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노력한 나머지 피로가 쌓인 꾸물이는 토끼와의 재경주에서 잠이 들어 결국 져요. 대중의 관심은 다시 토끼에게 쏟아지고, 자신을 향한 기대감이 낮아진 틈을 타서 꾸물이는 제자리로 돌아가 느린 삶을 되찾지요. 어찌 보면 원점처럼 보일 수있어요. 하지만 꾸물이는 남들의 속도에 더는 흔들리지 않아요 자기 증명에 대한 강박에서도 놓여나고요. 얼핏 무의미해보이는 노력의 시간이 가져다준 결과예요. 스스로 설득이 되는 지점까지 노력해본 자가 가질 수 있는 고요이지요 이런 허튼짓은 분명 의미 있어요 결코 허튼짓이 아니에요. - P135
‘동화나 그림책은 현실의 비극적인 면이나 잔혹한 면을 제대로 보여주지 않는다‘는 평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동화와 그림책 장르를 향해 다큐나르포처럼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지 않아서 수준이 떨어진다고 평한다면 그건 말이안 돼요. 동화와 그림책은 인생의 비참함이나 슬픔을 외면하지 않아요. 다만 아이들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게 눈높이를 맞추려고 노력할 뿐이에요. 현실의 냉혹함에 완전히 무너지지 않도록, 받아들이고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마음에 여지를 마련해주는 거예요. - P135
죽을 때까지 모르는 게 자기 자신이라고 하잖아요. 아무리 내몸, 내 생각이어도 노력 없이 파악할 수 없어요. 세상의 소음속에서 내 목소리를 분간하려면 노력, 그거 해야지요. - P142
인정욕구는 질문하게 한다. ‘왜 사람들이 나를 안 알아주지?" 노력하면 알아줄 거라는 기대로 최선을 다해본다. 그래도 상황이달라지지 않으면 다음 단계의 질문과 대면하게 된다. ‘남들이알아주지 않으면 나에게도 의미가 없나?" 유설화 작가는 이 질문에차곡차곡 답하듯 그림책을 지었다. 기대감과 실망감이 밀물썰물처럼 들고 나는 풍경을 모두 지켜보며, 묵묵히. - P143
지지 않기로 결심한 사람에게 스며 나오는 존엄의 빛이었다. - P151
말로도 하기 어렵고, 대단한 기법의 그림 한 장으로도 전하기어려운 이야기를 그림책은 너무나 담담하고 단순하게, 또 명징하게 전해요. 저는 현학적이거나 교조적인 책을 읽으면 화가 나는데, 그림책은 이야기를 들려줄 뿐 나를 가르치려 들지않아요. 그러면서 나를 바꾸지요. - P157
병원에서 상담을 받으면서질병을 서서히 받아들일 수 있었어요. 몸이 나빠지면서 주변사람에게 병을 알려야 하는 시점이 찾아왔고요. 악수를 못 하는 이유, 계단을 피하는 이유, 무거운 짐을 들 수 없는 이유 등을 설명하고 양해를 구하면서 조금씩 가벼워졌어요. - P163
아서 프랭크가 쓴 《아픈 몸을 살다》(봄날의책)에 이런 구절이 나와요. "누군가가 우리의 고통을 인정한다는 사실을 알 때 우리는 고통을 보낼 수 있다. 고통을 알아봐주면 고통은 줄어든다. 이 힘은설명될 수 없지만 인간의 본성 같다." 한편으로는 타인의 고통이나 외로움을 들여다보는 일이 두렵다는 사람도 많아요. 감당하기무겁고 부담스러우니 차라리 안 보기로 결정하는 거죠. - P165
뜀박질을 열심히 했지만 결국 원하는 포도를 손에 넣지 못한여우가 있다. 여우가 자리를 떠나며 말한다. "어차피 신 포도였을거야." 어릴 땐 여우가 비겁하다고 배웠다. 이제는 생각이 다르다. 여우는 사건을 실패 혹은 좌절이라 정의하며 자학하는 대신자신을 보호하는 이야기를 지어냈다. 여우는 현명했다. 삶은 결국스스로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 P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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