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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루소가 쏘아올린 공 - 무언가를 하기에 너무 늦은 나이란 없다!
김지명 지음 / 비엠케이(BMK) / 2025년 6월
평점 :

어느 날 문득, 삶이 멈춘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딱히 불행한 건 아닌데, 마음 한가운데가 텅 빈 느낌.
가족을 돌보느라 정신없이 달려온 40대 중반의 어느 날, 나는 문득 내 안에 ‘나’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삶의 목적도, 열정도, 꿈도 모두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 것 같았다.
매일을 살아내는 데 급급했고, 그때그때 닥치는 과제를 해결하느라 내 마음 한 구석이 얼마나 메말라 있었는지도 몰랐다.
그렇게 지쳐 있던 시기에, 우연히 뉴욕에 머물 기회가 있었다.
미술관에서 마주한 한 그림, 앙리 루소의 <잠자는 집시>는 그날의 공기까지 바꿔놓았다.
모래사막 위에 잠든 집시 여인의 옆을 표범이 지키고 있는 그 그림은 묘하게 따뜻하고, 기묘하게 신비롭다. 저자는 그림을 한참 들여다보다가 이런 생각을 했다.
‘도대체 이 사람은 어떤 삶을 살았길래 이런 세계를 그릴 수 있었을까?’
정규 미술 교육도 받지 못했고, 이름 없는 말단 세관원이었던 루소다.
그가 무려 49살에 전업 화가를 선언하고,
조롱과 무시 속에서도 그림을 멈추지 않았다는 사실이 사로잡았다.
그의 삶과 예술은 마치 조용히 내 어깨를 툭 치며 말하는 것 같았다.
“지금이라도 괜찮아. 이제 다시 시작해도 돼.”
그날 이후, 앙리 루소에 대해 더 알고 싶어졌다.
하나둘 자료를 찾아 읽고, 그림을 찾아보고, 그의 삶을 더 깊이 들여다보게 되었다.
그렇게 시작된 루소와의 ‘인연’은 점차 나를 변화시켰고,
결국 나는 미술 이론을 공부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그 선택은 예상치 않게 대학원 진학으로, 그리고 박사 과정으로 이어졌다.
루소를 알게 되면서 그의 삶과 그림을 마주하면서 내 안의 잊고 있던 목소리들이 하나둘 깨어나기 시작했다.
『앙리 루쏘가 쏘아올린 공』은 바로 그 이야기다.
불안과 허무로 가득했던 시기, 내 삶에 작고 선명한 신호탄을 쏘아올린 사람,
루소에 대한 기록이자 그로 인해 다시 시작하게 된 저자의 인생 기록이다.
루소는 화려한 경력도, 미술계의 인맥도 없었다.
고등학교조차 졸업하지 못했고, 그림을 배운 적도 없었다.
그의 첫 전시회는 조롱과 외면 속에서 열렸고, 누구도 그의 그림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위대한 화가’라고 믿었다.
그 믿음은 그 누구보다도 단단했고 그 누구보다도 고독했다.
그는 기존 미술 문법이나 유파에 얽매이지 않았다.
남이 뭐라 하든, 그는 그가 보고 느낀 세계를 있는 그대로 그렸다.
모방하지 않았고 유행을 따르지도 않았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사람들은 그의 그림이 ‘가장 순수하고 독창적’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결국 그의 삶 자체가 하나의 예술이 되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루소와 같은 삶을 선택한 다른 이들이 떠오르기도 했다.
그들도 모두 늦은 나이에 ‘처음’을 시작한 사람들이었다.
예를 들면 모지스 할머니.
78세에 처음 붓을 들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지만, 평생 농부로 살아온 그녀의 손에서 피어난 그림들은 미국인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계기조차도 특별할 것 없다.
손 관절염으로 자수를 그만두고 나서 그냥 심심해서 붓을 잡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녀의 그림은 미국 시골의 정취를 담아내며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게 되었고,
100세가 넘도록 그림을 그렸다.
또 한 사람, 일본의 하사이 히로코.
무려 83세에 처음 시를 쓰기 시작했다. 손자의 권유로 시작한 글쓰기는 그녀 안에 고요히 쌓여 있던 감정들을 밖으로 꺼내는 힘이 되었다. 『시작은 지금도 늦지 않았다』라는 제목의 시집은 제목 그대로 중년과 노년의 불안을 위로하는 선언이 되었다.
그리고 영국의 작가 리처드 애덤스.
공무원으로 일하던 그는 52세에 처음 글을 쓰기 시작했고,
두 딸에게 들려주던 이야기를 책으로 펴내 『워터십 다운의 토끼들』이라는 고전을 탄생시켰다.
그 책은 전 세계적으로 수천만 부가 팔렸고, 지금까지도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울린다.
이들 모두 루소처럼 늦은 나이에 ‘나만의 인생’을 다시 시작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 시작은 대개 아주 작고 조용하게 시작되었다.
불안과 허무, 자격 없음이라는 감정들 너머에서 꺼낸 용기 한 줌이 결국 인생의 방향을 바꾸는 힘이 되었다.
『앙리 루쏘가 쏘아올린 공』은 말한다.
예술은 정답을 주지 않지만, 우리가 다시 길을 찾게 도와주는 힘이 있다고.
예술은 ‘생의 회복력’이다. 우리가 쓰러졌다가도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잊고 지냈던 자아의 목소리를 다시 꺼내 들 수 있도록 곁에 머물러 주는 묵묵한 동반자 같은 것이다.
카를 융은 중년을 ‘제2의 사춘기’라 했다.
성장의 고통이 끝난 줄 알았던 시기에 다시 시작되는 내면의 혼란스러움을 겪는 시기다.
하지만 그 시기를 지나며 비로소 우리는 삶의 깊이를 배우고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이 책은 바로 그 시기의 혼란과 질문들 속에서 한 화가의 삶이 얼마나 강력한 위안과 용기가 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 책은 “지금 시작해도 괜찮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지금 당장은 인생의 절망 속에 머물러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생각을 전환 해보면 지금이 또다른 시작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우리는 언제든 앙리 루소를 만날 수 있다.
지금 이순간에 마음 속에 꺼내지 않은 이야기가 있다면, 그 이야기를 믿고 다시 시작할 수 있길 바란다.
그게 비로소 당신만의 인생을 예술로 바꾸는 시작점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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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성모의 손에 잡히는 독서(채손독) @chae_seongmo'를 통해
'BMK(비엠케이) 출판사'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루소가 처음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1880년경, 그의 나이 40세 무렵이었다. 그는 정식 미술 교육을 받은 적이 없었다. 그러나 미술에 대한 열정과 자신감은 대단했다. 그는 교육이나 스승의 도움 없이 독학으로 그림을 완성했다. 그리고 스스로의 노력으로 예술 세계를 탐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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