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버릇처럼 일상을 여행하듯 살고 싶다고 되뇐 적이 있다. "내가원하는 것은 일상적 경험의 차원에서 이건 의자고 저건 식탁일뿐이라고 느끼는 동시에 이건 기적이고 저건 희열이라고 느끼는거야"라는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등대로> 속 문장처럼. 나이를 먹고경험이 늘어도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만큼은 새록새록 유지하고싶었다. - P242

하지만 처음에는 다채로운 색으로 빛나던 많은 것들이 오래 곁에두면 시간과 함께 서서히 채도가 낮아졌다. 가장 가깝고 익숙한순서대로 빛을 잃었다. 당혹스러웠다. 자주 다짐했다. 일상의 권태에지지 말자! 소박한 아름다움에 감동하는 사람이 되자! 하지만정확히 무엇을 해야 그렇게 될 수 있는지 몰랐다. 특별 이벤트로가득한 타인의 삶이 사방에서 번쩍일 때, 어떻게 하면 나의 사소함에
‘시시함‘이라는 딱지를 붙이지 않을 수 있을까? - P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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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읽은 명제가 떠올랐다. "연민은 쉽게 지친다." - P96

네 번째에, 그다음엔 다섯 번째에. 그렇게 생을 통해 "연민은 더디게 지친다"는 명제를 만들어가고 싶다. - P96

가진 자들이 얼마나 더 소유했는지에 분개하지 않는 나는,
덜 가진 이들이 나만큼이나마 가질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위해 무얼 어떻게 할까 하는 고민을 놓지 않으려 한다. 말하자면 그건 ‘만족한 자‘의 윤리적 책무가 아닐까. 이를 저버리는 순간 나는 물욕 없음을 내세우며 안빈낙도 운운하는 배부른 한 사람에 지나지 않을 테니 말이다. - P100

약자를 동정하는 데 그치게 만드는 ‘분노 없는 연민‘은 문제의 원인으로 악인을 지목하고 그에게 분노를 터뜨림으로써손쉽게 정의감을 얻는 ‘연민 없는 분노‘와 동전의 양면을 이룰 것이다. 그럼에도 난 이 ‘미담‘에 냉소할 수 없었다. - P103

그들 중 누군가에게 이기심이나 결점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그가 삶의터전에서 쫓겨날 이유가 될 수는 없다. 그가 지키려고 했던것이 집 한 채였든 철거투쟁의 대의였든 그들을 향해 물대포를 쏘아서는 안 되며, 감옥에 보내서는 안 되고, 전과자로만들어선 더더욱 안 된다. 선한 사람만 공권력의 피해자가될 ‘자격‘을 갖추는 것은 아니다 - P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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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답했다, 노래하던 것들이 떠났어그것들, 철새였거든 그 노래가 철새였거든그러자 심장이 아팠어 한밤중에 쓰러졌고하하하, 붉은 십자가를 가진 차 한 대가 왔어 - P111

빛을 집어먹는 무언가가 봄저녁에 꽃잎을 지게 하고 내 사랑하는 사람들은 쉴새없이 운다 - P109

하얗게 남은 인간과 짐승의 뼈가 널린 황무지
자연을 잡아먹는 것은 자연뿐이다 - P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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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책 표지는 노란색 아닌가요?"
이번에는 여자 쪽도 입이 벌어졌다.
"와아, 정말 대단하시네요. 사장님은 말만 듣고 모든 걸 다 알아내는 셜록 홈스 같아요. 어떻게 그걸 아셨어요? 실은 제가 그 책에 대해서 확실히 기억하고 있는 것이라곤 표지가 노란색이라는 점 하나뿐이거든요."
남자의 말에 나는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한쪽 눈을 찡그리며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가리켰다. "그야 다 저만의 방법이 있지요. - P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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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통통해진 제철 슈파겔을 먹었다. 그리고학생들이 주먹으로 책상을 탕탕 두드리는 게르만식 박수를쳐준 종강 날 저녁, 마침내 삭아서 보드라워진 끝물 슈파겔을 먹었다 - P58

스물세 살의 나는 다른 건 몰랐고 두 가지만 알았다. 사법고시 준비만큼은 싫다는 것과, 그렇다고 사회운동가로 성장할 만한 그릇도 못 된다는 것. - P59

빗물에 구겨진 낡은주름치마 입고도 난 세상 저편 어딘가로 펄펄 날고 있었다

얼마 전 모르는 분에게서 편지 한 통을 받았다. 봉투를 열자 종이 석 장에 또박또박 눌러쓴 글씨들이 보였다. 우연히내 글을 읽은 후 식탁보로 쓰라고 내어준 신문지를 매일 훑으며 다음 글을 기다렸다고, 한 달에 한 번꼴로 연재된다는걸 알게 되어 매달 선물 받는 기분이었다고, 그래서 참 고맙다고 말씀하셨다. 편지는 교도소에서 보내온 것이었다. - P69

이토록 한심하고 불완전함에도 누군가에게는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무언가를 만들어 전할 수 있다면, 그게 내가 지닌 쓸모 중 하나라면, 나는쓸 수 있을 때까지 계속 글을 쓰고, 더욱 마음을 담아서 쓸 것이다. - P70

어떤 관계에서든 반말을 해야 가까워진다고 믿는 것은 물론 아니었다. 서로 존칭하면서도 얼마든지 거리를 좁힐 수있다. 문제는 내 경우 소신을 지키고자 ‘안‘ 놓는 게 아니라용기가 없어 ‘못‘ 놓고 있었다는 것이다. 모종의 교육 철학으로 경어를 고수하는 것이라면 일관성을 가져야 맞을진대, ‘-씨‘라는 존칭은 내키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아동연극풍의 말투가 되었다. "동환이는 어쩌다 발을 다쳤나요?"
"다음 단락은 은희가 읽어볼래요?" "준서 시험 공부 파이팅하세요!" - P72

대학원 첫 학기 때였다. 세미나를 마친 후 의기소침해하던내게 한 선배가 이야기해주었다. 굳이 70을 ‘말‘하려 애쓰지말고, 그 노력으로 80을 알기 위해 더 ‘공부‘하라고. "60 알면서 70인 척하기보다는 아는 건 80인데 70까지만 보여주는편이 낫지 않겠어? 그렇게 80, 90을 배워 알게 되면 언변은저절로 따라오는 거야." - P75

그렇게 나는 요긴한 기상 정보를 ‘네이버날씨 앱이 아닌 단골 도넛 가게에서 구했다. 고마움의 표시로 멀리서 사온 레몬케이크라도 잘라 갖다드리면 "빵 파는사람한테 빵 주네?"라며 웃었다. - P84

분노가 쉽사리 나의 힘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연민 없는 분노가 넘실거리고 예의 잃은 정의감이너무 자주 목도되는 지금 이곳에서 - P88

시선에 상처 받지 않는 세상을 만드는 데에 손을 보태고 싶었다. 그게 더 옳아서가 아니라 단지내겐 그게 더 절실하게 여겨져서다. 그 과정에서 분노가 쉽사리 나의 힘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연민 없는 분노가 넘실거리고 예의 잃은 정의감이 너무 자주 목도되는 지금 이곳에서, - P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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