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 시적 화자들 때문에 제가 끔찍한 가정 폭력에 시달렸다고 생각하는 분이 많더라고요. 이게 시적 화자와 시인을동일시하는 폐해인가 봐요(웃음). 실제로 저는 스물두 살 때 아버지에게 딱 한 번 뺨을 맞아보고(이유는 비밀), 한 번도 맞아본 적이 없어요. 오히려 과잉보호를 받았다고 하는 게 맞을 거예요. 고등학교 때까지 수학여행을 가면, 아버지는 제짐을 싸줄 정도로 자상한 사람이었거든요. - P225
임 "희망을 주고 용기를 주는 것, 위로하는 것, 의지를 심어주는 것에 대해 말씀하신 내용에 공감해요. 섣불리 말해지는 회망이나 용기, 위로, 의지 같은 것들이 거짓말이라고 저는 생각해요. 거짓 희망, 용기, 위로, 의지를 보여주려고 하는 문학작품을 좋아하지 않고요. 어떤 작가가 이 세계에 희망이 없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에 희망이 있다고 쓴 것을 읽은 적이있어요. 그 말을 읽고 ‘희망‘에 대해 더 오래 생각하게 되었어요. 시 속에서도 섣불리 희망을 말하지 않게 되었고요. 그런데 또질문이 생겨요. 희망과 용기, 위로, 의지를 완전히 포기한 상태는 아니거든요. 그저 진정한 희망이 뭔지, 진정한 용기란, 진정한 위로란 무엇인지 계속 고민을 하고 있는데, 아직까지는 찾지 못한 듯해요. 앞으로 그것들을 어떤 방식으로 찾아내야 할지앞이 막막할 때가 있어요. 찾았다. 혹은 찾지 못했다는 결과보다 어떤 방향으로 찾아가고 있는지가 중요한 듯하거든요. 그 방향에 따라 작품을 쓰는 방식도 달라질 테니까요. 거짓 희망이 아니라 진짜 희망이라는 것이 있을 수 있다면, 그것은 어떤 모습일까요? 혹은,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찾아나가야 할지, 저처럼 고민해보신 적이 있으실까요? - P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