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옆에서 나의 처인 병원집 딸이 고소하다는 듯 웃고 있다.
다른 때 같으면 나는 그런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언젠가는 갚아줄 셈으로 당장 내 마음속의 치부책에 줄 하나를 그어놓는다. 하지만 이 역시 어쩐 일인지 시들하다. 어서 연습이 끝나고 혼자가되었으면 하는 생각뿐이다. - P148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나는 더욱우울해진다. 내 삶이 이어지는 한 그들의 이미지를 떠날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런 뜻에서 내게 ‘다른 삶‘이란 없었다. - P151

"얘, 샌님이 화나면 얼마나 무서운지 너 아니?" - P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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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초봄부터 시작된 모임이 하나 있다. 시를 계속 쓰고 싶은 사람들이 모인 일종의 창작 모임인데, 우리를 하나둘 모은 시인이그 이름을 모과라 지었다. 모과는, 꼭 필요한 존재는 아니지만 있음으로 좋음을 나누어 준다는 점에서 시와 비슷하다. 울고 있는 얼굴처럼 어딘가 허물어지고 찌그러진 그 과일을 요즘 자주 접할 수 없지만, 친근한 마음만은 함께 있다. 게다가 노랑은 초록 다음으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색이기 때문에. - P210

하루는 사랑하는 이가 나에게 쓴다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 물어보았다. 나는 대답을 이미 가지고 있었던 사람처럼 금방 대답했다. "읽을 땐 내리는 비를 보고 있는 것 같고요. 쓸 땐 내리는 비를 다 맞고 있는 것 같아요." 비가 내리기만 한다면, 그것을 맞는 일은 쉽다. 비에 젖어드는 일은 자유롭고, 그 속에서는 애를 쓸 필요가 없다. 요즘엔 빗속에 나가 오래 앉아있으려 노력하는데, 여러가지 삶의 이유로 그리할 수 없을 때면 마른 모래의 풀포기가 되어 시들해진다. 모과 모임은 그런 나를 부축하여 종이 앞으로 잘도데려다 놓는다. 우리는 모두 모과의 마음을 가지게 된 걸까. - P211

작년에 쓴 시들을 추리며 여러 죽음들을 다시 보게 되었다. 나의 시 안에서는 많은 것들이 진다. 사람도 지고, 해도 지고, 풀도나무도 이슬도 계절도 손금도 다 진다. 그동안 내 안의 많은 것들이 지고 있었기 때문에 발등에 피어나던 이끼처럼, 이제는 피고피우는 것들에 대해서 써보고 싶다. 어림 사이에 서있고 싶다. 어떤 다짐들에게도 귀 기울이고 싶다. 시 바깥에서, 시 안에서 모두환함에게 기대고 싶다. - P213

박스스로 자의식을 갖고 시를 쓴 것은 열다섯이 되던 새해 무렵, 어느 밤이었어요. 제목은 <열다섯>이었어요. 혼자 방에 앉아있는데 뭔가 안에서 밖으로 치밀어 올라, 나가고 싶어 했어요. 쓰고 싶은 분명한 욕구였지요. 연필과 노트를 꺼내 써 내려갔고, 다듬었으며(피고 과정이었겠죠), 완성됐다고 생각한 후 양장 노트에 새로 베껴놓았어요. 고3이 될 때까지, 그 노트에다 차곡차곡 시를 써놓았어요. 혼자만의 시집이었던 셈이지요. 지금도 그 공책을 가지고 있지만 읽어보면유치해요. - P215

하지만 ‘자세‘는 얘기가 다르거든요. 다비드 상을 생각해 보세요. 다비드 상이 수동적인 포즈를취하며 성적 대상으로 그려지진 않거든요. 남성의 아름다움을 그릴 때와 여성의 아름다움을 그릴 때 ‘자세‘가 전혀 다르다는 것에 저는 강한 문제의식을 느꼈어요. 오히려 여성의 몸을 제대로 그리고(수동적인 자세가 아니라), 음부를 사실적으로 그리는 게 훨씬 낫지요. 아무튼 ‘베누스 푸디카‘를 생각하면서 태어나는 것들의 ‘자세‘에 대해 고민했어요. 태어나는자세가 앞으로 살아갈 자세가 되거든요. - P218

임 통상적으로 ‘어머니‘라는 개념을 모성이 풍부한 성녀‘로 표현하는 것이 불편하다고 말씀하셨는데요. 저 역시도 그래요.
통상적인 상찬이 어머니를 어머니라는 굴레에 가둔다는 생각도 들고요. 다층적인 감정, 다층적인 면모를 가질 수밖에 없는 한사람을 표현했을 때, 선입견에서 벗어나는 표현을 했을 때, 어떤 사람들은 그것이 시인이나 화자의 내적 ‘문제‘라고 인식하는듯해요. 실은 그 반대의 경우가 ‘문제‘에 더 가까워 보이는데요.
아버지로 표상되는 이미지가 ‘노래의 원형‘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는데요. - P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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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만족도는 그 사람의 이른바 통제 확신이 얼마나 강한지에 따라 달라진다. ‘통제 확신‘이란 내 인생에서 일어나는 일은내가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앞서 우리는 어떤 상황이 벌어졌을 때 원인을 외부 조건 탓으로 돌리는 게 좋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자신의 인생에서 일어나는 일은 바로 우리 자신이 조종해야 한다. 주변 사람들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것은 자신의 인생을남에게 맡겨버리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 P92

저녁에 침대에 누우며 맛보는 행복감이다. 작은 조각이나마 인생의 통제권을 회복했다는 행복감, 이 행복감을 가짐으로써 당신의 수명은 몇 년 더 늘어날 수 있다. - P94

우리 안에는 변화를 싫어하는 잠재의식이라는 비겁한 겁쟁이가 숨어 있다. ‘잠재의식ubester 변화가 일어나자지 유지해온 틀이 깨지는 것을 아주 싫어한다. 우리가 문제 혹은 갈등 따위를 명확하게 의식하려고 들면 대개 감자 가막는다. 지금까지 안정적이었다고 믿어온 구조를 잃을까봐 두려워하는 것이다. 인생은 예측할 수 없고 통제 불가능한 일의 연속인데 그 모든 것을 떠받치는 기본 틀이라는 습관에 한사코 매달린다. 그렇게 함으로써 내 인생은 내가 통제한다는 환상에 빠진다. 그리고 이 환상 속에서 잠재의식은 구름처럼 편안하다. - P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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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돈 다 벌어다주잖아. 자기까지 왜 그래? 아들은 장사꾼 되겠다고 하고, 와이프는 복덕방 아줌마가 되겠다고하고. 왜 그래, 다들!"
"아니……… 그냥………… 뭐, 알았어."
김 부장으로서는 대기업 부장의 사모님이 부동산에서 일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 김부장의 머릿속에 있는 부동산 아줌마들의 이미지는 드세고 고집스럽고 복비 챙기려고 혈안이 된 사람들이다. - P106

김 부장은 늘 1등으로 출근해서 꼴등으로 퇴근했다. 먼저퇴근하는 팀원들에게 한 마디씩 툭툭 싫은 소리를 던졌다. 회식은 무조건 삼겹살에 소맥 말아 먹고 2차는 맥주집, 3차는 국밥집으로 갔다. 김부장은 그게 당연한 건 줄알았다. - P124

어느새 김 부장도 그들과 함께 레이스를 하고 있다. 더 빠르게 뛴다. 어느 경로로 가야 최단시간에 도착할지 매일매일 습득한다. 사무실부터 식당까지는 약 100미터다. 이렇게 목표를 가지고 무언가를 해본 적이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목표가 명확하니 힘이 난다. 이래서 인생의 목표를세우라고 하는구나, 하고 김부장은 깨닫는다. - P140

송 과장은 느낌이 온다. 이미 사태는 벌어졌다는 것을 본인 급한 일 아니면 절대 연락하지 않는 김부장이다. - P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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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 세 번 떨어지는 게 일이 될 즈음아들, 그만하시제, 헛심 쓰다 헐해지겄네남들 다 좋아하는 일 하려 들지 마시고남들 안 하려 해도 중헌 일 안 있겠는가 - P178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온 나는얼마나 열심히 멀어져 왔던가열심히 공부해 진리에서 멀어지고열심히 일해서 삶에서 멀어지고열심히 쌓아서 하늘에서 멀어졌던가 - P182

그로부터 나는,
어두운 시대의 새벽길을 달렸고포위된 나는, 나의 시는,
사방으로 몸을 돌려 싸웠다 - P189

열심이네유애썼구먼유갑갑하시쥬그 심정지가 알아유근디유, 지가 한 50년 해보니께유씨앗은 알아서 움직여유때가 되믄 지가 나와유 - P200

아이에겐 필요해무조건 필요해친구와골방과자연이 - P206

나는 이 작고 두꺼운 벽돌 책을 안고두근두근 황홀한 미소를 짓는다그래, 스크린에 무수한 영상과 글이 명멸해도좋은 책은 하나의 위대한 건축이지난 150년 전의 이 책을 씹어 삼켜그보다 오래갈 한 권의 책을 쓰고아직 도착하지 않은 미래의 네가 순례할감동의 건축인 책을 펴내고 말테다 - P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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