게 위안이며, 스스로를 다잡기 위한 작고 확실한 의식이다.

딸기 하나를 입에 물며 하루를 버티고, 그렇게 다음 날도 살아내는 일.

너무 많이 먹으면 건강에 좋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멈출 수 없는 마음.

우리는 그런 걸 ‘길티플레저’라고 부른다.


책의 프롤로그에서는 사람이 무섭다는 고백이 나온다.

누군가에게 나도 모르게 상처를 줄까 봐, 혹은 상처받을까 봐 사람을 피했고,

그 회피의 장소로 선택한 곳이 SNS였다.

틱톡은 그녀에게 5년간의 일기장이 되어 주었다.

영상 하나 올리고, 댓글이 달리고, 어떤 이는 악플을 남기기도 한다.

그 댓글들을 ‘내 일기를 본 사람의 감상평’이라고 여긴다는 말이 묘하게 인상 깊었다.

기특하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마음이 아리기도 했다.

스무살을 훌쩍 넘긴 나이가 됐지만, 여전히 어린 나이에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게 좀 놀라웠다.

이 책에는 그녀가 피하지 않고 마주한 감정들이 담겨 있다.

왕따를 당한 이야기, 외모로 놀림받은 기억, 급식실에서 혼자 울었던 날들,

그리고 전신 성형을 고민하던 밤까지.


누군가는 자극적이라고 느낄 수도 있지만,

거짓 없이 꺼낸 이야기에는 꾸밈이 없었고, 그래서 더욱 진심으로 다가왔다.

무심한 듯 적힌 이 한 문장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다.

“친구라는 사람은 나에게 행복도 주지만, 그와 동시에 불행도 준다.

믿은 만큼 배신감도 느낀다.

나는 그런 고통을 느끼지 않기 위해 행복을 포기한 것이다.”

고통을 피하기 위해 행복을 포기한다는 말이 이상하게 슬프게 다가왔다.

하지만 그런 선택을 완전히 낯설다고 말할 수 있을까.

우리도 종종 비슷한 방식으로 스스로를 지키며 살아가니까.

이야기는 계속 사람을 향한다.

그녀 곁에 있어준 사람들 - 급식실에서 도시락을 챙겨준 보건쌤, 흉터 없이 수술해주려 애쓴 집도의 의사 선생님, 틱톡을 통해 나에게 관심을 가진 ‘류씨 집안 아가들’을 만들어준 회사 사장님, 그리고 부모님.

세심한 배려와 온기로 곁을 지켜준 사람들이다.

이들이 아니었다면 지금껏 버텨내지 못했을 거라고 이야기 한다. 사는 것이 지옥이었을 것이다.

위로는 아무 말 없이 곁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되기도 한다.

우리는 어쩌면 잊고 지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곁에 있어 주는 사람들이 누군가에겐 숨구멍이 되어줄 수 있다는 사실을!

가장 기억에 남는 문장은 이것이다.

“딸기는 색이 어두울수록 더 달콤하다.”

묘하게도 그 말이 마음에 오래 남았다.

어두운 색일수록 더 달콤하다니… 어쩌면 우리 삶도 그렇지 않을까?

겉은 물러 보이지만 막상 먹어보면 달콤한 딸기!

겉만 멀쩡해선 소용이 없다. 상처가 많고 조금씩 부서진 마음들이 오히려 더 단단하고 깊은 맛을 만들어낸다.


이 책은 울지 말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저 딸기 하나 입에 물고, 잠깐 멈춰서서, 오늘 하루 나를 다독이자고 말한다.

울어도 괜찮고, 무너져도 괜찮지만, 그래도 오늘만큼은 나를 놓지 말자고 한다.

그 말이 다정하게 들려와 오래도록 남는다.


책을 다 읽고 나면, 누구나 자기만의 딸기 하나쯤 떠올리게 된다.

그게 음악이든, 커피든, 혹은 아무 말 없이 곁에 있어 주는 사람일 수도 있다.

딸기라는 이름의 작고 달콤한 안식처. 우리는 결국 그런 걸 하나쯤 품고 살아간다.

류라이의 글은 화려하지 않지만 솔직하다.

마치 누군가의 오래된 일기장을 몰래 들춰본 기분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문득, 나 자신의 이야기를 발견하게 되기도 한다.


이 책의 제목처럼, 아무리 흔들리고 힘들어도

딸기를 먹을 때만큼은 울지 않기로 해보자.

좋아하는 딸기를 한 입 베어 무는 그 짧은 순간만큼은,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이길 바란다.


'자크드앙 출판사'를 통해 도서 협찬을 받아서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난 예측 가능한 것, 이미 알고 있는 결말 등 안정적인, 변화가 없는 것들을 좋아한다. 새로운 것,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측 불가능한 것 같은 불안정한 것들은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내가 아는 맛이 나는 음식만 먹고, 내가 알고 있는 결말의 영상만 본다. 하루하루도 마찬가지다. 나는 반복되는 하루가 내가 생각한 루틴이나 계획에서 조금이라도 틀어지면 불안해 하고 무서워 했다. - P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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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은 적도 편도 만들지 않는다 - 가까워도 상처 입지 않고 멀어도 외롭지 않은 관계 수업
장서우 지음 / 청림출판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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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처음 펼칠 때, 나는 또 하나의 인간관계 기술서일 거라 예상했다. 갈등 상황에서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좋은 사람으로 보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그런 실용적인 조언들이 나열된 책. 그런데 『어른은 적도 편도 만들지 않는다』는 좀 달랐다. 서문부터 마음에 잔잔하게 내려앉는 무언가가 있었다.


대부분 인간관계에 관한 책을 쓴 저자라고 하면 외향적이고 사교적인 사람일 거라 생각하지만, 저자는 정반대다. 내향적이고 조용하며, 낯선 사람을 대할 때 어색함을 느끼는 사람. 그런데 그 어색함을 감추지 않고 살아온 시간들이 오히려 더 편안한 관계를 만들어줬다고 고백한다. 나는 이 대목에서 큰 위로를 받았다.


사실 나도 겉보기엔 외향적으로 보일지 몰라도, 낯선 이들 사이에선 쉽게 긴장한다. 어색한 공백을 메우기 위해 말을 억지로 꺼내고, 때론 기계처럼 말하고 웃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멈출 수 없었다. 다행히 시간이 흐르면서 어색함을 견디는 힘이 조금은 생겼다. 침묵이 어색하지 않은 순간도 생겼고, 관계에서도 내가 먼저 조급해지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이런 변화는 단지 시간이 지나서가 아니라, 나를 돌아보고 생각을 거듭해온 결과라는 걸 이 책을 통해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종종 좋은 관계를 위해 더 많은 사람의 호감을 얻으려 애쓴다. 하지만 저자는 말한다. 어른은 편을 가르지 않는 사람이라고. 누군가를 편에 두기 위해 다른 누군가를 적으로 삼지 않는 사람. 어색함을 감추려 애쓰지 않고, 관계에 선을 긋기보다 경계를 흐리며 살아가는 사람. 그게 진짜 어른이라고.


책에는 심리학자 알프레드 아들러의 “모든 고민은 결국 인간관계에서 비롯된다”는 말이 반복된다. 저자는 이를 바탕으로 우리가 관계 속에서 겪는 감정의 진동에 이름을 붙이고, 그것을 이해할 언어를 건네준다.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사교성 자체에 의문을 제기하며 고독의 가치를 강조했고, 심리학자 존 볼비는 ‘회피형 애착’을 통해 적당한 거리감의 중요성을 알려줬다. 타인의 마음을 읽는 능력을 설명한 ‘마음 이론’이나, 때로는 진실보다 선의의 거짓말이 관계를 지키기도 한다는 버트런드 러셀의 주장도 책 안에서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건,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 나온 한 문장이다. “우리가 누군가를 미워한다면, 그것은 우리 안의 무언가를 그에게서 발견하기 때문이다.” 이는 심리학에서 말하는 ‘투사’ 개념과 맞닿아 있고, 책은 이런 심리적 구조를 통해 나를 돌아보게 만든다.


『어른은 적도 편도 만들지 않는다』는 인간관계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 시선, 마음의 방향을 부드럽게 바꿔준다. 항상 다정할 필요도, 언제나 현명할 필요도 없다. 중요한 건 나답게 존재하며, 억지로 편을 나누지 않는 태도다. 그렇게 살아가다 보면, 어느 순간 우리는 ‘어른 지원자’에서 진짜 어른으로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는 건 아닐까. 삶은 결국 그런 과정의 연속이니까.


'청림출판'을 통해 도서 협찬을 받아서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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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담다 - 멈추지 않은 도전, 세상을 바꾸는 이야기
김원경.김수진.이담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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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담다』 책의 표지에 있던 ‘멈추지 않는 도전, 세상을 바꾸는 이야기’라는 문장이 눈에 띈다.

매일경제TV <이야기 담다>에 출연한 핫피플들의 얼굴로 가득했던 이 책은,

그들을 인터뷰하면서 그들이 보는 시선과 지혜, 미래를 여는 이야기를 엿볼 수 있었다.

타인의 삶에 관심이 많던 나로서는 안볼 수가 없었던 책!


이 책은 15명의 핫피플들과 나눈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배우, 작가, 가수, 시인, 활동가까지 각자의 자리에서 삶을 버텨온 사람들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누구나 이름을 들어봤을 법한 인물들이지만, 이 책 안에서만큼은 유명인보다는 일반인의 모습에 더 가깝다. 어떤 말은 따뜻하게 다가오고, 어떤 말은 오래 기억에 남기도 했다.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인물은 시인 나태주였다. ‘풀꽃’이라는 시로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해주었던 시인이다. 그런데 그의 시가 전하려던 마음은 아름다움 그 자체가 아니었다. 그는 “아프지 않은 사랑은 가짜다”라고 말했다. 사랑이란 결국 상처를 감내하며 품는 것이라는 그의 말은 시보다 더 시 같기도 했다. 술술 시를 써내려 갈 것 같은 그도, 시를 쓰면서 표현하고 싶은 것을 정확히 담아내기 위해 단어 하나를 찾기 위해 며칠이고 끙끙대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김수진 아나운서는 나태주 시인에게 “세상을 어떻게 그렇게 예쁘게 보시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세상이 아름다우면 뭐하러 아름답다고 써요. 아름답지 않으니까, 아름답게 보라고 쓰는 거지요.” 그 말 자체에 여운이 있다. 정말 그런 것 같다. 아름다움이란, 원래부터 있었던 게 아니라 그렇게 보려는 마음에서 시작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윤하의 삶과 음악 이야기도 기억에 남았다.

윤하의 이야기는 단순히 한 명의 가수를 조명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녀는 음악으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온 ‘과학적 감성’의 아티스트다. 대중가요의 평균 길이를 훌쩍 넘는 5분 1초짜리 노래 <사건의 지평선>으로 역주행 신화를 쓴 그녀는, 단순히 ‘노래를 잘하는 가수’를 넘어선다.

그녀는 노래를 ‘소비되는 콘텐츠’가 아닌 자신의 가치관을 기록하는 창구로 여긴다. 데뷔부터 일본이라는 낯선 무대에서 고군분투했고, 긴 시간 동안 꾸준히 음악과 삶을 병행하며 성장해왔다. 특히 개복치에 감정이입해 만든 곡 <태양물고기>는 그녀가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겉으로는 연약해 보이지만, 사실은 심해 800미터까지도 스스로 헤엄치는 강인한 존재. 윤하 자신이 바로 그 ‘성체가 된 태양물고기’처럼 살아가고 있다는 고백이기도 하다.

윤하는 음악을 만들 때 자연, 과학, 철학적인 개념들까지 자신의 감정과 엮어 풀어낸다. 블랙홀의 경계 ‘사건의 지평선’을 이별로 치환하고, 태양물고기와 맹그로브 나무에서 공감과 생존의 메시지를 끌어낸다. 이처럼 그녀의 음악은 가요의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그 안에는 시적이고 과학적인 상상력이 살아 숨쉰다.

무엇보다 그녀의 메시지는 ‘감사함’이다. 오로라를 보고도 “지구에 있는 우리가 방사선 맞지 않게 자기장이 감싸주고 있다”며 고마움을 느끼는 사람. 그런 감정을 음악에 담아 사람들에게 위로와 빛을 전하는 사람이다. 윤하는 그렇게 자신만의 렌즈로 세상을 바라보며 노래라는 방식으로 그 시선을 나누고 있다.


책 속의 다른 사람들 역시 저마다의 언어로 삶을 이야기한다. 완벽하지 않은 하루들, 실패와 불안, 소소한 기쁨과 작지만 단단한 희망들. 그 이야기들은 묘하게 닮아 있어서, 읽는 내내 자꾸만 내 이야기를 떠올리게 만든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싶어 안심이 되고, 그렇게 다시 살아갈 힘이 생긴다.

프롤로그에 적힌 문장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누군가의 삶을 들여다보는 것은 결국 나의 삶을 돌아보는 일입니다.” 그 말처럼, 책을 다 읽고 나니 자연스럽게 나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나는 요즘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이야기를 담다』는 다양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통해, 우리 모두가 결국 같은 감정을 품고 살아가는 평범한 존재임을 일깨워준다. 이름이 알려진 이들도 저마다의 고민과 흔들림 속에서 하루를 살아낸다는 사실은, 때로는 깊은 위로가 되고, 때로는 다시 나아갈 힘이 되어준다. 이 책은 결국, 사람의 이야기가 또 다른 사람을 단단하게 만들 수 있는 가장 진실하고 강력한 힘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전하고 있다.


'매일경제신문사(매경출판)'를 통해 도서 협찬을 받아서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 나태주 <풀꽃>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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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의 날들
조 앤 비어드 지음, 장현희 옮김 / 클레이하우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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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참 묘하다.

죽음을 다루고 있지만 지나치게 무겁지도, 그렇다고 가볍게 흘러가지도 않는다.

눈물을 쏟게 만들진 않지만, 읽고 나면 가슴 한쪽에 오래도록 잔잔한 여운이 남는다.

장현희 작가의 『축제의 날들』은 그렇게 조용하지만 깊게 마음을 두드리는 책이다.

이 책은 모두 9편의 에세이로 구성되어 있다.

반려견과의 마지막 밤, 불길 속에서 고양이를 끌어안고 탈출을 시도한 한 남자, 존엄하게 죽음을 선택한 여성, 어린 시절 고양이와의 이별, 지금이라는 시간에 온전히 존재하려는 연습까지.

각각의 이야기에는 삶과 죽음이 맞닿아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책은 죽음을 정면으로 다루면서도, 어둡거나 우울한 쪽으로 끌고 가지 않는다. 오히려 그 끝에서 되묻는다.

우리는 ‘지금’을 얼마나 진심으로 살고 있냐고.

가장 인상 깊었던 첫 번째 이야기는 반려견 셰바와 함께한 마지막 밤에 관한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멈추지 못하고 빙빙 돌기 시작한 셰바(강아지).

병원에서는 뇌 이상일 가능성을 말하지만, 저자는 그 어지러운 움직임을 가만히 지켜보며 함께했던 수많은 일상의 장면들을 하나씩 떠올린다. 새벽녘 침대맡에 앉아 있던 셰바의 숨결, 살짝만 움직여도 눈을 비비며 다가오던 그 작은 존재. 그렇게 반복되던 평범한 하루가 이제는 눈물 나도록 소중한 기억이 된다

셰바는 마지막 순간까지 말없이 곁을 지켜주었고, 저자는 그 침묵 속에서 더 깊이 살아 있음의 의미를 되새긴다. 살아 있는 동안 우리가 나눈 눈빛, 숨결, 발소리 같은 사소한 것들이야말로 결국 끝까지 붙잡게 되는 전부임을 말한다. 이 이야기는 함께하는 지금 이 순간이 가장 귀한 선물이며 언젠가 사라질 것을 알기에 더욱 빛나는 시간이라고 말해주는 듯 하다.

두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은 뉴욕의 낡은 아파트에 살던 남자 워너다.

어느 날 밤 자기가 살고 있는 건물 아래층에서 화재가 발생한다.

비명과 연기 속에서 잠에서 깬 그는 막상 이 상황이 비현실적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코 앞까지 무섭게 번지는 퍼지는 연기와 산소가 부족해지는 상황에 처하자 본능적으로 탈출을 시도하게 된다. 창문은 쉽게 열리지 않고, 방 안은 짙은 연기로 가득 찬 상황에서, 그는 기억을 더듬어 과거에 고정해둔 창 장치를 떠올리고, 간신히 창문을 열어 찬 공기를 들이 마시게 된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는 모든 공포를 잊고 삶을 온몸으로 경험하는 듯한 평온함을 느낀다.

그러나 현실은 곧 그를 다시 집어삼킨다. 워너는 자신의 고양이 ‘투’를 품에 안고, 벌거벗은 몸에 가운만 두른채로 불길을 피해 반대편 건물로 뛰어 내린다. 피가 범벅이 된 상태로 병원에 실려간 상태로 또 다른 수치의 공간과 마주한다. 간호사의 무표정한 손길, 설명 없는 의료 절차 속에서 그는 인간으로서의 존엄이 무너지는 순간을 겪는다. 그리고 침대 위에서 화재 현장을 생각하다 이렇게 말을 한다.

“텔레비전 따위를 구하려 하다니, 정신 나간 놈들. 그는 자기 고양이조차 구하지 못했는데.”

이 짧은 혼잣말에는 끝까지 지키고 싶었던 존재를 잃은 죄책감, 그리고 생명의 위기 앞에서도 사물에 집착하는 이들에 대한 허탈함이 담겨 있다. 우리는 이 이야기를 통해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삶에서 정말 소중한 것은 무엇인지? 무너지는 순간 내가 가장 먼저 생각한 것이 무엇이었는지?

그 외에도 유방암 투병 끝에 존엄사를 선택한 ‘셰리’의 마지막 여정, 어린 시절 고양이 필그림과의 이별을 담은 ‘레슬링의 무덤’, 현실과 상상이 겹치는 이야기 ‘아마 일어났는지도 모르는 일’, 그리고 평범한 하루를 작은 축제로 그려낸 ‘축제의 날들’까지. 책 속의 모든 이야기는 결국 하나의 방향을 향해 흐른다.

“삶을 더 잘 살아내기 위해, 죽음을 마주한다.”

이 책은 죽음을 이야기하지만 이상하리만치 우울하지 않다. 그렇다고 가볍거나 감정을 지하 바닥까지 내려갈 정도로 소모시키지도 않는다. 작가는 삶과 죽음 사이의 경계에 조용히 서서 그 풍경을 세밀하게 그려낸다. 그리고 그 안에 서 있는 우리에게 이렇게 묻는듯 하다.

다들 ‘지금‘을 잘 살아가고 있느냐고!

작가의 그 질문이 오랜 사유를 하게 만든다.

그 질문들이 오늘을 조금 더 보람있고 따뜻하게 살아보고 싶게 만든다.

『축제의 날들』은 죽음을 두려움으로만 그리지 않는다. 오히려 그 끝자락에서 삶의 본질을 조용히 비춘다. 우리가 놓치기 쉬운 평범한 하루, 함께하는 지금 이 순간, 그 안에 모든 의미가 있다고 말한다.

삶은 거창한 일이 아니라 늘 곁에 있어주던 존재들로 완성된다는 사실이다.

이 책은 그 소중한 진실을 조용히 건네고 있다.

소설책이자 에세이 책인 ‘축제의 날들‘은 우리 인생에서 바로 ‘지금’ 이 순간!

우리가 살아가는 현재의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 시간인지 일깨워 주는 좋은 책이란 생각이 든다.

추~~~천 하고 싶은 책!


'클레이하우스 출판사'를 통해 도서 협찬을 받아서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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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꾼들은 마치 기어다니는 거대한 곤충의 집게발을 움직이는 존재들 같았고, 두껍고 울퉁불퉁한 케이블은 근육질 팔 같았고, 도르래는 기다란 말 얼굴 같았고, 한데 묶여 있는 철 기둥은 불쏘시개 더미 같았고, 콘크리트에서 뿜어져 나오는 철근은 거대한 곱슬머리처럼 굽이쳤다. 외로움과 황홀경에 젖은 워너는 그 모든 것을 그림에 담았다. - P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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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쓰는 로봇 - AI 시대의 문학
노대원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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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소설을 쓸 수 있을까? 의문을 품고 읽게 된 책이었는데 막상 다 읽고 나니 이런 질문을 하게 된다.

“인공지능이 이야기를 쓸 수 있는 시대에 우리는 어떤 이야기를 써야 하지?”

노대원의 『소설 쓰는 로봇』은 그 물음에서 시작된 긴 사유의 여정이다.

얼핏 보면 이 책은 SF 비평서처럼 보일 수 있겠다 싶다.

하지만 이 책은 AI, 포스트휴먼, 인류세, 사변적 소설, 디지털 시대의 창작 문제까지…

어렵고 추상적인 개념이 꽤 많이 등장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읽을수록 점점 ‘인간’이 궁금해지는 책이다.

어쩌면 ‘나’라는 존재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게 만드는 책인 것 같다.


책의 서문에서 저자는 이렇게 얘기한다.

“예술은 느낌의 영역이기도 하지만, 논리와 해석의 영역이기도 하지 않은가.”

감정이 없지만 감정을 흉내 낼 수 있는 AI, 논리를 넘어선 상상력을 시뮬레이션하는 기계들.

이런 시대에 작가란 어떤 존재여야 할까?

더 이상 ‘창조의 권위자’로 남을 수 없는 지금, 우리는 쓰기라는 행위를 어떻게 새롭게 정의할 수 있을까?


김초엽 작가는 ‘러버덕 디버깅’ 이야기를 통해 ChatGPT가 글쓰기의 조력자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러버덕 디버깅(Rubber Duck Debugging)’은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이 고무 오리 인형에게 문제 상황을 설명하다가 스스로 해결책을 깨닫는 방식에서 유래한 용어다. 이처럼 ChatGPT 같은 AI에게 생각을 말로 풀어내다 보면, 막연했던 아이디어가 점점 또렷해지고, 내가 왜 이걸 쓰려는지,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스스로 알게 되는 순간이 온다. 결국 글쓰기는 누군가를 위한 것이기 전에, 나 자신과의 대화다. 겉보기엔 혼자 하는 일 같지만, 그 안에서 더 깊은 사유가 자라난다.

테드 창은 AI가 만든 글을 “웹상의 흐릿한 JPG 이미지”에 비유한다. 그럴듯하지만 영혼이 없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저자는 여기에 반문한다. “모든 사람이 테드 창처럼 쓸 수는 없지 않은가?” AI는 어떤 사람에게는 오히려 창작의 근육을 키워주는 ‘헬스 머신’이 될 수도 있다.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는 시대’가 과연 불행한 일일까?

책 후반으로 갈수록 사유는 점점 더 깊어진다. 예컨대 ‘감정을 할인가에 판매합니다’라는 소설 속 세계는 AI가 문자, 목소리, 그림, 소설까지 모두 대신 만들어주는 시대를 그린다. 감정조차 자동화되고, 콘텐츠는 사용자의 취향에 딱 맞게 생성된다. 처음엔 흥미롭다가도 곧 소름이 돋는다. 진짜 내 감정은 어디로 가버린 걸까? 인간의 감정이 ‘희귀 자원’이 되는 시대, 우리는 진짜 마음을 어떻게 구분해야 할까?


장강명의 「당신이 보고 싶어하는 세상」은 또 다른 질문을 던진다. 미디어가 나에게 보고 싶은 세상만 보여주면, 나는 타인의 세계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차단’ 버튼 하나로 누군가의 현실을 없애버릴 수 있다면, 나의 현실은 점점 작고 단단한 벽에 갇히는 건 아닐까? 이 책은 그 벽을 어떻게 깨야 하는지, 문학이 어떤 다리가 되어야 하는지를 이야기한다.

SF는 더 이상 허황된 공상이 아니다. 오히려 가장 현실적인 장르다. SNS, 메타버스, 챗봇… 우리의 일상 대부분은 이미 한때의 SF였다. 김보영 작가는 “공상이 가짜가 되는 시대”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SF는 우리에게 미래를 상상하라고 요구하는 문학이 아니라, 지금 여기의 문제를 다르게 보라고 말해주는 문학일지도 모른다.

『소설 쓰는 로봇』은 철학서이자 에세이고, 한 편의 사변적 소설처럼 읽힌다. 무인 드론, 기후위기, 인류세, 포스트휴먼 대학… 문학이 다루기엔 너무 낯선 주제 같지만, 책은 말한다. “이 모든 변화 속에서도 우리가 여전히 쓰는 이유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추천하고 싶은 사람

- AI 시대의 작가 역할이 궁금한 사람

- SF가 단지 장르가 아닌,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라는 생각에 공감하는 사람

- 문학과 기술, 예술과 윤리를 동시에 사유하고 싶은 독자

- ‘왜 쓰는가’라는 질문 앞에서 자꾸만 멈칫하는 모든 창작자


문학은 기술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내면을 비추는 거울이다.

AI가 아무리 정교하게 모사하더라도 상처받고 흔들리고 사랑하고 외로워하는 마음까지는 흉내 낼 수 없다. 그러니 우리가 여전히 이야기를 써야 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우리가 아직 인간이기 때문이다.


'문학과지성사 출판사'를 통해 도서 협찬을 받아서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첨단 기술이 출현하고 있다. 세상은 급격한 변화의 소용돌이에 휩쓸리고 있다. 이럴 때 사람들은 미래에 대한 예지력을 바란다. SF는 ‘변화의 장르’로, 현재의 변화 추세를 통해 미래를 상상한다. 이것이 외삽이라고 부르는 SF 장르 특유의 문학 기법이다. 그러니 우리는 SF를 통해 세상에는 없는 상상의 과학기술을, 하지만 어쩌면 곧 출현할지도 모르는 그런 기술을 미리 엿볼 수 있다. 한국에서 SF가 변방의 소외된 장르에서 매력적인 문학 장르가 된 것에는 이런 맥락이 있다.
SF 작가 프레드릭 폴Frederick Pohl은 "좋은 과학소설 이야기는 자동차뿐만 아니라 교통 체증까지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 P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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