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 몇 주 가까이 책 한 권을 끊김 없이 완독하기가 어려워 예닐곱 권을 섞어 읽었다 마치 이 책 표지의 고운 디저트들처럼 여러 권의 책들을 흐트러져도 예뻐 보이게 침대 위에 늘어놓고 고심해 골라 몇 페이지 씩 번갈아 읽곤 했다 조도를 맞추고 인센스를 태우고 손을 씻고 핸드크림도 바르고 나름의 의식처럼 정갈하게 정성들여서 왜 그렇게 까지 하냐면 좋아하는 행위에 예를 다하는 것은 애심의 전체이기도 하니까 #한은형 작가의 장편 #레이디맥도날드 는 여러 권의 책들을 번갈아 읽던 중 유독 속도를 내게 만든 소설이다 맥도날드 할머니가 맥 레이디가 되기까지 작가가 마음으로 따라간 추적극이자 비극적 죽음을 기록한 이미지가 아닌 최선의 삶을 살았던 인물의 풍경화이기도 하다 노인, 여성, 계급과 차별 등 대한민국 현대사회의 실재적 이슈들을 직시하면서도 능청스런 위트와 뾰족한 우아함을 사뿐히 곁들이는 작가 특유의 문체가 인상적이다 #한은형 작가의 산문들을 즐겁게 읽었는데 장편 소설도 또 다른 매력이 있었다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소중한 것들이, 가치들이 있기 마련이다 정갈하게 정성을 다하고 싶은 그 시간을 취미라고 하기도 하고 시그니처나 라이프스타일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다 그것에 대해 의아해하는 이들을 납득시키거나 설득할 이유가 있을까. 혹은 반대로도 마찬가지다. 이왕이면 멋있고 아름다운 게 좋지 않냐는 래이디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멋있고 아름다운 그리고 고유한 당신이었습니다 김윤자 선생님 #레이디맥도날드 #한은형 #문학동네 #북스타그램
기도를 해본 적도 없었다. 하지만 하루를 잘 보내기 위해 매일이곳에 임하는 그녀의 행동도 기도와 같은 게 아닐까라는 데 생각이 미쳤다. - P233
하지만 그녀가 보내준 돈을 모아서 그녀에게 밥을대접하고 싶었던 김윤자의 마음, 그럴 수 없을 것 같아 속상해하며 김윤자가 걸었던 어느 밤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 P246
4월 20일 장애인차별철폐의 날을 앞두고 전국 곳곳에서 투쟁이 시작되었다. 지난 25일 이들이 서울 마포대교를 막고 느릿느릿 행진을 이어가자, 30분 발목이 묶인 이들이 30년간 갇혀 산 사람들을 향해 끔찍한 살기를 뿜어냈다. 그러나 그들은 십수 년간 장애인들이 시종 저항해온 것이 바로 이 사회의 야만적 질주이며, 신경질적으로경적을 울려대는 그 순간에도 자신들의 목숨이 이 고라니같은 존재들에 의해 얼마간 연장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나는 두 사람이 자동차가 아이보다 더 많이태어나는 사회의 운명을 끝내 피할 수 없었을지 모른다고생각했다. 촘촘하게 과속하는 사회에서 촘촘하게 고통이전가된다. 제 속도를 고집하며 안전거리를 유지하는 일은욕먹기 십상이므로 사람들은 걸림돌이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누군가를 몰아붙인다. 더 이상 고통을 전가할 곳 없는 이들이 벼랑 끝에 매달려 있고 위로받지 못한 영혼들이스스로 몸을 던진다. 죽음이 일상이 되었으나 책임을 추궁하는 일은 부질없다. 위로나 용서는 돈이 합의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최저가로 남의 인생을 망치고도 지체 없이시동을 건다. 산 사람은 달려야 한다. - P44
"아니, 왜 극장에 와서 누워 있냐고요. 그럴 거면 잠이나 자지.자리를 두 개나 차지하고서 말이에요. 옷차림은 말할 것도 없이엉망이고 술냄새도 나고요. 아주 어질어질해요. 영화를 보는데 두통이 다 생겼어요."김윤자는 아무리 돈을 내지 않고 들어오는 곳이라 해도 이건 너무하다는 말을 하려다 하지 않는다. - P108
그런 일이 계속해서 일어났다.틈을 줬더라면 다가와서 나이를 물었을 것이다. 그러고는 어디사는지, 남편은 살아 있는지, 자식들은 어디에 사는지를 물었을것이다. 누군가는 그녀의 팔을 잡거나 몸을 만졌을지도 모른다.그들은 다른 가능성들을 상상하지 못한다. 집이 어디라고 말하는 게 곤란할지도 모른다는 것, 남편이 처음부터 없을 수도 있다는것, 결혼을 했다고 하더라도 자식이 없을 수도 있다는 것, 자식이있다고 하더라도 안부를 묻고 지내는 사이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말이다. 사람들은 자기들이 살고 있는 방식, 그러니까 흔히 평범하다고 일컬어지는 삶의 방식 말고는 잘 상상하지 못했다. 따지고 보면 평범하게 살고 싶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면서 말이다. - P113
불행 포르노라고 아시나요?‘라는 제목의 글을 클릭하지 말았어야 했다.불행 포르노란 남의 불행한 일상을 보면서 나는 그래도 살 만하다고 생각하게 하면서 그와 동시에 은밀한 기쁨을 느끼게 만들어진 선정적인 콘텐츠를 일컫는다‘는 문장이 있었다. 그게 다였다. 이 문장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언제부턴가 시청자 게시판을 보지 않게 되었고, 본다고 하더라도 웬만해서는 화가 나지 않는 신중호였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글쓴이가 예의를 갖추는 척하면서 비열하게 자신을 공격해서 더 그랬다. - P1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