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진이는 막냇삼촌의 막내딸이었다. 대학을 졸업한 뒤 바로 은행에 취업했고 그곳에서 남편을 만났다. 청첩장을 열어보니 커다란 티아라를 쓴 혜진이가 머메이드 스타일의 화려한 웨딩드레스를 입고 장난스럽게 웃고 있었다. - P273

엄마의 표정을 보면서 나는 엄마가 얼마나 증조할머니를지 알 수 있었다.
"얼마 전에 할머니 꿈을 꿨어."
엄마가 이어서 말했다. - P328

이지연씨께보내주신 메일을 앉은자리에서 몇 번이나 읽어보았어요. 제일 먼저하고 싶은 말은 고맙다는 거예요. 연락을 줘서 고마워요.
나에게는 두 개의 이메일이 있는데 지연씨가 연락을 준 이메일은 엄무용이에요. 은퇴한 이후에는 잘 들여다보지 않아서 지연씨의 메일을몇 달이나 지나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 P331

증조부의 장례가 마무리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새비 아주머니가희령에 찾아왔다. - P253

"여기 일 어때요?"
"항상 잘해주셔서 별로 어려운 거 없어요."
그리고 다시 침묵이 이어졌다.
"석사 들어왔을 때 몇 살이었죠?"
"스물셋이요. 빠른 연생이거든요." - P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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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는 점점 더 늘어나는 혼자만의 시간을 어떻게 채웠을까?
처음에 할머니는 집안일을 다 하고도 시간이 남으면 혼자 녹차를한 잔 끓여놓고 식탁에 앉아 한국에서 가져온 성경책을 읽었다.
그러다 집에만 있는 것이 지루해지자 집 근처를 산책하기 시작했다. - P181

할머니가 브뤼니에 씨를 알게 된 것은 그런 식의 날들이 쌓여프랑스에 온 지 어느새 이 년쯤 되었을 때였다. - P183

그날 밤, 할머니는 나의 방문을 두드렸다.
"왜?"
어느새 방문을 걸어 잠그고 혼자 있는 시간이 중요해진 내가 문틈사이로 머리만 내밀고 할머니에게 물었다.
"라디오 안 쓰면 좀 빌려줘."
책상 서랍 안에 방치해둔 워크맨을 찾는 동안 방문이 조금 더열렸다. - P186

"아, 베토벤,
할머니가 알아들었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 P190

해가 짧아졌고, 밤공기는 제법 서늘했다. 금요일 밤이었다. 서울 곳곳의 번화가에서는 불빛과 소음이 홍성거렸고, 미래라는 단어에 무수한 계획과 목표를 아직 연결시킬 수 있는 젊은이들은 폭염이 끝나고 가을이 성큼 다가온 거리에 흥분과 열정이 가득 차오르기를 조바심 내며 기다렸다. - P207

"나 피곤한데?"
"그럼 나 혼자 가?" - P214

"그러면 티브이에 나오는 배우들은 다 임신을 하게?"
"엄지손가락으로 입술을 가리겠지." - P246

그런 것이 항상 중요했다. - P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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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릿속에 여러 생각이 스치는 동안, S는 나의 표정을 살피며 답을 기다리고 있다. 나는 나의 주눅 든 조바심을 감추려, 괜스레 손가락으로 코끝을 문질러본다. - P32

"그래, 뭐, 재밌겠다!"
속마음하고는 전혀 다른 말을 내뱉으면 어쩌자는 건가. 그렇게 나는 S의 캐스팅 제의를 쿨하게(?) 수락하고 말았다. - P33

"바람에 네 머리카락이 휘날리는 게 참 좋아." - P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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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꿔 부를 수 있다식어가는 바람의 가는 손목을 잡고 긴강을 건널 수도있다, 그런데한 발짝도 - P57

너는 얼마나 멀리 날아갈까 - P58

언젠가내게도 빨간 풍선 같은 다소녀가 있었지아니 소년? 빨간 풍선이었던가? - P59

머릿속에 놓인 누군가의 일기장펼치면 한 줄도 씌어 있지 않다무기력의 종이 위에나는 따스한 손바닥으로펜을 쥐었어, 부화시키려고그가 살아야 할 이유의 알들을 - P60

나는 이 아이를 안아본 적이 없다이 아이의 손을 잡아본 적이 없다 - P62

벗기면 영혼이 찢어지는 그런 거 - P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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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눈을 감고 마지막 숟가락을 떠서 입에 넣고는, 보드라운 죽이 엄마의 갈라진 혀를 살포시 감싸는 순간을 상상했다. 그리고 따뜻한 액체가 천천히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는 동안 뒷맛을 천천히 음미했다. - P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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