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형을 찾으셨네요? 어떻게 구했어요?"
"아아, 거기 앉아 있던 할아버지 봤어요? 그분이 바다로 뛰어들었어요. 71세래요, 믿기지 않아요!" - P17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얼마 전 라디오에서 레 미제라블 OST의 <Do you hear the people sing?)을 틀었는데, 음악이 나가는 동안 영화와 비행기 두 세계가 동시에 떠올라 너무나 풍성한 감정에 사로잡혔다. 내가 어느 공항으로 날아갈 때 그 영화를 봤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영화 속에서 그 노래가 흐르던 때에 마침 기내식 서빙이 시작되었다는 사실은 기억난다. 이 비장하고 씩씩한 음악에 맞춰 조금씩 내게 가까워지는 기내식 카트의 움직임, 저 앞에서 승무원이 소고기인지 비빔밥인지 생선인지를 묻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중 하나를 선택하고, 카트는 조금 더 내게 가까이 다가오고 영화 속에서는 민중의 노래가 계속된다. 그러다 마침내 카트가 내 앞에 멈췄을 때 나는 재빨리 정지 버튼을 눌러 영화도 멈춰 세웠다. - P169

"저 사람들 인형 구했나 봐!"
내가 목격한, 휴대폰에 담긴 몇 장면은 이미 ‘결말 부분이었다. 그리고 숙소로 들어가기 전에 보고 있었던 건 이 소동의 ‘위기‘ 쯤 됐다. 그 사이 ‘결정‘을 놓친 것이다. 그걸 유추해야 했다. 할아버지가 인형을 절벽 아래에서 구해온 걸까? 정황상 그런것 같았으나 확인할 길은 없었다. 이곳을 떠날 시간이기도 했다. 햇빛과 바람 때문에 수영복은 그새 말라 있었다. - P17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호는 말 그대로 1호다. 그러니까 내가 ‘인공 반려자‘를 개발하고 시험 작동하는 일을 시작했을 때 처음으로 맡은 기계다. 물론 진짜 이름이 ‘1호는 아니다. 모델명이 따로 있고 회사에서 임의로 부여한 이름과 내가 시험 가동하면서 지어준 이름도 있다. 그러나 그런 건 전부 잊어버렸고 이제 와서는 별로중요하지도 않다. 나에게 첫 번째였으니까, 1호는 그냥 1호다.
안 켜지면 어떡하지…... - P126

세스는 1호가 켜지기를 기다리는 동안 내 옆에 서서 조용히기다리고 있었다. 웃지도 않고 쓸데없이 말을 걸지도 않았다.
그래서 어쩐지 예감이 좋았다. - P129

나는 내 것이 아닌, 회사에서 받아와 시험 가동 중인 신형인공 반려자의 단단한 가슴에 꼭 안긴 채 그가 깊고 낮은 목소리로 흥얼거리는 가사 없는 곡조를 소리 없이 따라 불렀다.
안녕, 내 사랑안녕, 내 사랑… - P134

"나 이거 할 줄 몰라."
나는 당황스럽기도 하고 조금은 부끄럽기도 했다.
"넘어질 것 같아."
「그냥 제가 하는 대로 따라오세요.」1호가 속삭였다.
「천천히.」화면에는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가운데 1호는 영화의 마지막 삽입곡을 배경으로 나를 안고 느리게 부드럽게 춤추며 거실을 돌았다. 기계의 가슴에 얼굴을 대고 달콤하게 슬픈 음악에 맞추어 춤추며 천천히 거실을 한 바퀴 돌면서 나는 처음으로 그를 ‘인공‘ 반려자가 아니라 ‘반려자‘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 P137

11나는 가슴에서 흘러나온 피가 침대 전체를 적시는 것을 느끼며 움직이지 못하고 누워 있었다.
침실 창문 밖으로 셋이 밤의 거리를 걷는 모습이 보였다.
여섯 개의 다리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가로등 아래를 지나갈 때 우연인지 알 수 없지만, 가로등 불빛이 흔들려 셋의뒷모습이 어둠에 가려졌다.
그것이 내가 본 마지막 광경이었다. - P143

여자아이의 목에 상처가 있었기 때문에 남자의 아내는 어린딸에게 신경 쓰느라 아들이 손톱과 입가에 묻은 얼마 안 되는 피를 아깝다는 듯이 열심히 핥는 모습은 눈치채지 못했다. - P151

아들의 몸에서 방울방울 흘러내리는 금빛 액체를 받아 모으며 남자는 마음의 평화와 미래의 희망을 되찾았다. - P15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 시를 쓸 때, 갑자기 많은 여자아이들이 ‘함께‘ 노래하려고 해서 당황했어요. 여기저기서 불쑥 끼어드는 그녀들의 목소리로,
시는 저절로 완성되었어요. 우리는 그녀들과 저는 너무 뜨거워서 자꾸 얼어붙었어요..
9층에서 뛰어내리는 소녀의 상태, ‘죽음의 진행‘을 슬로우 모션으로 기록하고 싶었습니다. 면밀히 기억해야 하는 순간이 있지요..
누구든 이 시를 불편하게 받아들였으면 좋겠어요. 그게 ‘우리‘의 목표이기도 하니까. 듣기 싫어도 들어야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N번 방에, 수없이 증식하는 N번 방에 여전히 있지요.
그 애들은 아직도 파란 불꽃처럼 곤두서있어요. 어둠 속에서 종종 나타납니다. 여기 연루되어 있는 남자애들은 끝까지 이 파란불꽃에서 벗어나지 못할 겁니다. 그게 이 시에 걸어놓은, 우리의 주문이니까요. - P67

대만 작가 우밍이의 소설 『햇빛 어른거리는 길 위의 코끼리」에는 이런 문장이 나옵니다.
예전에는 편지의 무게와 장 수, 거리에 따라 편지 발송 요금을 계산했는데 우편 요금이 너무 비싸서 부자들만 멀리 있는 사람에게 편지를 보낼 수 있었어. 가난한 이들은 편지를 보내지 못하고 그저 그리워할 수밖에 없었지. - P68

‘나는 사람한테만 시인이고 싶지 않아. 나무나 풀, 바위, 먼지 앞에서도 시인이고 싶어." - P72

결국 예술에서 스승은 자신이 하는 예술을 보여주거나, ‘말하는 존재‘ 입니다. 창작자가 스승을 따라 계속하도록, 독려하는 사람이지요.
나 스승은 비난을 퍼붓는 사람입니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얼마나 형편없는지, 문제가 많은지, 가망이 없는지, 잔소리를는 사람이지요. 대책도 없이, 거드름 피우며, 발론 학생이 다른 길을 선택하는 게 옳다 싶을 땐 냉정한 충고를 할 필요도 있지요. 그러나 그 층고는 조심스러워야 합니다. 습작하는 자가 어떤 보석을 품고 있을지, 언제 어떤 모습으로 태어날지 누구도 모니까요, 나는 선생은 강각자를 주 들게 하고 열등감을 갖게 합니다. 급기야 그 일이 싫어지게 만들지요. 누군가를 가르치게 될지 통한 노력합니다. 나쁜 선생이 되지 않기 위해서요. 결국 쓰고 싶게 만드는 선생이 되자고 다짐하지요. 어려운 일이지만요.. - P73

"시를 반스처럼 항상 입고 있어야 돼." - P74

목록이라는 길목배낭에는 이런 것들이 들어있다. 약간 더러운 갖가지 옷들, 깨끗한 흰 티셔츠 한 장, 물을 담을 빈 플라스틱 병, 깨끗한 속옷, 선을 돌돌 감아놓은 휴대전화 충전기, 여권, 통칭 파라세타몰이라고 불리는 해열진통제 두 갑, 너덜너덜해진 제임스 설터의 소설 한 권, 그리고 베를린의 한 영어 서점에서 발견하고는 메리앤에게 주려고 산 프랭크 오하라 시선집 한 권, 부드러운종이 표지의 회색 공책 한 권."
• 샐리 루니, 노멀 피를, 아르테 - P79

밤에 혼자 깨어있는 일은 좋다. 물구나무를 서거나 오래된 책을 뒤적이는 일, 그러다 반짝이는 문장을 발견하는 일은 좋다. 모르는 고양이가 느리게 눈을 깜빡이며, ‘눈키스‘를 해주는 일은 좋다. 선잠에 들었는데 누가 이마를 쓸어주고 가는 일은 좋다. 그 상태로 모른 채 조금 더 자는 일은 좋다. 까닭 없이 당신에게 쓰다듬을 받는 일은 좋다. - P82

전업 작가로 사는 내게 원고 마감은 일상이다. 마감이 코앞인데 랩톱 앞에 앉아도 아무 생각이 나지 않을 때가 있다. 키보드를두드리는 손가락과 생각이 서로를 믿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럴 때 나는 연필을 든다. 글이 술술 써지도록 연필이 요술을 부리는 건아니다. 다만 연필은 1루 출루에 성공하는 타자처럼, 글의 문을 열어준다. ‘득점은 모르겠는데, 일단 출루(시작)는 하게 해주지 하고 말하는 것 같다. - P99

글을 쓸 때 쓴다고 생각하는 것과 말을 건넨다고 생각하는 것은 다르다. 말은 글의 알맹이다. 알맹이가 실하면, 글은 저절로)부가 되어준다. 존 버거식으로 말하자면 작가와 이야기꾼의 차이다. 이야기꾼은 상대와 소통하려 하고, 젠체하지 않으며, 정보가아닌 ‘이야기‘를 전달하려 한다. 자연스러운 태도를 지닌다. 에세이를 쓸 땐 언제나 나보다. 내 이야기보다. 듣는 당신을 중요히 생각한다. 내 이야기지만 당신, 그리고 우리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나‘를 내세우고 끝나는 글은 읽고 나면 순식간에사라진다. 케이크 같다. - P10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 글은 쓰고 싶었지만 쓸 수 없었던 내가 쓰기 시작하면서 벌어지는 일들에 관한 이야기다. - P198

그렇다. 그러니까 이것은 마음가짐에 관한 이야기다.
쓰는 일은 결국 마음으로부터 시작된다. 강건하고 온유하고, 흔들리되 부러지지는 않는 부드러운 마음. 어느 것에도지지 않는 신축성 있는 마음을 갖기 위해서 나는 오늘을 산다. 그리고 나를 돌보고 달래는 데 성공해서 지금 이렇게 앉아있다. - P215

글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글에 매달린 시간이 길어지면이상한 것들이 멋있어 보인다는 이야기를 하는 중이다. - P90

작가로서 원고지를 메우는 일, 지금 내게 가장 중요한 일. - P67

가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타인과 대화를 하고 싶어서보다 이살리의 걸란이 특는 시간 등안나는 친구라고 할 만즌스의 교류를 하지 못하고 살았다. 친구를 만드는 것은 대게 가장 걸박하고 증차대한 일이었고, 또 그만큼 쉽지 않은 일이었다. 밤마다 신에게 친구를 만들어달라고 기도했지만 신은 나를 독점하려고 했다. - P23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