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출간되어 한 부 보냅니다. 선생님이 살아 계셨으면 참흡족해하셨을 것 같네요. 고생 많이 했습니다. - P99

장선배가 사수였던 장민재를 가리킨다는 걸 석주는 한참만에 알아차렸다. 그녀는 그에게 이 회사에 지원한다고 알린적이 없었다. 그저 서유화의 책을 받은 뒤 짧은 감사 메일을쓰면서 이 일을 조금 더 해보고 싶다고 말한 게 전부였다. - P103

문학책? 어떤 문학책?
오래 기억에 남는...... 그러니까 사람들의 마음을 우, 움직이는 책을 만들고 싶습니다. - P105

다음날 아침이 되어서야 석주는 아버지가 두고 간 지폐를보았다. 구김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새 만원권 지폐 스무 장이전날 아버지가 무심하게 훑어본 책 사이에 끼여 있었다. 그녀는 그 돈을 아끼는 몇 권의 책에 부적처럼 나눠 끼워넣고 오래도록 쓰지 않았다. - P111

글자들은 서로 다른 자간과 행간 속에 알맞게 자리했다. 각기다른 세부를 통해 고유함을 부여받은 책들은 자신만의 유일한 모습으로 빛났다. 그 사각의 형태는 언어를 담기에 가장완벽한 형식처럼 보였다. - P113

석주는 그곳이 주는 소속감이 좋았다. 그곳의 사람들은 자신과 비슷한 속도로, 닮은꼴의 꿈을 좇는 듯 보였다. 그들의목표는 추상적이고 유동적이었으나 그래서 더 절실하게 다가왔다. 그들과 함께 있을 때 석주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더 구체적으로 그려볼 수 있었다. - P121

장점이 많은 원고인데 제 말이 투박하게 나간 것 같아요. - P127

책에 관해서라면, 글에 관해서라면 빈말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으므로 석주는 그의 정중한 답신에 용기를 얻었다. 그녀는 장민재의 그런 고지식함과 한결같음을 존경했다. - P134

아니, 그들조차 의식하지 못한 순수한 열정이 다가와 두 사람의 대화를 조용히 경청하고 있는 것 같았다. - P141

석주가 아는 사랑은 문학을 통해 배운 것이어서 비현실적이고 불완전했다. 그녀는 사랑이 한 사람의 삶을 전복시킬 수있음을 알았지만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알지 못했다. 사랑은 그것을 능히 감당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만 선택적으로 주어지는 특권 같았고, 허구의 형식 안에서만 존재하는 허무맹랑한 이야기 같기도 했다. - P144

책이 독자에게 가닿는 과정은 길고 복잡했다. 배본사와 도매상, 총판과 서점 등 여러 유통 단계를 거치는 동안 책값은수시로 달라졌고, 판매 수량을 예측할 수 없다는 이유로 반품과 외상 거래가 관행처럼 굳어 있었다. - P153

다정하고도 필사적인 그 산책은 일 년 넘게 이어졌다. 그시기, 두 사람이 함께 걸어서 다다를 수 없는 곳은 존재하지않았다. - P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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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이주인. 연애 좀 살살 하지-주인(민망한) 공유라. 너나 그림 살살 그려-갈수록 수위가 그냥 아우....... - P9

반찬으로 나온 고추로 시범을 보이려는 주인과 말리는 친구들. 창피한데 웃기고 미치겠다. - P13

쇼를 위한 온갖 잡동사니들이 나뒹구는 거실 한복판. 마술사 복장을 한 해인 10세, 남이 똘망똘망 빛나는 눈으로 자기눈알을 뺐다 넣는 식의 마임을 선보인다. 다들 "오오-"
하며 추켜세우는 분위기. 이어 해인은 손끝에 쥔 동전을 이리저리 옮겨본다. - P17

주인그래, 트라우마. 뭔 소린진 알겠는데-(웃음) 뭔 씻지 못할 상처에,
인생이랑 영혼까지 막 파괴가…………0아니 왜 이렇게 극단적이야?
표현도 어디서 복붙한 것처럼- - P39

주인(버럭) 그래! 나도 성폭행 피해자다!! 어쩔래?!
그래서 뭐? 내 인생 막 완전 망가진 것 같냐?
나 아주 끝장난 것 같아? 그래?! - P41

요리가 담긴 도시락을 배불리 먹은 세 사람. 미도와 주인은 옛날 사진들을 보고 있다. 여러 태권도 대회에 나가 메달을 딴 청소년 미도와 막 태권도를 시작한 어린이 주인의앳된 모습을 보며 깔깔거리는 두 사람. 대한은 즐거워하는둘을 흐뭇하게 바라본다. - P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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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색창에 커서를 갖다 놓았다. 미루고 미루던 일이었다. - P127

나는 심호흡을 한 뒤 자판을 두드렸다. 내 질문에 대한 답이 모두 그 안에 있을 것 같았다. 성. 폭. 력. 벌써 몇 번이나쳤다가 지워 버린 단어였다. 엔터 키 위에서 손가락이 망설인다. 그 키만 누르면 내가 겪은 일들이 영화처럼 펼쳐질 것같다. 볼 자신이 없다 - P129

어린 시절 성 학대를 당한 경우, 대개 심리적 억압이나 해리를통해서 잊어버리는 경우가 많지만 청소년기에 기억이 되살아나고통을 당하거나 혹은 뒤에 성인기에 와서 이성과 친밀감을 느끼는 순간 기억이 되살아나는 경우가 있다. - P131

"그때...………, 니네 엄마는 너한테 어떻게 했니?"
나는 그동안 목에 걸려 있던 말을 토해 냈다.
"그 사건 일어났을 때?" 아니다. - P139

감옥에 갔다 나와서 이민을 갔다고? 아이들한테 그런 짓을 했는데 어떻게 감옥에서 나올 수 있지? 그놈이 외국에서편안하게 살아가고 있을 걸 상상하니 억울해서 숨이 막히는것 같았다. 큰유진은 그놈을 용서한 걸까? - P141

"우리 큰아빠가 시인이시거든. 문학 모임에 가서 술을 마시는데 누가, ‘야, 노을 곱다!‘ 했더니 다른 시인이, ‘아, 술맛떨어지니까 일 얘기 하지 맙시다.‘ 그러더래." - P147

엄마가 피해자 부모들과 함께 소송 준비하는 것을 안 할아버지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무슨 자랑거리라고, 집안 망신시키는 줄도 모르고 나서느냐고 했단다. - P165

"회장님, 이 애가 전교 1등을 했다네요. 이제 제 몫은 할것 같으니 마음 푸셔요."
내가 1등 했을 때 할머니가 할아버지 사진에 대고 한 말이다. 내가 그런 일을 당한 건 내 잘못이 아니다. 그런데도그 일을 만회하기 위해 빚쟁이처럼 산 것이다. - P170

요즘 형진이는 내가 없을 때면 ‘야동‘을 보는 눈치다. 내동생이 야한 동영상을 본다고 생각하면 징그러웠지만 형진이 잘못만은 아니다. 나 역시 무심코 메일을 열었다가 달려들 듯이 펼쳐지는 음란물을 어쩔 수 없이 본 적이 있으니까.
한참 호기심이 많은 아이한테 쫓아다니면서 보여 주겠다는데 눈 감고 있지 않았다고 야단칠 수는 없는 노릇이다. - P180

다시 그 일을 기억해 내는 일이란 이미 아문 딱지를뜯어내고 안의 상처를 보는 일과 같을 것이다. 다 나은 줄알고 있던 상처가 딱지 속에서 곪고 있을지도 모르고, 언젠가 전쟁 영화에서 본 것처럼 구더기가 득시글거릴 수도 있다. 그걸 들여다봐야 하는 작은유진이는 결코 뒷면이 비어있는 종이 인형 같은 존재가 아니다. - P184

언니는 내 어깨를 툭 쳐 주곤 일어나 연습실에서 나갔다.
나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 나는 세운 무릎을 끌어안았다. 내가 나를 안아 주는 방법이다.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을때 나는 그렇게 나를 안는다. 언니도 얼마나 사랑받고 싶었으면 스스로 사랑하는 방법을 찾아냈을까. - P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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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위도에 위치한 지대에는 하지를 전후한 몇 주간에 걸쳐 해질녘 어스름이 길고 푸르러지는 시기가 찾아온다. 이 푸른 밤은 이 책에서 이야기될 시간의 많은 부분 동안 내가 살았던, 강렬한 빛과 함께 해가 저물면서낮이 끝나버리는, 아열대 캘리포니아에는 없고 지금 살고 있는 뉴욕에는 있다. - P7

이 책의 제목을 ‘푸른 밤‘이라 붙인 것은,
쓰기 시작했을 당시 내 마음이 갈수록 질병, 약속의 종말, 남은 날들의 감소, 쇠락의 불가피성, 빛의 소멸을 향해 다가가고 있음을 감지했기 때문이다. 푸른 밤은 빛의소멸의 반대인 동시에 그 경고이기도 한 것이다. - P9

2010년 7월 26일.
오늘은 그 아이의 결혼기념일이었을 날이다. - P10

모두 다 그 아이의 선택이었다.
자신이 기억하는 것들인 감상적인 선택들이었다.
나 또한 기억하는 것들이었다. - P11

감상적인 선택들. - P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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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그렇게 생각하세요? - P57

안녕하세요. 홍석주입니다.
들어와요. - P59

아, 맞다. 장대리, 아니, 장과장. 우리 그 지난달에 낸 책.
그거 여기 있나? 한번 보여주면 좋을 거 같은데? - P61

대충 짐작하고 있겠지만 편집 일은 교열 일과 많이 다를 겁니다. 우리 부서에서 일하게 된다면 어떨지 생각해봤어요?
본인의 강점이 뭐가 될 거라고 예상합니까? - P63

편집부에서 일을 시작하고 한 달이 지날 때까지도 석주는교열부로 출근하는 실수를 종종 했다. 이른 아침, 일층 교열부 사무실을 향해 걷다가 걸음을 멈추고 이층 편집부로 발길을 돌리는 식이었다. 소속과 직무가 바뀌었지만 마음의 일부는 여전히 교열부에 남아 있는 듯했다. 그건 석주에게 제대로된 업무가 주어지지 않은 탓인지도 몰랐다. - P67

시간이 더 흐른 뒤, 석주는 그때의 그 감정, 자신보다 사수가 더 또렷하게 느꼈을 당시의 그 마음을 종종 떠올렸다. 그러면 풋내기에 불과했던 자신 안에 미약하게나마 편집자의마음 같은 것이 자리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새삼 신기하게 여•겨졌다. - P76

그해, 석주는 스물여덟 살이었으나 스스로 젊다고 여기지않았다. 차이와 비교에서 비롯된 갈급함이 석주를 한순간 나이가 아주 많은 사람으로 만들어버린 것 같았다. - P85

오래도록 그녀에게 열정은 한순간 사람을 사로잡는 무엇이었다. 그건 스스로 만들어낼 수 없고, 이성으로 통제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이런 생각에 변화가 찾아왔다. 열정보다 중요한 건 그것을 일깨우고 유지하는 의지라는 것. 그것이 향하는 곳은 따로 있었다는 것. 그 시절, 석주의 열정은사람을 단번에 압도하는 방식이 아니라 가만히 길들이는 방식으로 책을 만드는 일에 집중되고 있었다. - P87

하이쿠에서 딴 이름이네요. 한번 들은 사람은 절대 잊을 수없겠습니다. 선생님. - P91

그러나 그녀가 자각하지 못했던 어떤 애정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 P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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