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부터 <경향신문> 칼럼을 통해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작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첨예한 사회적 현안에 서툰 논평을 한 줄 보태는 대신, 온기를 품은 일상의 순간들을 들여다보고자 했다. 쉽게 바뀌지 않을 차가운 현실 앞에서 냉소하거나 무력해지기보다 미약한 힘으로나마 우리가 서로를 돌볼 수 있기를, 상처를 주고받는 대신 공감과 연민을 나눌 수 있기를 소망한다.
이 순간을 잊지 못할 거요. 이 고요함, 산딸기와 우유, 저녁놀에 물든 당신들의 얼굴, 수레 안에 곤히 잠든 미카엘, 류트를 타는 프그리고 우리들이 나눈 이야기를 기억할 테요. 신선한 우유가 철철 넘치는 그릇처럼 내 두 손에 조심스럽게 간직할 것이오. 이 기억은 나에게 커다란 충만함 그 자체가 될 것이요. - P9
핵문제가 해결되고 적폐청산을 하고 나쁜 자들을 감옥으로 보내도 여전히 견고하게 지속될, 제도를 몸통으로 하고자본을 심장으로 한 세계. 그 안에서 힘겨워할 우리가 서로에게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찰나들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이 책에 담긴 50여 편의 이야기들이 세상 누군가에게 그러한 의미로 가닿았으면 한다. - P22
저마다의 돌덩이를 짊어진 채 사회적 관계의 테두리 안에서 살아가는 나와 당신이 때때로 그 테두리를 뜯어내고 서로에게‘듣는 귀’가 되어주고, 거기에 미안해하지 않는 ‘우리‘가 되어가길 꿈꾼다. - P35
후배 교수한테 어떤 직장 선배로 보이는지보다 학생의 상처를 들여다보고 귀 기울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여기신 듯했다. 순간 생각했다. 그 학생에게는 이분이 바로 영지 선생님이구나. 내 편이 되어주지 않아서 서운한 마음 대신 가슴 깊숙한 데서 안도감이 솟았다. "감사합니다." 고개 숙여 인사드렸다. - P43
누구나 갖고 있을 것이다. 자신에게만 고유한 의미를 갖는어떤 선율, 어떤 장면, 어떤 냄새나 맛을. 생을 그만두고 싶은 순간이 찾아들 때 그 기억이수호천사처럼 그대에게 깃들어다음 걸음을 떼어놓게 해주기를 빈다. - P50
때로는 과분하게 자신을 잘 봐주었던과거의 누군가를 떠올리는 것이 우리를 지탱해준다던 어느지인의 말처럼 말이다. - P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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