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희망에 가까운 사람들이 무서워요. 나의 절망을망각하게 할까 봐."
"그렇다고 해서 그 기운을 무시하면 안 돼요. 결국 그둘이 어울려야만 자신의 절망도, 희망도 또렷이 볼 수 있는 거니까. 희망을 위해 절망을 선택한 편이 아닌가요?"
"희망을 위해 희망을 선택하는 어리석음을 덜어보려고 그런 것 같아요. 절망에는 아무도 손을 대지 않아서 쉽게 꺼내볼 수 있는 것들이 많아서."
*해당하는 상담 내용은 재구성한 것이다. - P103

더욱 중요한 것은, 무언가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현재의 현장감을 최대한 만끽하는 것. 아침의 창문 밖 풍경을보았다고 치자. 푸르른 나무 사이를 날아오르는 참새들,
우렁찬 엔진 소리로 도로를 꽉 채우는 자동차들, 마당을쓸거나 이웃들과 인사를 나누는 사람들의 인기척 등 맑고곡진한 이 아침 풍경에 대해 쓴다고 하자. 저녁이 되어 그것을 다루려고 할 때 너무 멀리 떠나온 느낌이 든다. 자격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때에만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지금은 이야기할 수 없는 사람의 솜씨로 다룬다는 것을 자격 미달이라고 생각했다. - P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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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용사란 무엇인가? 명사는 세상을 이름 짓는다. 동사는고
이름을 움직이게 한다. 형용사는 어딘가 다른 곳에서 온다.
I - P8

나는 말들이 스스로 하고 싶어 하고해야만 하는 걸 하는 것의 느낌을 좋아한다.
거트루드 스타인 - P7

호메로스적 방식에는 열정이 있는데, 어떤 종류의열정인가? 보드리야르"는 이렇게 말했다. "소비는 실체에대한 열정이 아니라 기호에 대한 열정이다." - P9

게리온은 괴물이었네 그의 모든 것이 빨강이었네아침에 이불 밖으로 코를 내밀었네 빨강 코였네그의 소떼가 빨강 바람 속에서족쇄를 끌고 다니는 빨강 풍경은 얼마나 거친지빨강 새벽에 파고들었네 젤리 같은 게리온의꿈 - P13

너 저녁 식탁에서 마스크 쓰겠다고 고집부릴 거면그래 잘 자라 그들은 그렇게 말하고 그를 쫓아 보냈네저 출혈하는 계단 위 뜨겁고 메마른 품으로찰칵찰칵 미터기 올라가는 악몽의 빨강 택시에로올라가기 싫어요 아래층에서 책 읽고 싶어요 - P14

자기가 괴물이라고 생각하는 어린 소년들이 많을까?
하지만 내 경우엔 맞아 게리온이 개에게 말했네그들은 절벽 위에 앉아 있었네 개가 그를 기쁘게바라보았네 - P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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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 문학과지성 시인선 490
허수경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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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가로부터 온 것들이 쌓인 여기, 눈 녹 듯 순해지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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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이것이 바로 우울의 빛깔이다!" - P44

우울이 찾아왔을 때의 증상은 엇비슷하나 이유는 굉장히 다양하다. 하나의 증상으로 단정 지어 말할 수 있는것이 아니다. 우울증 때문에 병원에 다니는 사람도, 약을처방받는 사람도, 더 슬프고 비극적인 이야기를 찾아 책을 읽는 사람도, 무기력하게 자신을 잠그며 살아가는 사람도 각자 다른 우울을 지니고 있으며 그것은 그 사람의인생 전반에 걸쳐, 여러 순간이 모여 생긴 것일 테다. - P45

사랑이 우리에게 주는 혼란은, 우리를 다시 정확하게 데려다놓기 위한 일종의 유인이다. - P53

고등학생 때는 글쓰기에 흥미를 느껴 뒤늦게 전국 백일장을 찾아다녔다. 시제 몇 개가 주어지고, 제한 시간 안에 시를 써야 했다. 수상 공식은 간단했다. 시에서 부모님은 실직하거나 어딘가 아파야 한다, 고물상 노인이나 새벽시장의 부지런함, 하고 싶은 것에 대한 고민을 가진 건강한 나, 학교라는 갑갑한 둘레, 이주노동자들의 고충이나 단칸방, 반지하의 고립된 삶 같은 것을 다루면 되었다. - P71

이르게 만난 제철 과일이 주는 나의 찡그림을, 알맞게익어서 내게 주는 미소를, 끝물에 생기를 다 잃고 내게 주는 텁텁함을 기억하려고 노력했다. 살아 있다는 것을 아주 잠깐 실감하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 P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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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에 산다는 거,
그건 울지 않는다는 거,
대성당에도 늪에도 살지 못한다는 거울지 못해 타오르고, 울기 전에 타버리는 거,
그게 사막선인장,
오르간파이프선인장, - P55

나무 그늘 이저리 흔들리는 데 넋을 놓겠네병에게 정중히 병문안이라도 청하고 싶지만무슨 인연으로 날 찾아왔나 찬찬히 살펴보고 싶지만독감예방주사를 맞고 멀쩡하게 겨울이 지나갈 때 - P62

꿈속에서 자꾸어린 내가 죄를 짓는답니다잠에서 깨어난 아침마다검은 연민이 몸을 뒤척여 죄를 통과합니다바람이 통과하는 빨래들처럼슬픔이 말라갑니다 - P65

나는 이 꽃을 선물하기 위해 살고 있다내가 나중에 아주 희박해진다면 - P67

가만가만 물어보네눈물 한방울은 너무 큰 것인가아니면너무 작은 - P87

나도, 자주, 그렇게 잊혀갔으리라 - P89

거미줄처럼 얽힌 복도를 헤매다 보니바다,
바닷가를 헤매다 보니내 좁은 방. - P93

불 켜진 저녁나절의 창문을 보면아직도 나는 불빛에 손끝이 가만히 저린다 - P96

공원 무럭무럭 지상의 공원들이 자라나는 밤. 닿을 수 없는그 모든 것들을 두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 P102

바쁘시죠,
내가 먼저 묻는 건기꺼이 외로움을 선택하고 싶어서 - P131

밝은새벽에도 움직이면 - P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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