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나는 관객들에게 내가 연기한 이 캐릭터는 이런 사람이에요, 라고 설명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마치 내가 그림을 보며 나름의 영감과 감동을 받고 있는데 갑자기 화가가 나타나서 "이 그림은 사실 이런의미로 그렸습니다"라고 설명하면 김이 새는 것과 같다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봉 20주년 기념으로 책이 나온다며 정재은 감독님께서 A4 두 장 정도 글을 써오라는 숙제를 내주시는 바람에 한번 끄적여본다. 아이고 감독님... 글 쓰는 것을 싫어해서 서면 인터뷰도 꺼리는 사람한테 A4 두 장이라니요.... - P245
집에서는 아웃사이더, 집 밖에서는 인사이더인, 배를 타고 흘러다니고싶다고 해맑게 말하는 태희, 그는 내게 몽상가라기보단 열심히 길을 찾는 사람으로 보였다. 태희 같은 사람들을 그냥 엉뚱한, 현실성 없는 꿈을 꾸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성인이 되었으니 일단 잡생각은김어치우고, 어떻게든 안정적인 직장을 갖고, 남들과 비슷한, 보편적인길을 가는 것이 현실적인가? 그렇지 않은 길을 가는 사람을 비현실적이라고 말하는 사회는 나는 별로다. 실현 가능성이 없는 꿈을 꾼다고 말하는 것도 나는 별로다. 각기 다르게 태어나 딱 한 번 살다 가는데, 고민하고 번뇌하고 시행착오하면서 그렇게 계각각 다르게 살다 가면 되는 거아닌가, 그러다가 또 실현돼 버릴지 누가 아는가. 안 돼도 그만이고, - P248
진정한후렌치후라이의 시대는 갔는가 (Beer from Holland)밴드의 멤버 조월과 함께 직접 작사/작곡을 하고 20여 년 동안 함께 한곡이지만 여전히 이 제목은 어색하다. 제목이 여전히 정해지지 않았던 어느 일요일 아침, 조월과 나는 동네 맥도날드에서 아침을 먹고 있었다. 후렌치 후라이를 먹으며 둘 중 한명이 "이상하네. 맛이 영 아니잖아."라고 말했고, "하루 이틀 문제가 아니야. 진정한 후렌치 후라이의 시대는 갔어." 라고 답하며, 그냥 그렇게곡명이 정해지게 되었다. ‘이 아픔을 넘고 싶어‘를 비롯 곡의 가사는 세상 작은 모퉁이 구석구석까지도 갖은 간판들, 로고들, 무한 경쟁의 고함과 위력, 절규로 가득 찬 와중, 얇고 좁고 엷은 취향 하나에 의지해 자위하며 살아가(보려)던 당시 젊은 시절의 나 자신을 응시하는, 자조하는, 동시에 위로를 건네는 내용을 담고 있다. - P256
내가 해낸 것이 비로소 자랑스러워졌다고 해야 할까요? 이 영화를 포기하지 않고 만들어서 한국영화의 리스트에 이런 영화도 있었음을 각인했다는 게 이제서야 뜻깊게 다가옵니다. - P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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