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수록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어……. 생각이 많아지는 날이면 쉽게 내 앞을 가로막는 생각인 동시에나의 소중한 친구들의 입에서도 꼭 한 번은 흘러나오는 말, 이 글을 읽는 당신도 같은지? 그렇다면 우리, 조금만 시간을 내서 스스로가 아는 자신의 모습을 하나씩 떠올려보자. 도무지 이해되지 않고 아리송한 내 모습은 일단 차치하고서라도 ‘나는 이렇다‘ 하고확실히 말할 수 있는 몇 가지를 우리는 알고 있다. - P216
프리랜서로 사는 나를 아침에 일어나도록 만드는 건, 번뜩 떠오른 멋진 글감도, 당장 그리고 싶은 한 장의 그림도, 발등에 떨어진불같은 마감도, 새 문서 같은 새 하루를 맞이했다는 설렘도 아니다. 일단 오늘 아침에 마주할 오늘자 테이블이다. - P218
"어떤 맛이 나는가 하면, 눈썹 하나가 반쯤 내려오며 묘하게 찡그리게 되는 맛이 난다." 2019년에 출간한 여행 에세이에서 계란 튀김 덮밥에 대한 맛을설명하며 썼던 문장이다. 그리고 이 문장에 공감하며 사진을찍어 올리는 독자들을 보았다. 찡그리게 된다는 문장을 읽고 왜찡그려?‘라는 의문보다는 ‘그 기분 뭔지 알지!‘ 하는 공감이 더해진다. 짜증 낼 때만 찡그리지 않는다는 걸, 우리는 살면서 몇 번씩겪었다. 그리고 맛있다‘라는 기분은 얼마나 다양한지도 말이다. - P221
어느 맛은 한 방이 아니라 너무 놀라워서, 나도 모르게 제일 단순한 표현을 써버리기도 한다. 이 말은 생각할 것도 없이 최고의맛표현이다. "이거 진짜 맛있다. 먹어 봐." 다른 말이 필요 없는 이 순간은 또 얼마나 맛있는지 모른다. - P225
○튜브 영상을 보기 전에 불리기 시작한 미역과 냉장고에 몇개 안 남아 있던 토마토, 원래는 냉면에 올려 먹으려고 샀던 오이를 썰어 한 그릇에 가지런히 모아둔다. 그 위에 간장, 식초, 참기름, 참깨를 섞은 간단 소스를 부어주면 끝. ‘간식,참,참‘ 소스는 짧은 밤에 곁들이는 안주 맛으로 아주 탁월하다. 토마토와 이 소스가 안 어울릴 것 같지만, 먹어보면 고개를 양쪽으로 번갈아 기울이며 음미하고 싶어진다. 토마토의 겨드랑이에 팔을 끼고 들어 안는 맛이랄까. - P228
하지만 나라는 손님을 대충 모시기란 얼마나 쉬운가. - P229
여느 때처럼 아빠와 외식을 한 뒤 빵집에 들러 밤식빵을 사서돌아가던 날, 언니와 나는 손에 밤식빵을 든 채 걸어가는 아빠의뒷모습을 보며 그런 이야기를 했다. "나중에 우리 큰일 났다. 우리 늙어서도 밤식빵만 보면 아빠 생각나서 울겠다." - P250
르뱅쿠키를 꺼냈다. 목이 마른 상태였으나 물도 없었고 허리와 다. 리가 아팠다. 여행이고 뭐고 다 포기하고 집에 가고 싶었던 그때씹었던 쫀득쫀득한 르뱅쿠키. 입이 말라 퍽퍽했지만 그저 맛있기만 했던,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해 질 녘의 센트럴파크에서 하나를 다 먹었던 그 쿠키. 첫맛은 달콤하지만 씹을수록 견과류가 고소하게 퍼졌던 그 르뱅쿠키를 먹으며 내가 다시 뉴욕에 온 이유를상기했다. 모든 것이 다 용서되는 맛이었다. 힘든 것도, 아픈 것도, 길을 잃어서 조금 서러운 것도, 그 쿠키가 위로해준 거였다. - P258
작가가 자기 이야기만 늘어놓으면, 유아적이다. 한데, 에세이는자기 이야기를 하는 장르이다. 아울러, 김윤식 문학평론가는 두 부류의 소설이 있다고 했다. 자전소설이라 밝히는 소설과 그렇지 않다고 우기는 소설, 소설 역시 넓게 보면 다 자기 이야기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작가는 줄곧 자기 이야기를 해야 하는 뻔뻔한 존재인데, 그럴수록 유아적이라 하니 뭔가 회춘하는 느낌이다. ‘응애~‘ 여러분은 그저 ‘우쭈쭈‘ 하면서 읽어주시면 된다. 한 번 해보자. "우쭈쭈." 자, 그럼 시작. - P266
요컨대, 독일식 핫도그는 재료의 질이 맛의 9할 이상을 차지한다는 것이다. 내가 핫도그를 먹었을 때는 대개 글을 쓰다가 막 나왔을 때였다. 입으로는 핫도그를 우물거렸지만, 머릿속에는 글감의 잔열이 남아 있었다. 그렇기에 핫도그를 먹으면서도 글을 생각했다. 적어도 재료가 훌륭하다면, ……그러니까 소설도 이야기가, 훌륭하면 수사가 화려할 필요는 없잖아.‘ 이 깨달음이 한낮에만비춰 소중했던 햇빛처럼, 수사에 서툰 나를 안아줬다. 그 후론 수사에 딱히 매달리지 않는다. 결국, 중요한 건 핫도그의 소시지처럼 글의 재료인 이야기니까. - P276
나올 때의 형태 그대로 한 젓가락씩 떠먹는 사람, 전부 쓱쓱 비벼 먹는 사람, 날달걀을 툭 터트려 비벼 먹는 사람, 노른자만 떠서부은 뒤 비벼 먹는 사람, 밥 가운데를 분화구처럼 구멍 내서 노른자와 낫또를 넣은 뒤 비벼 먹는 사람, 시치미와 간장을 넣어 비벼먹는 사람, 김치까지 넣어 먹는 사람 등 일일이 언급하자면, 우리집 바닥을 지면 삼아 쓴대도 모자란다(네, 저희 집 좁다는 말이죠. 잉?). - P278
모우리는 살면서 참 많은 뻘짓을 한다. 결과가 나오지 않는 노력은 쉽게 뻘짓으로 치부되기도 한다. 하지만 뻘짓 없는 세상은 너무 지루하지 않을까. 즐겁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 예측할 수 없는 것들로 가득한 세상에서 내 뻘짓이 뭘 캐낼지역시 알 수 없는 일이다. 갑자기 하고 싶은 뻘짓이 많아졌다. - P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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