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없는 오후내가 사라진 것 같은 오후너무 조용해무엇이든 다 들켜버릴 것만 같았다.
시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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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영은 초파리를 좋아했다. 초파리의 날개와 눈을 특히 좋아했다. 투명하고 얇은 날개는 성당에서 보았던 스테인드글라스를닮았다. 정교하게 짜인 무늬 사이사이로 무지갯빛이 감돌았다.
새빨간 눈은 석류의 단면을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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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그 불확실성이다. 14세기 승려 요시다 겐코吉田兼好가 말했다. 그는 사람들이 만개한 꽃보다 막 꽃이피어나려는 나뭇가지, 시든 꽃잎이 떨어진 정원에 관심을 더 많이 쏟는다고 말한다. 벚꽃은 그 짧은 수명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바로 그 짧은 수명 때문에 사랑스럽다. 일본 연구자인 도널드리치는 "아름다움은 덧없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라고 말한다.
순식간에 사라지는 삶의 작은 기쁨을 즐기려면 느슨하게 쥐어야 한다. 너무 세게 붙잡으면 부서져버린다. 사람들이 소로에 대해서 한 말은 쇼나곤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소로는 대상에 관심을 기울이지만 그것을 꽉 붙잡거나 이용하거나 남김없이 파악하려 하지는 않는다.
- - P341

헤이안 일본은 모든 예술을 높이 쳤지만 그중에서도 시가 가장으뜸이었다. 인생의 모든 중요한 사건에는 늘 시가 있었다. 출생과 연애, 심지어 죽음까지도, 헤이안 시대의 존경받는 신사는 작별의 시를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훌륭한 시를 쓰는 사람은 사랑하는 이의 마음을 얻거나 높은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시를 못 쓰는 사람은 무자비하게 조롱당했다. - P345

점심을 먹은 후 공책을 꺼내 대문자로 쓴다. 일본 탄환열차:목록."좋은 시작이다. 하지만 너무 광범위하다. 더 구체적일 필요가 있다. 더 작게 들어가야 한다. 일본 탄환열차에서 나를 즐겁게한 것들, 더 낫다.
1. 승무원이 복도를 미끄러지듯 걸어왔다가 몸을 회전하고, 승객을 만나자 인사하는 모습. 2. 하이힐을 신고 복도를 걸어오던젊은 여성이 아주 살짝 휘청했다가 발레리나처럼 우아하게 중심을 잡는 모습. 3. 고통스럽지 않은 기분 좋은 따뜻함을 내뿜는 단단하고 두꺼운 스티로폼 커피 컵의 감촉. 4. 컵에 영어로 "AromaExpress Café"라고 쓰여 있고, "Aroma"의 "0"가 커피 원두 모양으로 그려져 있는 것. 5. 도쿄에 가까워질수록 풍경이 점점 도시로바뀌는데, 그 변화가 점진적이어서 도시가 급작스럽게 나타난다.
기보다는 서서히 드러나는 모습. 6. 얼룩 하나 없이 깨끗한 화장실, 7. 기대하지 않았는데 언뜻언뜻 보이는 바다. 8. 반대 방향 기차가 정면충돌을 걱정할 새도 없이 빠른 속도로 지나가면서 내는소음. 9. 창문 위로 작은 개울과 지류들을 만들면서 마치 자기 의지가 있는 것처럼 민첩하게 움직이는 빗방울들. - P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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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다‘를 클릭하다‘로 바꾸면 현재 우리가 겪는 고충이 된다.
우리는 데이터를 정보로 착각하고, 정보를 지식으로, 지식을 지혜로 착각한다. 쇼펜하우어는 이러한 경향을 염려했다. 그가 눈돌리는 곳마다 사람들은 정보를 통찰로 착각하며 앞 다투어 달려들었다. 쇼펜하우어는 이렇게 썼다. "정보는 그저 통찰로 향하는 수단일 뿐이며 정보 그 자체에는 거의 아무 가치도 없다는 것을 그들은 알지 못한다." 나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고자 한다. 이런 과도한 양의 데이터(사실상 소음)는 가치가 없는 게 아니라 오히려 부정적이며, 통찰의 가능성을 없앤다. 소음에 정신이팔린 사람은 음악을 듣지 못한다.
을 . - P179

니들먼은 그건 사실이 아니라고 말한다. 철학도 분명 도착지에관심이 있지만, 여행을 서두르지 않을 뿐이다. 이것이 그저 똑똑한 대답이 아닌 마음의 대답에 도착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다른 종류의 대답, 예를 들면 머리의 대답은 그만큼 만족스럽지못할 뿐만 아니라, 가장 심오한 의미에서 그만큼 진실하지도 못하다.
마음의 대답에 도착하려면 인내심도 필요하지만 기꺼이 자신의 무지와 한자리에 앉으려는 자세도 필요하다. 끝없는 해야 할일 목록에서 또 하나를 지우려고 성급히 문제 해결을 향해 달리는 대신, 의혹과 수수께끼의 곁에 머무는 것. 여기에는 시간과 용기가 필요하다. 다른 사람들은 그런 우리를 조롱할 것이다. 내버려두라고, 제이컵 니들먼과 소크라테스는 말한다. 비웃음은 지혜의 대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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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에는 하루도 부고 기사가 실리지 않은 적이 없다. 최근에도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오늘만 해도 수학계의 노벨상이라는 필즈상 수상자와 텔레비전 토크쇼를 삼십 년간 맡아 했던 진행자가 죽었다는 부고 기사를 보았다.
내일이면 기억나지 않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죽음은 얼마 되지 않는다. - P85

그렇다고 읽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읽지 않고는 살 수 없었다.
김윤자가 독서의 대상으로 택한 것은 신문이었다. 한글로 된 신문과 영어로 된 신문 모두.
아침 일찍 광화문 스타벅스에 앉아 있으면 서너 종의 신문을 구할 수 있었다. 광화문에는 여전히 종이 신문을 읽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은 커피를 마시는 동안 뒤적거리던 신문을 곱게 접어자리에 놓고 가곤 했다. 게을러서 쓰레기통까지 가지 않는 게 아니었다. 신문을 읽고 싶은 누군가를 위한 배려였다. 지금 시대에신문을 읽는 사람들이란 희귀했고, 그래서 신문을 읽고 싶은 사람들이라면 자신과 비슷한 갈급을 갖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행동이었다. - P87

가 손을 들어올렸다. 손바닥이 신중호를 향하게.
"이거는 마이 시크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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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는 나의 프라이버시."
그녀가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신중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레이디가 하는 말을 듣고만 있었다.
"우 쥬 플리즈 토크 어바웃 유어 시크릿? 당신도 할 수 없잖아요"레이디가 말했다. - P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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