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궐 밖으로 나가는 길은 알고 있어요. 하지만 밖으로 나간 뒤에 황금 배까지 혼자 찾아가서 배의 주인과 혼자 맞서야해요. 괜찮겠어요?"
"해 봐야죠."
공주가 담담하게 대답했다. - P276

지금 아이는 분명한 형체를 가지고 체온과 살갗의 촉감이확연히 느껴지게 되었다. 더 커지고, 더 무거워지고, 더 뚜렷해졌다. - P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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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춘立春이면입춘이면 몸을 앓는다잔설 깔린 산처럼 모로 누워은미한 떨림을 듣는다 - P49

이제 와 문득문득 생각하느니인생 내내 고생 참 달다빌어먹을 신의 선물 - P51

언젠가 어느 날인가이제 와 내가 죽을 때나는 단 한 권의 책을 쓰고 말 테니 - P55

한 시절 악의 세력이 승리해도너무 슬퍼하지 말아요오래 절망하지 말아요 - P57

거기, 내가 상처 준 이들의 얼굴이아직 못다한 내 사랑의 사람들이내 안에 살아있는 앞서간 그이들이너무 오래 기다려 하얗게 눈을 쓴 채말없이 나를 바라보고 있다 - P61

언제나 사랑을 위해그 사랑 잊어야 하네그래도 사랑하네그래도 일을 하네별빛처럼 태양처럼 - P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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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을 하다보면 알게 된다. 연습없이 이루어진 군사한 작품? 그런건 없다. 일필휘지 속에도 수만 번의 붓질, 몸이 기억하는무수한 반복 작업이 녹아있다. - P127

나는 실전보다 연습 때 ‘진짜‘가 나온다고 생각한다. 모든 연습, 모든 습작이 지금의 나와 앞으로의 나를 만든다. 만약 어느 작가의 글이 독자에게 흡족함을 주었다면, 그건 그가 글쓰기를 연습한 시간 덕이다. 더 나은 글을 만들기 위해 쓰고 수정하던 인고의 시간 덕이다. - P128

소설을 쓰기 위해 매일 책상에 앉는 시간이 좋다고 말하는 K. 시작하는 K를 보니 알겠다. 우리에겐 저마다의 주머니가 필요하다. 그 주머니엔 "인생을 감으로 사는 자기만의 무엇이 들어있을 것이다. 그걸 ‘낙‘이라 고쳐 말해본다. 낙이 있다는 것. 그건 살만한 인생이다.
누가 말려도 들리지 않는 일, 그저 좋아서 하고 하고 또 하는 일. 대가? 일단 그런 건 천천히 생각하자. 나중에 저절로 얻게 된다면 모르지만, 우선은 그냥 좋아서 그 일을 하자. 그런 걸 찾았다면 절대 놓치지 말고, 함께 오래 살아야 한다. - P135

시간과 싸워 이길 수 있는 건 없다. 시간은 무엇이든 먹어치운다. 야금야금 티 나지 않게, 혹은 게걸스럽게, 때론 단번에 먹어치운다. 시간은 아기를 자라게 하고, 청년을 늙게 한다. 사랑을 사라지게 하고, 나무를 썩게 하며, 별을 소멸하게 한다. 가구를 낡게하고, 동물을 죽게 한다. 시간은 무엇도 ‘그냥 그대로‘ 두지 않는다. 시간은 방관자이자 폭군이다. 예외를 두지 않으며 자비를 모른다. - P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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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를 현재로 끌어옴으로써 인물 배경에 대한 정보를 이야기 안에 포함시키라. 이를테면 내 소설 『그저 육체적인 Just Physical에서 스턴트우먼인주인공은 과거에 불을 이용한 스턴트를 하다가 부상을 입은 적이 있다. 나는 그 사실을 독자에게 ‘말하지‘ 않고, 다만 불을 이용한 스턴트를 해야만하는 현재 상황에서 그가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 P48

대부분의 편집자와 독자는 프롤로그를 질색한다. 프롤로그는 이야기의 시작을 지연시키기 때문에 독자를 실망시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작가들은자신의 이야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독자가 특정 정보를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확신하기 때문에 프롤로그를 쓴다. - P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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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게 늘어지는 묘사 단락을 통해 인물의 모습을 한꺼번에 보여주지 마라. 소설 첫 장에서 인물 배경을 전부 밝혀서는 안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첫 장에서 인물의 모습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조리 묘사할 필요는 없다. 이야기가 나아가는 기세를 꺾지 않도록 주의하며 처음 몇 장에 걸쳐 인물에대한 묘사를 야금야금 흩뿌려 놓으라. 인물들이 처음 만나는 순간에는 서로에 대해 가장 눈에 띄는 부분만을 눈여겨보기 마련이다. 그리고 좀 더 가까워진 후에야 눈동자 색깔 같은 세부적인 것들을 알아차리게 된다. 또한 누군가를 처음 만나는 순간 눈여겨보는 지점은 사람마다 다르기 마련이다.
이를 통해 여러분이 묘사하고 있는 인물뿐만 아니라 그 인물을 관찰하고 있는 인물에 대해서도 무언가를 드러낼 수 있다. 이런 묘사는 두 가지 임무를 수행하는 셈이며 이는 언제나 좋은 일이다. - P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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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태평양 어디쯤에서 거대한 섬을 이루면서 둥둥 떠다니고 있을까. 표류한 뱃사람들이 그 섬을 발견하고 거기서 조금이라도 쉴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일 것 같다. 어쩌면 내가 그것을 완벽하게 잊을 때쯤 그것이 나를 찾아올지도 모른다. 집 앞에서 서성거리거나 문을 살짝 두드리는데 누가 봐도 당장 신고할 것 같은 모양새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운 좋게 내가 그들을 알아본다면, 태평양을 항해하느라 낡고 해진 몸을 차곡차곡 쌓아둔 《The Disaster Tourist) 100권이 거기 웅크리고 있음을 알아본다면, 그러면 나는 서재에 자리를 펴고 돌아온 책을 맞이할 것이다. - P237

요즘 같은 검색 시대에는 쉽게 알아낸 정보들은 금세 잊게 된다. 호기심을 바로 해결할 수 있지만 깨달음이 길게 지속되진않는다. 대부분은 무언가를 궁금해했다는 느낌까지 함께 증발해서 빈자리조차 남지 않는다.
이 목소리 어디서 들었더라, 이 향기가 뭐지, 그걸 바로 해소할 수 있는 목소리 검색이나 향기 검색이 있다면 어떨까 하다가도 곧 정반대의 마음을 품게 된다. 아무리 해도 검색되지 않는 영역과 누구도 알 수 없는 세계가 건재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호기심을 그냥 놓아두면 어떤 것은 시간 속에서 망각하고 어떤 것은 기어코 알게 되고 어떤 것은 영원히 수수께끼로 남는다. 셋 중에 기억의 유효기간이 가장 긴 건 수수께끼다. - P240

그러나 또 어느 출근길에는 이런 풍경을 보기도 한다. 눈이 오던 어느 겨울, 누군가가 눈 위에 적어둔 ‘화이팅‘이라는 세 글자 근처에는 미처 숨기지 못한 발자국 하나가 남아 있다. ‘화이팅‘을 잠시 보고 지나가려던 나는 결국 휴대폰을 꺼내 들고 사진을 찍는다. 이런 풍경이 우리를 조금 더 살게 하니까 놓치면 안 된다. 특히 눈이 오는 날엔 길바닥을 잘 보고 다녀야 한다.
길 위에 이렇게 우리를 흔들어두는 말이 있을지도 모르니.
치킨이나 커피 쿠폰 몇 장을 모으면 보너스 하나가 따라오는 것처럼 다정한 장면을 열두 장쯤 모으면 기대하지 않았던 보너스가 따라온다고 상상해본다. 반짝반짝 쿠폰 열두 장을 들고서 담당 창구로 가면 단골임을 알아보면서 보너스를 주는 것이다.
내가 상상할 수 있는 최고의 보너스는 수명 연장이다. 쿠폰 열두 장에 내 삶이 한 시간 연장되어도 좋고, 반나절 연장되어도좋고, 통 크게 하루쯤 연장되어도 좋다. - P244

"오르막이 보이면 미리 가속한 힘으로 올라가는 거야. 기어 변속을 못 하는 자전거면 더, 기어 변속이 되면 미리 바꿔놓고.
어떻게 보면 인생이랑 닮은 것 같지 않아? 예열하고 준비하는 힘으로 위기를 극복하는 거잖아."
호이안에서 L이 했던 말을 종종 떠올린다. 내가 오르막길을 만날 때마다 예열하고 준비한 힘으로 통과하는 건 아니지만, 내려서 자전거를 끌고 걸어가기도 하지만, 우리가 맘만 먹으면 자전거에서 내리지 않은 채로 그 오르막을 통과할 수도 있다는걸 보고 듣는 게 어쩐지 든든하게 다가와서 그 말을 좋아한다. - P248

바퀴의 궤적으로만 비교해보면 자전거는 자동차처럼 감쪽같은 후진을 시도하는 게 영 어색한 이동수단인데, 어찌 보면 바로 그 점이 우리 삶과 닮은 것 같다. 뒷걸음질로 계속 이동하려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얀 마텔의 《포르투갈의 높은 산》에는 1년째 뒤로 걷는 사람이 나오지만 그에게는 뒤로 걷기를 동력으로 삼을 수밖에 없는 사연이 있다. 가던 방향과 정반대로 이동해야 할 때, 사람들 대부분은 뒤였던 그곳을 앞에 두고 걷는다. 그게 우리의 방식이다. 자전거와 우리는 감쪽같은 후진을 포기하고, 바퀴의 궤적을 새로 그리면서 돌아선다. 조금 전까지 등 뒤에 있던 세계를 이제 눈앞에 두고 달리는 것이다. - P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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