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는 내게서 어떤 힌트를 얻은 것 같았고, 가족의 푸켓 여행 때 낡은 속옷과 동행했다. A의 남편은 물건을 좀체 버리지 못하는 타입이라 러닝셔츠도 하나 사면 메쉬 소재가 될 때까지 입는다고 했는데(물론 처음엔 그런 소재가 아니었다), 이미 수명을 다한 속옷을 여행지에서 한 번만 더 쓰고 버리자고 하자 A의 남편도 마음의 준비를 했다. 부부는 산뜻한 기분으로 여행을 갔고오래된 속옷과 드디어 이별할 차례였다.
이별식은 좀 당혹스러웠다. A의 남편은 스파 탈의실에 들어가서야 하필이면 몹시 낡은 팬티를 입은 상태라는 걸 깨달았다.
마사지를 받기 위해 속옷만 입고 나와야 하는데, 그 속옷은 뭐랄까.…, A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삼각이었는데, 심각했지. 엉덩이골 쪽이 다 해진 거야. 뒤쪽이라 그나마 다행이었어."
예전에 만년필 수리 때도 비슷한 얘기를 들었던 것 같다. 너무 오래 멈춰 있으면 재기가 힘들어지는 건 인간에게만 적용도는 게 아니었던 것이다. 사물에게도 교체와 회복의 시한이 있다니, 그건 어찌 보면 놀라운 일이고 어찌 보면 피곤한 일이다.
내 몸 하나뿐 아니라 소유한 물건들까지 다 돌아봐야 한다는 거니까.
"이거랑 이거는 오늘 날짜를 적어뒀어요."
수리점 주인은 약을 교체한 시계들을 건네주며 말했다. 나는 어디에 날짜를 적어뒀다는 말인가, 하고 시계를 살피다가 한후에야 내부에 적어뒀다는 말인 걸 깨달았다. 이제 이 시계들은 모두 같은 출발점에서 흐르기 시작했다. 건강 상태에 따라 그기 다른 지점에서 멈추게 될 테고, 나는 아마도 시간이 멈춘 지 한참 후에야 그것을 다시 발견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