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금, 못 들으셨어요?" "뭘요?" 목소리가 되묻는다. 그녀는 귀를 기울인다. "누구… 사람이 있는 것 같았는데…." 가느다란 목소리가 잠시 귀를 기울인다. 그리고 말한다. "잘못 들으셨을 거예요. 여긴 우리 둘뿐이에요." 그녀는 다시 귀를 기울인다. - P67
그러나 기억은 떠올리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희미해져서, 마치 석양 무렵의 햇살처럼, 그렇게 약간의 온기만을 남기고사라져 버렸다. 머릿속에 남은 것은 눈을 뜬 순간부터 그녀를지배한, 주위를 둘러싼 것과 똑같은 어둠뿐이었다. - P69
"최 선생님, 결혼, 했다고, 하지 않았어요?"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를 애써 억누르며 물었다. "남편이 바람나서, 이혼당했다고… 하지 않았어요?" 가느다란 목소리가 가느다랗게 한숨을 쉬었다. "후우…. 대체 무슨 소린지…. 다 아실 만한 분이…." "아까 분명히 그랬잖아요. 최 선생님 신혼집이라고 했다. 가, 자취방이라고 했다가…, 결혼했다고 했잖아요. 그랬다가이혼당했다고…." "이 선생님, 횡설수설하시네요…. 머리가 많이 아프세요?" 그녀는 입을 다물었다. - P77
갑자기 발밑의 땅이 물컹, 해졌다. 그녀는 중심을 잃고 넘어졌다. 허우적거리다 간신히 몸을 일으켰을 때, 환한 빛이눈앞을 뒤덮었다. 어둠에 익숙해진 눈은 돌연한 불빛 앞에서기능을 멈춰 버렸다. 그녀는 쏟아지는 빛 속에서 그대로 얼어붙었다. - P79
"피임약은 처방받고 드신 거예요?" "의사 선생님이 두세 달 먹어 보라고 하셨고, 피임약은 원래 처방 없어도 살 수 있잖아요….." 그녀는 괜히 주눅이 들었다. "의사가 두세 달만 먹으라고 했으면 두세 달만 먹고 끊었어야죠." - P88
"전공은 어떤 걸 하세요! "노문학요…." "특이한 걸 하시네요. 우리나라에 노르웨이 문학을 하는사람은 별로 없죠?" "저…, 노르웨이가 아닌데…. - P91
"저, 아이 아빠가 돼 주실 수 있을까요?" "아이 아빠요?" "예, 사실은 오늘 선 보러 나온 것도 그것 때문이거든요.... - P93
문득 그녀는 피투성이가 된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울기시작했다. 처음에는 흐느끼다가 나중에는 걷잡을 수 없이 서럽게 엉엉 소리 내 울었다. 그러나 그것이 안도의 눈물인지, 아이를 잃은 슬픔인지 혹은 다른 무엇 때문인지는 그녀 자신도 알지 못했다. - P118
언캐니 밸리(Uncanny Valley)란 인공 존재의 외모뿐 아니라 행동을 받아들일 때도 적용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 P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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