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재밌게 하던 건데, 이거 한 입만 잡숴보라며 주변에도 열심히 권했던 건데, 어느 날인가부터좀 시들해지는 때가 온다. 이상하다. 분명 이렇지 않았는데? 그치만 재미로 하는 일은 대부분 그렇다. 어디서 무슨 떡밥이 튀어나올지 몰라야 혁, 하며 놀라고 설렐 텐데, 슬슬 패턴이 보여서 그렇다. 영원히 질리지 않고 그냥 마냥 행복하면 좋겠지만 마음과는달리 점점 눈이 흐려지는 것이죠(라고 말하며 과거의 덕질을 아련하게 떠올린다). 여행도 여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취향이 바뀌고쓸 수 있는 예산이 달라지니 내 마음도 변하는 모양이다. - P45

그래서 나는 돌아다니기를 멈추고 한 지역에 오래 머물러보기로 했다. 얼마나? 2주일 때도 있고 2달일 때도 있다. 그 이상일 때도 있다. 포인트는 이거다. 지겨워질 때까지 있어 보기. 그렇다고 해서 ‘살아봤다‘는 생각은 안 한다. 저 거기에서 살다 왔어요, 라는 말도 안 한다. 아니 못 한다. 여행은 돈을 쓰는 거지 돈을 버는 게 아니다. 아껴 쓰든 펑펑 쓰든, 돈은 버는 것보다 쓰는 게 훨씬재미있다. 나는 여행하며 재밌게 놀았지, 치열하게 살지 않았다. 살아봤다는 말은 그래서 함부로 할 수 없다. - P46

언젠간 꼭 다시 찾아가고 싶다. 미용실 식구들과 반갑게 포옹하고 키스를 나누며, 머리카락이든 어디든 마음껏 맡기고 싶습니다. - P54

혼자 여행할 땐 사회생활 모드를 끈다. 돈 들여, 시간 들여 나 좋자고 하는 거니 딱 내 마음만 신경 쓴다. 취향을 충실히 따라간다. 나는 정말이지 도시를 너무나 사랑하는 인간이며, 잘 갖춰진 최신의 인프라를 실컷 누리는 게 큰 행복이다. 공원 산책을 한다9월요로 유명하 여행지에서도 뽀송뽀송 마른 몸으로 지낸다. - P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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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는 세상에서 가장 흥미로운 생각거리들 중 하나이다. 피로는 질투 같고, 거짓말 같고, 두려움 같다. 우리가 애써 외면하는이런 불순한 것들을 닮아 있다. 그것들처럼 피로는 우리를 땅으로 내려서게 한다. - P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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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사냥한사슴 앞에 입맛을 다시는 게 아니라 무릎을 꿇고 바치는 사냥꾼의 노래는 현대인의 식탁에서 사라져버린 어떤 소박하지만 거룩한 윤리를 일깨운다. - P163

7404우리 사이에서 몸은 대화의 주제가 되지 않았다. -p10사랑하는 내 딸, 이게 바로 내 유산이다. 이건 생리학논문이 아니라 내 비밀정원이다. 여기야말로 여러 면에서 우리가 공동으로 가꾼 영토지.
-p11 - P168

‘실향민 음식‘을 자주 접하면서도 내 무심한 혀는 거기서 어떤비극의 맛도 감지하지 못했다. 각종 문헌을 통해 접한 실향의 아픔과실향민 음식 사이의 간극은 좁혀지지 않았다. - P173

다만 속초 사람들이어딘가 퉁명스러운 것 같고, 타인을 경계하는 것처럼 무뚝뚝하게 느껴질 때면 슬며시 실향이라는 말에 불을 켜두어도 좋을 것같다. 경계심이란 고향에 두고 온 그사람을 향한 그리움이 오랜세월 퇴적되어 만들어진 마음의 언덕이라는 것을. 그러므로 속초는 애틋한 이별의 슬픔이 가라앉은 도시라는 것을. - P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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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노력한 나머지 피로가 쌓인 꾸물이는 토끼와의 재경주에서 잠이 들어 결국 져요. 대중의 관심은 다시 토끼에게 쏟아지고, 자신을 향한 기대감이 낮아진 틈을 타서 꾸물이는 제자리로 돌아가 느린 삶을 되찾지요. 어찌 보면 원점처럼 보일 수있어요. 하지만 꾸물이는 남들의 속도에 더는 흔들리지 않아요 자기 증명에 대한 강박에서도 놓여나고요. 얼핏 무의미해보이는 노력의 시간이 가져다준 결과예요. 스스로 설득이 되는 지점까지 노력해본 자가 가질 수 있는 고요이지요 이런 허튼짓은 분명 의미 있어요 결코 허튼짓이 아니에요. - P135

‘동화나 그림책은 현실의 비극적인 면이나 잔혹한 면을 제대로 보여주지 않는다‘는 평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동화와 그림책 장르를 향해 다큐나르포처럼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지 않아서 수준이 떨어진다고 평한다면 그건 말이안 돼요. 동화와 그림책은 인생의 비참함이나 슬픔을 외면하지 않아요. 다만 아이들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게 눈높이를 맞추려고 노력할 뿐이에요. 현실의 냉혹함에 완전히 무너지지 않도록, 받아들이고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마음에 여지를 마련해주는 거예요. - P135

죽을 때까지 모르는 게 자기 자신이라고 하잖아요. 아무리 내몸, 내 생각이어도 노력 없이 파악할 수 없어요. 세상의 소음속에서 내 목소리를 분간하려면 노력, 그거 해야지요. - P142

인정욕구는 질문하게 한다. ‘왜 사람들이 나를 안 알아주지?"
노력하면 알아줄 거라는 기대로 최선을 다해본다. 그래도 상황이달라지지 않으면 다음 단계의 질문과 대면하게 된다. ‘남들이알아주지 않으면 나에게도 의미가 없나?" 유설화 작가는 이 질문에차곡차곡 답하듯 그림책을 지었다. 기대감과 실망감이 밀물썰물처럼 들고 나는 풍경을 모두 지켜보며, 묵묵히. - P143

지지 않기로 결심한 사람에게 스며 나오는 존엄의 빛이었다. - P151

말로도 하기 어렵고, 대단한 기법의 그림 한 장으로도 전하기어려운 이야기를 그림책은 너무나 담담하고 단순하게, 또 명징하게 전해요. 저는 현학적이거나 교조적인 책을 읽으면 화가 나는데, 그림책은 이야기를 들려줄 뿐 나를 가르치려 들지않아요. 그러면서 나를 바꾸지요. - P157

병원에서 상담을 받으면서질병을 서서히 받아들일 수 있었어요. 몸이 나빠지면서 주변사람에게 병을 알려야 하는 시점이 찾아왔고요. 악수를 못 하는 이유, 계단을 피하는 이유, 무거운 짐을 들 수 없는 이유 등을 설명하고 양해를 구하면서 조금씩 가벼워졌어요. - P163

아서 프랭크가 쓴 《아픈 몸을 살다》(봄날의책)에 이런 구절이 나와요. "누군가가 우리의 고통을 인정한다는 사실을 알 때 우리는 고통을 보낼 수 있다. 고통을 알아봐주면 고통은 줄어든다. 이 힘은설명될 수 없지만 인간의 본성 같다." 한편으로는 타인의 고통이나 외로움을 들여다보는 일이 두렵다는 사람도 많아요. 감당하기무겁고 부담스러우니 차라리 안 보기로 결정하는 거죠. - P165

뜀박질을 열심히 했지만 결국 원하는 포도를 손에 넣지 못한여우가 있다. 여우가 자리를 떠나며 말한다. "어차피 신 포도였을거야." 어릴 땐 여우가 비겁하다고 배웠다. 이제는 생각이 다르다.
여우는 사건을 실패 혹은 좌절이라 정의하며 자학하는 대신자신을 보호하는 이야기를 지어냈다. 여우는 현명했다. 삶은 결국스스로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 P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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잎사귀 모양을 한 깃털을 떨구고 날아간 문득,
숱이 두터운 눈바람 속, 새이던 당신에게날개의 탄생을 붉게 알려준그 나무 열매의 이름이 알고 싶었다 - P61

누가 오렌지 화분을 들고 왔어! 장례식에 이토록잔인한 황금빛 우물을? 우리는 항의했다 - P41

병풍 뒤에는 그 눈밭을 걸어갈 사람 하나멍든 발을 모으고 자고 있었네 - P25

그걸 알아볼 수 없어서 우리 삶은 초라합니까가을달이 지고 있습니다 - P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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