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웅크리는 것들은 다 귀여워 - 웅크림의 시간을 건너며 알게 된 행복의 비밀
이덕화 지음 / 북멘토(도서출판) / 2025년 5월
평점 :

프리랜서 그림책 작가로 일하며 겪는 불안,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감정의 바닥까지 내려앉았던 작년 봄, 이덕화 작가는 밭을 만났다. 얼어붙은 흙, 마른 가지, 아직 봄이 오지 않은 공기 속에서 그녀는 뜻밖의 생명력과 마주한다. 멀리서 보면 죽은 듯한 나뭇가지에서도 작고 단단한 생명의 망울이 맺혀 있었다. 마치 “참을 만큼 참았어”라고 말하듯. 그때 밭이 가르쳐 주었다. 웅크림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걸. 지금 보이지 않아도, 숨은 에너지는 어느 날 반드시 피어나게 된다는 걸.
그 봄, 작가는 그렇게 ‘웅크리는 것들’이 얼마나 생에 대해 깊이 말하고 있는지를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이후로, 자신의 일상을 조심스레 꺼내어 그림과 짧은 문장으로 기록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 결과물이 바로 이 책, 『웅크리는 것들은 다 귀여워』다.
이 책은 삶의 거대한 고비나 극적인 순간들을 다루지 않는다. 오히려 아주 작고 사소한 하루들—밥을 먹고, 고양이를 안고, 주식 잔고를 확인하며 한숨 쉬고, 혼자 멍하니 앉아있는 시간들—속에서 마음이 흔들리고, 회복하고, 다시 조금씩 움직이는 과정을 담아낸다.
이덕화 작가는 프리랜서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불규칙하고 외로운 일인지 숨기지 않는다. 정해진 출근도 없고, 수입도 일정치 않다. 세상과 연결되는 끈이 느슨한 그 삶 안에서 그녀는 때때로 꿈에서조차 위로를 받는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 꿈, 이상한 상황에 웃음이 터지는 꿈, 그리고 어쩌면 마음속 어딘가에서 그리워하고 있는 사람과 다시 마주치는 꿈. 현실이 버거울 때, 그런 꿈들이 감정의 균형을 잡아주는 무의식의 순간이 되어 준다.
책에는 고양시 작은 집에서의 나날들이 등장한다. 고양이와 강아지와 함께하고, 스스로 가꾸는 밭과 텃밭이 그 하루의 중심이 된다. 사람들과 북적이는 삶과는 거리가 멀지만, 그 고요한 삶 속에서 작가는 ‘지금 여기에 있는 나’를 있는 그대로 마주한다.
“가슴에서 하얀 종이배를 꺼내어 물에 동동 띄워 보낸다.
지금은 선명하게 살아 있는 모습이지만, 언젠가는 물에 스미어 사라질 수 있을 거야.”
(p21)
꿈속에서라도 떠나보낼 수밖에 없는 감정들, 기억들. 작가는 그 슬픔을 부드럽게 수면 위에 띄운다. 그것이 아프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그 감정들이 얼마나 생생한지, 그림 한 컷, 짧은 한 문장으로 오롯이 전해진다.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은 자신에게 보내는 편지다.
“지금의 내가 너와 함께 있으니 너는 혼자가 아니었던 거야. 그래서 다행이야.”
(p41)
이 말은 단지 과거의 자신을 위로하는 말이 아니다. 이 책을 읽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도 건네는 말이다. 혼자라 느껴질 때조차, 사실은 그렇게 혼자만의 시간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고. 그 시간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고, 누군가에게는 그 고백이 위로가 된다는 것을.
그리고 중심에는 ‘웅크림’이 있다.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은 웅크린다. 생존을 위해, 발현을 위해, 도약을 위해.”
(p53)
이 문장을 읽고 나면, 웅크리고 있는 내 자세마저도 부끄럽지 않다.
움츠리는 것이 아니라, 다음을 위한 준비라는 작가의 시선은 말 그대로 따뜻하고 다정하다.
그렇게 책은 말한다.
웅크린 것들은 조용하고, 둥글고, 깊어지고, 그래서 사랑스럽다.
『웅크리는 것들은 다 귀여워』는 말없이 곁에 있어주는 친구 같은 책이다. 오늘 하루 조금 웅크렸더라도 괜찮다고, 그건 멈춘 게 아니라 다음을 위한 준비라고 조용히 속삭여 준다. 작가의 하루하루가 우리에게 따뜻한 숨 한 번 놓을 틈을 만들어 준다.
어디론가 가야만 할 것 같은 마음이 들 때, 그저 잠시 멈춰 이 책을 펼치면 된다.
그리고 조용히, 나에게도 이렇게 말해보는 거다.
“지금 이 모습도 괜찮아. 나, 참 잘 버티고 있어.”
ㅡ
'북멘토 출판사'를 통해 도서 협찬을 받아서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안녕? 30대의 이덕화.
교통사고 같은 일을 당하고 얼마나 놀라고 힘들었니. 작가로서도 오븐에 넣은 것 같은 시간이었지. 네가 잘 버텨 준 덕에 지금의 나는 조금 안정을 찾았어. 그 시간을 잘 견뎌 줘서 정말 고마워. 지금의 내가 너와 함께 있으니 너는 혼자가 아니었던 거야. 그래서 다행이야. - P4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