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UST오랜 시간 동안 여러 곳에 발표했던 글들을 모아놓으니 자연스레 지난 기억이 떠오른다.
낯선 해변에서 답 없는 미래를 고민하던 기억(「데비 챙」), 목적지 없이 정신없이 걸어 다니던 기억(한남동 옥상 수영장」), 떠난 고양이를 애도하던 기억 (「임보 일기」 「꿈결」 「무급휴가」), 친구와의 관계에서 솔직할 수 없던 기억(「애쓰지 않아도」 「숲의 끝」),
폭력적인 공익광고를 보던 기억(「손 편지」), 병아리를 키우던기억(『안녕, 꾸꾸」), 고기를 먹지 못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호시절」)…………… - P7

우리에게 필요한 건 이런 것들뿐인데.
서로에게 커다란 귀가 되어줄 수 있는 시간 말이야.

엄마는 내가 중학교 3학년을 마친 겨울에 기도원에 들어갔다. 말이 기도원이지 사이비종교 공동체에 몸을 담기로 한 거였다. 그 일이 있었던 직후 아빠는 나를 데리고 내가 태어나고자랐던 P시를 떠나서 할머니의 집이 있는 서울로 이사했다. 나= 연합고사를 치러 애써 합격한 학교에 가지 못하고 아는 얼굴 하나 없는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이사한 지 이틀트의 일이었다.
친구가 없는 교실에 뚝 떨어지자 막막해졌던 기억이 난다.
-장에 급식실에 누구랑 같이 가야 할지, 체육시간에 누구와께 운동장에 나가야 할지 알 수 없어서였다. 짝이 된 아이에 - P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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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하도 깊어, 밤 이외의 것은 필요 없는 순간이다. - P13

떠나는 그애의 뒷모습을 보지 못했다. 미안하지 않다. 그도 나이고, 나도 그이다. - P18

지금 나는 그와 같은 집에 살며 그를 ‘당신‘, 혹은 ‘여보‘라고 부른다. 그렇게 됐다. 뒤통수에 뜬 머리, 어깨에 떨어진 비듬도 가장가까이에서 본다. 사람의 일이 사람의 일만은 아닌 걸까? 대학 때나는 당신에게 조금도 관심이 없었다고 말하면 그도 지지 않고 말한다. 소설을 조금 잘 쓰던 것을 빼면, 나 역시 너에 대해 기억나는게 별로 없노라고. 기분이 상해 사실 당신은 내 이상형과는 거리가 좀 있었다고 말하면, 그는 눈도 끔뻑하지 않고 자기 역시 그렇다고 대꾸한다. 그 이상한 머플러? 지금 내 목을 감싸고 있다. 아무리 봐도 예쁘다고 볼 순 없어서, 어울리는 옷을 찾기 어렵다. 그렇지만 나는 어디에도 어울리지 않는 그의 머플러를 두르고 길을 나서는 것을 좋아한다. 십수 년 전 그와 내가 아무런 사이도 아니었을 때, 이렇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던 그때, 그의 목에 감겨 여기까지 따라온 물건이니까. 애틋하다. - P21

"아저씨, 동태 있어요?"
"(냉동실에서 꽝꽝 언 동태를 꺼내며) 여기 있지요."
"(인상을 쓰며) 얼지 않은 건 없어요?"
"네? 그럼 생태를 사셔야지!"
"(무안해서 과장하며) 아하하하하하하하하! 제가 미쳤나봐요!" - P28

모든 잘못 듣기는 ‘신기한 칵테일‘과 같아서, 백번째의 잘못 듣기라 하더라도 첫번째만큼이나 신선하고 놀랍다.
- 올리버 색스, 『의식의 강』(양병찬 옮김, 알마, 2018)에서 - P30

**개에게 슬픔이 있다면 그 슬픔은 단순하고 깊을 것이다. 가끔은그게 슬퍼서 울고 싶다. 기다리는 개의 뒷모습보다 더 애절한 게 있을까? 기다림은 개에게서 배울 일이다. - P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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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자랐구나자유한 만큼 인내를 알며선한 만큼 강하게 맞서며온전한 감각 속에 커다란 여백을 품고자 이제 여정의 놀라움이 온다떨리는 불꽃의 만남이 온다 - P207

사랑은 도구가 아니고내가 사랑의 도구이니사랑의 일로 상처 난그 마음을 바쳐라 - P211

이름을 배반하지 말아야겠다이름을 빼앗기지 말아야겠다오늘도 누군가 호명하는우주의 긴 메아리너를 부른다나를 부른다이름대로 살아야겠다이름 따라 걸어야겠다 - P230

오늘 사람다운 사람을 만났다실로 충만하고 생생하게 살아있는긴 하루의 생이었다 - P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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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놀라울 것 없다. ‘죽음 이후의 삶 패키지‘를 제공하는 게 종교이지 않은가.
□ 종교는 율법으로 인간의 삶을 제한하며, 이로써 건강을 해치는 많은 악먹을 금지하기 때문이다. - P100

그런데 최신 연구는 이 원인이 ‘자기 통제감‘일 수도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앞서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이 만족스럽고 건강한 인생을 산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렇다면 특정 가치와 행동 규칙을 강제하고 지시하는 종교가 어떻게 우리에게 더 나은 ‘자기 통제감‘을 만들어준다는 것일까? - P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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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아직 도착하지 않은 기차를 기다리다가역에서 쓴 시들이 이 시집을 이루고 있다영원히 역에 서 있을 것 같은 나날이었다그러나 언제나 기차는 왔고나는 역을 떠났다다음 역을 향하여2016년 가을허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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