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나에게 있어 글쓰기란 엉엉 우는 일과 비슷하다는생각을 한다. 이왕이면 온 힘을 다해 남김없이 잘 울고 싶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남은 일을 해낼 수 있도록. 그리고어디선가 혼자 우는 사람이 없는지도 돌아보고 싶다. 누구도 혼자 울지 않았으면 한다." ‘작가의 말’에서

"그래."
"그럼 이번 여름에?"
"콜."
그게 진영과 내가 세운 계획의 전부였고 그때까지만 해도 거의농담이었다. - P11

하지만 나는 지나가지 않은 것에 대해 말하는 게 늘 두려웠다.
말하는 순간 다른 것이 되어버릴 것만 같았고 나로서는 변화를 감당할 수 없을 것만 같았고 그 변화에 대해 누군가에게 다시 설명해야 하는 것도 자신이 없었다. 나는 내가 다 겪은 것, 감당한 것,
견뎌낸 것에 대해서만 다른 사람과 공유할 용기가 났다. - P25

우리가 해변에서 주운 쓸모없는 것들은 이제 모래바람에 파묻히고 없다. 물론 완전히 없는 것은 아니지만 예전에 우리가 모아둔 방식으로는 더이상 없다. 우리는 커다란 비치 타월을 함께 뒤집어쓰고 해변을 떠난다. 천천히 아직 오지 않은 날 쪽으로. - P38

내가 식당을 연다는 소식을 들은 민구는 카톡으로 웬 헛소리냐는 표정을 짓는 듯한 개 이모티콘을 보냈다. 처음 봤을 때 민구와정말 닮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내가 사준 것이었다.
-선미 니는 요리 못하잖아.
민구는 연달아 카톡을 보냈다.
- 돈도 없고. - P161

"더럽겠지?"
혜수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뭐가?"
"이불 말이야. 도로변에 이렇게 펼쳐놔서 매연을 다 뒤집어쓸거 아냐."
"다 들리겠다." - P149

"내가 그렇게 티를 냈어?"
"너는 늘 네 슬픔이 가장 크지."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정은은 놀랐다. 안 그런 사람도 있나? 그런 의문 때문에, 자신의 것보다 다른 사람의 슬픔이 더 큰 사람도있나. 정은은 여러 번 따져본 끝에 어쩌면 혜수야말로 그런 사람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 P135

"한국 사람이에요?"
유코가 일본어 억양이 섞인 한국말로 물었을 때는 이런 폭력적인 사람은 한국인뿐이라는 걸까 싶어 더더욱 민망해졌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유코는 다짜고짜 자기가 한잔 살테니 밖에 나가서맥주를 마시자고 했다. 살짝 당황해하는 나를 보며 유코는 혼자서술을 마시러 가기가 싫어서 그런 거라고 덧붙였다. 나는 피로했지만 이런 것도 여행이 아니라면 할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에 유코를 따라나섰다. - P109

"올봄에 죽었거든요. 살아 있을 때 좋아하던 건데, 비싸서 못 샀어요. 곧 생일이라 납골당에 그거라도 갖다주려고요."
에구, 젊은 사람이 안됐네, 미안해라, 하며 다들 당황해하는 가운데 미라씨가 소리쳤다.
"생일 선물로 중고를 주는 사람이 어딨어!"
그 말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 P89

-또 먹으러 와.
뜻밖이었다. 그 문장을 물끄러미 보면서 나와 다시 만나고 싶다는 건가 의아해하는데 이어서 메시지가 왔다. - P69

공장에 도착하니 직원 셋이 나와 나를 맞아주었다. 육칠십대쯤으로 보이는 여자 둘과 그중 더 키가 큰 쪽의 며느리라는 필리핀여자였다. 숙모는 보이지 않았다. 키 큰 여자가 물었다.
"배달하러 온 거 맞지요?" - P49

고속버스에서 내려 올라탄 시 외곽행 시내버스에는 밤늦게 이곳에 도착한 나와 금요일 밤을 즐기다 귀가하는 듯 보이는 세 명의 동남아계 남자뿐이었다. 한참을 달리던 중 내 뒤에 앉은 한 명이 내 어깨를 툭툭 치길래 돌아봤더니 그가 술냄새를 풍기며 "누나, 우리집에 안 갈래?" 하고 말을 걸었다. - P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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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오래이 안을 걸어 다녀야이 흰빛의 마라톤을 무심히 지켜보아야나는 없어지고시인은 탄생하는가 - P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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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겁의 바이러스는 북극해를 헤엄쳐 당신의 바다로 간다 - P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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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무어냐?
당신을 두고 가는 거라고 대답했을 때 아, 우리는멍들었네 이런 간단한 답은 이 가을을 매장한 삽만이 알 수 있었네 시체를 부검하는 칼은 초승달처럼섬뜩하게도 가늘었네 - P115

너 없이 희망과 함께 - P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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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5남매 중 셋째예요. 가족 안에서 존재감이 강하기 어려운 위치죠. ‘너라도 평범히, 너라도 가만히 있으라는 말을 내내 들었어요. 그래서 겉으로 보기에는 조용하고 평범하게 자랐어요. 내면에는 반항기가 있었고요. 독립을 해야만 내가 원하는 대로 삶을 꾸릴 수 있다는 생각이 컸어요. 그리고 어머니가 사업을 하셨는데, 잘될 때와 안 될 때 기복이 아주 컸어요.
대학교 1학년 때 외환위기(IMF)가 터졌고, 친구들 집이 그 타격으로 쓰러지는 걸 보아야 했어요. 이때 경험이 트라우마로남아서 내 앞가림은 내가 해야 한다는 생각을 과도하게 한 것같아요. 이 트라우마는 지금도 이겨내는 과정 중에 있고요. - P247

그림책 시장은 다른 도서 시장에 비해 유행에 민감하지 않아요. 30년 전 베스트셀러가 여전히 베스트셀러가 될 수 있는 시장이에요. 저는 순발력보다는 지구력이있고, 엄청나게 많이 그려보고 버리는 식으로 작업해요. 무척성실한 편이에요. 그런 면에서 그림책 출판과 속도가 맞아요 - P249

저에게 야성은 ‘일상의 작은 다름과 축복을 감지하는 감성‘에 가까워요. 우연히 본 다큐멘터리 한 편에푹 빠져서 두근거렸다 아팠다 기대했다 포기했다 안도하는경험조차도 야성을 지키는 방법일 수 있어요. - P257

"어느 날, 그런 생각을 했어요. 왜 항상 인생이채워질 거라고 기대하지? 가면 오고, 오면 가고, 비워지면 채워지고, 채워지면 비워지는 게인생인데 왜 마이너스의 순간을 받아들이는방법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지?" - P271

독자로서 작가님이 좋아하는 그림책들은 어떤 특징을 가졌나요?
글은 이렇게 말하고 그림은 저것을 보여주지만, 독자는 다른것을 생각할 수 있는 책. 눈에는 보이지 않는 뒤편을 건드리는그림책을 좋아해요. - P283

아무리 그려도 잘 풀리지 않는 장면이 생기면 고전을 찾아보는데요, 그러다 인간을 바라보는 시선이 저와 통하는 작품을만나면 뭔가 잘 통하는 친구를 만난 것처럼 반갑고 기뻐요 연결되고 싶은 마음에서 표식을 해두어요 고전을 차용하는 것이 그들의 생각을 공짜로 빌리는 것처럼 보여서 고민이 되기도 하지만, 좋아하는 작가에게 남몰래 문안 인사를 올리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 P293

인간의 아이러니를 관찰하고 인간다움에 대한 질문을 해나가려고 합니다. - P298

분노-부끄러움-무력감의 사이클을 뱅뱅 돌다가 머리가 터질 것같아서 책으로 도망갔다. 한병철의 《에로스의 종말》(문학과지성사)에나온 문장 ‘모순을 자기 안에 품고 견딜 수 있는 힘을 지닌것만이 살아 있을 수 있다‘에 위안을 얻고, 정희진의 《혼자서 본영화>(교양인)에서 ‘평화는 변화로 인해 발생하는 혼란과 모순을정리하지 않고 견디는 힘‘이란 문장을 발견하고 마음을 다잡았다 - P299

그림책 속 판타지에 이입해 나의 오늘과 주변의 현실을 비추어보고,
점검하고, 위안을 얻은 시간이 꽤 길었음에도 마음 한편에서는찜찜함이 사라지지 않았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을 종종 만났기때문이다. 성인이 ‘어린이 도서‘를 탐닉하는 것은 퇴행이고,
현실에서 도피하는 미성숙한 수단이라고. 현실을 사실적으로 담아낸
‘순문학‘에 비해서는 아무래도 깊이가 부족하지 않냐고.
질문이 생겼다. 정말 환상은 현실보다 열등할까? 그림책과아동문학이 보여주는 환상의 세계는 특정 생애주기에만 유효한수준 낮은 눈속임일까? 판타지를 잃어야만 진지한 어른이 될 수있을까? - P306

교보문고에 가서 《늑대가 들려주는 아기돼지 삼형제 이야기》를 우연히 읽게 되었는데, 그 10분 동안 제가 까르르 웃었어요. 옆에서 애들이 이상하게 쳐다보든 말든 신경도 쓰지 않고요. 그 무렵 그렇게 크게 웃어본 적이 없었거든요. 깜짝 놀랐지요.
얇은 책 한 권이 염세적인 생각 속에 빠져 있던 사람을 웃게 했잖아요. 그 순간 ‘이런 책을 만들고 싶다‘라는 꿈이 생겼어요. - P316

그림책은 한번도 권력을 가져본 적 없는 존재(어린이)를 심장에품은 매체다. 한 인간의 가장 취약한 시절을 지키는 책이다. - P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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