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통통해진 제철 슈파겔을 먹었다. 그리고학생들이 주먹으로 책상을 탕탕 두드리는 게르만식 박수를쳐준 종강 날 저녁, 마침내 삭아서 보드라워진 끝물 슈파겔을 먹었다 - P58
스물세 살의 나는 다른 건 몰랐고 두 가지만 알았다. 사법고시 준비만큼은 싫다는 것과, 그렇다고 사회운동가로 성장할 만한 그릇도 못 된다는 것. - P59
빗물에 구겨진 낡은주름치마 입고도 난 세상 저편 어딘가로 펄펄 날고 있었다
얼마 전 모르는 분에게서 편지 한 통을 받았다. 봉투를 열자 종이 석 장에 또박또박 눌러쓴 글씨들이 보였다. 우연히내 글을 읽은 후 식탁보로 쓰라고 내어준 신문지를 매일 훑으며 다음 글을 기다렸다고, 한 달에 한 번꼴로 연재된다는걸 알게 되어 매달 선물 받는 기분이었다고, 그래서 참 고맙다고 말씀하셨다. 편지는 교도소에서 보내온 것이었다. - P69
이토록 한심하고 불완전함에도 누군가에게는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무언가를 만들어 전할 수 있다면, 그게 내가 지닌 쓸모 중 하나라면, 나는쓸 수 있을 때까지 계속 글을 쓰고, 더욱 마음을 담아서 쓸 것이다. - P70
어떤 관계에서든 반말을 해야 가까워진다고 믿는 것은 물론 아니었다. 서로 존칭하면서도 얼마든지 거리를 좁힐 수있다. 문제는 내 경우 소신을 지키고자 ‘안‘ 놓는 게 아니라용기가 없어 ‘못‘ 놓고 있었다는 것이다. 모종의 교육 철학으로 경어를 고수하는 것이라면 일관성을 가져야 맞을진대, ‘-씨‘라는 존칭은 내키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아동연극풍의 말투가 되었다. "동환이는 어쩌다 발을 다쳤나요?" "다음 단락은 은희가 읽어볼래요?" "준서 시험 공부 파이팅하세요!" - P72
대학원 첫 학기 때였다. 세미나를 마친 후 의기소침해하던내게 한 선배가 이야기해주었다. 굳이 70을 ‘말‘하려 애쓰지말고, 그 노력으로 80을 알기 위해 더 ‘공부‘하라고. "60 알면서 70인 척하기보다는 아는 건 80인데 70까지만 보여주는편이 낫지 않겠어? 그렇게 80, 90을 배워 알게 되면 언변은저절로 따라오는 거야." - P75
그렇게 나는 요긴한 기상 정보를 ‘네이버날씨 앱이 아닌 단골 도넛 가게에서 구했다. 고마움의 표시로 멀리서 사온 레몬케이크라도 잘라 갖다드리면 "빵 파는사람한테 빵 주네?"라며 웃었다. - P84
분노가 쉽사리 나의 힘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연민 없는 분노가 넘실거리고 예의 잃은 정의감이너무 자주 목도되는 지금 이곳에서 - P88
시선에 상처 받지 않는 세상을 만드는 데에 손을 보태고 싶었다. 그게 더 옳아서가 아니라 단지내겐 그게 더 절실하게 여겨져서다. 그 과정에서 분노가 쉽사리 나의 힘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연민 없는 분노가 넘실거리고 예의 잃은 정의감이 너무 자주 목도되는 지금 이곳에서, - P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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