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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라는 시절
강소영 지음 / 담다 / 2025년 6월
평점 :

간만에 에세이를 읽고 눈물, 콧물 펑펑 쏟아낸 책을 만났다.
마지막에 실린 ‘딸에게 보내는 혜옥 씨의 편지’ 두 번째 글을 읽으면서, 딸을 향한 혜옥 씨의 사랑이 얼마나 깊고 큰지 느껴졌다. 그 사랑이 너무 벅차서, 감당할 수 없어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강소영 작가의 『사랑이라는 시절』은 누군가에겐 스쳐 지나갈 수 있는 한 가족의 이야기일지 몰라도, 나에겐 도저히 외면할 수 없는 이야기였다. 담담하게 써 내려간 문장들이 마음 깊은 곳을 건드렸고, 끝내 나를 울게 만들었다.
책은 세 개의 장으로 구성된다. 1장은 아버지 강갑천 씨의 생애와 죽음, 2장은 어머니 혜옥 씨의 시간, 3장은 이 책의 저자인 딸의 시선으로 가족을 되짚어보는 이야기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어머니가 딸에게 보내는 편지 두 편이 부록처럼 덧붙여져 있다. 이 책은 단지 한 사람의 죽음을 기록한 책이 아니다. 한 가족 안에서 오고간 사랑, 그 사랑이 시간이 지나 어떤 기억으로 남는지를 보여주는 ‘사랑의 연대기’에 가깝다.
프롤로그를 읽는 순간부터 마음을 정통으로 찔렀다.
“우리 아빠는 대체 왜 그럴까.”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야.”
이 문장들은 어릴 적 내가 똑같이 내뱉었던 말이었다. 완전히 같은 상황은 아니었지만, 어린 마음으로 느꼈던 복잡한 감정의 결이 너무도 비슷해서 단숨에 감정이 몰려왔다. 이 책은 단순한 공감을 넘어, 그동안 꺼내지 못했던 내 안의 이야기들을 끄집어내주었다.
1장은 전라남도 영암에서 태어난 강갑천 씨의 삶을 조용히 들여다본다.
전쟁 중 태어난 그는, 가난하고 조용하지만 책임감은 강했던 사람이었다.
중학교 진학을 꿈꿨지만, 교무실 문 앞에서 아버지의 등을 바라보며 그 꿈을 내려놓아야 했다.
“제발, 제발 우리 선생님이 아버지를 이기게 해 주세요.”
어린 갑천 씨가 속으로 빌던 그 간절함은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고, 그는 성장이 아닌 생존의 삶을 살아냈다. 그러다 뇌종양이라는 병을 얻고, “1999년 5월 비 내리는 밤” 가족 곁을 떠났다.
특별하지 않았기에 더 특별하게 느껴졌던 그의 인생은, 그저 평범한 아버지의 모습으로 오롯이 전해진다.
2장은 아내 혜옥 씨의 시간이다.
남편이 세상을 떠나던 날, 아이들이 도착하기도 전에 얼굴에 하얀 천을 덮으려는 손길을 애원하며 말리던 그녀.
“아이들이 아직 얼굴도 못 봤어요.”
그녀는 혼자 침대에 누워 “이제는 내가 가장이야”라고 마음을 다잡는다.
장례가 끝난 뒤에도 매일 밥을 짓고, 반찬을 만들며 아무 일 없다는 듯 아이들을 학교에 보낸다.
하지만 밤이 되면 남편에 대한 그리움과 외로움이 덮쳐온다.
소주 한 잔을 손에 쥐고, 이불 속에서 울음을 삼키며 혼잣말을 한다.
“여보, 나도 당신 곁으로 가고 싶어.”
그 말은 단순한 절망이 아니라, 당신이 그리워서 차마 견딜 수 없다는 절절한 사랑의 표현이었다.
그녀는 남편을 잃은 슬픔 속에서도 딸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마음을 다잡아간다.
마지막 3장은 딸의 시선으로 쓰였다.
정신없이 병원으로 달려가던 순간, 아버지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바라보던 순간,
그리고 장례식장에서 조용히 어머니의 눈물을 닦아주던 그 날들.
딸은 그렇게 아버지를 떠나보내고, 가족의 기억을 품은 채 살아간다.
일상으로 돌아와 식탁의 빈자리에 눈길이 가고,
아버지의 목소리가 문득 떠오르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그녀는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깨닫는다.
자신이 부모에게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아왔는지를.
그리고 이 책의 마지막, 어머니가 딸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으며 나는 다시 펑펑 울었다.
“소영아, 혹여라도 눈이 아프거나 잘 안 보이게 되더라도 걱정하지 마.
엄마 눈을 네 눈과 바꾸어 줄게. 엄마는 많이 살았고 많이 보았으니 괜찮아.”
이 구절에서 사랑이란 얼마나 강력한 감정인지 새삼 깨닫는다.
그 어떤 언어보다 강하고, 그 어떤 위로보다 다정한 말이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눈이라도 내어줄 수 있다는 마음을 표현하자면,
그 어떤 말로도 쉽게 표현되지 않으리.
책을 덮고 나니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늘 너무 늦게 깨닫는다.
부모는 항상 곁에 있을 것 같고 내 삶의 일부처럼 느껴지기에 그 소중함을 잊고 지낼 때가 많다.
하지만 이 책처럼 가까운 이의 상실을 겪고 나서야 그 사랑이 얼마나 컸는지 비로소 알게 된다.
작가는 고백한다. 어릴 적엔 배운 것, 가진 것 없는 부모가 부끄러웠다고.
그러나 시간이 지나 제대로 알게 됐다고.
아빠는 떠났지만, 그와의 기억은 내 안에 깊이 뿌리내려 고요하게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고,
엄마와 나눴던 일상은 매 순간이 쌓여 삶을 이어가는 숨결이자, 내가 걸어갈 길을 밝혀주는 등불이 되었다. 그래서 자신의 첫 책은 부모님을 위한 글이 되어야만 했다고 말했다.
그들이 준 사랑을 잊지 않기 위해 이 이야기를 기록했다.
이 책은 나를 돌아보게 만든다.
혹시 나는 부모의 사랑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기만 했던 건 아닐까.
그 사랑을 오해하거나, 미처 이해하지 못한 채 흘려보낸 시간은 없었을까?하고 말이다.
『사랑이라는 시절』은 그런 잊고 지냈던 사랑을 다시 꺼내어 보여주는 책이다.
너무나 사소해서 귀한 줄 몰랐던 그 시절, 그 시간들.
그 이야기를 꺼내 우리에게 건넨다.
사랑이란 이름의 기억은 시절이 지나도 지워지지 않는다.
그것이 이 책이 오래도록 우리 마음속에 남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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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다 출판사'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남편이 죽었다
‘뇌종양’이라는 단어를, 혜옥 씨는 그때 처음 알았다. 무슨 말인지 몰라 멍하니 앉아 있던 그날 이후 다섯 달 하고도 보름이 지났다. 여섯 달을 넘기기 힘들 거라는 의사의 선고는 정확했다. 그래서 더 잔인했다.
"오늘이 고비입니다. 마음의 준비를 하십시오."
두 번의 수술과 병원 생활은 길고 길었다. 마침내 끝이 왔음을 전하는 의사의 말에 두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꿈에서라도 마주하기 싫었던 상상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아무리 애써도 준비되지 않는 마음은 무너지고 있었다.
"엄마, 애들 아빠가…… 불쌍해서 어떡해." - P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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