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오는 포럼에서 네가 한 대답도 좀 이상하다며 마뜩잖아했다. 아니면 아니라고 잘라 말하면 되지 왜 노코멘트라고 하는지, 그렇게 말하면 어떤 사람은 예스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은지 의아해했다. 나는 노코멘트는 말 그대로 노코멘트일 뿐예스가 아니라며 동의하지 않았고, 사적인 질문은 대답할 가치가 없다고 판단했을 거라고 맞섰다. - P191

진짜가 아니구나. 삶을 내걸고 쓴 게 아니었구나. 아니, 어쩌면 기만당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 자기 삶을 훔쳤다고, 자격도 없으면서 이득을 취했다고 생각할수도 있지. 아닐까? 그 사람이 왜 물었을 것 같아? 왜 하필 그자리에서 나한테 그게 궁금했을 것 같아? - P199

지금 이러는 것도 혐오인 거・・・・・・ 알지? - P201

어때요? 지금도 우리를 보고 있나요?
남자가 우리만의 작은 터널 속에서 묻고, - P207

[보일러 이빠이 켜 춥게 있지마] - P222

무슨 귀신이라도 보셨는지?
귀신치고는・・・・・・ 좋아 보이는데요. - P228

그 순간에는 웃었으나 어째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장현씨의말이 자꾸 마음에 걸렸다. 아닌 척해도 장현씨가 내게 서운했구나 싶어서 미안했고, 그와 동시에 내가 아직 장현씨를 서운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이구나 싶어서 조금은 기분이 좋아졌다. - P232

하지만 나는 그럴 수 있어도 엄마는 아니었다. 엄마는 ‘성소수자‘라는 네 글자가 내 얼굴 옆에 달라붙어 있는 것에 기함했고, 무엇보다도 내가 내 정체성을 세상에 떠벌린 것에 분개했다. 엄밀히 따지자면 나는 그저 소설을 썼을 뿐이지 대사회적커밍아웃을 한 게 아니었지만, 어쨌든 내가 그런 소설을 쓰고하필 그런 소설이 그런 제목으로 신문에 소개되면서, 엄마는이전과는 다른 차원의 위협을 느낀 듯했다. - P234

엄마가 그렇게 따져 물었을 때 나는 말문이 막혔다. 엄마에너무 무거운 짐을 지웠다는 죄책감도 죄책감이지만, 내가엄마 인생에서 절대로 들키고 싶지 않은 비밀이 되었다는 게억울해서. 내가 되고 싶었던 건 언제나 자랑이었는데 결국 되교관건 비밀이라는 게 참담해서. - P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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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은 그 경험을 종결시키고자 하는 강렬한 욕망이 특징이다. 그 욕망은 단순히 의지를 보인다고 해서, 혹은 외출을 더 자주 한다고 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친밀한 관계를 발전시킴으로써만이루어진다. 말하기는 쉬워도 실행하기는 어려운데, 특히 상실이나추방 혹은 편견의 상태에서 비롯한 외로움을 지닌 이들,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는 것을 갈망하면서도 사람들을 두려워하거나 불신할 이유가 있는 이들에게 그렇다.

……………사람은 외로워질수록 사회의 흐름을 타는 데 서툴러진다. 외로움은 곰팡이나 털처럼 주위에서 자라나고, 아무리 접촉을 원해도 접촉을 막는 콘돔 같다. 외로움은 그 자체로 증대되고 확장되고 지속된다. 한번 그것의 영향을 받기 시작하면 떨쳐내기란 결코 쉽지 않다.
올리비아 랭, ‘외로운 도시」

사람들이 내게 어떤 일을 하는지-택시 운전사, 치위생사물으면 나는 회사에 다닌다고 말한다. 어떤 회사인지, 혹은 거기서어떤 일을 하는지 물어본 사람은 거의 구 년 동안 아무도 없었다. - P15

나는 <디 아처스>를 들으면서 저녁을 만들어 먹는다. - P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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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말이야. 동네 아줌마들, 할머니들 얘기 듣는 걸 좋아했어. 어른들 옆에 얌전히 앉아서, 어른들이 무슨 얘기를 하면 전부 다 알아듣는 것처럼 방긋방긋 웃으면서, 아직 말도 제대로못하는 게 몇 시간이고 울지도 않고 나를 찾지도 않고 그렇게오래오래 어른들 사는 얘기를 들었어. 너는 그런 아이였어. - P105

장희는 그때부터 죽은 삼촌 얘기를 했다. 꼭 얼굴을 보고 해야 하는 얘기여서 요 며칠 오늘만 기다렸다며 뜸을 들이는데어쩐지 장희와 나눠 마시고 있는 공기의 밀도가 빽빽해지는것 같았다. - P110

삼촌이 살아 있다고. 그러니까 삼촌은 죽은 게 아니었고 그동안 나는 완전히 속았던 거라고. - P113

저이는 궂은 날씨에는 안 나오는데 형님은 추우나 더우나한결같이 나왔어요. 어느 해 여름인가 아는 분 소개로 한 철만해볼 생각이었는데 하다보니 계속하게 됐지요. - P119

나는 그 순간 장희의 어깨를 툭 하고 건드려보았다. 이영서씨에게서 어떤 소중한 것을 건네받은 느낌이 들었는데, 장희역시 그것을 놓치지 않기를 바라서였다. - P121

그렇다면 그건 왜 응당 불안이고 공포였을까. - P128

나는 장희를 똑바로 바라봤다. 계속 바라보고 있었지만 더욱 바라봤고, 장희의 눈에 비치는 것은 나인데 어째서 분노가느껴지는지 확인하려고, 이게 분노라면 어째서 이토록 단숨에서글퍼지는지를 납득해보려고 조용히 시선을 맞받았다. - P151

응, 그리고 어느 해부터인가 장희 니가 한글을 배우기 시작했는지 카드 안에 추신처럼 한두 문장을 더 적었지. 그때 너는또 오라고 썼어. 처음에는 삐뚤빼뚤한 글씨로, 나중에는 단정해진 글씨로 기다리고 있을 테니 언제든 우리집에 또 오라는말을 잊지 않았어. 그 말이 나는 참 좋았고. - P137

나는 대기실 벽에 걸린 시계를 일별하고는 아무래도 오늘은어렵겠다고, 뒤에 일정이 있어 다음을 기약해야 할 것 같다고말끝을 흐렸다. 어쩐지 선생님에게는 평일 오전에 병원 진료도받고 차도 마실 수 있을 정도로 한가해 보이고 싶지 않았다. - P148

내 정체성이 창작의 영역을 벗어났을 때 어떤 식으로 취급되는지 나는 모르지 않았고, 내가 누리는 자유와 평등이라는 게오직 예술과 허구의 세계에서만 온전하다는 것을, 단지 그 안에서만 허락되는 조건부의 인정이고 환영이라는 것을 해를 거듭할수록 절감하는 중이었으니까. - P155

기억이 거기까지 닿았을 때, 선생님이 나를 보호했던 그 방법이 제외였고 누락이었으며 취소였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졌을 때 내 안에서 다시금 의구심이 고개를 들었다. - P165

너는 이렇게 멋지게 자랐는데 선생님은 여전히...... 한심하지? - P169

이윽고 선생님이 윤범아, 이윤범, 하고 멀뚱히 서 있던 나를부르더니 어서 이쪽으로 오라는 손짓을 해 보였다. 그리고 내가 두 사람 곁으로 가까이 다가갔을 때, 젖은 눈에 닿아 발등이 빨갛게 부어오른 아이가 아직 자기만의 세계에서 완전히빠져나오지 못한 것 같은 창백한 얼굴로 내게 경계심과 호기심을 동시에 내비쳤을 때, 선생님이 그애에게 나를 소개해주었다. - P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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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이 한 김 식고 나면 해야 할 일이 조금씩 드러난다. 아이가 30점이라는 점수를 받았다. 이유는 무엇일까?
시험공부를 제대로 안 했기 때문이다. 시험공부를 제대로 안 했던 이유는? 시험공부를 제대로 해본 적이 없기때문이다. - P239

불안 없이 공부한다는 것이 가능할까? 그 질문은 불안 없는 인생이 가능할까, 라는 좀더 원론적인 질문으로이어진다. 불안은 나쁘기만 한 걸까? 불안이 필요한 부분도 있지 않을까? 너무 과하지만 않다면 말이다. 불안이 없었다면 인류가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겠지. - P240

공부를 잘하는 데 있어서는 망했으나 인생이 망한 것은 아니다. 하긴, 인생에 망하고 흥하는 일이 어디 있는가.
성공과 실패가 어디 있는가. 그냥 사는 거지.
그냥 사는 것이다. - P243

저는 정신과 의사도 심리치료사도 아닙니다. 저는 그냥 평범한 사람입니다. 나쁜 말로 하면 예민하고 좋은 말로 하면섬세합니다. 늘 불안을 느끼고 가끔은 그 불안에 사로잡혀헤어나질 못합니다. 그러다가 웅덩이에라도 빠진 듯 침잠하기도 합니다. 그러다가도 또 명랑하고 활기차기도 합니다. 그 모든 것이 저입니다. 불안하면서도 낙천적이고 예민하면서도 대담합니다. 우울하면서도 명랑하고 무기력하면서도 활기 넘칩니다. 그 모두가 저입니다. 그리고 저는 그런자신을 비난하는 대신, 잘 보듬어 안는 법을 배워야 할 겁니다. 아이처럼 자기애에 빠지는 대신, 어른처럼 너그러워지는 법을 배워야 할 겁니다. 여전히 배울 것이 참 많습니다. - P252

다른 사람의 인생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저는 삶이 충만해진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매일 드라마를 보고 책을 읽고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거라고 생각해요. - P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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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 최초로 구입한 베이킹 책은 1996년 여성자신이란 출판사에서 출간한 쉽고 재미있는 빵·과자 만들기다. 내가 그 책을 구입한 곳은 고등학교 근처 상가 안의 작은 서점이었다. 대부분의 손님들이 문제집을 사기위해 들락거리던 그 서점 한구석에 교복을 입은 채로 서서 요리 서적들을 뒤적이고 있노라면 혼자만의 달콤한비밀을 간직한 사람처럼 마음은 간질간질했다. - P15

뜬금없는 고백이지만 나는 어릴 때부터 먹는 것을유난히 좋아하는 편이었다. 다른 아이들처럼 편식을 해서 부모님 속을 썩이는 법이 없었을 뿐 아니라 어른들만먹을 법한 산낙지나 육회 같은 음식들도 대여섯 살 때부터 천연덕스럽게 먹곤 해 어른들을 놀라게 했다. - P19

누군가의 속마음을 알 수 있게 된다면 삶은 행복해질까, 불행해질까? 몸속에 품은 잔가시마저 내비치는 유리메기처럼 우리의 몸도 마음도 투명해져서 깊은 곳에감추어둔 생각들이 타인에게 고스란히 드러난다면? - P27

3월이 되면 강의실에 앉아 있는 파릇파릇한 학생들과즐겨 읽는 작품 중 하나가 필립 로스의 『울분』이다. - P45

너는 네 감정보다 큰 사람이 되어야 해. 너한테 이런 요구를 하는 건 내가 아니야. 인생이 요구하는 거야 * * - P47

동네 슈퍼에서 간단한 생필품을 사서 나오는 길이었다. 초여름의 저녁이라 바람은 선선하고 초록은 무성했다. 폭염이 시작하기 전의 짧은 계절을 즐기려는 듯, 사람들은 하천을 따라 조성된 산책로를 거닐고 있었다. 나 역시 이대로 집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쉬워 발걸음을 돌려잠깐 걷기로 했다. - P59

우리 사회학자가 할 일은 남의 이야기를 분석하는 일이다. 한마디로 그러한 폭력과 무관할 수 없다는 말이다. 사회학자가 이 문제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는 사회학자 각 개인의 과제일 테지만.* - P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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