엎치락뒤치락 과학사 -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과학 이야기 과학하는 10대
박재용 지음, 란탄 그림 / 북트리거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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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을 떠올리면 ‘정답’이 먼저 떠오른다. 공식, 법칙, 실험 결과. 모두가 똑같은 답을 외워야 했던 그 시절의 과학 수업처럼. 하지만 박재용의 『엎치락뒤치락 과학사』를 읽고 나면 생각이 조금 바뀐다. 이 책은 정답보다 질문이 더 중요한 세계, 실패가 곧 다음 진보의 발판이 되는 세계를 이야기한다. 말하자면, ‘과학은 늘 틀리기 위해 애써 왔다’는 고백 같은 책이다.

책은 프롤로그부터 이렇게 말한다. “과학은 언제나 어딘가 부족한 부분이 있고, 현상을 완벽히 설명하지도 못하고, 오류도 자주 발견된다.” 우리가 지금 당연하게 여기는 이론도, 과거에는 수많은 논쟁과 실패를 거쳐야만 정설이 될 수 있었다는 사실. 이 책은 그 역사들을 ‘엎치락뒤치락’이라는 다섯 글자에 담아낸다.

가장 인상 깊었던 건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이 세상의 근원을 추적하던 장면이다. 4장에서는 탈레스가 세상의 모든 것이 ‘물’에서 나왔다고 주장하는 데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얼핏 엉뚱해 보이지만, 물은 고체, 액체, 기체로 자유롭게 변하며 생명을 유지하게 해주는 본질적인 존재였다. 그 뒤로 불, 공기, 흙 등 다양한 근원 이론들이 등장하고, 결국 ‘모든 것은 네 가지 원소로 이루어져 있다’는 엠페도클레스의 4원소설이 나타난다.


그런데 더 흥미로운 건, 이 원소들이 세상 모든 변화의 이유라고 보았던 고대인들의 상상력이다. 예컨대 엠페도클레스는 원소들이 서로 끌어당기거나 밀어내는 ‘사랑’과 ‘미움’이라는 감정적 힘으로 결합하고 분리된다고 본다. 지금 보면 비과학적이지만, 그 시절에는 세계를 설명하려는 가장 창의적이고 진지한 방식이었다.

이 이론은 아리스토텔레스에 이르러 더 정교해진다. 그는 각 원소에 따뜻함, 차가움, 건조함, 습함이라는 성질을 부여했고, 물질의 운동과 위치를 통해 위계를 설정했다. 흙은 가장 무겁고 아래로 떨어지며, 불은 가장 가볍고 위로 오른다는 식이다. 우주의 중심이 지구라고 믿던 시대에, 이런 사고는 나름의 논리를 갖춘 물리학이었다.


하지만 이와는 전혀 다른 시선을 가진 이도 있었다. 바로 데모크리토스. 그는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작은 알갱이’ 원자가 모든 물질의 기본 단위라고 주장했다. 당시에는 지나치게 추상적이라 무시당했지만, 이 아이디어가 2,000년 뒤에야 현대 과학의 중심으로 돌아온다. 책은 이 긴 여정을 따라, 돌턴의 원자론부터 전자 발견, 쿼크 이론, 그리고 오늘날의 표준 모형까지 흥미진진하게 풀어낸다.

5장에서는 ‘납을 금으로 바꿀 수 있다’는 연금술 이야기가 나온다. 물론 지금은 불가능하다고 알지만, 그 시절엔 4원소의 비율만 조절하면 가능하다고 믿었다. 그 믿음은 실패했지만, 제련 기술과 화학적 관찰은 이후 진짜 과학의 씨앗이 된다. 특히 라부아지에가 물을 수소와 산소로 분해해 보이면서 물과 공기가 하나의 원소가 아님을 밝히는 장면은, 연금술과 화학이 교차하는 역사적 전환점으로 그려진다.


책의 미덕은, 과거 이론들을 단순히 ‘틀렸다’고 치부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어떤 맥락에서 그런 주장이 나왔는지를 친절하게 보여준다. 덕분에 과학자들이 그 시대의 지식과 사유 안에서 얼마나 치열하게 사유했는지를 새삼 느끼게 된다.

박재용은 과학을 ‘살아 있는 지식 체계’라 부른다. 진리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계속 갱신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책을 덮고 나면, 과학이 정답의 나열이 아니라, 인간이 계속 질문을 던지는 방식이라는 걸 알게 된다. 그리고 언젠가 지금 우리가 믿는 것 역시 다음 세대에게 ‘틀린 이론’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다다른다.

『엎치락뒤치락 과학사』는 과학을 좋아하는 사람뿐 아니라, 한 번도 과학을 좋아해 본 적 없는 이들에게도 좋은 시작점이 된다. 조금씩 흔들리고, 조금씩 수정되며 쌓여온 생각들의 무게. 그 안에서 과학이 얼마나 인간적인 것인지, 그 역사를 읽으며 되새기게 된다.


'북트리거 출판사'를 통해 도서 협찬을 받아서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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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놀 인스타 @hagonolza



고대 그리스에서 여러 학문이 탄생하던 무렵 철학과 과학은 하나였습니다.
자연현상의 실체와 원리를 파헤치는 것이 최초의 철학이고 과학이었지요.
그래서 이를 공부하던 이들을 가르켜 자연철학자라고 불렀어요.
자연철학자의 가장 큰 관심사는 만물을 이루는 근본과 만물의 변화를 일으키는 원인이었습니다. - P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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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퍼스트 - 돈과 시간을 장악하는 1% 부의 법칙
유나바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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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에 집중해야 하는지를 알아야 엑셀을 밟아서 속도를 낼 수 있다. 100미터 앞에 급커브 길이 나올 것을 미리 알아야 브레이크를 밟고 속도를 줄일 수 있다. 그런데 우린 대부분 로드맵 없이 인생 운전대를 잡는다. 따라서 나이가 들어도 운전에 서툰 것이 당연하다. 실력을 늘리려면 ‘그 길을 먼저 경험한’ 사람에게 배워야 한다. 다른 사람들이 운전하는 것을 구경만 하지 말고, 직접 운전대를 잡아야 한다.- p14-15 더 퍼스트 본문 내용 중


돈도 시간도 없는 사람, 돈은 있는데 시간이 없는 사람, 시간은 많은데 돈이 없는 사람들이 모여서 세상은 굴러간다. 둘 중 하나를 포기해야 맞는 걸까? 어떤 선택을 하며 살아야 후회 없는 인생을 살 수 있을까? 나는 아주 오랫동안 그 답을 찾아 헤맸다.

이 문장으로 시작하는 유나바머의 책 『더 퍼스트』는, 단순히 시간관리나 경제적 자립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는 자기계발서가 아니다. 오히려 삶을 구성하는 두 거대한 축인 시간과 돈 사이에서 버겁게 줄타기하며 살아온 평범한 사람이 오답을 수없이 적어 내려간 끝에 찾아낸 ‘삶의 방향’을 공유하는 책이다.


저자는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성공공식을 따라 살지 않았다. 명문대 졸업, 대기업 취직, 안정된 커리어와 수입, 그리고 남들이 부러워할만한 삶이라는 궤도. 그는 그 모든 궤적에서 벗어난다. 대신 수없이 시도하고 깨지고 실패하며 오답 노트를 써내려갔다. 그 노트에는 남들이 보기에 ‘실패’라 부를 수도 있는 많은 시행착오들이 적혀 있지만, 그 안에는 돈과 시간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길에 대한 힌트가 숨어 있었다.

이 책은 크게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전달한다.


첫째는 ‘시간의 우선순위’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다. 아무리 많은 돈을 벌어도, 정작 그 돈을 쓸 시간조차 없다면 삶의 주도권은 결국 잃게 된다. 저자는 “돈을 위해 시간을 팔지 말라”고 단호히 말한다. 생계를 위해 시간을 돈으로 바꾸는 일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일 수 있지만, 문제는 그 구조에 스스로를 가둔 채 살아가는 것이다. 그렇게 ‘시간 없는 부자’가 되어가며, 인생의 본질을 놓치고 만다. 결국 인생은 시간을 어떻게 쓰느냐가 아니라, 누구에게 기꺼이 내어줄지를 선택하는 일이며, 그 선택이 곧 삶의 질을 결정짓는 핵심이 된다.


둘째는 ‘돈을 대하는 관점’에 대한 전환이다. 돈을 무조건 많이 벌어야 한다는 생각은 이 책에서 허물어진다. 저자는 “돈이 많다고 해서 삶이 자유롭지는 않다.” 오히려 필요한 만큼만 벌고, 나머지를 자신에게 의미 있는 일에 쓰는 방식이 진정한 ‘경제적 자유’에 가깝다고 말한다. 이 책에서 제시하는 경제적 자유는, 거창한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만큼 벌고 남은 시간을 내 삶을 위해 사용하는 삶이다.


셋째는 ’실질적인 라이프스타일 전략‘이다. 그는 디지털 노마드로 살아가는 법, 재택근무와 파이프라인 수익의 구축, 일과 쉼을 조화시키는 스케줄 설계, 소비습관 리셋 방법 등도 구체적으로 제안한다. 추상적인 이야기로 끝나지 않고, 직접 적용할 수 있는 실전 가이드가 이 책의 강점이다.

특히 그는 이 책에 나와 있는 방식대로 살아간다면, 당신이 그토록 갈구하던 돈과 시간으로부터 자유를 얻게 될 것이라 자신한다. 물론 완전한 자유는 쉽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최소한, 자유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자신감만큼은 확실히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흔히들 하는 이야기 같지만, 이 문장만큼 성공할 수 있는 방법을 요약한 말은 없는 것 같다.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10년 후 당신의 인생이 달라진다.

결과는 오직 당신 손에 달려 있다. 먼저 스스로를 믿어라. 믿어야 변화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스스로 변화할 수 있다는 믿음과 신뢰 없이는 이룰 수 있는 것이 없다.

힘든 순간에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들어도 다시금 나아갈 수 있게 해주는 건 정확한 목표와 스스로 변화될 수 있다고 믿는 자신감이다.


그리고 위로 받았던 문장이 하나 있다.

“군중 속에서 비교하고 비교당하던 생각의 습관에서 벗어나자. 뭐 하나 제대로 이룬 것 없는 초라한 존재로 인식되더라도,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존중하는 마음을 가져야만 지금 이 순간을 스타팅 포인트로 삼을 수 있다. 스스로에 대한 믿음과 확신이 없다면 그 어떤 좋은 책을 읽는 것도, 강의를 듣는 것도 시간 낭비에 돈 낭비다.”

지금 내 자신이 만족스럽지 못하고, 초라해 보여도 지금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이자고 이야기한다. 해낼 수 있다는 스스로에 대한 신뢰와 믿음 존중이 있다면 지금부터라도 새로운 시작이 가능하다는 이야기가 아닐까? 자신에 대한 믿음은 포기하지 않고 이어나갈 수 있는 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많은 자기계발서가 성공한 사람들의 화려한 스펙과 경로를 보여주며 ‘이렇게 하면 된다’고 말하지만, 이 책은 실패하고 넘어지고 좌절했던 이야기들 속에서 평범한 사람들이 현실적으로 따라갈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 그 점에서 이 책은 어떤 위로이자 동시에 동기부여다.

『더 퍼스트』는, 더 나은 인생을 살고 싶은 사람에게, 지금 이 순간을 다르게 살아보고 싶은 사람에게, 무엇보다 돈과 시간 사이에서 길을 잃은 사람에게 명확한 나침반이 되어준다.

'위즈덤하우스 출판사'를 통해 도서 협찬을 받아서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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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하면 나의 길을 피라미드 밖으로 빼내서, 나만의 속도로 나만의 성공 역사를 쓸 수 있을까?
결국은 자신이 왜 다수의 경쟁 사회를 스스로 선택했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은 그저 주어진 시간에 해야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면서 여기까지 왔다고 말할 것이다.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가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지금까지와 조금 다른 변화를 원한다면, 세상에 대한 이해와 룰을 점검하고 자신에게 맞는 방식을 찾아 자기만의 게임을 시작해야 한다. - P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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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로소포스의 책 읽기 - 철학의 숲에서 만난 사유들
고명섭 지음 / 교양인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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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티노스,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숲에서 만나는 이들은 다 사유의 친구다. 친구들이 해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궁금해 못 견딜 것 같으면 잠시 조심스레 물어본다. 거기서 들은 이야기를 서둘러 기록한 것들의 모음, (그것은 곧, 책이다.) 이것도 작은 사유의 숲일지 모른다. 숲은 숲을 키운다. 숲은 잠들지 않는다.

- p11, 프롤로그 내용 중


프롤로그 마지막 글이다. 이 문장이 왜 이렇게 웅장하고 뭉클하게 다가오는지.. 괜히 울컥하는 마음.

한 권의 책은 작은 사유의 숲일지 모르지만, 그 책들이 쌓이고 쌓이면 언젠가는 거대한 숲이 된다. 그리고 그 숲은 살아 있는 사유로서 결코 잠들지 않는다. 어쩌면 누군가는 하찮게 여길지도 모를 나의 독서 여정이, 언젠가 그렇게 살아 있는 숲을 이루게 되기를 바라며 책장을 넘겼다.


책을 읽는다는 건 세상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법을 배우는 일이자, 낯선 질문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마음을 키우는 일이다. 내가 누구인지 다시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다른 삶을 잠시 빌려 살아보는 경험이 되기도 한다.


고명섭의 『필로소포스의 책 읽기』는 책을 읽는 일이 그저 지식을 쌓기 위한 것이 아니라, 마음 깊은 곳을 울리는 사유의 여정임을 일러준다. 이 책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는 오래된 질문을 독서라는 길 위에서 다시 마주하게 한다. 고전은 물론, 영화와 문학, 신화, 생명과학까지 넘나들며, 책 속 문장 하나하나가 삶을 다시 바라보게 만드는 창이 된다. 이 책을 읽다 보면 문득 어느 한 구절이 오래 품어온 마음의 결을 건드리는 순간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책의 인상적인 도입부는 두 편의 영화를 통해 ‘반복’이라는 주제를 풀어낸다. 벨라 타르의 《토리노의 말》과 빔 벤더스의 《퍼펙트 데이즈》. 두 영화는 니체의 ‘영원회귀’ 개념을 공유하지만, 하나는 어둠의 되풀이, 다른 하나는 빛의 되풀이를 그린다. 《토리노의 말》은 절망의 반복 속에 갇힌 삶을, 《퍼펙트 데이즈》는 미세한 차이를 품은 반복 속의 조용한 희망을 보여준다. 이 대비는 곧 독서의 구조로 연결된다. 동일한 책을 반복해 읽는 행위 속에서 우리는 삶의 다른 국면과 만나고, 그 안에서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낸다.

이어 등장하는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는 ‘귀향’이라는 개념을 통해 독서의 본질을 비춘다. 오디세우스가 진짜로 돌아온 증거는 침대다. 살아 있는 올리브나무를 기둥 삼아 만든 침대. 반복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진실의 자리. 이 장면은 수없이 반복해 읽는 책 속에서 결국 자기 자신에게로 귀향하는 독서의 여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특히 이 책에서 인상 깊었던 부분은 이졸데 카림의 『나르시시즘의 고통』을 인용한 장이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현대 사회가 개인을 어떻게 고립시키고 있는가를 되짚는다. 카림은 신자유주의 사회가 개인에게 끝없는 ‘자기 이상’을 추구하도록 요구하며, 그 과정에서 자발적 복종이라는 형태의 고통이 발생한다고 진단한다. 자유롭고 자율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스스로를 ‘자기 경영’의 대상으로 삼아 끊임없이 성취를 강요받는 주체. 그것이 오늘날의 나르시시즘적 인간이라는 것이다.

이때 등장하는 ‘자아 이상’은, 초자아처럼 외부의 금지 명령이 아닌 ‘무엇이든 해내라’는 내면의 명령이다. 이를 수행하지 못하면 열등감과 수치심에 시달리게 된다. 이 사유는 젠더 정체성의 자기 결정 문제로도 이어진다. 내가 누구인지, 어떤 성적 정체성을 갖고 있는지를 스스로 정의한다는 것은 자유처럼 보이지만, 때로는 사회가 요구하는 ‘개성의 극대화’를 충족시키는 방식이기도 하다. 카림은 이 현상이 지배적 사회 질서를 무너뜨리기보다는, 오히려 그것을 더 강하게 만들 수 있다고 경고한다. 결국 “나는 나다”라는 자기 이상은 우리를 고립으로 이끈다. 진정한 관계도, 교류도 없는 채, “깊디깊은 내적 고독” 속에 남겨진 개인들. 그 고통은 나르시시즘 사회의 피할 수 없는 흐름이다.


『필로소포스의 책 읽기』는 이러한 사유들을 독서라는 행위 안에서 하나로 모은다. 책 읽기는 단지 문장을 이해하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 존재의 지도를 다시 그리는 일이며 삶을 다시 설계하는 일이기도 하다. 결국 이 책은 ‘책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를 넘어서 ‘어떻게 살 것인가’를 묻는다.


책을 읽는다는 건 결국 질문을 던지는 일이다.

누구를 위한 삶인가?

나는 지금 어떤 길을 걷고 있는가?

어떤 사유가 나를 붙잡고 흔들고 있는가?


철학책을 좋아하는 사람, 깊이 있는 사유를 즐기는 사람, 좋은 문장을 곱씹으며 오래 생각하고 싶은 사람, 책을 통해 삶의 방향을 다시 묻고 싶은 사람, 그리고 하루하루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도 스스로를 돌아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필로소포스의 책 읽기』는 반드시 만나야 할 책이다.

강력히 추천한다.


'우주서평단 @woojoos_story 모집',

'교양인 출판사' 도서 지원으로 우주서평단에서 함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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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졸데 차림(Isolde Charim)은 『나와 타자들』이라는 저서로 국내에도 이름을 알린 오스트리아의 여성 철학자다. 철학 저술과 언론 활동을 병행하는 차림은 오스트리아의 극우화에 맞서 정치적 저항 운동을 벌이는 실천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나르시시즘의 고통>(2022)은 우리 시대의 현실을 분석하는 카림의 철학적 사유가 번득이는 저작이다. 이 책에서 카림은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체계가 개인의 나르시시즘적 욕망을 통해 작동함을 밝혀 보인다. - P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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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유전자
리처드 도킨스 지음, 야나 렌조바 그림, 이한음 옮김 / 을유문화사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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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늘 인간이 중심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간다. 내가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것이 나의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불멸의 유전자』를 읽고 나니 그 믿음에 균열이 생긴다. 생명은 유전자의 생존 전략이라는 시각이다. 인간이라는 존재도 사실은 그 전략을 수행하기 위한 임시적인 생존 기계라는 설명은 낯설고, 때로는 불편하게 다가온다. 하지만 그 불편함 속에서 진화에 대한 가장 생생하고 근본적인 질문들을 만나게 된다.

리처드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를 통해 이미 유전자의 주체성을 강조한 바 있다. 『불멸의 유전자』는 그 논리를 더 넓고 깊게 확장한 책이다. 특히 ‘표현형 확장’이라는 개념을 통해, 유전자의 영향력이 단순히 생물의 몸속에만 머무르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새가 만든 둥지, 비버가 만든 댐, 심지어 인간이 만든 예술작품이나 문화까지도 유전자가 환경과 상호작용한 결과물일 수 있다는 시각은 경이롭다. 생명은 더 이상 개별 개체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유전자와 환경이 빚어낸 결과물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었던 개념은 ‘사자의 유전서(The Genetic Book of the Dead)’였다. 하나의 동물이 가지고 있는 유전자는 단지 그 개체의 정보가 아니라 그 조상이 어떤 환경에서 살아남았는지를 기록한 기술서라는 것이다. 그 유전체는 마치 겹겹이 쓴 양피지처럼 과거의 환경, 생존 전략, 생물학적 선택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자벌레가 고목을 흉내 내는 능력, 뻐꾸기 새끼가 둥지 안에서 울새에게 먹이를 받아먹는 장면 모두가 그 유전서에 기록된 조상 세계의 설계도인 셈이다.

저자는 여기서 가상의 미래 과학자 ‘SOFT(Scientist Of the Future)’를 종종 언급한다. 이 미래 과학자는 과거 환경을 이해하기 위해 현재 유전체를 분석한다. 각 생물체가 가지고 있는 유전자는 과거 생존에 적합했던 전략들의 기록이며 이는 현재 환경과 연결된 단서가 된다. 지금 눈앞에 있는 동물의 형질 하나하나가 조상 시대의 생존 해법이었음을 깨닫게 되는 순간, 자연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진다.

이 책의 강점은 개념만으로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진과 그림, 도식이 풍부하게 수록되어 있어, 복잡한 이론도 시각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돕는다. 예를 들어 뻐꾸기 새끼가 둥지 안에서 다른 종의 어미 새에게 먹이를 받는 장면은, 이타성과 기생, 본능과 진화가 교차하는 강력한 시각적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런 사례들은 머리로만 이해하던 유전자 이론을 좀 더 쉽게 받아들일 수 있게 한다.

도킨스는 이 책에서 수렴 진화(convergent evolution) 개념도 강조한다. 서로 전혀 다른 계통의 생물이지만 비슷한 환경에 놓일 경우 유사한 생존 전략을 택하게 된다는 것. 조류의 다양한 부리 형태는 모두 환경에 맞춰 진화한 결과이며, 유전자의 세계가 얼마나 유연하고 적응적인지를 보여준다. 복잡하게 얽혀 있는 신경과 혈관, 인대와 뼈의 배치는 단순한 ‘디자인의 결과’가 아니라, 수천만 년의 발생 과정을 통해 형성된 생명의 지도다.

책의 후반부에서는 더 나아가 ‘학습’조차 유전자 수준에서 선택될 수 있다는 내용도 등장한다. 유전자는 뇌가 어떤 것을 더 쉽게 학습하게 만들지, 어떤 정보에 민감하게 반응하게 만들지를 미리 준비시킬 수 있다. 즉, 생물의 학습 능력조차 진화의 일부라는 것이다. 우리는 자유롭게 사고하고 선택한다고 믿지만, 어쩌면 그 자유조차 유전자라는 구조물 위에서 가능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나는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가’로 생각하게 된다. 저자는 ‘당신은 득실거리고 뒤섞이며 시간여행을 하는 바이러스들이 빚어낸 위대한 협력의 산물이라고 말한다. 이 책 전체를 압축적으로 설명해주는 구절이라 생각한다. 유전자는 협력하며 복제되고 그 과정에서 생명은 스스로의 존재 이유를 찾아간다.

『불멸의 유전자』는 읽기 쉬운 부분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읽기 쉬운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한 장 한 장 곱씹으며 읽다 보면 그 보상은 생각보다 훨씬 크게 다가온다. 생명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지고, 나를 둘러싼 자연과 인간, 문명까지도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다. 이 책은 그냥 과학책이 아니라, 유전자의 언어로 쓰인 철학이고 생명의 역사이며 인간에 대한 깊은 성찰이다. 『이기적 유전자』와 함께 읽는다면, 우리는 이 복잡한 생명의 체계를 더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지금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수억 년의 생존 전략 위에 있다는 것을 실감하는 순간, 유전자의 세계는 경외의 대상으로 다가온다. 이 책을 추천한다면 과학을 좋아하고 자연과 동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내용이 다소 어려울지라도 도전해 볼 가치가 있는 책인 것 같다.

'을유문화사'를 통해 도서 협찬을 받아서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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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의 유전성는 조상이 살던 세계들에 관한 메시지를 동물의 몸과 유전체에 숨긴 팰림프세스트다. - P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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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사이더 - 갑자기 다른 사람이 되어버린 사람들의 뇌
마수드 후사인 지음, 이한음 옮김 / 까치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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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우리답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이 책은 이와 같은 질문으로 시작한다. 우리는 흔히 자아를 형성하는 요소로 가정 환경이나 교육, 사회적 배경, 또는 우리가 속한 집단을 떠올린다. 그러나 저자는 그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에 주목한다. 바로 ‘뇌’다. 우리의 자아는 뇌가 만들어낸 하나의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철학자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고 말했지만, 이 책의 저자이자 신경과학자인 마수드 후세인은 묻는다. “생각한다는 건 무엇인가? 그리고 그 생각은 어디에서 오는가?” 그는 우리가 사고하고 느끼고 판단하는 모든 과정이 뇌의 특정 기능들이 정교하게 협력한 결과라고 말한다. 우리의 말투, 기억, 감정, 유머 감각, 도덕성까지—그 모든 것은 뇌가 유기적으로 작동할 때만 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그 작동이 멈추거나 어긋나는 순간, 우리는 예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어간다.

이 책에는 언어를 잃어가는 한 남자의 이야기가 나온다. 2장 ‘단어를 떠올리지 못한 남자’ 파트에 있는 부분으로, 우리는 마이클이라는 인물을 만난다. 그는 60대 후반의 지적이고 품위 있는 남성이다. 말하기에 어려움을 겪으며 병원을 찾은 그는, 대화를 하다 말문이 막히는 자신에게 좌절과 당혹을 동시에 느낀다고 털어놓는다. 어릴 적 자신이 잘하던 럭비 경기의 기본 용어인 ‘스크럼’이라는 단어조차 기억해내지 못한다. 그가 겪고 있는 문제는 단순한 건망증이 아니었다. 그는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고 개념화하는 능력, 즉, 의미 기억(semantic memory)을 점점 잃어가고 있었다.


마이클은 여전히 자신의 과거, 가족, 여행지 같은 일화적 기억은 또렷하게 기억한다. 하지만 일상적인 개념, 농담의 맥락, 단어의 의미 같은 지식은 점점 사라져간다. 그의 아내는 “예전의 남편이 아니에요. 유머를 이해하지 못하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도 어색해졌어요.”라고 말한다. 마이클은 더 이상 예전처럼 농담을 던지는 사람이 아니고, 친구들 또한 그를 피하기 시작했다. 말과 웃음이 사라지자, 관계도 사라졌다. 결국 그는 ‘의미 치매(Semantic Dementia)’이라는 진단을 받는다. 이는 언어와 개념을 담당하는 뇌 부위가 점진적으로 손상되며 사람의 내면의 사전이 무너지는 병이다.

이 책은 마이클만을 다루지 않는다. 뇌의 손상으로 인해 ‘자신’을 잃어가는 수많은 사례들이 등장한다. 예를 들어, 데이비드는 바닥핵이 손상되어 감정이 거의 사라진 ‘병적인 무관심 상태(아파시)’에 빠졌다. 한때 사랑과 공감을 표현하던 그는 이제 주변의 기쁨이나 슬픔에 무반응한 존재가 되었고, 그의 가족은 정서적 관계의 붕괴를 견뎌야 했다.


트리시는 알츠하이머병으로 일화 기억이 무너져내리는 과정을 겪고 있다. 남편과 나눴던 대화, 가족의 얼굴, 소중한 추억들이 하나둘 지워지면서 그녀는 더 이상 자신의 과거를 통해 자아를 유지할 수 없게 된다. 기억이 사라지자 그녀의 존재감도 옅어져갔다.

와히드는 시각 착시에 시달렸다. 신경 손상으로 인해 그는 현실을 오인하고, 주변 사람들을 기이한 방식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그의 세상은 더 이상 타인과 공유되지 않았고, 그는 현실과 자신 사이의 경계를 잃어버렸다.

윈스턴은 집중력이 무너진 사례다. 뇌의 주의 조절 기능에 이상이 생기며 일상적인 대화조차 유지하기 힘들어졌고, 사회적 상황에서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는 능력이 흐려졌다. 그는 말하자면, 사회의 ‘속도’와 ‘리듬’을 놓쳐버린 사람이었다.

수 라일런드, 이른바 ‘카우걸’은 전두엽 손상 이후 충동을 제어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다. 타인에게 해가 되는 말과 행동을 반복하면서도 멈출 수 없었고, 스스로를 조절할 수 없다는 인식은 그녀를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그녀는 자신의 사회적 자리를 유지하지 못하게 되었고, 점점 더 외부인으로 밀려났다.


마지막으로 애나는 신체 자기 인식의 상실을 경험한다. 뇌졸중 이후, 그녀는 자신의 팔과 다리가 어디에 있는지 느낄 수 없었고, 심지어 자신의 몸 일부를 타인의 것으로 착각하기도 했다. 몸의 경계가 사라지자, 그녀는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확신할 수 없게 되었다.

이들의 이야기는 단순히 병리학적 현상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다. 감정, 언어, 기억, 공감, 집중, 충동, 신체 감각—이 모든 뇌 기능들은 단독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연결되어 ‘나’를 구성하는 축이다. 이 중 하나만 어긋나도 우리의 자아는 흔들리고, 사회 속 위치 역시 불안정해진다.

우리가 어떤 집단에 속하는가, 누가 우리를 내부인 혹은 외부인으로 간주하는가는 단지 인종이나 언어, 국적 때문만이 아니라, 그 사람이 사회적 기대를 어떻게 수행하고 있는가와 깊은 관련이 있다. 이 책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자기 자신’이라는 개념이 얼마나 정교하고, 동시에 얼마나 깨지기 쉬운 구조 위에 놓여 있는지를 명료하게 보여준다.


이 책의 저자 또한 외부인의 경험을 몸소 겪었다. 방글라데시 출신의 유색인으로서 영국에 정착해 신경과학자가 된 그는, 억양, 외모, 피부색, 이름 모두에서 ‘다르다’는 시선을 받았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이 어느 집단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한다는 실감을 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뇌와 타인의 뇌, 그리고 그 뇌들이 만들어내는 정체성을 연구하며, 그 질문에 대한 과학적 대답을 찾아간다. 속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언제 ‘우리’이고, 언제 ‘그들’이 되는가.


『아웃사이더』는 결국 자아란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뇌의 섬세한 작용과 사회적 관계 속에서 지속적으로 구성되고 해체되는 존재임을 말한다. 우리는 감정이 사라질 수도 있고, 기억을 잃을 수도 있으며, 자신의 몸조차 낯설게 느낄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변화는 단지 생물학적 현상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 속에서 나를 정의하고 이해하는 방식마저 뒤흔든다. 자아란 타인의 시선과 기대, 그리고 나 자신의 뇌 작용이 만나는 접점에서 태어난다. 이 책은 우리 모두가 언제든 ‘아웃사이더’가 될 수 있으며, 그 경계에 선 사람들을 이해하고 품는 일이야말로 가장 절실한 공동체적 과제임을, 조용하지만 단호하게 전하고 있다.


'까치글방 서포터즈 3기' 활동을 통해 '까치 출판사'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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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일에는 단순한 정보 교환이상이 필요하다. 관계가 즐거워야 하며, 즐겁게 어울리려면 서로가 무엇에 재미를 느끼는지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깔깔거리는 웃음은 사회적 유대에 필수적이며, 더 나아가 우리의 집단 소속감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진화적 구조일 수도 있다. 유머의 공유는 우리에게 사람들과 계속 접속하도록 동기를 부여한다. 그러나 그런 유머는 우리가 쓰는 표현들과 관련된 더 폭넓은 의미론을 공통적으로 이해하고 있어야 가능하다. 마이클이 이제 확실히 느끼듯이, 그런 유머를 상실하면 우정을 유지하기가 힘들어질 수 있다. - P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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