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노트를 쓰는 데 혹시 도움이 될 만한 게 있을까 싶어 그해의 일기장을 꺼내 봤다. 몇 해 전부터 나는 날마다 서너 문장을 넘어가지 않는 짧은 일기를 쓰고 있는데, 나의 일상이라는 게 대부분 소설 생각에 저당잡혀 있으니 뭔가 결정적인 단서를 발견할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다. 이를테면 이 소설을 쓰지 않을 수 없었던 동기나 신념 같은 것들, 이 소설의 실마리가 되어준 생각이나상황 같은 것들, 단지 곤란하고 답답했던 기분만으로 소설이 쓰였을 리는 없으니까. - P138

소설과 삶이 서로에게 무용하지 않음을 증명하는 것. 소설과삶이 서로를 외면할 수 없음을 확인하는 것. 요즘 내게 점점 더 중요해지는 건 바로 이런 일들인 것 같다. - P139

소설에서 삶을 말끔하게 분리하는 노력이 아니라 소설과 삶 사이의 복잡한 긴장을 버티는 노력을 하고 싶다. 완전무결해지려는노력이 아니라 그럼에도 천천히, 조심스럽게 연루되어보려는 노력을 하고 싶다. 어차피 어려운 일이라면, 그래도 무릅쓰고 싶다면 그게 더 좋을 것 같다. - P139

로맨틱한 끌림은 느끼는 유로맨틱이며 그 가운데서도 자신은 양성 모두에게로맨틱한 감정을 느끼는 논모노로맨틱, 인주는 이성에게만 느끼는 모노로맨틱이라고 덧붙인다. 주호의 설명에 ‘나‘는 처음엔 의문과 거부감이 들고 이내 배신감을 느낀다. 한때 "접점"(109쪽)이 있는 ‘우리‘ 였으나, 그 결속을 풀어버린 것은 바로 ‘너‘라는 배신감. 그것이 주호와의 만남을 지연시킨 원인이었다.

하루는 주호씨를 미행했어요. 윤범씨를 만난다는 날에요.
네? 언제요?
이번 여름이니까 얼마 안 됐죠. 알아요, 한심하죠. 근데 그렇게안 하면 나중에 후회할 거 같더라고요.
인주씨가 내 반응을 살필 시간이 필요한 것처럼 잠시 쉬었다.
말했다.

끝내 지우지 못하는, 아니 모조리 지워도 속절없이 다시 쓰게 되는 그 대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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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얼마나이 왔는지 뒤돌아봐.

"누군가가 널 어떻게 대하는가를 보고너의 소중함을 평가하진 마." 말이 대답했어요.

"항상 기억해. 넌 중요하고,
넌 소중하고, 넌 사랑받고 있다는 걸.
그리고 넌 누구도 술 수 없는 걸

쏠작한겐를 흥미진진하다말이 말했습니다.

"그렇지만 너가이 세상에있고 없고엄청난 차이야."

"나도 그래." 두더지도 말했죠.
"그렇지만 우린 널 사랑해, 그 사랑이널 집에까지 더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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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금, 못 들으셨어요?"
"뭘요?"
목소리가 되묻는다.
그녀는 귀를 기울인다.
"누구… 사람이 있는 것 같았는데…."
가느다란 목소리가 잠시 귀를 기울인다. 그리고 말한다.
"잘못 들으셨을 거예요. 여긴 우리 둘뿐이에요."
그녀는 다시 귀를 기울인다. - P67

그러나 기억은 떠올리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희미해져서,
마치 석양 무렵의 햇살처럼, 그렇게 약간의 온기만을 남기고사라져 버렸다. 머릿속에 남은 것은 눈을 뜬 순간부터 그녀를지배한, 주위를 둘러싼 것과 똑같은 어둠뿐이었다. - P69

"최 선생님, 결혼, 했다고, 하지 않았어요?"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를 애써 억누르며 물었다.
"남편이 바람나서, 이혼당했다고… 하지 않았어요?" 가느다란 목소리가 가느다랗게 한숨을 쉬었다.
"후우…. 대체 무슨 소린지…. 다 아실 만한 분이…."
"아까 분명히 그랬잖아요. 최 선생님 신혼집이라고 했다.
가, 자취방이라고 했다가…, 결혼했다고 했잖아요. 그랬다가이혼당했다고…."
"이 선생님, 횡설수설하시네요…. 머리가 많이 아프세요?"
그녀는 입을 다물었다. - P77

갑자기 발밑의 땅이 물컹, 해졌다. 그녀는 중심을 잃고 넘어졌다. 허우적거리다 간신히 몸을 일으켰을 때, 환한 빛이눈앞을 뒤덮었다. 어둠에 익숙해진 눈은 돌연한 불빛 앞에서기능을 멈춰 버렸다. 그녀는 쏟아지는 빛 속에서 그대로 얼어붙었다. - P79

"피임약은 처방받고 드신 거예요?"
"의사 선생님이 두세 달 먹어 보라고 하셨고, 피임약은 원래 처방 없어도 살 수 있잖아요….."
그녀는 괜히 주눅이 들었다.
"의사가 두세 달만 먹으라고 했으면 두세 달만 먹고 끊었어야죠." - P88

"전공은 어떤 걸 하세요!
"노문학요…."
"특이한 걸 하시네요. 우리나라에 노르웨이 문학을 하는사람은 별로 없죠?"
"저…, 노르웨이가 아닌데…. - P91

"저, 아이 아빠가 돼 주실 수 있을까요?"
"아이 아빠요?"
"예, 사실은 오늘 선 보러 나온 것도 그것 때문이거든요.... - P93

문득 그녀는 피투성이가 된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울기시작했다. 처음에는 흐느끼다가 나중에는 걷잡을 수 없이 서럽게 엉엉 소리 내 울었다. 그러나 그것이 안도의 눈물인지,
아이를 잃은 슬픔인지 혹은 다른 무엇 때문인지는 그녀 자신도 알지 못했다. - P118

언캐니 밸리(Uncanny Valley)란 인공 존재의 외모뿐 아니라 행동을 받아들일 때도 적용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 P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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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토끼 (리커버)
정보라 지음 / 아작 / 2022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전래동화와 호러필름의 기묘한 콜라보레이션 읽고 있어도 듣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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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만이 아니다. 사물도 그렇다. 유독 내가 잘 발견하는 사물이 동그란 머리끈이다. 땅에 떨어지 있는 머리끈을 발견하민가던 길을 법추거나, 혹여 이미 지나쳤더라도 되돌아와 사진으로 남기른다. 지하철역의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리다가 급이 다시 돌아와서 땅에 떨어진 머리끈을 찍을 정도인데 이러면 행인들은 내가 휴대폰으로 겨냥하는 지첩을 함께 본다. 뭐 대단한 게 있나 싶어서일 텐데 거기엔 흔한 머리끈이 있을 뿐이다. - P165

비행기에서 바퀴벌레 한 마리와 좌석을 공유한 적이 있다. 일곱 시간의 비행이 끝나갈 무렵에서야 그걸 알아챘다. 먹고 있던 기내식에서 곰팡이를 발견한 적도 있고, 내 좌석 등받이에 안마 기능이 추가된 게 아닌가 싶을 만큼 발길질을 하던 뒷좌석아이도 있었다. 그러나 이런 일들은 기체가 난기류에 휘말려 요동칠 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 P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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