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 세 번 떨어지는 게 일이 될 즈음아들, 그만하시제, 헛심 쓰다 헐해지겄네남들 다 좋아하는 일 하려 들지 마시고남들 안 하려 해도 중헌 일 안 있겠는가 - P178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온 나는얼마나 열심히 멀어져 왔던가열심히 공부해 진리에서 멀어지고열심히 일해서 삶에서 멀어지고열심히 쌓아서 하늘에서 멀어졌던가 - P182

그로부터 나는,
어두운 시대의 새벽길을 달렸고포위된 나는, 나의 시는,
사방으로 몸을 돌려 싸웠다 - P189

열심이네유애썼구먼유갑갑하시쥬그 심정지가 알아유근디유, 지가 한 50년 해보니께유씨앗은 알아서 움직여유때가 되믄 지가 나와유 - P200

아이에겐 필요해무조건 필요해친구와골방과자연이 - P206

나는 이 작고 두꺼운 벽돌 책을 안고두근두근 황홀한 미소를 짓는다그래, 스크린에 무수한 영상과 글이 명멸해도좋은 책은 하나의 위대한 건축이지난 150년 전의 이 책을 씹어 삼켜그보다 오래갈 한 권의 책을 쓰고아직 도착하지 않은 미래의 네가 순례할감동의 건축인 책을 펴내고 말테다 - P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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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만간 무더운 날이 오면 에어컨 앞 대신 적막한 숲속을 찾아가서 옛선조들처럼 매미 소리를 들으며 더위를 잠시 식혀봐야겠다. - P71

에릭 로메르의 영화 <녹색 광선>(Le Rayon Vert, 1986)에서 주인공델핀느는 친구로부터 녹색이 그녀에게 행운을 가져다줄 거라는 이야기를듣는다. 그 이후부터 델핀느에게는 녹색의 사물들이 눈에 띄기 시작한다.
나도 괴산에 와서 델핀느를 닮아가기 시작했다. 나에게 녹색이 행운을준다는 말을 들어본 적은 없지만, 자연스레 녹색이 주는 기쁨과 그 힘을알게 되었다. 마음이 울적할 때는 창밖 너머로 보이는 푸른 산을 지그시바라보고, 머리가 복잡할 때는 나무들이 가득한 산속을 거닐고, 따분할때는 길가에 삐죽삐죽 올라온 초록풀들을 관찰하는 습관이 생긴 것이모두 그 증거일 것이다. 델핀느가 해가 질 무렵 하늘과 바다 사이에 잠깐나타나는 녹색 광선을 보면 그 순간에 삶의 진실이 드러난다는 말을 믿은것처럼, 나는 녹색을 가까이하면 그 생명력과 에너지가 고스란히 나에게전해져서 좀 더 진실한사람이 될 거라 믿는다. - P73

예전부터 반려동물에게 이름을 지어주게 된다면 그 아이를 ‘파도‘라고부르고 싶었다. 쇼핑하듯 원하는 강아지나 고양이를 골라서 사는 것이아니라 바닷가에 밀려오는 파도처럼 예기치 못한 때에, 우연히 우리 집에오게 되는 동물을 받아들이고 싶었던 것이 그 이유다. 그리고 괴산에와서 한참을 기다렸던 ‘파도‘를 만났다. 파도는 괴산에서 처음으로 만난길고양이다. 앞다리 한쪽이 잘려서 절뚝거리며 걷는데, 첫 만남에 무릎 위에폭 올라와 앉았을 만큼 붙임성이 좋다. 이따금 길에서 마주하는 그 맑은눈동자를 못 본척 지나칠 수 없어서 난생처음으로 고양이에게 밥을 주기시작했다. 매일 같은 시간에 사료를 주기 시작하니 집 근처에 머무는 시간이길어졌고 마당 한 편에 집도 만들어주게 되었다. 점차 부풀어오는 배를 보니임신 중임이 틀림없었다. 그 후로 한 달이 채 되지 않았을 무렵 새끼들을출산한 것으로 보아 우리 집에 오기 전에 이미 임신 중이었던 것 같다.
다행히 건강하게 출산했고, 몸조리 후 중성화수술을 마쳤다. - P81

동네에서 서로의 집에 초대받으면 종종 마당이나 들에 핀 꽃을 따다가다발로 묶어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각각 모양과 빛깔은 다르지만 수수하게한데 어우러진 모습이 억지스럽지 않고 참 조화롭다. 한 송이씩 손에쥐어가며 꽃다발을 준비했을 장면을 상상하면 꽤 따뜻하고 낭만적이어서마주할 때마다 기분 좋은 선물이다. 며칠 전 저녁에는 우리 집에 오신이웃분께서 본인의 마당에 심어 놓았던 취나물과 배초향의 꽃을 따다가건네셨다. - P87

봄, 여름, 가을, 겨울을 한 번씩만 경험해보자고 다짐한 후 내려온괴산에서의 생활도 어느새 1년이 다 되어간다. 당장 내 눈앞에 있는 돌을하나씩 쌓아 올리며 소원을 빌어야 한다면, 마음속으로 이렇게 말하고싶다. 건강하지 못한 몸이 나를 괴산으로 데려다준 것을 큰 축복이라생각하며, 이 아름다운 곳에서 또 한 번의 사계절을 보내고 싶다고. - P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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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먹는 게 아니제단 한 마디다온 삶의 무게가 실린단 한 줄이다 - P171

두 번 세 번 떨어지는 게 일이 될 즈음아들, 그만하시제, 헛심 쓰다 헐해지겄네남들 다 좋아하는 일 하려 들지 마시고남들 안 하려 해도 중헌 일 안 있겠는가나는 그 길로 공장 밑바닥으로 향했다.
그로부터 내 인생의 모든 것이 달라졌다세상을 보는 눈도 사람을 보는 눈도내 생의 소명도 시도 사랑도 운명도 - P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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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집 마당에서 귀여운 아기 수박을 봤다. 지금껏 잘 익은 커다란수박만 보다가 툭 치면 금방이라도 엄마를 찾으며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작은 수박을 보니, 앙증맞은 새끼 동물을 봤을 때 나오는 흐뭇한 미소가입가에 번졌다. 마트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채소나 과일의 성장 과정을지켜보는 일은 괴산에 와서 새롭게 하는 경험이다. 빨갛게 여물기 전의토마토, 풍성해지기 전의 브로콜리, 알이 차오르기 전의 포도를 보고 나면무럭무럭 자라나 식탁 위에 올라온 것이 기특하고도 고맙게 느껴진다.
덕분에 자연의 보살핌과 도움 안에서 만들어진 식자재들을 대하는 태도가예전과는 달라졌다. 작았던 열매들이 비바람을 이겨내고 뜨거운 햇볕을버티며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하면 그 소중함을 느끼지 않고는 한 입 한입을 베어먹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 P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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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의 집은 아주 고요하고 조금 외로웠다. 아기는 아직 시력이 발달하지 않아서 나를 보지 못하지만, 문 뒤에 숨어 옷을 올렸다. 터지고 늘어진 아랫배와 젖이 흐르는 가슴 두 쪽을 가지고 겨드랑이에 양배추 크림을 골고루 펴 바르던 풍경. 큰일이 일어날 것같았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다만, 비슷함으로 포장한 비밀이 부풀어 올랐고 밤마다 꺼내달라 울었다. 그때 시가, 시가슬그머니 나타났다. 아직 마르지 않은 젖을 억지로 먹이던 어느 밤에 누군가 라디오에서 시를 낭독했고, 나는 그 시를 녹음해서 밤마다 들었다. 자리가 없어 서성거리다 점점 희미해지기 시작한 나의 표정을 시가 붙들어 놓았다. 양배추 크림을 바르던 나의 슬픔은 이런 것이었다. - P205

그러니까 선생님이 틀렸다. 시는 나 같은 사람이 쓰는 거다. 약간의 기쁨과 충분한 슬픔 사이에서 휘청거리는 사람, 자리를 찾지 못해 서서 가는 사람, 평범해서 눈에 띄지 않고 모호해서 희미한 사람. 하지만 사라져 버리지 않는다. 그 누구의 것도 아닌 나의표정을 짓고 자리를 마련하는 사람. - P206

비교적 솔직한 편인데, 시를 쓴다는 말은 삼키고 숨겼다. 나는 부끄럽고 시는 애달팠다. 하지만 슬픔은 스물에도 마흔에도 예순에도 찾아오는 법이다. 그럴 때 나를 달래는 이가 시이고 시일 것임을 안다. 나의 표정을 짓는 나의 단어.
자, 나는 시를 쓴다. 쓰지 못할 이유가 없다. - P209

자, 나는 시를 쓴다. 쓰지 못할 이유가 없다. - P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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