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담공주 나라를 구하다 맛있는 우리말 꿀꺽! 시리즈 1
김숙.박소명.성현정 지음, 권영묵 그림 / 북뱅크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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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말왕국 왕과 왕비는 옛이야기를 유난히 좋아했다.

그래서 자신들의 첫 아이가 태어나자 ‘바리’라는 이름을 붙인다.

이 대목을 읽으며 나는 “어? 옛이야기를 바리라고 불러?”하고 고개를 갸웃했다.

바리라는 이름이 단지 ‘옛날 이야기’라는 뜻일까? 찾아보니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바리’는 우리가 흔히 접하는 무속 신화 『바리데기』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여기서 ‘바리’는 ‘버림받은 아이’, ‘버려진 존재’를 뜻한다. ‘버리다’라는 동사에서 파생된 이 이름은 곧 ‘상처받은 존재’나 ‘시련을 겪는 존재’라는 의미를 내포한다. 실제로 『바리데기』의 주인공은 태어나자마자 버림받지만, 오랜 여정을 거쳐 생명의 물을 찾아 부모를 살리고 구원의 존재로 거듭난다. 이 이야기는 신화적이지만 동시에 인간적인 성장담이기도 하다.

그래서 생각해본다. 만약 이 책 『속담공주 나라를 구하다』의 주인공 이름이 정말 그런 의미까지 담고 지어진 것이라면? 단지 예쁜 이름, 혹은 ‘옛이야기’라는 추상적 개념을 담은 게 아니라, 바리공주 역시 무언가 큰 고난을 겪고 그것을 극복해내는 여정을 걷게 될 것이라는 예고처럼 느껴진다. 그건 예감이기도 했고, 예언이기도 했다.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된다.

『속담공주 나라를 구하다』는 제목 그대로, 속담을 주제로 한 판타지 동화다. 속담공주 바리는 어느 날 사라진 부모님을 찾기 위해 떠난다. 그 여정에서 만난 ‘속담나라’는 특별한 세계다. 이곳에선 속담이 곧 현실의 법칙처럼 작용하고, 말이 곧 사건이 된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 같은 말들이 실제 상황으로 벌어지는 공간이다. 바리는 그 속담의 의미를 머리로 배우는 게 아니라 온몸으로 부딪히며 익힌다.

속담이 현실로 구현된다는 설정은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이다. 단순히 속담을 외우게 하거나 설명하는 대신, 이야기를 통해 자연스럽게 의미를 체험하게 한다. 예컨대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속담은, 아무리 좋은 것이 많아도 그것을 어떻게 연결하고 쓰느냐가 중요하다는 점을 사건을 통해 보여준다. 이런 방식은 아이들에게도, 어른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긴다.

또한 속담나라를 위협하는 악당이 ‘속담을 없애려는 자’라는 설정도 흥미롭다. 이는 속담이 오랜 공동체의 삶에서 나온 지혜라는 점을 강조한다. 속담이 사라지는 건 말의 질서와 공동체의 윤리가 무너지는 것과 같다. 이 책은 그 위험을 바리공주의 여정을 통해 상징적으로 그려낸다.

무엇보다 바리공주가 겪는 이야기들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마주치는 갈등과 고민을 닮아 있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로 상처를 받기도 하고, 아는 것 같지만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는 말들에 부끄러움을 느끼기도 한다. 바리는 그런 말들의 진짜 의미를 이해해가며 성장하고, 마침내 사라진 부모님과 속담나라를 구하는 데 이른다. 이는 버림받은 존재가 결국 세상을 구하는 존재가 된다는 바리데기 신화와도 절묘하게 연결된다.

이 책은 속담을 살아 있는 이야기로 바꾸고, 아이들이 직접 겪고 느끼며 배울 수 있도록 설계된 창의적인 동화다. 특히 속담을 설명하는 대신 경험하게 한다는 점에서 교육적 효과도 뛰어나다. 또한 어른들에게도 잊고 있던 말들의 무게와 의미를 다시금 떠올리게 만든다.

속담이란 결국 살아온 삶의 응축이다. 오래된 말이 아니라, 여전히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말들이다. 『속담공주 나라를 구하다』는 그 사실을 어린이 독자들에게는 흥미롭게, 어른들에게는 따뜻하게 되새기게 해주는 이야기다. 그리고 버림받은 이름 바리는 결국 지혜를 되찾는 이름으로 기억된다.

+ 그리고 이 책에는 후반부에 이야기 속에 나오는 속담을 모두 담았다.

모르는 속담은 해당 부분을 참고하시면 될 것 같다.


이 책을 추천하는 사람

- 속담을 재미있게 알려주고 싶은 부모님

- 이야기 속에서 삶의 교훈을 체험하게 하고 싶은 선생님

- 말의 의미를 직접 겪으며 배우고 싶은 초등학생 독자

- 무심코 넘긴 말들이 다시 마음에 닿기를 바라는 모든 어른


'북뱅크 출판사'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우리 참말왕국에는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진다는 속담이 있어요.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는 뜻이지요. 하지만 떨어져서 다쳤을지도 모른 친구들 보고 웃은 건 잘못이에요. 정말 미안해요. - P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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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의 사람들 - 위대한 예술가들의 사랑, 우정, 스캔들에 관하여
최연욱 지음 / 온더페이지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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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를 생각하면 흔히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모두 같은 상황은 아니지만 대체로 외롭고, 가난하고, 어딘가 괴짜 같은 사람들이었다.

천재지만 늘 외로워 보이고, 남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니 그런 선입견이 조금씩 깨지는 것 같기도 하다.

그들의 곁에도 우리처럼 사랑하고, 싸우고, 위로해주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걸

‘화가의 사람들(최현욱 지음)’이라는 이 책을 통해 조금 더 구체적으로 알게 됐다.

이 책은 서양 미술사의 유명한 화가들과 그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단지 그림이나 명성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삶과 관계, 함께했던 인연들에 집중한다.

누군가와 함께여서 더 빛날 수 있었던 순간들, 혹은 반대로 관계가 틀어지며 생긴 슬픔까지.

전부 그림만큼이나 진한 이야기들이다.

가장 먼저 마음에 남은 건 클로드 모네와 그의 아내 카미유, 그리고 후에 함께한 알리스 오슈데의 이야기였다. 모네는 아내 카미유가 세상을 떠나는 순간까지도 그녀를 그렸다. 눈을 감은 아내의 얼굴을, 붓으로 조용히 담아냈다. 사랑하는 사람을 눈앞에서 잃어가는 슬픔 속에서도 그림을 그리는 그 마음이 어떤 것일지 상상조차 어려웠다. 그게 작가로서의 숙명일까, 사랑의 기록일까.

나였다면, 붓을 들 수 있었을까? 이 장면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다.

또 하나 기억에 남는 건 르누아르와 알린의 이야기였다.

르누아르는 여자 모델을 참 많이 그렸고, 연애도 많이 한 화가로 유명하다.

하지만 그 곁에는 늘 조용히 함께해준 여인이 있었다. 바로 알린 샤리고. 모델이었고, 아내였으며 아이들의 엄마였다. 겉으로 보면 바람둥이 남편과 그를 참아준 아내의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서로를 향한 깊은 믿음이 있었다. 사랑이라는 게 꼭 뜨겁고 열정적인 모습만은 아니라는 걸 다시 느낀다.

폴 세잔과 에밀 졸라의 우정도 인상적이었다.

둘은 어릴 적부터 정말 친한 친구였지만, 졸라가 세잔을 바탕으로 한 소설을 발표하면서 관계가 멀어지게 된다. 평생 화해하지 못했지만, 세잔은 죽는 날까지도 졸라의 책을 곁에 두고 있었다고 한다.

서로의 마음을 다 표현하지 못한 채 어긋난 우정으로 끝난 것이 슬펐다.

오랜 친구 사이였지만 그렇게 틀어진 사실 자체가 슬펐고, 동시에 마음을 진하게 나눈 인연은 감정적으로 쉽게 정리될 수 없다는 걸 느꼈다.

가장 따뜻했던 이야기는 반 고흐와 외젠 보쉬의 이야기였다.

우리가 아는 반 고흐는 생전에 단 한 점의 그림도 팔지 못한 화가다.

그런데 그런 고흐를 진심으로 아껴주고, 그의 그림을 모아준 사람이 있었다.

외젠 보쉬. 돈을 떠나 그의 그림을 좋아했고 진심으로 응원했던 사람이다.

고흐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그의 작품을 지켜주었다. 그들의 우정이 참 뭉클했다.

‘그림은 팔리지 않았지만, 그 사람을 알아봐준 한 사람이 있었다.’

우리 삶에서도 그런 단 한 사람만 있어도 충분히 위로가 되지 않을까?

이 책은 거장이라고 불리는 화가들도 결국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라는 걸 느끼게 해준다.

상처받고, 사랑하고, 실망하고, 외로워하고.

그 모든 감정들이 그림 속에 스며들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그러한 것들을 볼 수 있는 상황이 된다면 그림을 보는 시선도 달라지지 않을까 싶다.

책의 서두에서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화가는 혼자 거장이 된 것이 아니다. 언제나 곁에는 그를 알아봐 주는 사람이 있었다.” 그 말이 참 오래 마음에 남는다. 모네 곁에는 카미유와 알리스가 있었고, 르누아르 곁에는 알린이 있었고, 반 고흐 곁에는 테오와 요한나가 있었다. 그들을 떠올리면, 예술이란 결국 사람 사이에서 피어나는 게 아닐까 싶다.

이 책에는 그 외에도 수많은 화가들과 그들과 얽힌 특별한 인연의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단지 사랑이나 연인 사이의 이야기에만 머물지 않는다. 우정, 존경, 갈등, 정치, 시대적 얽힘까지—그 폭이 넓고 다양하다. 다양한 에피소드들을 따라가다 보면, 단순히 화가의 삶을 넘어 그들의 내면과 그들을 둘러싼 시대, 관계, 감정까지 하나하나 들여다보게 된다. 마치 그림 속 인물들 사이에 있었던 말과 감정까지 느껴지는 듯하다.

작가가 마지막에 남긴 말도 인상 깊었다.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만큼 예술적인 일은 없는 것 같다.”

반 고흐가 동생에게 남긴 편지 속 한 문장이지만, 이 책 전체를 감싸는 말이기도 하다.

『화가의 사람들』은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사람을 이해하고 싶은 이들에게도 꼭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누군가의 곁을 지킨다는 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그리고 누군가의 곁에 있어준 사람들 덕분에 얼마나 많은 위대한 예술이 세상에 나올 수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책.

지금 혼자인 것 같아 외로운 이들에게, 이 책이 따뜻한 사람의 이야기가 되어줄 수 있기를.


'채성모의 손에 잡히는 독서(채손독) @chae_seongmo'를 통해

'온더페이지(경이로움 출판사'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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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화가
미셸 들라크루아 지음 / 좋은생각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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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인생이 아름답냐고 묻는다면, 저는 아니라고 할 것 같아요.

그러나 그림이 있기에 버틸 수 있었습니다.”

파리의 골목과 하늘, 그리고 눈 내리는 거리들을 보며,

“이건 누가 그린 거지?“라고 물었던 적이 있다면,

아마 그 그림은 <미셸 들라크루아>라는 화가의 그림일 확률이 높다.

이 책 『영원히, 화가』는 그가 직접 자신의 삶과 그림을 이야기한 자전적 그림 에세이다.

그러나 이 책은 단순한 미술가의 회고록은 아니다.

들라크루아의 그림이 그러하듯,

그의 말 한 줄 한 줄에도 그 시절의 공기와 시간 사람들의 숨결이 묻어 있는 듯 하다.

“저는 과거의 파리를 재현하는 것이 아니에요.

제 그림은 과거에 대한 사진이나 문서가 아닙니다.

파리의 인상에 대한 기록이지요.”

책 속에서 발견한 이 문장은,

그의 그림이 사진처럼 정교하지 않고 사실적이지 않은지를 단박에 이해하게 만든다.

들라크루아의 그림은 그가 본 ‘풍경’이 아니라, 그가 간직한 ‘기억’에 가깝다.

정확한 원근법보다는 마음속 인상에 따라 배치된 건물들, 제멋대로인 크기의 인물들,

그리고 항상 어딘가 아련한 색감들

그는 그저 자신이 살았던 세계를 그리고 있을 뿐이다.

그의 유년기는 평범하면서도 풍요로웠다.

이브르라는 작은 도시에서 어머니와 함께 나비를 잡고, 숲속에서 나무 아래의 노을을 바라보며 보낸 여름방학은 그의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시기였다. 하지만 학교에서는 낯을 가리고 몽상에 잠긴 채로 그룹에 잘 섞이지 못한 아이였다. 성적은 좋지 않았고, 보이 스카우트나 피아노 수업은 오히려 괴로움이었다. 수업 시간은 ‘잃어버린 시간’으로 느껴졌고, 상상력을 통해 탈출을 시도하곤 했다.

그런 그에게 그림은 유일한 통로였고, 열 살 때 그림을 만나면서 그의 인생은 완전히 바뀌었다.

들라크루아는 자신의 첫 스승인 브르통에게 받은 물감 상자를 지금도 간직하고 있다고 말한다.

아흔이 넘은 지금도 그는 그 스승에게서 배운 원칙을 여전히 따르고 있으며,

그림은 그에게 단지 직업이 아니라 삶의 방식이자 존재의 이유가 되었다.

그의 그림에는 전쟁 이전의 파리가 등장한다.

빈부격차를 넘어 서로를 존중하던 시절, 축제처럼 빛나던 파리의 밤, 낙엽이 바람에 날리는 계절, 노을빛에 물드는 거리. 그는 “전쟁 이전의 파리에는 서로를 존중하고 도와주는 분위기가 있었다”고 말하며, 그런 사람들을 기억하기 위해 그림을 그린다고 고백한다.

그의 그림 속 사람들은 이름도 없고, 뚜렷한 표정도 없다.

하지만 익명성 속에 깃든 다정함은 보는 이로 하여금 저마다의 기억을 투영하게 만든다.

누군가는 몽마르뜨의 언덕에서 사랑을 떠올리고, 또 누군가는 창문에 불을 밝힌 아파트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된다.

책의 후반부에는 미셸과 함께한 시간들을 회고하는 신미리 큐레이터의 에필로그가 실려 있다.

큐레이터는 2024년 전시 준비로 프랑스를 방문하면서 들라크루아와 직접 나눈 대화들,

그의 집과 작업실에서 마주한 인간적인 모습들을 감동적으로 전한다.

미셸은 그림을 가리키며 “이런 그림을 보면 에이전트가 충격 받을지도 몰라요”라고 너스레를 떨기도 하고, “보티첼리의 그림 앞에 서면 그림을 포기하고 싶다”고 말하는 섬세한 감성의 소유자이기도 했다.

90세가 넘은 나이에도 그는 새 스튜디오를 짓고, 붓을 들고, “이게 무엇이 될지는 모르겠어요. 두고 봐야 알지요.”라며 캔버스를 채운다. 그림이란 그런 것이다. 정해진 형태가 아니라, 움직이는 손끝에서 태어나는 또 하나의 생. 밥 로스를 연상시키는 그의 붓질에는 과시도 없고 욕심도 없다.

오직 진심과 시간, 그리고 기억만이 녹아 있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면, 한 사람의 인생뿐 아니라 한 도시의 역사와 감정까지 함께 들여다본 기분이 든다. 그림을 들여다 보고 있으니 그런 생각이 든다. 들라크루아는 어쩌면 다음 생에도 여전히 화가로 살아가지 않을까?하고 말이다.

그는 정말 ‘영원히, 화가’다.


'채성모의 손에 잡히는 독서(채손독) @chae_seongmo'를 통해

'좋은생각 출판사'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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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풍경이자 환경이었으니 자연히 파리의 명소들을 많이 그릴 수밖에요. 저는 제가 살았던 곳을 얘기할 뿐입니다.
어떻게 이야기할 수 있냐고요? 명소들은 친구와도 같은 존재죠. 에펠탑, 개선문 등 모든 명소는 모두에게 속해있어요. 우리의 문화유산이죠. 이것은 우리 삶의 일부입니다. - P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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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드시 그리워하게 될 테니까
김나리 지음 / 행복우물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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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온 모든 순간이 결국 나를 만든다.”

세상은 늘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도망치지 말고, 버텨야 한다고!

하지만 정말로 괜찮지 않은 날, 모든 것이 너무 벅차서 어디론가 숨고 싶을 때,

우리에겐 그런 말보다 “그럴 수도 있어”라는 말이 필요하다.

김나리 작가의 에세이 『반드시 그리워하게 될 테니까』는 바로 그런 위로를 건네는 책이다.

책의 초반부, 작가는 자신의 고백처럼 한 가지 습관을 털어놓는다.

바로 삶에서 갑자기 자취를 감춰버리는 도피형 회피를 한다는 점이다.

누군가에겐 이상하게 보일 수 있는 이 행동은 사실 스스로의 호흡을 회복하기 위한 안간힘이다.

“숨통을 틔우고 다시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이라는 작가의 말에서,

우리는 누구나 각자의 방식으로 버텨내고 있음을 다시금 확인하게 된다.

도망자의 일상은 때로 가벼운 탈출이 아닌, 치열한 전장이다.

버스 유리창에 붙은 작은 벌레 하나를 통해 펼쳐지는 작가의 내면은, 외롭고 지친 마음의 전투와도 같다. “날아가면 차라리 편해질 텐데…”라는 말 한 줄은,

놓아야 할 줄 알면서도 그러지 못하는 수많은 우리들의 마음을 대변한다.

세상에 휘둘리고, 나를 지키기 위해 투쟁하며 결국엔 스스로에게 안부를 묻고 싶은 그 마음 말이다.

작가는 ‘행복’이라는 감정에 대해서도 솔직하다.

영화 <인사이드 아웃> 속 ‘기쁨’이처럼, 우리도 행복만을 삶의 주인공으로 내세우려 하지만,

진짜 인생은 다섯 가지 감정이 모두 어우러져 있다.

기쁨뿐 아니라 슬픔, 분노, 불안, 외로움도 있어야 비로소 인간의 삶이 완성된다.

그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우리는 행복이라는 단어에 너무 연연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게 된다.

저자는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다”는 문장을 썼다.

나는 그 문장을 읽는 순간, 자연스레 『불교 공부』에서 다뤘던 연기(緣起)의 개념이 떠올랐다.

세상의 모든 일은 원인과 조건(因緣)이 겹쳐져 발생한다는 불교의 핵심 사상이다.

아무것도 아닌 듯 보이는 우연조차 사실은 인연의 결과라는 이 가르침은, 이 책의 메시지와도 깊이 닿아 있다. 그렇기에 지금의 나 또한, 수많은 선택과 만남, 그리고 놓쳤던 시간들까지 모두 얽히며 만들어진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연기의 시선으로 삶을 들여다보면, 내 실수도 후회도 단지 흘려버릴 일이 아니라, 다 의미 있는 흐름의 일부였음을 알게 된다.

“꼭 죽다 살아나는 것만이 기적이 아니라, 매일 같이 성장통을 겪으며 울고 웃는 지금 이 시간들조차 이미 천운을 다하고 있는 것”이라는 작가의 문장처럼, 우리 삶은 이미 충분히 기적 그 자체다. 마치 작가가 말하듯, “세월은 거저 흘러가지 않는다.” 세월 속엔 반드시 내가 있고, 내가 버텨 온 흔적이 있다.

이 책을 읽으며 기억에 남은 부분 중 하나는, ‘조언’과 관련된 내용이었다.

해당 글을 통해 나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던 부분이다.

누구나 좋은 뜻으로 충고를 하지만, 그 조언이 어떻게 들릴지는 결국 듣는 사람의 몫이다.

작가분의 글을 통해 나 역시 조언을 건넨 적 있었던 기억을 떠올리며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었다.

그래서 이제는, 누군가 내게 길을 묻기 전까진 침묵하며 들어 주고,

정말 필요한 순간이 왔을 때에만 내 경험을 가볍게 꺼내 보이는 정도로 이야기를 해주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어쩌면 그것이 성숙한 어른의 태도에 가까운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반드시 그리워하게 될 테니까』는 삶의 불안과 회피, 고독, 성장통을 있는 그대로 끌어안는 법에 대해 말한다. 도망치듯 살아온 시간들조차 결코 부끄럽지 않다고,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다정하게 말해준다. 행복에 대한 강박을 내려놓고, 내가 걸어온 시간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게 도와준다.


마지막으로, 작가가 건네는 이 말이 오래도록 남는다.

“세상에 이리저리 휘둘리는 것도, 매일 전장을 치르는 것도, 실은 온통 나의 얘기다. 그러니 지금은 충분히 잘하고 있는 생명아, 이번엔 네가 나의 안녕을 빌어주길 바라.”

이 책을 읽고 나면, 어느 날 반갑지 않은 내 모습을 보거나, 감정의 파도를 맞으며 마음이 슬픈 날에도, 조금 더 나를 소중하게 안아줄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그 모든 시간들이 의미 있는 시간이 될 수 있음을 조금은 믿을 수 있을 것 같다.


📖 이 책을 추천하고 싶은 사람들

- 이유 없이 지치고 자꾸만 도망치고 싶은 사람

-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도 마음이 무거운 날이 많은 사람

- 조용히 위로받고 싶지만, 누군가의 조언은 부담스러운 사람

- 매일을 버티며 살아가는 사람


'김나리'작기님을 통해 도서 협찬을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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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행복하고 특별한 인생을 살기를 강박처럼 바란다. 극단으로 치달아가는 요즘 현실은 행복하지 않으면 뒤처지고, 실패한 인생이 된 것 같은 생각까지 든다. 잘 알지도 못하는 남과 수시로 비교하고, 경쟁하며 스스로를 몰아붙인다. 하지만, 끝없이 물을 부어도 뿌리 없는 나무는 결코 푸르러지지 않는다. 껍데기가 아닌 진짜 행복의 본질에 대해 생각해 볼 때다. - P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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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늦은 시간
클레어 키건 지음, 허진 옮김 / 다산책방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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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편의 짧은 단편이 실려 있던 클레어 키건의 소설~!
책 내용이 궁금해서 미리 다른분들이 쓴 리뷰를 보다보니 <남극> 파트 대한 이야기가 많길래 더욱 궁금해졌다. 그래서 일단 앞의 2개 파트를 가볍게 넘기고, <남극>파트부터 시작했다. (궁금한건 못 참아!)

클레어 키건의 『너무 늦은 시간』은 세 편의 단편으로 구성된 아주 짧고도 긴 여운을 남기는 소설집이다. 각기 다른 인물의 시선을 따라가며, 삶의 결심, 욕망, 상실, 그리고 후회와 감정을 응축해낸다.
키건 특유의 절제된 문장과 섬세한 묘사는 인물의 심리를 겉으로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독자의 감각 깊숙이 파고든다.

3편 「남극 (Antarctica)」
이 단편은 세 편 중에서도 가장 짜릿하고 날카로운 이야기라 생각했다.
겉보기엔 한 여성의 일탈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그 내면엔 억눌린 욕망과 감정의 해방이 응축되어 있다.
이 짧은 이야기에 숨겨져 있는 메시지가 얼마나 많은지 다 언급하기도 힘들지경이었다.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던 한 여자가 있다.
그러나 문득 그녀는 생각한다. “다른 남자와 자면 어떤 기분일까?”
이 물음은 윤리보다 앞선 감정의 근원에서 솟아난 것이다.
그녀는 “너무 늙기 전에” 그 궁금증을 해소해보고 싶다는 일종의 다짐 상태가 되어 도시로 향한다.
마치 일탈의 성지처럼 그녀가 도착한 호텔은, 아이러니하게도 예전 성직자들의 숙소 근처다.
그 장소 배치 자체가 이미 도덕과 욕망 사이의 긴장을 상징하는 듯하다.

그녀는 평상시와 다름없이 아이들과 남편을 위한 크리스마스 선물을 고른다.
그 행위는 마치 자신이 하려는 일에 대한 일종의 정서적 ‘무마’를 위한 제스처처럼 보였다.
적절한 단어를 찾자면, “스스로에 대한 죄책감을 가리려는 보상 심리”가 아닐까.

저녁이 되자 그녀는 한껏 꾸미고 술집에 들어갔다. 그리고 한 남자가 다가온다.
아직 이름도 모르는 그는 그녀에게 놀랍도록 빠르게 자신의 삶을 털어놓는다.
언젠가 누군가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자신의 이야기를 너무 쉽게 나누는 사람을 경계하라”는 말.
도시로 가는 기차 안에서 읽었던 책에 이런 내용이 있었다면, 그 내용을 읽었다면 그녀의 행동이 바뀌었을까? 오히려 그녀는 자신에게 먼저 말을 걸어준 그의 접근이 반가웠으리라.
애초에 이번 여행 자체가 누군가의 접근을 기다리기 위해서 시작된 것이 아니었나.

그녀는 대화 도중에 자신이 결혼했음을 밝혔다.
하지만 남자는 그녀가 기혼임을 알게 됐음에도 거리낌이 없다.
포켓볼을 치자는 제안은 가볍고도 노골적인 접근이었다.
여자는 점차 경계심을 내려놓는다. 그러다 둘은 함께 그의 집으로 향한다.

사실 나의 ‘이상한 느낌’이 더 강력하게 시작된건,
둘이 시장에 있을 때 시장 장면을 묘사할 때부터였다.
남자가 시장을 데리러 왔을 때, 얼음 위에서 죽은 눈을 하고 있는 갓 잡은 물고기와
살아 있는 듯한 송어를 골라서 송어 머리를 자르고 포일로 싸서 가져온 물고기에서
기분 나쁜 묘한 느낌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도착한 남자가 살고 있는 공간은 너무도 비어 있는 느낌이었다.

무늬 하나 없는 벽, 창틀의 먼지, 얼룩이 남은 머그잔, 눅눅한 냄새, 장식 하나 없는 거실, 크리스마스 흔적조차 없는 그 집은 마치 ‘사람의 온기’가 오랫동안 지워진 장소처럼 느껴진다.

말하자면 그 공간은 일종의 ‘죽은 집’이다. 나로서는 이 지점부터 불길한 직감을 품게 된다.

이쯤부터 주인공 여자에게 말을 하고 싶어진다.

“뭔가 느낌이 안 좋아. 그냥 이 공간을 빠져나가는게 어때?!! 당장말이야!”라고 말이다.

하지만 그녀는 오히려 이 남자가 “지금까지 알았던 남자들 중 가장 위협적이지 않다”고 생각한다.

어째서였을까?

아마도 이 남자의 일상적인 자연스런 태도와 비폭력적인 매너 때문이었을까.

남자는 “당신에게 뭐가 필요한지 알아요. 보상핌이요. 이 세상에 보살핌이 필요 없는 여자는 없죠.”라고 말했다. 그는 그녀를 욕조에서 편안하게 목욕하게 하고, 물을 닦아주고 수건으로 감싸며, 머리칼을 빗어준다. 그 행동 하나하나가 너무나 자연스럽고 부드럽게 묘사되어, 긴장되어 있던 경계심을 잠시 풀게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동시에 기묘한 느낌은 사라지지 않고 여전히 의심으로 남은 상태가 되었다.

그녀는 “당신은 아메리카 대륙 같아요”라고 말했다.

그말에 남자는 “내가 콜럼버스가 될게요”라고 답한다.

이 대화는 은유로 포장된 정사를 동의한다는 장면이 아니었나 싶다.

이 장면에서 둘은 마침내 욕망의 중심으로 밀고 들어간다.

관계 이후, 담배를 피우는 둘. 그러는 사이에 여자는 집 안에서 산탄총 탄약통을 발견한다.

남자는 그것이 선물용이라고 말하지만, 나는 여기서 다시 긴장할 수 밖에 없었다.

이 남자의 정체는 도대체 뭘까?


둘이 저녁으로 샐러드와 숭어를 먹으면서 우연히 나누게 된 대화 주제는 ‘지옥’이었다.

그녀는 어릴 적 수녀님에게 들은 말을 꺼낸다. 지옥이란 사람마다 다르고, 각자가 상상하는 최악의 장소라고. 그녀에게 지옥은 “반쯤 얼어 있지만 의식을 잃지 않고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곳.”

즉, 냉기와 고립, 감각이 마비된 채 살아 있는 감옥 같은 공간이었다.

그녀는 이어 말한다. “차라리 태양 아래 악마가 지켜보는 편이 낫다.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 더 끔찍하다.”

그 순간, 그녀는 와인을 들이켜며 그 냉기를 떨치려 한다.

마치 그 이야기가 자신에게 너무도 실감나는, 혹은 어쩌면 그녀가 이미 겪고 있는 일인 것처럼 느껴진다.

남자는 자신의 지옥은 “사람이 아무도 없는 황폐한 곳”이라고 말한다.

악마도, 친구도, 말 걸 이도 없는 완전한 고립.

그에게 지옥이란 타인과의 연결이 완전히 끊어진 공간이다.

서로 다른 언어로 묘사된 두 사람의 지옥은, 놀랍게도 서로를 비추는 거울 같았다.

그녀는 자신이 수녀님에게 배운 지옥의 정의를 다시 끄집어낸다.

“지구상의 모든 모래가 다 모래시계에 들어 있다면,

지옥이란 그것이 다 떨어질 때까지 걸리는 시간이다.”

끝나지 않는 시간, 그리고 고립.

이건 마치 그녀의 내면에 있는 두려움이다.

나는 이 대화가 그저 지나가는 대사가 아니라고 느꼈다.

이 장면은 소설 전체에 흐르는 감정을 가장 잘 설명해주는 핵심 장면처럼 느껴졌다.

그녀가 말한 ‘지옥’의 이미지 안에, 이 이야기 속 인물들의 외로움과 불안,

그리고 말하지 못한 감정들이 담겨 있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마지막에 농담처럼 말한다.

“예배당에 있던 수녀님이 지금의 나를 보면 얼마나 웃을까?”

웃음 섞인 말이지만, 그 말 안엔 자조와 슬픔, 그리고 어떤 예감이 담겨 있었다.

이 대화는 그녀가 상상한 지옥의 풍경—의식을 잃지 않고 냉기에 갇힌 채 살아 있는 감옥—은

그녀의 현재 삶, 어쩌면 결혼 생활 그 자체를 은유하고 있다.

표면상 ‘행복한 결혼’이라는 프레임 안에서 정작 그녀 자신은 감정을 느끼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었던 건 아닐까?

남자의 지옥 또한 ‘사람이 아무도 없는 황폐한 곳’이다.

그는 말한다. “악마도 없고, 친구들도 다 그곳에 있을 테니까.”

이 대사는 그의 냉소를 드러내면서도 사실은 관계에 대한 절망과 무력감을 상징한다.

두 사람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고립에 대해 말하고 있다.

결국 『남극』은 정서적 고립에 놓인 사람들이 그 고립을 깨뜨리려는 시도조차도

어쩌면 또 다른 고립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보여주는 듯하다.

지옥이란 불이 타오르는 곳이 아니라 누구도 말 걸어주지 않는 차가운 공간이라는 걸

이 단편은 차분하고도 정확하게 말하고 있다.

3편을 순식간에 보고 난 후, 1편과 2편의 글을 읽었다.

3편을 보고 읽었더니 오히려 잔잔한 느낌처럼 느껴지는 이야기였다.

해당 파트의 내용을 요약해보자면 아래와 같다.

1편 「너무 늦은 시간 (So Late in the Day)」

한 남자가 조용한 금요일 오후, 집에 돌아와 신문을 읽고 맥주를 마시며 과거를 회상한다.

그는 프랑스 여성과의 약혼을 스스로 깨뜨렸다.

사랑하는 이를 믿지 못하고, 자신의 질서를 우선시한 그 결단은 결국 평생 지워지지 않을 후회를 남긴다. 내용은 단조롭지만 그 뒤에 숨겨진 ‘말하지 않은 감정’이 울림처럼 번진다.

가장 잃기 쉬운 건 다름 아닌 바로 곁에 있는 것들이라는 걸 조용히 상기시켜주는 이야기다.

2편 「기념일 (The Long and Painful Death)」

한 여성 작가가 독일의 괴테가 죽은 집에 머문다.

문학적 상징이 가득한 공간에서 그녀는 자신이 처한 상황, 작품을 대하는 태도, 그리고 여성 작가로서의 정체성과 싸운다. 그녀의 내면은 조용한 항변으로 가득 차 있으며, 괴테의 유령처럼 배회하는 남성 중심 문학 세계에 대한 은근한 반항이 느껴진다. 글을 쓴다는 것, 존재를 증명한다는 것에 대한 본질적 질문을 던진다.

특히 「남극」은 인간 내면의 호기심, 일탈, 그리고 그 대가에 대한 이야기였다.

우리는 흔히 윤리와 도덕의 테두리 안에서 안전하게 살지만, 한 번쯤은 다른 삶의 가능성을 상상해본다.

이 내용은 그 상상이 현실이 되었을 때 벌어지는 감정의 파장을 매우 섬세하게 보여준다.

클레어 키건의 『너무 늦은 시간』은 세 편의 단편을 통해 말보다 더 큰 침묵의 힘,

그리고 행동보다 더 깊은 비행동의 여운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책에서 클레어 키건은 격렬한 사건 없이도 사람의 내면을 흔드는 데에 성공한다.

그녀가 조용히 들여다보는 것은 우리가 무심코 넘긴 선택의 순간들이다.

말하지 않은 한마디, 하지 않은 행동, 놓쳐버린 눈빛 하나가 시간이 흐른 뒤

얼마나 무겁게 마음을 짓누를 수 있는지를 세밀하게 포착한다.

키건은 후회를 드러내지만, 그 후회를 비난하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이란 본디 그렇게 서툴고, 때로는 너무 늦게야 진실을 깨닫는 존재임을 인정한다.

그렇기에 이 책은 다정하면서도 날카롭다.

그녀는 독자에게 단 하나의 질문을 남긴다.

지금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하고 있는가. 그 선택이 혹시, 나중에 너무 늦은 시간이 되어 마음속을 떠돌게 되지는 않을까. 아직 늦지 않았다면, 지금 당신의 침묵과 망설임을 마주할 용기가 있는가.

그렇게 이 책은 아주 조용하지만 분명한 울림으로 남는다.

클레이 키건의 특유의 여백이 남는 글을 이곳에서도 엿볼 수 있는 책이다.


p.s : 너무 3편에 몰입한 리뷰 내용 같아서. 괜히 뻘쭘하지만,

3편 내용이 개인적으로 너무 몰입이 된 내용이었기에..

다음에 재독을 하게 되면 1,2편 내용도 조금 더 구체적으로 파헤쳐 보기로 한다. 하핫 ^^;

'이키다 @ekida_library'님을 통해 '다산책방(다산북스) 출판사'로부터

도서와 소정의 제작비를 지원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학교 다닐 때 수녀님이 지옥은 영원하다고 했어요." 그녀가 송어 껍질을 떼어내며 말했다. "우리가 영원이 얼마나 긴 시간이냐고 물었더니 수녀님이 말했죠. ‘지구상의 모든 모래를 생각해 봐. 모든 해변과 모래 채석장, 해저, 사막을 말이야. 그 모래가 전부 모래시계에 들어 있다고 상상해 보렴. 거대한 요리용 타이머 같은 데 말이야. 일 년에 모래가 한 알씩 떨어진다고 했을 때 영원은 세상의 모든 모래가 모래시계 속에서 다 떨어질 때까지 걸리는 시간이야.’ 생각해 봐요! 우린 모두 겁에 질렸죠. 아주 어렸거든요."

"아직도 지옥을 믿는 건 아니죠?" 그가 말했다.

"네, 보면 몰라요? 에마누엘 수녀님이 지금 생판 모르는 사람이랑 몸을 섞는 나를 보면 얼마나 웃길까요." 그녀가 송어 살점을 떼어내 손가락으로 먹었다. - P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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