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랜만에 평양냉면을 먹으러 온 사람처럼 말했다. 이것은
‘커피 마심‘이 아니라 ‘커피‘ 저 멀리 적도 부근에서, 어쩌면 불공정한 임금을 받는 여성 노동자가, 열악한 근무환경 속에서 손으로일일이 골라낸 것일 수도 있는 원두로 만들어진 커피. 이렇게 멀리서 오는 맛있음을 허투루 대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나는 한 방울의 낭비도 없이 커피를 마신다. 엄마가 비싸게 지어준한약을 마시듯 컵에서는 쪽쪽 소리가 난다. - P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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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 원두커피를 마시게 된 게 언제쯤인지를 생각하고 있다. 고등학생 때도 커피를 마셨던가. 가물가물하다. 카페를 자주갔는지 아닌지도 또렷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아무 상관없는썰렁한 유머 하나만 지금 생각나는데, 그것은 고등학생 때 우연히다시 만난 초등학교 동창 남자애가 내 친구에게 수작을 걸며 했던말이었다.
"우리 커피숍 갈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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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어? 그럼, 커피 전문점 갈래?"
친구는 표정에 변화가 없었지만 그 남자애는 자기가 말해 놓고재미있었는지 웃었다. 실은 나도 뒤에서 엄청 웃었다. - P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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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묽은 사람인 동시에 아주 미숙한 인격을 가졌다는 것을알고 있다. 내가 알기로 미숙한 인격을 가진 사람이 자기 신념에너무 몰입하여 엄격해지면 자신의 무결함에 도취되기 쉽다. 나는내가 채식생활에 진지해질수록 자꾸 고기를 먹어야 힘이 나는 법이라고 말하는 엄마가, 자꾸 인스타에 삼겹살 사진을 올리는 친구가 야속하고 미워질까 봐 겁이 났다. 서둘러 치팅데이를 만든 것은 그즈음이었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치팅데이의 두 번째 장점이다. 1년에 한 번씩 나는 육식을 사랑하던 내 기원에 다녀온다.
동시에 내 신념을 자진해서 일부 더럽힘으로써(!) 내가 어쭙잖은무결함의 도취로 가는 길을,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정죄하고 싶어지는 마음을 미여에 마느 - P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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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살짝 배신당했다는 기분이 들 즈음, 엄마에게 전화가왔)다. 내 기분을 아는지 모르는지 수화기 너머로 엄마가 물어보신다. "부모가 되어보니 어떠니?"
쉽게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라 얼버무릴 뿐이다. "좋죠. 아이키우면서 배우고 느낀 점들도 많아요."
돌봄 노동을 통해 무엇보다 인간이라는 존재의 시작이 얼마나연약한지, 제아무리 잘난 사람이라도 다들 처음에는 누군가의 ‘아기였다는 사실이 나를 겸손하게 한다. 동시에 부모, 나, 자식 이렇게 삼대를 통시적으로 보고, 좀 더 객관화할 수 있다는 점이 현재로서는 가장 큰 깨달음이다. 이게 곧 어른이 된다는 기분일까. - P182

그럼에도 그 미완의 맛을 가뿐히 뛰어넘는 새로운 맛의 차원이 있었다. 말하자면 기분이 만들어내는 맛. 그토록 원하던 라면을 먹고 있는 거라는 사실 자체가 주는 흡족의 맛. 〈남극의 쉐프> 속 요리사가 어찌 저찌 만들어낸 라멘도 다들 그 맛으로 맛있게 먹었으리라. - P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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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상가? 태희가 몽상가였어? 당시 그 역할로 6개월 정도를 살아본 내입장에서는 조금 당황스러운 표현이었지만 연기 경력이 얼마 안 되는신인배우였던 나는 아, 감독님이 그렇게 완성하고 관객이 그렇게 봐주신 거면 그런 건가 보다, 하고 말았다. - P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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