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인칭 단수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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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인칭단수 무라카미 하루키의 장편은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같이 길고 집요한 몰입을 가능하게 만든다 그것이 대가의 솜씨가 아닐리 없지 나는 그의 장편을 에지간히 좋아하지만 에세이는 글쎄다 하며 읽어왔다 그렇다면 그의 단편들은? 약간 글쎄다 였다고 기억한다 장편을 훨씬 더 잘 쓰는 작가라고 내내 생각해 왔다 (내가 혹은 그가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이번 단편집은 좋았다 길고 어려운 연설을 탁월하게 해내는 고수가 던지는 무해한 농담. 같았다 그러니까 헛? ㅎㅎ 하고 나서 한참을 곱씹고 그러고 나니 고소한 맛이 나기도 하는 그런. 늘 그렇듯 그의 취향들도 함께 알아가야 한다 그것이 어쩌면 하루키 월드의 자유 이용권 같은 거니까 가장 좋았던 단편은 #시나가와원숭이의고백 #무라카미하루키#bookstagr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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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빌라
백수린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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덮어주고 싶은 마음들 위로 내려 앉는 최선의 선의. 그러니까 맨몸으로 나설 수 밖에는 없지 않겠어 그렇게 끄덕이고 용기를 내고 고개를 젓고 다시 손에 흙을 물을 묻히고야 마는 일을 우리는기적이라고 부르고 작가는 지금이라고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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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의 연인들
정영수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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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를 다 써버리는 때가 있다 나도 모르게 에너지가 소진 되는 것처럼 아직 할 일이 해야 할 것들이 남아 있는데 시간이 되어야 차는 달 처럼 멍하니 기다리기엔 여기는 그렇지 못한 곳
정영수 소설 속 연인들 혹은 연인이었던 이들은 데이터를 다 쓴 사람들이 약간 황망한 표정으로 도시를 걷고 시간을 해멘다 그들에게 합의와 함의는 같은 말일지도 모르겠다 생각했는데 그건 관계라는 물성 자체가 애초부터 그런 거여서 겠다 생각했다 고르게 자리한 크고 작은 비극들의 세상에서 구조되는 일이 이를테면 평안한 쪽으로만 삶을 도려내는 일은 능숙함만으로는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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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그거 입으면 안돼?

아무거나 걸칠거면 태어나지도 않았어.

지랄한다. 오늘도 늦어?

하고 싶을 때 쯤 들어올게.

내가 니 붙박이 장이냐, 아무 때나 열고 들어오라고 방 안에 쳐박혀 있는 사람 아니다 나.

그러니까 직업을 좀 갖던가. 먹여 살리는 거 슬슬 지쳐가.

많이 안 먹는 거 알면서 꼭 그래.

출근길에 말 길게 하는 거 싫으니까 와서 뽀뽀나 해줘.

 

승호는 가볍게 엉덩이를 들고 걸어온다. 나는 녀석의 저런 차림새가 좋다. 헐렁하게 늘어지고 헤진 캘빈 클라인 잠옷 바지는 마치 빈티지 숍에서 건져온 것처럼 낙낙하고, 잘 발달된 가슴 근육이 드러나는 카키색 싱글렛은 싱그럽기 그지없다. 샤워를 마치고 선풍기 앞에서 강아지처럼 머리를 말리는 놈을 굳이 현관 앞으로 걸어오게 만드는 건 햇살이 가득한 창을 등지고 걸어오는 아름다운 피조물이 현재는 내 소유임을 확인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잘 다녀와.

잘 다녀 와서 예뻐해줄게. 밥 좀 챙겨 먹고 밥 먹기 전에 설거지 좀 하고.

근데 나 다시 일 나가면 안 돼? 나도 좀 벌래 돈.

몸이 근질근질하구나. 일 나가면 집도 나가는 거야. 뭔 말인지 몰라?

그냥 아무 감정없이. 정말 기계처럼.

그게 되니?

안될건 뭐야.

뭔 말인지 모르겠고. 그대로 반복이야. 일 나가면 집도 나가. 그리고 내 삶에서도 나가.

알았어. 꼭 그렇게 정색하고 무섭게 말을 해.

차라리 공부를 좀 하던가. 난 너처럼 그렇게 시간 많으면 박사 따고 교수 따고 다 따먹었겠다.

늦겠다. 가

간다.

가.

갈게.

늦지 마.

 

현관을 열면 또 다른 세상이다. 나는 더 이상 교태 부리지 않고, 미심쩍어 하지 않으며 나의 단점과 남의 장점을 잘 아는 현명한 성인이 된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없다. 그저 누가봐도 산뜻한 옷차림의 경쾌한 미소를 지닌 직장인일 뿐이다.

 

벤티 아메리카노 주세요. 얼음 몇 개만 띄워주시구요.

오빠는 그러니까 정말 소개팅 안할 거에요?

손님한테 맨날 오빠라 그러면 점장한테 이를거에요.

그럼 오빠지 언닌가? 그 때 일하던 제시 있잖아요 진짜 괜찮은 앤데, 가슴도 왕 커요.

세상에 저는 가슴 왕 큰 언니 왕 싫어해요.

아 진짜. 사람을 만나봐야 알지! 오늘은 꼭 확답 받아주기로 했는데.

셋이 같이 보자. 밥을 먹던가 아님 술을 마시던가. 담 주 쯤에 오케이?

제시는 저스트 투 오브 어스. 했는데 오빠가 해피 투게더 하쟀다고 할께요. 이 정도면

나 노력한거지 뭐. 그죠?

그럼. 나 늦어요. 얼른 커피 줘.

근데 오빠 아침부터 벤티 먹음 화징실 안 급해요?

 

커피를 내리는 제시카의 손놀림이 분주하다. 곱게 갈리면서 중독적인 향기를 뿜어내는 원두 때문인지 아니면 커피 보다 더 중독적인 저 아이의 미소 때문인지 벌써 2년 넘게 나누는 아침 인사다. 이젠 내가 휴가라거나 그녀가 휴가여도 아쉬울 정도다. 스물 넷. 대학원에서 그림을 그리는 제시카는 소녀시대의 제시카처럼 시크한 미소를 갖고 싶은 소망을 지닌 푸근한 숙녀다. 그녀의 넉넉한 몸매와 날렵한 발목, 그리고 제시카 보다는 써니를 닮은 귀염성 있는 얼굴은 여러 남자들의 지갑을 열게 했음이 분명하다. 저 쪽 테이블에 앉아 신문을 보며 우리를 예의 주시하는 30대 중반의 남자는 내가 가게 문을 열고 들어오기 전부터 제시카 쪽만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아 그리고 이거. 어제 유통기한 지나서 냉장고에 넣어 놓은 건데. 오빠 먹어요. 안 상했어

머핀은 안 상해.

머핀은 안 상한다는 건 과학적이거나 의학적인거야?

내가 좀 전에 똑같은 거 먹었어요. 임상실험 거친거니까 완전 안전함.

여튼 잘 먹을게. 탈 나면 밥 니가 사는거야.

하여간 쪼잔한 매력이 넘쳐나요. 얼른 가요. 늦겠다.

그래, 수고!

 

예술을 하는 아이라 손놀림이 어여쁘다. 샛노란 봉투 끝을 삼각형으로 여민 머핀 봉지 위에 ‘굿 럭’이라고 쓰인 포스트 잇이 붙어있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면서 통유리 문을 밀고 뒤를 돌아보니 제시카 앞에 아까 그 남자가 서있다. 이런 미소는 당신만을 위해 준비한 거야 라는 공들인 미소를 지으며. 앉았을 때는 몰랐는데 일어서니 180은 족히 넘어보이는 큰 키다. 탄력있게 올라 붙은 엉덩이에 시선이 간다. 관리를 잘했나보다 라고 생각하며 택시를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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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 - 제15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최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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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지 못한다. 그 소녀의 이름을. 복잡한 버스 안에서 혹은 수많은 인파 속에서 동네 슈퍼의 진열장에서 곁을 내주었을지 모를 그 소녀의 이름을 알지 못한다.  

세상이 더러워서 그녀가 더럽다고 말하는 것으로는 모자라다. 세상이 각박해서 그녀의 이름을 묻지 않았다는 핑계는 처연하다. 그리고 세상이 이리도 힘든데 그 아이 얼굴을 들여다 볼 틈 조차 없었다고 하는 것은 무책임하다. 

누군가는 그 소녀에게 욕정을 풀었고 누군가는 그 소녀의 작은 손에 쥐어진 지폐 몇 장을 희번득거리는 눈으로 탐했으리라. 그리고 그리하지 않은 우리들 대부분은 자신의 곁은 내주는 일에도 망설이거나 무관심했으리라. 

보지에 자지를 넣으면 아기가 생긴다고 말하는 열 살 소녀의 위악은 감당하기 어려울정도로 불편했다. 만약 그녀가 양부모에 입양되어 성장했으면 <제리>의 그녀가 되었을까. 무시무시한 소설들이 출몰하는 여름이다. 

최진영의 소설 <당신 곁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이하 <당신>)은 은희경의 <새의 선물>과 천명관의 <고래>를 떠올리게 만드는 소녀 성장기다. 두들겨 맞고 자랐기에 진짜와 가짜를 탐하는 욕망이 커졌고 배고픔을 알았기에 쥐들이 싫었던 소녀. 풋내라고는 한 번도 나지 않았던 이 소녀는 이 년에서 언나로 저년에서 간나로 꼬마에서 유미로 불리며 떠돈다. 목적은 하나 진짜 엄마를 찾는 것이다. 다방과 식당과 폐가를 지나 각설이 패를 거쳐 불량 소녀의 온상에서 기거하는 소녀의 로드 무비는 참혹하리만큼 지독한 생존의 역사다.  

작가는 단 한 순간도 그녀에게 안온한 쉼터를 제공하지 못한다. 못한다라고 쓰는 것은 않는다 와는 다른 뉘앙스이기 때문이다. 소녀는 선택과 집중에 능하기 때문에 어떤 머무름에서도 찰나의 반짝임을, 머물러야 할 순간들을 발견해낸다. 그것이 생존을 목적으로, 살아남기만을 목표로 하는 이의 혜안이라면  소녀가 특출난 재능을 지니고 있는 것임에 틀림이 없다. 

다방에서는 아름다움을, 식당에서는 너그러움을, 폐가에서는 외로움을 각설이 패에서는 어우러짐을 발견한 이 작은 여자 아이는 그러나 그 모든 공간에서 버림 받는다. 처음부터 버려졌기 때문에 버려지는 것은 무섭지 않다지만 마음을 내 준 이들의 곁을 버릴 때 마다 소녀는 아프게 성장한다. 작품 전체를 둘러 쌓고 있는 서늘한 기운, 바스락 타버릴 듯 바싹 마른 상황들은 챕터의 이별 장면에서는 뭉클하니 가슴을 저미게 한다. 

그리고 그런 이별들을 통해서, 그리워 할 것들을 챙겨가며, 꿈에서라도 만나고 싶은 길 위의 인연들을 잊지 않으려 이를 악물고 눈물을 참는 소녀는 어른이 되어간다.  하지만 <당신>은 명백히 해피 엔딩을 거부하는 작품이다. <새의 선물>이 공간을 지나가는 시간들을 유머러스한 느낌표로 기억하였고 <고래>가 명백히 신화를 연상시키는 모성의 진화를 전설처럼 기록한 것에 비해 <당신>은 중성적인 것을 지나 무성적인 느낌의 독백으로 일관하는 일기에 가깝다. 소년이어도 무방한 소녀의 이야기에는 자조적인 유머도 모성의 신화도 거세되어 있다. 

지독하게 못된 소녀의 성장기를 지탱하는 것은 끈질기게 그녀의 뒤를 따라밟는 작가의 집중력이다. 팩 하니 돌아서 골목길로 사라져버릴 것 같은 소녀의 발자욱을 조심스레 되밟는 작가는 단단한 언어와 감상을 배제한 관찰력으로 이야기를 완성해나간다. 아무도 따라갈 수 없을 것 같은 그녀의 지독한 여정을 지켜볼 수 있는 것은 그 덕이다. 불편한 진실을 감추지 않고 불쾌한 진심을 숨기지 않는 까닭에 소녀는 눈물 흘리지 않지만 나는 몇 번 눈시울을 붉혔다. 

왜 모를까,라고 생각해 보았으나 답은 나오지 않았다. 소녀의 이름을 알고 싶었던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무시 당하지 않기 위해 말갛게 세수한 얼굴로 세상을 걸었으나 그녀는 스쳐갔으나 나는 지나쳤기 때문이다. 세상의 못된 기집애들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천 원짜리 한 장을 떨어뜨리는 정도인 범인들에게 이 작품은 되묻는다. 쵸코파이 하나 쥐어주기 까지에도 온정이 필요하다고. 길 잃은 강아지도 쓰다듬어 온기가 통하기 전까지는 다가오지 않는 법이라고. 

차가운 세상, 그 세상의 온도를 질책하는 소설 하나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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