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초봄부터 시작된 모임이 하나 있다. 시를 계속 쓰고 싶은 사람들이 모인 일종의 창작 모임인데, 우리를 하나둘 모은 시인이그 이름을 모과라 지었다. 모과는, 꼭 필요한 존재는 아니지만 있음으로 좋음을 나누어 준다는 점에서 시와 비슷하다. 울고 있는 얼굴처럼 어딘가 허물어지고 찌그러진 그 과일을 요즘 자주 접할 수 없지만, 친근한 마음만은 함께 있다. 게다가 노랑은 초록 다음으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색이기 때문에. - P210
하루는 사랑하는 이가 나에게 쓴다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 물어보았다. 나는 대답을 이미 가지고 있었던 사람처럼 금방 대답했다. "읽을 땐 내리는 비를 보고 있는 것 같고요. 쓸 땐 내리는 비를 다 맞고 있는 것 같아요." 비가 내리기만 한다면, 그것을 맞는 일은 쉽다. 비에 젖어드는 일은 자유롭고, 그 속에서는 애를 쓸 필요가 없다. 요즘엔 빗속에 나가 오래 앉아있으려 노력하는데, 여러가지 삶의 이유로 그리할 수 없을 때면 마른 모래의 풀포기가 되어 시들해진다. 모과 모임은 그런 나를 부축하여 종이 앞으로 잘도데려다 놓는다. 우리는 모두 모과의 마음을 가지게 된 걸까. - P211
작년에 쓴 시들을 추리며 여러 죽음들을 다시 보게 되었다. 나의 시 안에서는 많은 것들이 진다. 사람도 지고, 해도 지고, 풀도나무도 이슬도 계절도 손금도 다 진다. 그동안 내 안의 많은 것들이 지고 있었기 때문에 발등에 피어나던 이끼처럼, 이제는 피고피우는 것들에 대해서 써보고 싶다. 어림 사이에 서있고 싶다. 어떤 다짐들에게도 귀 기울이고 싶다. 시 바깥에서, 시 안에서 모두환함에게 기대고 싶다. - P213
박스스로 자의식을 갖고 시를 쓴 것은 열다섯이 되던 새해 무렵, 어느 밤이었어요. 제목은 <열다섯>이었어요. 혼자 방에 앉아있는데 뭔가 안에서 밖으로 치밀어 올라, 나가고 싶어 했어요. 쓰고 싶은 분명한 욕구였지요. 연필과 노트를 꺼내 써 내려갔고, 다듬었으며(피고 과정이었겠죠), 완성됐다고 생각한 후 양장 노트에 새로 베껴놓았어요. 고3이 될 때까지, 그 노트에다 차곡차곡 시를 써놓았어요. 혼자만의 시집이었던 셈이지요. 지금도 그 공책을 가지고 있지만 읽어보면유치해요. - P215
하지만 ‘자세‘는 얘기가 다르거든요. 다비드 상을 생각해 보세요. 다비드 상이 수동적인 포즈를취하며 성적 대상으로 그려지진 않거든요. 남성의 아름다움을 그릴 때와 여성의 아름다움을 그릴 때 ‘자세‘가 전혀 다르다는 것에 저는 강한 문제의식을 느꼈어요. 오히려 여성의 몸을 제대로 그리고(수동적인 자세가 아니라), 음부를 사실적으로 그리는 게 훨씬 낫지요. 아무튼 ‘베누스 푸디카‘를 생각하면서 태어나는 것들의 ‘자세‘에 대해 고민했어요. 태어나는자세가 앞으로 살아갈 자세가 되거든요. - P218
임 통상적으로 ‘어머니‘라는 개념을 모성이 풍부한 성녀‘로 표현하는 것이 불편하다고 말씀하셨는데요. 저 역시도 그래요. 통상적인 상찬이 어머니를 어머니라는 굴레에 가둔다는 생각도 들고요. 다층적인 감정, 다층적인 면모를 가질 수밖에 없는 한사람을 표현했을 때, 선입견에서 벗어나는 표현을 했을 때, 어떤 사람들은 그것이 시인이나 화자의 내적 ‘문제‘라고 인식하는듯해요. 실은 그 반대의 경우가 ‘문제‘에 더 가까워 보이는데요. 아버지로 표상되는 이미지가 ‘노래의 원형‘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는데요. - P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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