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당신이 쉬는 날입니다. 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내리고, 창문을 연 당신은 코끝이 시리다고 생각합니다. 빨개진 코를 만져보다 다시 창문을 닫습니다. 식탁 위에 사과 두 개와 글 여섯 개가 놓여 있습니다. 당신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귤을 까먹습니다. 사실 무얼 먹어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허기를 느낀 지 좀 됐습니다. 괜히 달력을 몇 장 넘겨봅니다. 어떤 날이나, 아무 날들, 도래할시간 앞에서 당신은 막막해집니다. - P33
오늘 저녁 이 좁다란 방의 흰 바람벽에어쩐지 쓸쓸한 것만이 오고간다. 이 흰 바람벽에희미한 십오촉 전등이 지치운 불빛을 내어던지고때글은 다 낡은 무명 셔츠가 어두운 그림자를 쉬이고, 그리고 또 달디단 따끈한 감주나 한 잔 먹고 싶다고 생각하는 내 가지가지 외로운 생각이 헤매인다. - P35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아가도록" 태어날 수밖에 없는 사람을 생각하며, 당신은 일어섭니다. 마트에서사 온 어묵을 썰고 멸치 육수를 냅니다. 끓는 물의 요란한 뒤척임을 바라봅니다. 어쩐지 당신은 조금 울고 싶어지는 기분입니다. 울고 싶은 가운데, 사라지는 허기를 생각합니다. 창밖으로 해가 지고 있습니다. - P37
시를 쓰는 사람은 문장을 믿는 사람입니다. - P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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